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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싸움은 주님이 원하지 않으신다?우리교회미가

[일반] 싸움은 주님이 원하지 않으신다?

이름 : 정석훈(IP:60.209.34.102)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의 자리에 앉기위해 싸움을 한다. 가인이 그러했다. 그 싸움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다. 참으로 무식한 방식이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로 오면 싸움의 방식이 다르다. 누가 더 의로운가 하는 것으로 싸움을 한다. 고상한 방식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눈에 너무나 훌륭한 사람들이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전혀 무리를 일으키지 않고 사회 생활에 멋지

게 적응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사회생활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은 결정적일때 그들의 적과도 한패가 될수 있었

던 것이다.

조화로운 사회. 싸움이 없는 사회. 서로 협력하는 사회.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죽였다.

가끔 스스로를 돌아 보며, 오랫동안 십자가 복음을 따랐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이들은 초창기에 피 터지는 전쟁을 벌였다. 이들에겐 사회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상, 즉 기존교회와 조화롭게 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형제와 부모와도 싸움을 했다. 무엇 때문에 형제들에게조차

미움을 받고 형제들에게조차 미움을 받았는가?

처음 이들은 주님 되신 예수님을 저들이 인정치 않고 주님의 자리에 자꾸 인간을 집어 넣는 것에 대해 분개를 했고, 이것에 대해 싸

움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것은 다 표현히 거칠어서, 공손하지 못해서, 내 잘 난 척 해서 그랬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표현을 부

드럽고 상냥하게 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뼈져리게 반성을 한다.

왜 그럴까?

세월은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사회에 적응하게 만들었다.

십자가 복음이란 행위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면 그 행위가 무엇인가?

헌금도 하고,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화평하게 지내는 것이다.

말도 거칠게 하지 않고.

그들은 변했다.

악마들이 말하는 성화가 된 것이다.

이들에겐 싸움은 자기 자신을 성불해 가는 싸움 밖에 없다.

바깥에서의 싸움은 더 이상 필요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싸움은 십자가를 아는 자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주님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용납한다. 아니 속으로 판단할 뿐이다. 그러나 결코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아니다. 판단은

주님이 하실테니 나는 덕을 세우는 일에 열심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

결국 그는 성공한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예수님을 죽인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유대인과 한편과 된다.

그러나 본인은 결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십자가의 복음이 이런 것이라고 오히려 남을 가르치려고 한다.

십자가 마을에 있는 인간들은 너무 거칠고 사납고 싸움을 잘하는 싸움닭 같인 인간들이다.

그들은 회개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젠 과거 십자가 마을 사람들과의 교제는 별 의미가 없다.

왜냐, 이 모씨도, 손 모씨도 저런 식인데 형제라고 여겼던 자들이 저러한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제는 싸움에 지쳤다.

그러니 나는 사회에 순응하며 살겠다. 그렇다고 십자가 복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는 다른 식으로 십자가 복음을 전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과연 십자가 복음이 이런 식으로 전할 수 있을까?

이미 그들은 십자가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이다.

그들 마음 속엔 이미 주님의 싸움에 참여치 않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더 갈망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자신이 주님의 자리에 앉고픈 마음이다. 너무 비약했는가?

그러면 한마디 더하자.

주님께도 인정 받고 무엇보다도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아 보겠다는 심보다. 아니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은 것이 그를 주관하

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아닌가? 주의 자리에 앉혀 주겠다.

결국 이들은 누구를 욕하는가?

주님의 자리에 앉은 것을 잘 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욕한다. 그런 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아는 행동이 아니라고 말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안다면 조용히 물러나 버리면 되지 왜 시끄럽게 덕이 되지 않게 싸우느냐고 말한다.

참으로 그들은 도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사는가?

그들은 이미 주님의 싸움을 유치한 싸움, 바울이 싸운 싸움은 덕이 안되는 싸움으로 간주해 버린다.

구약시대때 여호와하나님께서 행하신 전쟁들은 덕이 안되는 것, 유익이 안되는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남을 죽이는 것은 주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노골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노출돼 버렸다.

이젠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

교회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다 형제다. 단지 그들은 연약할 뿐이다. 그들이 주님을 모독해도 상관없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을 이야기 하고 제대로된 신학적 정보만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를 모른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나를 반대하지 않으면 나를 위하는 자라는 말씀을 그들에게 적용해 보라.

인간들은 자신을 반대하지 않으면 결코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된 복음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 전 까지는 아무리 십자가 신앙을 바르게 설명해도 소귀에 경읽기 밖에 되

지 않는 것을 모른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전하신 복음, 바울의 복음을 바꾸어 버렸다.

바르게만 전하면 바꾸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나는 의도적으로 저들을 기분나쁘게 하지 않겠다는것이다.

말로는 그럴 듯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구약이든 신약이든 마귀가 그냥 인간 밖에서 노는 것이 아님을 그는 인정치 않으려고 한다.

예수님은 그냥 진리를 던져서 들을 자는 듣고 말자는 말아라는 식으로 복음을 전하시지 않았다.

인간을 직접 공격하신다. 비판 정도가 아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예수님이냐고.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 성도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니 당연히 주님과 같은 싸움을 하는 것인데.

성령을 받은 사도 바울이나 스데반 집사님이나 베드로나 야고보나 모두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면 그들은 다시 시비를 건다. 그렇다면 성령 받았다면 왜 행동은 그 정도 밖에 안되느냐?

또 성경을 모르는 말을 하고 있다. 바울의 삶이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히는 삶이 아니었다면 왜 그가 순교 당했을까?

단순히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전해서 그럴까? 그들의 삶을 사회윤리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주님 자리에 않아 있는 인간을 무참히 공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성경을 다시 읽어 보라.

그들은 반성한다. 처음 피터지게 싸운 싸움은 젊은 시절 혈기요 잘못된 행위로 간주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복음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 왜 가장 마귀적일까?

그것은 십자가의 피가 더이상 그에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자리에 자신 앉아 있는데 십자가의 피를 사수하기 위해 피터지게 싸움을 하는 것은 수준 낮은 자들이 하는 짓이라 생각한다.

속지 말자. 마귀는 우리에게 이렇게 타협을 요구한다.

'성도 다움을 인정하겠다. 너가 윤리적으로 사람들과 싸움을 하지 않고 조화롭게 산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어떻게 싸움을 하니.....

그렇게 저질 스럽게 논쟁을 하면서 말이야.

그냥 이기려고 하지 말고 입다물고 나와버리면 되지..왜 자꾸 이기려고 하니. 꼭 이겨야 하겠니?

마귀는 계속 우리를 유혹한다. 제발 우아하고 고상한 인간이 되어라.

너가 배운대로 이야기만 하라. 제발 시비는 걸지 마라.

그들은 마귀가 성경을 모르는줄 착각하고 있다. 십자가 복음을 바르게만 전달하면 성령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그렇게 했는가?

스데반이 그렇게 말했는가?

성경 어디에서 그렇게 말하는가?

자신은 남들로부터 욕얻어 먹기 싫다는 것을 이렇게 고상하게 표현을 한다.

노골적으로 십자가만을 믿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도 마귀가 하는 짓이지만 십자가만을 주장하면서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는

자리에 앉으려는 것도 역시 마귀가 하는 짓이다.

마귀가 지금도 우리에게 속삭이다.

제발 그런 저질스런 싸움 하지 말라고.. 그러면 당신편이 많아질 것이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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