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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교회 : 카리스마와 권력성경신학사도행전

교회 : 카리스마와 권력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교회 : 카리스마와 권력

저 자 : 레오나르도 보프 (Leonardo Boff)
번 역 : 김쾌상
출판사 : 일월서각

권력체의 모습으로 교회가 지탱하려고 하면 여기에는 반드시 교회 기초가 되는 민중들이 다치게 된다는 점을 논증한 책이다. 민중들의 편에 서서 민중들을 구원하고 보호하려는 그 교회의 주체들이, 우선 민중과 자신들을 분류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오류는 시작된다. 자기네들이 권력을 일부 이전하고 분배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 자체가 중앙집권적인 발상이다. 교회의 발전과 지탱은 사제들의 호주머니에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참다운 교회는 민중들의 신앙 한복판에서 창조된다.‘민중들의 교회’이어야 하는 것을 사제들은 ‘민중들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자기네들의 교회’로 전환시키고 말았다. 그러니 민중들이 교회로부터 구원과 은총과 자선을 받으려 하면 그들이 구축한 정치적 권력체에서 지배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도대체 교회가 권력체 꼭 등장해야 하는 복음적 근거가 있는가? 오늘날 교회는 조직 내에서 인권 침해 마저 마음대로 자행되는 특수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특수사회가 고립적으로 주장하는 권위란 사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예수님의 권위를 자의로 제도화 시켰다.

초대 교회 시절이 끝나가면서 주위 세계로부터 사회 정치적 모델들을 취했다. 로마의 경험이 그런 것들이었다. 이 봉건적 스타일은 윗사람에 대한 복종을 우주 질서에 합일시키는 경건의 일종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 지배는 전혀 예수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이런 풍토를 개선하고 탈피하는 것이 구원의 권능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복음의 담지자로 위장하고자 예수님의 후계자라는 작자들을 배출시켰다. 이들은 비권력의 공동체를 권력을 가진 공동체로 전환시켰다. 복음이 권력으로 바뀐 것이다. 교황의 위대한 명령이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했다. 모든 이로부터 나오는 신앙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한 사람의 신앙을 모두가 관람하고 수용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어떻게 개혁할 수 없을까? 로마 카톨릭이 원래의 보편적 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 있다. 다시 근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복음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교회에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힘이란, 권력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기적적인 권능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스스로 매달리므로 새로운 식의 하나님 힘을 소개한 식이다.

교회가 필요한 힘은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해지는 힘이다. 타인을 섬기게 하게끔 하는 힘이다. 사도 바울이 지닌 권위는, 공동체 위에 있는 권위가 아니라 공동체를 돕기 위해 밑에 있는 권위이다. 즉 성령 공동체와 충돌되는 권위가 아니기에 참된 권위이다.

그렇다면 바른 보편적 교회란, 성령의 사역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령의 창조물로서 교회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령은 현 시대에 어떤 식으로 교회를 창조하시는가? 역사의 과정 속에서 교회를 보여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천을 가지고 교회임을 보이신다. 거기에 비해 기존의 로마 카톨릭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진리들을 지식화 시키는 것으로 교회를 지탱하려고 했다. 성령의 실질적인 경험을 교리 체제로 대체하려고 세뇌를 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이 과거부터 너무 로마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더 이상 로마적인 것이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황에서 성령께서는 이 시대에 적합한 은총을 작렬시킨다. 세상 공동체로부터 기피 당하고 박탈당한 자의 실존은 그 자체가 악의 피해자들이다. 악마는 어디서 찾을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사는 현장을 벗어나 찾을 수 있을까? 없다!

교회 안의 사회보다, 사회 안에 있는 교회에 눈을 떠야 한다. 거기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만을 기대하는 공통의 한 자리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교회란, 조직으로 된 고형체가 되면 안 된다. 늘 사건으로 남아야 한다.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서약하는 사건 말이다. 이러한 사건은 외부 상황과 연계하면서 이루어진다. 은총의 사건을 공동체화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의 작용 뿐이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소지하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다 은사를 받은 지체들이다. 각 지체는 다른 지체, 즉 공동체만을 위해 존재한다. 인도하고 통솔하고 돕고, 지도하는 은사들도 마찬 가지이다.

신약 성서에서 그들의 임무가 예배나 의식하고 관계 있는 게 아니다. 연장자로서 단지 감독하는 기능만 가질 뿐 이었다. 자기들만이 특별히 신성시되는 일과 접촉하는 권리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통솔하는 은사 속에 지배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게 아니다. 공동체 정신의 위배 여부를 식별하는 기능이다. 즉 공동체의 일치성을 누군가 훼손할까봐 감시하고 있는 기능이었다. 은사로 하여금 계속 성령님이 주신 선물로 남게 하는 봉사의 일종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결코,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만 복종케 하기 위한 것이다(사도행전 5:29/4:19).

목회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직 목회자만 있을 뿐이라는 저자(레오나르도 보프)의 말에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목회자 자신의 신성화된 탐욕 때문에 뻔질난 얼굴과 미소로 무장하고서 교회 내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 유린과 정신적 압제가 자행해 왔던가! 성령의 공동체가 되어야 될 교회가 목사의 사조직으로 변모되는 것은 목사의 개인적인 명예와 생계 확보 차원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조직을 위한 시도는 항상 폭력이 도입된다. 위계 질서가 동원되어야만 유지되는 조직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우상이다.

평 가

보프 신부는, 자신의 처지를 로마 카톨릭 당국자에게 변호하고 호소하므로 계속 카톨릭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어쩌면 이 점이 보프 신부의 결정적인 실수인 것 같다. 왜냐하면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오직 진리만을 증거 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천국민이 된 그것으로 자족하고 이미 완성임을 믿어야 했다. 세상의 교단이나 교파의 당국자들은 실제로 진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한 조직원으로 자기 조직의 전통과 치리에 충복스러운가 하는 점을 최종적으로 타진하고 점검할 따름이다.

“당신은 비 진리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주장하든지 간에 순전히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 조직의 대다수의 정서와 부합되지 않을 뿐이니 우리 조직에서 나가 주세요. 이것은 또한 우리 조직의 자유입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로마 당국이 보프 신부에게 관심 두는 것은, 브라질 교구의 순수성과 진지함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위배되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로마 카톨릭 당국자가 보프 신부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면 그것은 보프 신부가 로마 카톨릭 전통과 부합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해서 카톨릭 사람이 되겠다는 진지함 때문이다. 어쩌면 현 조직을 부정하지 않는 자세, 그 자체가 카톨릭 전통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조직 내에서 옳다는 것, 그것은 항상 예수님의 나라를 포기한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첨부파일 : 교회카리스마와권력.hwp (30.5K), Down:24

관리자(IP:124.♡.84.82)

09-02-16 16:52

교회 : 카리스마와 권력

이 근 호 목사

저 자 : 레오나르도 보프 (Leonardo Boff)
번 역 : 김쾌상
출판사 : 일월서각

권력체의 모습으로 교회가 지탱하려고 하면 여기에는 반드시 교회 기초가 되는 민중들이 다치게 된다는 점을 논증한 책이다. 민중들의 편에 서서 민중들을 구원하고 보호하려는 그 교회의 주체들이, 우선 민중과 자신들을 분류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오류는 시작된다. 자기네들이 권력을 일부 이전하고 분배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 자체가 중앙집권적인 발상이다. 교회의 발전과 지탱은 사제들의 호주머니에서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참다운 교회는 민중들의 신앙 한복판에서 창조된다.‘민중들의 교회’이어야 하는 것을 사제들은 ‘민중들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자기네들의 교회’로 전환시키고 말았다. 그러니 민중들이 교회로부터 구원과 은총과 자선을 받으려 하면 그들이 구축한 정치적 권력체에서 지배당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도대체 교회가 권력체 꼭 등장해야 하는 복음적 근거가 있는가? 오늘날 교회는 조직 내에서 인권 침해 마저 마음대로 자행되는 특수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특수사회가 고립적으로 주장하는 권위란 사실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고 오히려 예수님의 권위를 자의로 제도화 시켰다.

초대 교회 시절이 끝나가면서 주위 세계로부터 사회 정치적 모델들을 취했다. 로마의 경험이 그런 것들이었다. 이 봉건적 스타일은 윗사람에 대한 복종을 우주 질서에 합일시키는 경건의 일종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 지배는 전혀 예수적이 아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이런 풍토를 개선하고 탈피하는 것이 구원의 권능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복음의 담지자로 위장하고자 예수님의 후계자라는 작자들을 배출시켰다. 이들은 비권력의 공동체를 권력을 가진 공동체로 전환시켰다. 복음이 권력으로 바뀐 것이다. 교황의 위대한 명령이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했다. 모든 이로부터 나오는 신앙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한 사람의 신앙을 모두가 관람하고 수용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어떻게 개혁할 수 없을까? 로마 카톨릭이 원래의 보편적 교회가 될 수는 없을까? 있다. 다시 근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복음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교회에도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힘이란, 권력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기적적인 권능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스스로 매달리므로 새로운 식의 하나님 힘을 소개한 식이다.

교회가 필요한 힘은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해지는 힘이다. 타인을 섬기게 하게끔 하는 힘이다. 사도 바울이 지닌 권위는, 공동체 위에 있는 권위가 아니라 공동체를 돕기 위해 밑에 있는 권위이다. 즉 성령 공동체와 충돌되는 권위가 아니기에 참된 권위이다.

그렇다면 바른 보편적 교회란, 성령의 사역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령의 창조물로서 교회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성령은 현 시대에 어떤 식으로 교회를 창조하시는가? 역사의 과정 속에서 교회를 보여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천을 가지고 교회임을 보이신다. 거기에 비해 기존의 로마 카톨릭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진리들을 지식화 시키는 것으로 교회를 지탱하려고 했다. 성령의 실질적인 경험을 교리 체제로 대체하려고 세뇌를 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이 과거부터 너무 로마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더 이상 로마적인 것이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황에서 성령께서는 이 시대에 적합한 은총을 작렬시킨다. 세상 공동체로부터 기피 당하고 박탈당한 자의 실존은 그 자체가 악의 피해자들이다. 악마는 어디서 찾을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사는 현장을 벗어나 찾을 수 있을까? 없다!

교회 안의 사회보다, 사회 안에 있는 교회에 눈을 떠야 한다. 거기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만을 기대하는 공통의 한 자리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교회란, 조직으로 된 고형체가 되면 안 된다. 늘 사건으로 남아야 한다. 성령의 감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서약하는 사건 말이다. 이러한 사건은 외부 상황과 연계하면서 이루어진다. 은총의 사건을 공동체화하는 것은 성령의 은사의 작용 뿐이다.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소지하지 않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모두가 다 은사를 받은 지체들이다. 각 지체는 다른 지체, 즉 공동체만을 위해 존재한다. 인도하고 통솔하고 돕고, 지도하는 은사들도 마찬 가지이다.

신약 성서에서 그들의 임무가 예배나 의식하고 관계 있는 게 아니다. 연장자로서 단지 감독하는 기능만 가질 뿐 이었다. 자기들만이 특별히 신성시되는 일과 접촉하는 권리가 있었던 게 아니었다. 통솔하는 은사 속에 지배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게 아니다. 공동체 정신의 위배 여부를 식별하는 기능이다. 즉 공동체의 일치성을 누군가 훼손할까봐 감시하고 있는 기능이었다. 은사로 하여금 계속 성령님이 주신 선물로 남게 하는 봉사의 일종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결코,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만 복종케 하기 위한 것이다(사도행전 5:29/ 4:19).

목회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직 목회자만 있을 뿐이라는 저자(레오나르도 보프)의 말에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목회자 자신의 신성화된 탐욕 때문에 뻔질난 얼굴과 미소로 무장하고서 교회 내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 유린과 정신적 압제가 자행해 왔던가! 성령의 공동체가 되어야 될 교회가 목사의 사조직으로 변모되는 것은 목사의 개인적인 명예와 생계 확보 차원이 우선되었기 때문이다. 뭐든지 조직을 위한 시도는 항상 폭력이 도입된다. 위계 질서가 동원되어야만 유지되는 조직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우상이다.

평 가

보프 신부는, 자신의 처지를 로마 카톨릭 당국자에게 변호하고 호소하므로 계속 카톨릭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어쩌면 이 점이 보프 신부의 결정적인 실수인 것 같다. 왜냐하면 참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오직 진리만을 증거 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천국민이 된 그것으로 자족하고 이미 완성임을 믿어야 했다. 세상의 교단이나 교파의 당국자들은 실제로 진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한 조직원으로 자기 조직의 전통과 치리에 충복스러운가 하는 점을 최종적으로 타진하고 점검할 따름이다.

“당신은 비 진리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주장하든지 간에 순전히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 조직의 대다수의 정서와 부합되지 않을 뿐이니 우리 조직에서 나가 주세요. 이것은 또한 우리 조직의 자유입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로마 당국이 보프 신부에게 관심 두는 것은, 브라질 교구의 순수성과 진지함이 아니라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과 위배되는가 하는 점이다. 만약 로마 카톨릭 당국자가 보프 신부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면 그것은 보프 신부가 로마 카톨릭 전통과 부합되는 주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계속해서 카톨릭 사람이 되겠다는 진지함 때문이다. 어쩌면 현 조직을 부정하지 않는 자세, 그 자체가 카톨릭 전통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조직 내에서 옳다는 것, 그것은 항상 예수님의 나라를 포기한 대가로 주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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