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묵시문학에 대하여
유대 묵시문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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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묵시문학에 대하여
우선 묵시문학의 발생 과정부터 살펴보자.
묵시문학의 뿌리는 구약의 예언 운동에서 시작된다. 묵시문학에 나타난 종말론 형성은 포로기 직전과 포로기의 예언 운동에서부터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포로기 직전, 그리고 포
로기라는 민족적 위기와 패망은 새로운 정치 상황에 직면하여 등장한 신앙 문학 형태이다. 포로후기의 공동체에서 그것을 다시 급진적으로 변형시켜 그 시대의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새로운 해답을 주려고 한 것이 묵시문학의 시작이었다.
포로 후기 시대에서 여호와 신앙의 역사는 흔히 양극 현상을 띤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과 대립과 투쟁의 역사로 간주된다. 그 대립과 투쟁의 역사 속에서 배태된 묵시문학은 그 당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재에 대한 그들의 행위와 결단에 따라 장차 임할 여호와의 미래적 구원에 관해 묘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대심판, 대파국의 시기를 말한다. 이로서 과거, 현
재, 그리고 미래가 여호와 신앙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조 속에서 비로소 이해된다. 그 구체적 변화를 열거하면 예언 문학과(역사적 종말론을 내용으로 하
고 있음) 묵시문학(묵시적 종말론을 내용으로 가짐) 이 둘 다 미래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그들은 미래를 각각 다르게 이해한다. 예언 문학은 미래를 현재로부터 계속적으로 발전되는
것으로 보고 그러한 역사의 영속성 속에서 자기 백성의 노예 살이나 포로 생활에서의 해방을 선포해 주는 반면 묵시문학은 미래를 근본적으로 현재와는 무관한 것으로 질적으로 비영속
성을 가지며 현재와는 전혀 다른 마지막 때를 선언했다. 이로써 묵시문학의 저자들은 예언 문학의 저자들 보다 역사를 더 급진적으로 축소하여 보았던 것이다.
주전 2세기 때의 새로운 역사적, 사회적 여건은 정치적 불의, 군사적 횡포, 그리고 헬라 문화와 우주관의 유입 등으로 기존의 사회적, 종교적 체제의 존립 여부에 의문을 제기했고 또 사
람들이 현재의 사회적 종교적 체제에 대하여 소외감을 갖게 되었을 때 묵시문학은 활발하였다. 초기 하시딤 같은 종교적 집단도 묵시문학의 표현을 빌려 그들이 속했던 상황에 대처했
고 또 바리새파, 에센파,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종교 집단들도 묵시문학적인 종말론의 입장을 따랐었다. 새로운 압제당함과 종교적 혼합의 위기를 앞두고 묵시문학의 의의를 단순히 한
문학 장르나 하나의 종교 사회적 운동이나 하나의 사상의 체계라기보다는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으로서 현 세상에 발생하는 사건들과 장차 등장할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하심을 비교하
면서 나타난 저작 활동이다. 이 세상의 현실과 이상(vision)사이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묵시문학에서는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것을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신앙 공동체가
그들을 억압하는 정치, 종교, 사회 조직에 대하여 스스로 등을 돌리고 양자택일적인 상징적인 우주관을 세운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러면 그 묵시문학이 형식상, 그리고 내용상 어
떤 공통점과 특징을 가졌는가? 먼저 형식적인 공통점을 알아보면,
1. 익명성
후기 유대적 묵시문학의 저자들과 초기 무깃문학의 자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이나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는 그 시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익명성의 경향을 직접적으
로는 현 정치, 종교, 사회 체제를 부인하는 저자들의 개인적 입장 표명에서 왔다.
2. 역사의 은유화
묵시문학의 저자들은 역사를 묘사함에 있어 상징적이며 신화적인 언어나 표상을 사용함으로 바로 의미를 개닫지 못하게 하는 경향을 띤다. 그래서 현재 권력 주도권을 갖고 있는 세력
들인 제국들, 그들의 독특한 상징적인 짐승들, 거대한 나무, 혹은 밀어닥치는 파도와 같은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Dan. 7, Ⅱ Baruch 36 f, Ⅳ Ezra 11, ⅠEnoch 88ff Apoc. Abr. 12) 또
마카비시대와 그 직후의 것으로 간주되는 에녹 1서 85-90장에는 창조 시대부터 메시야 시대가지의 이스라엘 긴 역사가 은유화 되어 있다.
3. 환상과 상징
묵시적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환상과 비유는 구별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엄격히 구별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묵시문학 저자들에 의해 묘사된 환상이나 비유들은 그 형태에 있
어서 어김없이 어떤 문학적인 영향을 받았음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에스라 4서 11장에 나타난 독수리 상은 다니엘 7장에 근거한 것으로 제4왕국을 묘사한 것이다. 다만 다니엘에서는
희랍을 나타냈다면 에스라 4서에서는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차이점이 있다. 또 구름 속에 나는 사람에 대한 묘사나 '사람 같은 형체'(에스라4서 13:4)는 다니엘 7:13의 '인자 같은이'라는
표현을 생각케 함으로서 에스라에서는 이전의 작품들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모든 묵시들은 현재의 문학 형태에 이르기가지 오랜 문학적인 발전을 거쳐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창작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환상을 직접 봤거나 비유를 듣고는 그것들에 대한 심사숙고를 거친 후, 우리가 지금 읽는 비유들이나 은유적인 표현들을 창안해 냈을 가능성
이 있다. 예를 들면 에스라 4서의 저자는 그 이전의 어떤 문학적인 전통에서는 발견되는 않는 독특한 여러 형태의 표현 양식들, 즉 환상, 설화, 상징, 유비, 비교, 그리고 예화 등등을 광
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에녹에서는 비유들이 예언자적 담화, 시, 그리고 환상 같은 문학 형태가 나타나고, 제2바룩서에는 일련의 비유들이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모두 그 시대의 생활
속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어떤 해답을 주고자 하는 예화들임에 틀림이 없다.
묵시문학에서의 비유는 여러 형태를 위하고 있으나 공통점은 하나님의 사자나 환상을 보는 사람이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전달해 주기 위해 사용되어 지고 있다. 따라서 비유나
은유적인 방법들이 그 자체로서는 비밀을 알기에 불가능하고 해석자가 따로 주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면 내용상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1. 종말
묵시문학의 모든 저자들은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사건들에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장차 일어날 사건들의 구체적인 순서까지도 예견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이 세상의 모
든 상황이 송두리째 뒤집혀질 것에 대한 열렬한 기대성도 제공해 준다.(바룩2서85:10, 에스라4서 4:50, 다니엘 12:11ff) 이러한 종말은 지금까지의 역사와 어떤 접촉점을 갖는데 그 접
촉점은 바로 묵시를 보는 자이다.(sers) 묵시라는 경로를 통해서 참지식을 얻고 그 지식이란 바로 초자연적인 천사들과 악마 군대 사이의 싸움이 역사를 최후의 전쟁터로 몰아넣는데 곧
그것이 파국이다. 역사의 순조로운 진행이 여기서는 철저히 부정되고 오직 남은 것은 대심판뿐이다.(다니엘 7:26, 바룩2서 70:8, 에스라4서 5:4f)역사에 대한 이러한 비관은 그 역사적
종말 뒤에 나타날 새로운 세계의 도래라는 낙관으로 교체된다. 전연 새로운 세계의 개입으로 인해 확연히 다른 신천지가 될 것이다.
2. 두 세대들(The Two Age)
묵시문학의 저자들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계획과 지금 나타난 하나님의 활동 사이에 그어지는 선을 시간 개념으로 번역하여 현 세대를 장차 오는 세대와 구별하고 있다.
현 세대는 사악한 세력에 의해 하나님의 권위가 찬탈된 거으로 보고 있으나 장차 올 세대에서는 하나님만이 절대 통수권자가 될 것이고 그의 온전성이 만물위에 나타날 것이다. 에스라
4서 7:50에서 '가장 높으신 이가 한 세대만 창조하시지 않고 두 세대를 창조하셨다'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묵시문학적 사고의 기본 원리이다. 이 두 세대의 내용은 서로 상충되는데 후
의 세대가 전의 세대를 극복하고 삼키게 될 것이다. 현 세대는 악마의 지배를 받아 대체로 파멸, 시련, 슬픔, 위험, 그리고 걱정, 근심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새 세대에서는 악마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됨으로 빛, 영과, 생명이 반대 급부로 주어진다. (다니엘 6:26)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처신하면 오는 세대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드러난다. 오는 세대를 소망하는 사람은 현 세대에서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고 현 세대에 대
해서는 절대 '아니요'라는 강한 거부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의인의 반열에 들어서야 한다.(다니엘 6:22, 에스라4서 13:54-55)
모든 일은 결정되어 있고 인간이 장차 어떠한 종말을 맞이할 것이냐에 관한 것은 각자의 결단에 달려 있다.
3. 심판과 하나님 나라
바룩2서 83:4-9에는 현 세대의 끝이 곧 새 세대의 시작으로 표현하면서 이 두 세대 사이에는 심판에 의해 구별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에스라4서 7:45-61에도 마찬기지이다. 더 나아가
아직 비밀스러운 마지막 때를 계산해 보려는 노력으로 때를 12과정으로 나누기도 하고(바룩2서 25-30), 333때도 나누기도 하다. (Ass. Of Mos.10) 또 다니엘에서는 70이레와 한때 두
때 반때로 어떤 코스를 제시한다.(다니엘 9:24-27, 7:25)
묵시문학에는 또 하나, 즉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 도래 이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특정한 고통과 비탄의 시기가 온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시기를 흔히 메
시야 도래의 진통'으로 지칭되기도 하는데 때로는 그 고통이 정치적이고 군사적이기도 하지만 초자연적인 조짐이나 세력, 자연 질서의 변동으로 온다. 이 시기가 끝나면 마지막 구원 결
정은 오직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주어지게 된다.(다니엘 4:32, 바룩2서 73:1, 에스라4서 7:33) 묵시문학에서 '하나님께서 보좌에 오르신다'의 표현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제국을 대
신하여 영원히 이 땅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뜻한다.(다니엘 7:14, 에녹41) 이는 어떤 왕국이 아니라 새 시대의 도래를 말한다.
4. 메시야와 인자
마지막 때에 보좌에 오르시는 분과 연관해서 왕적 기능을 갖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후의 구원을 완성하고 보증하기 위한 한 대리인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은 종말론적인 구원
을 가져오고 또 구원을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 '중보자' 혹은 '대리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대리인은 여러 개의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메시야' '인자' '택함 받은 자' 등이며 그의 사명
또한 이름만큼이나 다양하다. 다니엘 7장, 에녹1서 37-71 그리고 에스라4서 13장에는 구원을 가져오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인자가 언급되나, 다른 한 편에서는 바다에서 나오는 사람 등
의 묘사도 발견된다. (에스라4서 13:4) 묵시문학에서는 메시야에 관한 일관성 있는 이해는 없다. 묵시문학 여러 곳에서 그 대리인은 이 세상 사람 가운데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천사
와 같은 천상적인 분인지도 분명치 않다. 예를 들면 다니엘 7:13, 12:1 그리고 Assumption of Moses 10:2과 같은 곳에서는 그 대리인이 천상적인데 그 이외에 메시야라 언급된 곳에서
는 반드시 인간으로 이해된다. 이런 혼란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한 개인을 통해, 그리고 구체적인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확
신하고 기대하고 있으며 그들의 대망의 내용에 있어서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국가적 독립과 해방을 꿈꾸는 인간적인 메시야
를 대망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초자연적인 구원을 바라며 천상적인 구원자를 기다렸다. 에녹 1서의 중간 부분에는 (37-71) 빈번하게 인자로 서술된 한 개인이 등장한다. 그 분은 승천
한 에녹이 변화하여 다시 오실 분이라는 것이다. 그 분은 모든 비밀을 알고 있으며 인류의 모든 행위를 기록해 두고 있다. (81:2) 또 에스라 2서에서는 한층 더 개인적 메시아의 용모를
볼 수 있다.
어쨌든 주후1세기경 유대인들은 한 사람이 하늘에 올리워져서 초자연적인 존재의 사람이 인자라 불려질 자격이 있고 심판주와 구세주로서 영광 중에 다시 올 것임을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주전 2세기로부터 주후 1세기 내지는 2세기에 기록된 유대 묵시문학들은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종교적으로 분석하면서 유대교의 부흥과 신앙 존속을 위해 유
사 다니엘서 같은 묵시문학을 저술하면서 다니엘에 나타난 묵시적 요소를 차용하여 그들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개작하고 또 다른 헬라 신비주의 사상과 혼합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학과 세계(감리교 신학대학) 제12호(1986년) 박익수 교수의 '묵시문학과 신약성서'의 일부 요약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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