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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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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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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성

하나님 나라에서 예배란 무엇인가? 흔히 예배란 특정 순서에 따라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연상되기 쉽다. 이와 같은 인식은 고대로부터 인간들이 추구해 온 '종교로 통한 자연에 대한 통제 행위' 관습이 그대로 무의식 속에서 전수되어 오기 때문이다. 형식과 의식의 발달은 인간의 외부세계라 할 수 있는 신과 자연에 대한 치밀한 관리 수단의 발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인간 스스로가 깊은 공포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전반적인 사회구조가 붕괴되며 미래 예측도가 현저히 떨어졌을 때, 큰 위기 의식이 큰 미신을 유발시킨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계약 행위를 단순히 형식의 각도에서 파악하면 이는 분명 기독교가 아닌 하나의 미신 종교로 전락된다.
복음을 영접한 이후의 한국교회는 그 복음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작업을 등한시 한 결과로 교회 중심적 교회로 변모하고 말았다.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문의가 들어 왔을 때, 얼른 대답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모여서 '예배' 드리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예배행위 자체에 신비의 효능 같은 것이 젖어 있는 것으로 일반인이 인식해 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이런 식의 교회라면 분명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없는 사교 집단이 된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배란 무엇인가? 또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바르게 드리는 것인가?' 하는 식으로 물어 보아서는 안된다. 위와 같은 질의의 의면 에는 예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 반대 급부로 실익을 얻는다든지 신의 못 마땅함을 덮을 수 있는 기본 예의가 된다는 사고 방식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구속사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이 탐구를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가 참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있어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할 일은 '어린양의 희생'을 경배 하는 일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5-7장까지 보면 예수님께서 성도에게 원하는 것은 바른 삶이다. 만약에 '어린 양'을 경배하는 것이 예배라면 기독교는 예배와 바른 삶이라는 두 개의 뿌리를 갖고 있는 셈이다. 흔히 말하기를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인 동시에 행함의 종교라고 언급하고 있다. 신앙 그것만으로안되고 반드시 윤리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한다. 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신앙과 열매는 서로 붙어 있어 단일 종교 양태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두가지의 상반된 종교행위를 강요하는 것으로 성격상 자체내에 갈등과 모순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더욱 말리고 싶은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예배행위 자체를 신성시 한다는 것이다. 예배행위를 신선시 하면 그 예배공간과 에배시간도 자동적으로 신성시 될 것을 요구당한다. 뿐만 아니라 예배드리는 집례자도.
예배당은 성전으로 바뀌게 되고 주일날은 다른 날과 다른 특별히 효험 있는 날이 된다.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것과는 달리 특별한 소명의식과 신의 게시가 요구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다른 직업의 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과 속의 구분이 직업으로 결정되는 것으로 성경 전반적으로 배치되는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구호가 성립된다. '예배당 안에서는 거룩하게 예배드리고 예배당밖에 나가서는 바르게 살자!'
벽돌 한 장이 세상과 천국을 구분할 수 있는가? 예배와 윤리를 구분할 수 있는가? 자칫하면 이중 계시론으로 나갈 수도 있다. 즉 성경만이 게시가 아니라 목회에서 얻은 경험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돕고자 하는 계시일 수가 있기 때문에 계시라는 것이 꼭 성경에 국한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이단 같은 소리도 나올 수 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원천이 바로 이런 이중성을, 궁극적으로 단일성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 인간에게 무리하게 강요했다는데 있다. 사실 신학자들마다 이중성을 통합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등장했지만 시원치가 않았다. 그것은 신학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제 목회 현장에 그대로 먹혀들어 갈 수 있을련지의 자기 확신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앞뒤가 맞는 논리라 고해서 실용적인 면에 반드시 성공 못한다는 두려움이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두 신학적 전개에 무리가 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나라에는 이 이중성은 극복이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개념을 율법의 완전한 실행으로 보고 있다.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이상적 상태는 '어린 양의 희생'에 감복하는 것이 중심점이다.(물론 각종 불의한 자들이 불못에 들어가지만 이들 행위는 윤리적인 잘못보다 어린 양의 희생에 대한 무관심이 결정적인 죄악이다. 계시록 21:8) 그러면 이러한 게시의 변천과정에서 어떻게 신앙이 윤리와 통합되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중간 과정인 바울의 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울의 신학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온 하나님의 나라와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올 하나님 나라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사건을 핵으로하여 주어진 계시이다. 이미 오신 주님은 왜 왔으며 앞으로 오실 예수님은 왜 두 번째 와야만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이 결코 지상의 인간들 요구에 대한 미흡함을 메우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근원적인 본질상 필요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역사 안에서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 세계의 거의 모든 신약 신학자들의 견해이다.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 활동은 역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실재하여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관계를 성사시킨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역사 속에서 '이미' 부분이 모호해 진다. 아니,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사항은 성경 자체가 '이미' 부분을 역사안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을 역사안의 사건으로 국한하다보니 재림의 사실 앞에서 그 초림은 점차 빛이 퇴색해 버렸다. 마치 스펙트럼 속에 있는 색깔의 배열처럼 그렇게 해석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초림이 부각되는 부분과 재림이 부각되는 부분의 경계선이 그려질 판국이다. 이것은 근본적 바울의 신학을 깨는 발상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시간의 전후를 따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시간과 전혀 무관한 층도 있는 것이다. 천년이 하루같이 하루가 천년 같아서 도무지 시간 측정이 무의미한 층이다. 소위 묵시적 차원이다. '이미'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미'와 '아직'을 같은 일직선상에 놓고 대비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일직선상에 놓고 점으로 표시는 할 수 있다. 둘 다 역사 위에 발생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로서 표현된다고 해서 역사와 시간을 초월했다는 의미까지 함유하기에는 역사는 역 부족이다. 죄로 규정된 역사가 의를 표현해 내기란 자기 한계성을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율법의 온전한 준수 상태를 하나님 나라로 이해한 예수님은 그 율법의 온전한 상태를 묵시적 차원에서 해결했다. 왜냐하면 역사 속의 인물로는 기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 안에서 그 묵시적 활동을 계속하시는 주님의 현 상태 이해했고 그 활동은 곧 '이미' 완성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적용으로 돌렸다. 그러나 누구나 이해하다시피 아직 사탄은 완전히 굴복되지 않고 택한 백성들도 다 모집되지 않았고 악은 도처에서 활개친다. 그러나 사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미래의 되어질 일까지 '이미' 속에 앞당겨 내용으로 탐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까지 진행된 일만이 하나님나라의 완성도 전부가 다 포함시켜 현 성도의 것으로 참요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묵시세계의 특징이다. 묵시세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서의 성도의 할 일이 무엇인가? 윤리인가? 아니면 예배인가? 아니면 둘 다를 원천적 뿌리로 간주하고 다 행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이것은 '예수 안에서'라는 표현 안으로 통합시켰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어린 양'에 대한 경배는 '이미' 성도 안에서 행사되어져야 한다. 우리 인간이 못하는 것을 '어린 양'의 희생으로 온전한 의를 제조하셨다. 또 그것을 성령을 통해 우리들의 것으로 인정하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로서 성도는 윤리로부터 해방되었으며 행함으로부터도 해방되었다. 문제는 '그리스도라는 희생제물 안'에 함께 동참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갈라디아서 2:20-21) 그런데 역사 안에서 성도가 묵시적 차원의 제물에 동참되는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은 로마서 12:1-21에 나온다. 산 제물이 되는 이것이 영적 예배인데(사도는 항상 영적 예배를 원했다.) 그 영적 예배라는 것이 몸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각 지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은 바로 산 제물로서의 몸짓이다. 어쨌든 '어린 양'의 희생을 경배하는 것이 역사 속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한 충성으로 나타난다. 이미 확정된 신분으로 죄와 싸우고 마귀와 싸우고 불의와 싸우면서 오직 그리스도의 몸만을 세워 가는 이 일이 바로 예배요 경배이다. 산상보훈의 완전한 율법은 사도 바울에 있어서는 산 제물 행위 속에 다 함유된다.(롬 13:8-10)
신약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나 사도가 특정 순서를 정해 가면서 예배의 틀을 짜 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교회는 형식적인 예배를 마지막 카드로 사용한다. 물론 사도 바울도 교회 내에서 무질서를 싫어했다. 계시 받은 게 있으면 순서를 지켜서 남들이 알아듣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의 만찬을 기념했다. 그러나 이 모든 행사는 소위 종교의식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 복음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일꾼의 신분으로 '아직' 이 역사 속에서 남은 할 일을 향해 매진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거룩하며 신성한가? 바로 성도의 몸이 성전이며 값을 주고 산 거룩한 하나님의 소유물이다.(고전 7: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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