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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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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신앙이 왜 기적인가?우리교회로마서

[일반] 신앙이 왜 기적인가?

이름 : 이근호(IP:220.230.123.248)

신앙은 왜 기적인가?

자아를 능가하는 힘이 주어졌기에 기적이다. 자아를 넘어섰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신앙이라는 기적을 받지 못한 인간은 자기를 포함해서 모든 사물이나 존재의 활동이나 파악하는데 자아가 동원된다. 자아가 기초요 바탕이다. 존재의 진리를 나 속에서 찾는 것은 존재를 주관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기에 앞서, 자기를 주체성 속에서 정립하고 하나의 존재자로서 실현하는 살아 있는 활동 그 자체로서 존재를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내가 존재의 진리요 원형인 한에서, 나의 활동 밖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나의 존재 그 자체에 의해 나 자신을 정립한다는 말은, 나는 ‘행위 하는 자인 동시에 행위의 산물이며, 활동하는 자인 동시에 그 활동을 통해 산출된 것이고 측정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리를 나 속에서 찾는다는 것은 결국 ‘자아 정립을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과 같은 한에서만 있고 자기 자신과 같은 만큼만 있다. 그 이상의 것이 설사 있다할지라도 자기에게는 여전히 ‘있다’는 것이 거짓말일 뿐, 실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있다’는 말은 물건이 아니라 활동을 뜻한다. 즉 자신이 자신을 바라볼 때, 사물이나 물건을 취급하듯이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바라보는 그 행위와 활동 자체를 통해서 ‘나’라는 것을 정립해서 자기로 규정한다는 말이다.

이런 뜻에서 최종 절대 진리, 최종 절대자는 곧 ‘나’가 된다. 이 절대자아는 그냥 사물로서 내 속에 굳어져 있는 것이 성질의 것이 아니라 행위로서 표현되고 실현된다. 신(神)이라는 것도 인간의 자기의식 속에서 반복되고 체험될 수 있는 방식으로서 ‘나’가 진정 누구냐를 알기 위해 중간 매개 역할만 할 뿐이다. 신 개념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그동안 바라보고 느낀 모든 체험담들이 다 그런 매개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직 나에 대해서만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봤자, 그렇게 부정하는 자 역시 나 자신뿐이다. 결코 옆 사람이 아니다. 진리라는 것도 나에 의해 생각된 것이기에 인간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이 의식하는 범위 내에서는 자기를 정립해 나가는 존재이다.

신학이라는 것도 이 자아의식에서부터 시작을 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신학을 하는 나의 절대성을 위하여 신은 그 중간 매개 개념이 되어버린다. 나의 절대성을 증명하기 위한 신이다. 산학마저 나의 절대성을 확정하는데 보탬이 되는 정보로서 유용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아의 이런 절대를 위한 작업을 훼방하고 방해하고 도전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있어 이단이요 원수요 악마가 된다.

쉽게 말해서, 신학을 제대로 정립해보려는 나를 왜 공격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신학, 내가 절대자임을 옹립해주는 증명해주는 신학을 하겠다는데 왜 방해하려고 하느냐 하는 화냄이다. 자기 부인이 안 되고 자신의 죄인됨을 드러내지 못하는 신학을 수립 하겠다는 것이다.

신학을 하는 당사자인 내가 만약 무너지고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면, 신학을 했다고 이유로, 또한 설교와 성경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지옥 가는 셈이 되는데 이런 모순점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한다. 이들은 다음의 성경 구절을 이해 못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

또한 이들은 다음 성경 구절에 나오는 가룟 유다의 심정을 이해 못한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3-5)

사도 바울은 자진해서 지옥에 갈 수도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고, 가룟 유다는 ‘스스로 뉘우치고’ 있다. 차이점이 뭘까? 사도 바울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있는 반면에 가룟 유다는 여전히 자기 안에 갇혀 있다. 즉 가룟 유다는 한마디로 말해서, ‘주님 안’에 계시지 않는 자이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신학과 자신의 구원과 자신의 신학을 변호해야 만 한다. 거기에 비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항상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일을 증거 한다. 그러니까 증거 하는 내용이 다른 것이다.

자신을 증거하다가 어떻게 그리스도만을 증거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자기 안’에 갇혀 살다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이점에 대해서 성경은 오직 십자가에서 나오는 능력이라고 했다.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구원할 자를 십자가에 같이 죽여 버린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고 그 죽이시는 능력이 늘 그 ‘그리스도 안’에서 흘러나오게 하신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그 인간이 더 이상 ‘구원받았다는 그 자아의 절대적 입장’을 입증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도록 늘 부정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증인’이 되고 말지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

인간이 아무리 십자가를 생각하고, 삼위일체를 깊이 생각해도, 자신의 왜 죽어야 하며 그 죽어야 될 이유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여기지 않는 한 평생토록 자기 입장에서 살기 마련이다.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에 함께 죽게 하시는 능력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인간의 능력에서는 인간의 의도와 인간의 자기 절대성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육이 지니고 있는 본유의 성격이 발산된다. 물론 악마의 조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거기에 대결하여, 거기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저주의 십자가를 들이대신다. 이로서 인간은 자신의 의와 죄와 심판에 관한 견해를 고수했다는 이유로 인해 저주받아야만 한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

이러한 현상이 내부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오신 성도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보기에는 성도를 어떤 ‘자아상’을 갖게 되는가?

성도는 자신의 주체를 정립한 상태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벌리시는 십자가 능력에 의한 작업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혹은 열매로서) 발생된 자아상을 자각하게 된다. 즉 성도가 그리스도를 자아 중심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도 멈춰지지 않고 지속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주님께서는 그런 인간 중심의 자아상을 부수시면서 새로운 자아상을 우리 성도 안에 심어신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인이 공로로 인하여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상이다. 철저하게 예수님에게 종속된 자아상이 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은혜만을 증거케 하신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 자아상을 거부하는 것은 더 이상 성도라고 불러줄 수가 없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주님의 공로로 만들어져 나가는 그런 피조물로서의 자아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고백이다. 따라서 이 고백을 근거로 도로 자아의 절대성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고백 자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아의 절대성에 기초해서 자아를 증거 하고자 한다면 이야기가 이렇게 된다. “사도 바울처럼 고백했기에 나는 구원받은 사람 맞다”라는 식이 된다. 당연히 이 고백에 대해서 더 이상 예수님조차도 손 못대고 자아의 절대적 구원성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본성적으로 저지하겠다는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도저히 로마서 9:1-3에 나오는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없다. “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지금 사도 바울을 본인을 증거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저주를 고려할 수도 있는 분이 오직 자기 안에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그 정도로 자아의 주도권은 더 이상 자기에게 있지 않음도 증거 한다. 자아는 오로지 늘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주님의 열심과 솜씨에 의한 ‘결과적 결실’로만 등장되는 자아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똑같은 고백이나 내용이나 체험들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참된 성도들 속에는 날마다 인간 본연의 자기 방어선을 매일같이 끊어버리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을 증거케 하는 기적들이 쉬지 않고 이어진다. 이처럼 늘 십자가 능력과 은혜가 자아를 죽이시는 또한 매일같이 살리시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천국이요 그리스도 안이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

김영완

06-11-23 00:48

자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사였음을 1년 또는 30년 묵을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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