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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두 지평 : 신약해석학과 철학적 기술(記述)성경신학[철학]

두 지평 : 신약해석학과 철학적 기술(記述)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두 지평 : 신약해석학과 철학적 기술(記述)

저 자 : Anthony C, Thiselton
번 역 : 권성수
출판사 : 총신대학출판부

개신교의 전통에 의하면, 진리는 계시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그리고 그 계시는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에 따라 진리가 정해진다.

진리를 결정짓는 성경 해석 작업을 근원부터 파헤쳐 놓고서 저자는 스스로 다짐한다. 일말의 의구심도 발생되지 않는 확실한 원리를 세울 수는 없을까? 이점에 대해서 도전한다. 저자가 작업을 시작한 곳은 두 지평이 보이는 곳이다.

하나의 지평선은, 과거의 산물이 성경이다. 다른 하나의 지평선은 현재 시간을 확보하고 살아가는 지금의 인간들이다. 성경과 인간, 이 둘 사이의 갭을 어떻게 순조롭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 저자는 이 두 지평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 간다. 균형을 맞추어가면서 하나의 원칙을 세운다.

현재를 강조하면, 성경이란 한낱 현대인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참고서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의 계시가 된다. 반대로 과거를 강조하면, 현대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구원의 계시가 아예 미존재하는 것이 된다. 성경이 과거에 이미 종결된 계시인 동시에 현재에서 계속 유효한 계시로 인정되려면 그 동안의 시간적 간격을 계속 메우어 왔던 통로가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언어’로 결정했다. 세월은 흘러도 언어는 유구한 세월을 지탱해 왔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 언어 위에 실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난제가 들어있다. 만약 언어가 변질되어 버린다면 계시도 변질될 우려가 있게 된다. 비록 언어는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변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실려 있어야 본래의 하나님의 뜻은 변치 말아야 한다.

여기서 해석자는 이중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 해석할 언어와 해석된 언어가 반드시 한 지점에서 서로 교류가 일어나야 한다. 저자는 그 시도를 '번역'이라고 보았다.'번역'은 번역자의 신학과 상황이 가미된다. 과연 이점이 계시를 순수하게 후대에 전하는데 지장이 되지는 않을까? 저자는, 오히려 유일한 건전한 장터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번역이란, 이 지구상의 모든 사상의 단절과 문화의 골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극복 못되는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어쨋던 인간은 모두 하나이다. 그 하나 밖에 없는 인간성이 계시의 가치를 유효하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과거의 것은 그대로 현재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자체를 속에서 뭔가 복잡한 것이 기다린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 끼어들어 존재의 한결성에 위협이 되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장래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과 의심, 이것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속에 내재되어 본인을 겁주고 있는 죽음과 몰락 체험이다. 이 죽음과 상실 때문에 자아는 과거와의 단절될 위험에 놓인다. 어떻게 해결점은 없을까? 이것이 해결되지 아니하면 계시전달 체제로서의 인간존재는 의미없다. 하지만 그것마저 추월하게 하는 것이 또 인간 속에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뭔가 나에게 찾아와서 나를 부르는 소리이다.

이 미지의 소리에다 하나님을 대입해 보자.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성립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는 순간, 심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죽음과 몰락을 경험된다. 동시에 그 죽음과 몰락마저 극복하는 복음에 대하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에 의해서 인간은 새로운 존재자로 등장하게 되고 이 새로운 존재에 의해 언어가 발생되며 그 언어의 고백과 발생은 새로운 역사 언어를 창출하게 된다. 이 역사 언어로 계시 번역에 참여하게 되고, 그것을 읽는 후대 사람들은 이 역사 언어에서 태초의 신앙 사건을 만나게 된다. 과거에 한 인간, 혹은 한 집단체를 신앙인으로 전환시켰던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사건을 일으켜서 역사 언어를 통해 서로 교류가 가능하도록 조치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란 그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언어의 한계는 곧 인간세계의 한계이다. 인간들은 이 한계 있는 언어들을 이용해서 늘 자기 선입감에만 충실한 체제 짜기에 몰두한다. 하나님은 바로 인간들이 꼭 붙들고 있는 명제와 선입감들을 감안해서 뭔가 상호 모순될 수 밖에 없는 언어 체제를 성경을 통해 개입시켰다. 이로서 기존의 체제를 변혁하려 하신다.

예를 들면, 성경 속에서 신자는 한편의 언어 맥락에서는 의롭게 되지만 다른 데서는 신자라도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어 속에서 인간에게 심판주로, 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성경이라는 과거의 언어 모음은 현재인들의 신앙 의식과 단지 융합하기 위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인간들에게 변혁을 촉구하는 취지로 다가온다.

평 가

저자의 결론은 한마디로 말해서,성경 안에서는 언어 맥락의 다양성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하나의 진리 체제를 고수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성경을 불신케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증명해 준다. 그것은 현대를 사는 인간에게 지속적인 겸손을 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리를 항상 이성에만 둘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오늘도 성경은 경종을 울리면서 다가온다. 인간들이 필요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에 우선권을 두는 성경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성령을 도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성경 해석학를 시도하려는 의도에는, 저자의 성령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성령이 도입되면 성경 해석학이 학문적으로 혼선이 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성령의 직접적 관여를 대신하는 것으로, ‘말씀-사건으로서의 역사'라는 환경을 골랐다. 역사라는 긴 작업대 위에서 인간들이 이해할 만한 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이 성경의 요구사항이 못된다. 구약 성경에서부터 차고 올라오는 선지자들의 신학에 대해 저자는 무지하다. 인류에 대한 불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말기에 가서 역사와 성령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에 눈이 뜨여져야 한다. 결코 둘 다를 수용할 입장이 아니다.

오늘날에 와서 성령님은 역사와 경쟁 상태에 돌입되어 있다. 성령 편에 서면 역사를 고발하든지, 아니면 역사 편에 서서 성령의 사역을 불신임하든지 해야한다. 저자가 묵시 개념을 ‘무시간적' 개념으로 처리한 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과해서 나온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판정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른 성경해석학은 융합이나 변혁이 아니라, 세상이 주님으로부터 고발당해 반드시 멸망되어야 될 이유를 보이는 절차로서만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 전달의 도구로서의 성경해석학이 아니면 하늘에 계신 주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 두지평.hwp (32.0K), Down:35

관리자(IP:124.♡.84.82)

09-02-16 16:42

두 지평 : 신약해석학과 철학적 기술(記述)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앤토니 티슬턴 (Anthony C. Thiselton)
번 역 : 권성수
출판사 : 총신대학출판부

개신교의 전통에 의하면, 진리는 계시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그리고 그 계시는 성경이다. 따라서 성경 해석에 따라 진리가 정해진다.

진리를 결정짓는 성경 해석 작업을 근원부터 파헤쳐 놓고서 저자는 스스로 다짐한다. 일말의 의구심도 발생되지 않는 확실한 원리를 세울 수는 없을까? 이점에 대해서 도전한다. 저자가 작업을 시작한 곳은 두 지평이 보이는 곳이다.

하나의 지평선은, 과거의 산물이 성경이다. 다른 하나의 지평선은 현재 시간을 확보하고 살아가는 지금의 인간들이다. 성경과 인간, 이 둘 사이의 갭을 어떻게 순조롭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 저자는 이 두 지평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 간다. 균형을 맞추어가면서 하나의 원칙을 세운다.

현재를 강조하면, 성경이란 한낱 현대인들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참고서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들의 욕망의 계시가 된다. 반대로 과거를 강조하면, 현대인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구원의 계시가 아예 미존재하는 것이 된다. 성경이 과거에 이미 종결된 계시인 동시에 현재에서 계속 유효한 계시로 인정되려면 그 동안의 시간적 간격을 계속 메우어 왔던 통로가 결정해야 한다.

저자는 그것을 ‘언어’로 결정했다. 세월은 흘러도 언어는 유구한 세월을 지탱해 왔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 언어 위에 실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난제가 들어있다. 만약 언어가 변질되어 버린다면 계시도 변질될 우려가 있게 된다. 비록 언어는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변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실려 있어야 본래의 하나님의 뜻은 변치 말아야 한다.

여기서 해석자는 이중적인 부담을 지게 된다. 해석할 언어와 해석된 언어가 반드시 한 지점에서 서로 교류가 일어나야 한다. 저자는 그 시도를 '번역'이라고 보았다.'번역'은 번역자의 신학과 상황이 가미된다. 과연 이점이 계시를 순수하게 후대에 전하는데 지장이 되지는 않을까? 저자는, 오히려 유일한 건전한 장터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번역이란, 이 지구상의 모든 사상의 단절과 문화의 골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서 극복 못되는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모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어쨋던 인간은 모두 하나이다. 그 하나 밖에 없는 인간성이 계시의 가치를 유효하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과거의 것은 그대로 현재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자체를 속에서 뭔가 복잡한 것이 기다린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 끼어들어 존재의 한결성에 위협이 되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장래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과 의심, 이것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속에 내재되어 본인을 겁주고 있는 죽음과 몰락 체험이다. 이 죽음과 상실 때문에 자아는 과거와의 단절될 위험에 놓인다. 어떻게 해결점은 없을까? 이것이 해결되지 아니하면 계시전달 체제로서의 인간존재는 의미없다. 하지만 그것마저 추월하게 하는 것이 또 인간 속에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뭔가 나에게 찾아와서 나를 부르는 소리이다.

이 미지의 소리에다 하나님을 대입해 보자.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성립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접하는 순간, 심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죽음과 몰락을 경험된다. 동시에 그 죽음과 몰락마저 극복하는 복음에 대하게 된다. 이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에 의해서 인간은 새로운 존재자로 등장하게 되고 이 새로운 존재에 의해 언어가 발생되며 그 언어의 고백과 발생은 새로운 역사 언어를 창출하게 된다. 이 역사 언어로 계시 번역에 참여하게 되고, 그것을 읽는 후대 사람들은 이 역사 언어에서 태초의 신앙 사건을 만나게 된다. 과거에 한 인간, 혹은 한 집단체를 신앙인으로 전환시켰던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동일한 사건을 일으켜서 역사 언어를 통해 서로 교류가 가능하도록 조치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란 그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언어의 한계는 곧 인간세계의 한계이다. 인간들은 이 한계 있는 언어들을 이용해서 늘 자기 선입감에만 충실한 체제 짜기에 몰두한다. 하나님은 바로 인간들이 꼭 붙들고 있는 명제와 선입감들을 감안해서 뭔가 상호 모순될 수 밖에 없는 언어 체제를 성경을 통해 개입시켰다. 이로서 기존의 체제를 변혁하려 하신다.

예를 들면, 성경 속에서 신자는 한편의 언어 맥락에서는 의롭게 되지만 다른 데서는 신자라도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어 속에서 인간에게 심판주로, 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성경이라는 과거의 언어 모음은 현재인들의 신앙 의식과 단지 융합하기 위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마다 인간들에게 변혁을 촉구하는 취지로 다가온다.

평 가

저자의 결론은 한마디로 말해서,성경 안에서는 언어 맥락의 다양성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하나의 진리 체제를 고수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성경을 불신케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증명해 준다. 그것은 현대를 사는 인간에게 지속적인 겸손을 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리를 항상 이성에만 둘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오늘도 성경은 경종을 울리면서 다가온다. 인간들이 필요한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가에 우선권을 두는 성경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성령을 도입하지 않는 상태에서 성경 해석학를 시도하려는 의도에는, 저자의 성령에 대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성령이 도입되면 성경 해석학이 학문적으로 혼선이 일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성령의 직접적 관여를 대신하는 것으로, ‘말씀-사건으로서의 역사'라는 환경을 골랐다. 역사라는 긴 작업대 위에서 인간들이 이해할 만한 식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발상이 성경의 요구사항이 못된다. 구약 성경에서부터 차고 올라오는 선지자들의 신학에 대해 저자는 무지하다. 인류에 대한 불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말기에 가서 역사와 성령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에 눈이 뜨여져야 한다. 결코 둘 다를 수용할 입장이 아니다.

오늘날에 와서 성령님은 역사와 경쟁 상태에 돌입되어 있다. 성령 편에 서면 역사를 고발하든지, 아니면 역사 편에 서서 성령의 사역을 불신임하든지 해야한다. 저자가 묵시 개념을 ‘무시간적' 개념으로 처리한 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과해서 나온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판정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른 성경해석학은 융합이나 변혁이 아니라, 세상이 주님으로부터 고발당해 반드시 멸망되어야 될 이유를 보이는 절차로서만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 전달의 도구로서의 성경해석학이 아니면 하늘에 계신 주님이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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