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8 : 13 (독수리의 외침)
계 8 : 13 (독수리의 외침)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1)
본문 : 요한계시록 8장 13절
제목 : 독수리의 외침
일시 : 2006년 11월 26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39강-계8장,13,(독수리의,외침)-rev061126.hwp
우리교회
06-11-27 21:58
독수리의 외침
2006년 11월 26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8:12-13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세상의 모든 일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되는 작업장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아니하시고 일하십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시된 그
모든 설계도대로 차질없이 진행시켜버립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들이 이런 일방성에 이의를 걸면 안됩니다. 이의를 걸 입장이 못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독수리가 고공을 날면서 이 세상을 향하여, ‘화로다’ 라고 하면서 중복해서 외치고 다니는 일도 우리 인간의 아이디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당할
뿐입니다. 저지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입장에서, 왜 이 세상이 그냥 하나님의 저주를 당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점을 알면 될 일입니다.
이 세상에 대한 개선안이나 버틸 수 있는 방안 같은 것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지옥은 왜 만들어놓았느니' 혹은 ‘왜 선악과 나무 근처에 철조망을 사전에 설치 않았느냐’하는 식의 반발
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자체는 하나님 자신을 위한 세상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만족하시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요 그 안에 소위 ‘인간’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를 위한 하나님이란 사고방식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일종의 거대한 모자이크판입니다. 그 판 안에는 조각조각 같은 그림들이 들어있습니다. 그 그림들을 모아놓으면 오직 하나의 그
림만 등장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 의해서 통일된 새세계입니다. 따라서 그 어느 인간치도 예수님과 무관한 인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만 감사하는 자들은 천국에 몰아넣으시고, 반대로 예수님의 공로에 흠집을 내는 자는 지옥으로 몰아넣으셔서, 천국에서나 지옥에서다
모든 곳에서 예수님만이 영광 받게 하셨습니다.
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오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말합니다. “주신 자는 하나님이시지만 일단 내 것이 된 이상은 내 허락없이는 못 내
어놓겠다”는 식입니다. 즉 하나님을 거론하고 하나님을 운운하면서도 항상 자기 중심점을 포기 못하는 양상으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광야를 비를 퍼붓게 하는 이유를 모릅니다. 모든 세계의 학자들이 연구해서 쓸모없는 황무지에 ‘비’라는 에너지를 허비하시는 이유를 모릅니다. 이처럼 인간이 인간 위주로 세상
을 보면, 거기에서는 감사와 고마움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대신 불만이 나옵니다. 하지만 시편 136편에 보면, 신앙은 해와 달과 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을 발견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이 없는 자들은 기도하는 내용도 자기 중심적이라서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로마서 8:24에 보면,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다’고 하셨던 하
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팔소리란, 이 세상을 인간 중심적인 환상으로 뒤덮은 세상관을 깨우고,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일을 어떻게 하시는가를 알려주는 나팔입니다. 따라서 이 나팔소리는 이 세상의 실체를
드러내게 합니다. 그 실체란 다름 아닌, 세상이 무너지는 불길한 징조가 나타남을 말합니다.
해와 달과 별의 일부가 빛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이 자연세계의 끝장을 의미합니다. 이 자연세계는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소리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저주를 선포
하는 독수리의 등장입니다. 마태복음 24:28에 보면,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독수리의 등장은, 그곳에 시체가 그득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평의 눈 높이를 가지고서는 이 세상의 어떤 형편에 있는지 다 조망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지점에 독수리가 우굴우굴 모여
든다면 필시 그 지점에서 시체가 즐비하다는 뜻으로 간주해도 좋습니다. 즉 독수리가 등장했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지상의 우리 안목으로서 지상 세계의 실정을 파악하는데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
니다.
독수리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향하여, ‘끝장이다, 끝장이다, 끝장이다’고 외치면, 재수없는 독수리, 저리가! 라고 헤쳐 보낼 것이 아니라 왜 우리 세계가 저주받아야 마땅한가를 다시 생각
해보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인간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와 죄는 유독 우리들에게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 조상부터 대대로 내려온 죄의 무게입니다. 그런데 그런 죄를 갖고 있으면 우리는 필히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피할 길이 없게 됩니다. 요한계시
록 6:16에 보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스스로 지니고 있는 죄로 인하여 어린양의 위상과 그 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게 생각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경우가 이삭에 경우에도 있었습니다. 이삭의 부
모인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식이 새로 생길 것이라고 천사가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신의 신체 조건을 생각해볼 때, 도저히 발생될 수 없는 예고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몰래 숨어 웃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웃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들이 들은 것은 아시고 아예 자식 이름을 이삭으로 지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대대로 인간의
한계성을 하나님의 일방적 약속 성취성과 대비시키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구세주 되시는 예수님을 ‘어린양’을 묘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린양’이라는 개념은 희생된 자라는 개념입니다. 이 말은 희생케 한 자가 따로 있는데 그들이 바로 자기 주제파악도 제대로 못되는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이로서 인간들은 어린양 앞에서 죄인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삭의 등장은, 이미 태가 죽은 자를 통해서 태어난 자입니다.
따라서 이삭에게 있어 자기 존재나 자기 운명에 있어 인간의 힘이 개입될 소지가 전혀 없게 되어버린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성도가 다 그러합니다.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죽어버
린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따로 자기 이름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성도의 이름은 주님의 이름이 대신합니다. 이름이란 그 이름을 지닌 자의 확정된 운명을 말해줍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나라가 모두 성도의 것으로 공유된다는 뜻입니다. 죄없으신 분을 죄있는 성도를 대신하여 죽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를 예
수님처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육신으로 태어났지만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님처럼,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팔자로 전환됩니
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낮게 보지 말고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 높은데서 전체 하나님의 일을 조망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