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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20051108 부산강의-딜타이(1) 녹취우리교회[일반]

[일반] 20051108 부산강의-딜타이(1) 녹취

이름 : 한윤범(IP:61.73.48.238)

20051108 부산강의-딜타이

(강의:이근호 목사)

교부라는 것은 최초로 신앙을 학문화시킨 최초에 한 사람이 교부란 사람입니다. 최초의 교부가 어거스틴이거든요. 그게 말이 되겠어요. 신앙을 학문으로 체계화시켰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정말 진짜 정신 똑바로 차린 사람 같으면 어거스틴이 아니고, 성경으로 모든 계시는 종결되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되어야 되지, 어거스틴으로 돌아가자. 뭐가 이상해!

어거스틴은 어디로 가는지 압니까? 니케아회의로 돌아가요. 니케아회의로 끝나버렸어요. 삼위일체로 모든 걸 종결되어버렸어요. 그럼 니케아회의의 내용이 뭐냐? 아무것도 없어요. 로마주교가 교황입니다. 그게 전부에요. 로마교회에서 요구하는 교리가 우리는 나중에 다 따라갑시다. 그게 니케아회의에요. 또 로마 그거는 제일 인구수가 많고. 왜냐하면 또 로마제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서울의 큰 교회하고 강원도 골짜기 교회하고 게임이 안 되잖아요.

교회사를 하면서 현재 나오는 교회사 전체가 교회사를 논하는 우리는 정통이고, 나머지는 이단이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웃기는 거예요. 복음적으로 그래서 교회사 강의할 때 제일 처음에 그걸 알고 제일 처음 첫 시간에 그렇게 했거든요. 교회사라는 것은, 인간이 역사를 통해서 얼마나 비 복음적이고 반 복음적이냐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사에서 새로운 게 나올 것이라는 생각보다도 교회사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얼마나 자기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온 생각들이냐? 다른 사람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 하나의 기회가 된다. 이렇게 봅니다.

자, 오늘은 역사를 강조했던 딜타이에 대해서 해봅시다. 딜타이하면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걱정되는 것이, 딜타이를 하려면 앞에 있는 칸트, 피히테, 셸링, 슐라이어마허, 헤겔, 이런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어야 이해가 됩니다. 몇 페이지이냐 하면, 179페이지 하는데요.

딜타이라는 이 사람이 앞에서 그렇게 좋은 소리했으면 형님, 최곱니다. 이렇게 나와야지, 지가 뭐 잘났다고 앞에서 잘해 왔는데 그게 아니라고 손들고 또 나오느냐? 뭐가 문제냐? 거기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179페이지 밑에서 열 번째 보면,

[딜타이의 판단에 따르면 2000년 보다 훨씬 전부터 형이상학을 통해서 지각되었으며, 역사의식이 발생함으로써 첨예화된 근대가 형이상학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어있죠.

지금 딜타이의 주장이 뭐냐 하면, 앞에 있는 선배들에 대해서 충실하게 공부를 다 했을 거고, 그들이 뭐가 문제냐? 도대체 문제 찾기에 힘든데, 너무나 대단한 분들이 많아 찾기 힘든데, 그래도 그 틈새를 파고들어서 문제점을 발견한 거예요. 문제점이 뭐냐 하면, 역사가 등장하면, 잘 들어보세요. 기존의 모든 진리는 이거는 상대적입니다. 이런 뜻이에요. 이게 딜타이의 주장입니다.

역사가 등장하면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다 상대적입니다. 그러니까 임시적입니다. 진리가 임시적일 것 같으면 이거는 진리가 아니다. 이 말이에요. 이거는 무너져야 한다. 진리를 주장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주장하면서 제가 이런 진리를 주장하는데 곧 무너집니다. 라는 투로 이야기하란 말이죠. 이거는 곧 깨집니다. 라는 투로 이야기하란 말입니다. 기록이라 하는 것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라는 그런 말처럼.

기존의 사람들은 어떻게 봤느냐 하면, 인간이 있어서 인간 내부를 쳐다보고, 인간 외부를 쳐다봤어요. 내부를 쳐다보고 그 다음에 외부를 바라보고. 내부를 바라보고 또 외부를 바라보고.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여기서 외부, 내부 왜 쳐다보느냐 하면, 이걸 여러분 꼭 아셔야 될 것은, 사람들은 왜 자꾸 두리번거리면서 외부, 내부를 사색하고 사유하고 생각하느냐 하면, 이게 나중에 20세기 중반에 나오는데, 인간은 가만있을 인간이 아닙니다. 날마다 정진하기를 원해요.

인간의 욕구라 하는 것은 이상스럽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곧장 시시해져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800억 예배당 지어보세요. 6개월도 안가서 시시해져요. 천억 지어야 마음에 듭니다. 유명한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인가 모르겠습니다만, 서유석이 불러서 히트 쳤던 한 30년 전의 노래했던 장난감을 갖고서 그것을 바라보고 얼싸안고 좋아하다가 부셔버린다. 있지요.

그래서 '장난감'하는 그것에 제가 아이디어를 얻어서 사람들이 교회 세우기를 장난감 세우듯이 한다 했는데. 애들이 한 개 장난감 가지고 놀 때 오래 가질 않습니다. 계속 다른 장난감을 원하는. 우리가 중학교 때 갖고 놀던 그 장난감이 지금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애들이 갖고 놉니다. 고등학교 때 했던 대화가 요샌 초등학교 애들이 대화에 나오잖아요. 뭐 십구 동그라미, 이거는 벌써 초등학교, 유치원 애들 보게 될 거예요.

옛날 지나간 게 신기했던 것은 그 다음에 곧장 시시해지는 겁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미 암시를 줬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나 안셀무스 이런 사람들. 안셀무스나 토마스 아퀴나스나 이런 사람들의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유명하냐 하면, 성경 말씀으로 설명하던 것을 성경 덮어버리고 철학으로 설명한 최초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래서 히트 친 거예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 보면 성경 구절, 몇 구절 나오질 안아요. 나머지는 전부다 철학적인 용어를 가지고 세상 전체를 다 설명한 거예요. 이것은 기존에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해석해서 세상을 설명하던 그러한 유행에 신선한 충격을 준 거죠. 그때부터 용기를 얻어서 성경 버리고, 하나님 버리고 자기 속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형상이라는 이성, 이성을 가지고 성경 아니라도 얼마든지 세상에 대해서 자신만만하게 정당하게 신에 대해서 할 소리 다 할 수 있다. 그런 조로 나간 겁니다. 사실은 그것도 어거스틴도 그런 길을 들여 놨습니다만.

사람이 왜 자꾸 그렇게 하느냐? 토마스 아퀴나스는 뭘 이렇게 봤느냐 하면, 토마스 아퀴나스뿐 아니고, 그전부터 나왔는데 플로티누스도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인간은 내부나 외부로 보면, 외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는 늙어가는 존재지요. 내부적으로 볼 때는 소위 신앙이 있다 하는 사람들은 자꾸 신의 형상을 본받으려고 하지요. 외부적으로 볼 때 형식적으로 볼 때 늙어가고 있고 자기 한 몸밖에 없다는 걸 느끼고, 주위에서 의리니, 사랑이라는 것도 나중에 세월 지나면 다 떠나가고, 역시 나는 나밖에 남지 않다는 걸 아는데.

그러면서도 뭔가 고정돼 있는, 잘 들어보세요. 고정되어 있는 나와 외부적으로 나는 고정되어 있어요. 가만 앉아 있어도 늙어가고 있으니까. 그러나 내부적으로 이상스럽게 인간은 가만있지를 못하더라 말이죠. 내부적으로. 연세 많은 사람들이 힘이 안 받쳐줘서 축구 못하지, 지금도 20대 힘주면 날마다 축구합니다. 참, 정력이 안 받쳐줘서 여자 안 밝히지, 만약에 20대, 청소년 그렇게 되면 지금도 여자 밝히려하는 80대 노인들 늘 그렇게 해요.

그런데 내부적으로 가만있질 못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느냐 말이죠. 자꾸만 터질듯이. 터질 거예요. 맨 날 터질듯 부풀어 오르느냐 말이죠.

젊은 애들은 요새는 그런 것 없는데 옛날에는 대통령도 존경하고, 대통령 환호하지만 나이 80, 90 된 사람, 대통령하면 지 조카 벌로 생각해서 웃기고 있네. 이러잖아요. 그만큼 지는 내부적으로 찌들어가면서도 똥 싸고, 오줌 싸고 찌들어가면서도 자기 내부는 대통령보다 더 높아. 대통령 꼭대기 위에 있어. 노무현, 그거 갈아 쳐야 돼. 노무현 나라까지 다 망해놨데. 이명박이 나와. 노무현이 들어가. 다 갈아 쳐야 돼. 이런 식으로 막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는 거예요.

전두환 대통령 독재시대 때 젊은 애들 잡아가도 백기완이라든지 그리고 또 백기완 말고 백기완은 좀 이상한 사람 말고 씨알의 소리했던 함석헌, 못 잡아갔어요. 왜? 나이가 많아서 그래요. 잡아가봐야 별거 없다 이 말이에요. 노인이 된다는 말은 바깥은 완전히 병자, 환자 다 되고, 안에는 완전히 신이 다 된 겁니다. 이 점을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목한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인간 속에는 작은 새끼 신이 들어있다.

그래서 우리 내부, 진리라 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부에 있다 해서 중세시대 때는 상공이라든지 과학 같은 것이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하고 그런 것은 별로입니다. 그러니까 중세 유럽에 스콜라 철학의 그러니까 수도원에서 만든 대학교를 스콜라라 하는데.

그 스콜라 철학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인간 내부에 살아 꿈틀거리는 그러한 무한한 신적인 요소에 관심을 가져야 그게 위대한 사람이지, 바깥에 어디 곡괭이 만들고 뭐 농공상인이라든지 또는 칼질하는 무사들, 사무라이 같은 기사나 옛날 깡패 같은 놈들, 영주들, 깡패들이거든요. 조직폭력배. 그 인간들은 꼼짝 마라 했어요. 조져버렸어요.

클루니 수도원에서 교황의 다시 권위를 높였고, 그 다음에 나오는 시토 수도원에서 나왔고, 그 뒤에 나오는 유명한 프란체스코,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나와서 그 쪽에서 하는 일이 뭐냐 하면, 그 동안 기독교가 이렇게 체면이 말이 안 된 것은 땅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데. 땅 안 받는다. 프란체스코 이런 데는 뭡니까? 무소유잖아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느 수도원이냐 하면, 도미니크 수도원이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 가르치는 거예요. 무식한 인간들, 칼질하는 사무라이 말고, 유식한 우리는 안에 속에 있는 무한한 인간의 신적인 영역에 대해서 가르쳐요.

그래서 중세에서는 공업, 수학은 어디서 했느냐 하면, 무식한 이슬람 쪽에서 나온 것이지, 나침반, 화학, 그리고 인쇄술 그것은 십자군 운동해서 저쪽에서 수입해 온 거지요. 안에 현재 서유럽에서는 그런 시시한 교양 없는 것들은 연구할 필요 없다 이 말이에요,

안에 있는 무한한 것을 봐야지 그러한 먹고 사는 그러한 물질적인 것은 초월해야 된다. 도덕적인 것을 우선해야 된다. 이런 쪽으로 나왔었는데, 딜타이는 그렇게 했던 진리라 하는 것은 이제는 전부다 임시적이고 순간적이고 상대적인 진리에 불과하다. 고상한? 고상한 것 좋아하네.

헤겔은 고상한 쪽에 제일 접근한 사람이 헤겔 아닙니까? 우리 인간이 이 세상 전부를 알 수 있는 그러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 헤겔 아닙니까? 땅에서 하늘까지 전체를 다 알아 버린 거예요. 다 안다 하니까 또 지난 시간 다 잊어버렸지요. 다시 한번 해 볼게요. 헤겔은 어떻게 다 알았는가?

헤겔은 이렇게 알았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정신이 이 땅에서 고난 받는 정신이 되고 고난 받지만 고난은 반드시 희망이 있으며 극복이 되지요. 이걸 자기고 변증법이라고 해요. 잘 들어보세요. 우리 내부 속에 있는 정신의 흐름이 우리 바깥에 있는 역사의 흐름과 일치된다고 본 겁니다. 헤겔이. 인간의 이성은 스스로 반성하고 회개하는 이성이거든요. 그전까지는 헤겔이 오기 전까지는 왜 인간이 반성하고 회개하는지 이유를 몰랐어요.

헤겔은 하나님이 성육신 되는 걸 통해서 인간 속에는 반성하게 되는 그런 정신을 올바른 이성을 하나님이 신이 줬다 말이죠. 우리 속에 스스로 자기 잘못에 대해서 회개하고 반성하는 걸 봐서 이미 우리 속에는 신적인 이성이 정신이 있었고, 이 신적인 정신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이 성육신 됐다는 자체가 이것이 '역사의 핵'이거든요. 역사의 핵이라는 건 뭔 뜻이냐 하면, 이걸 되풀이한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성육신되심.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잠시 고생과 고난 가운데 스스로 자진해서 그것을 고난가운데 들어가는 것. 이 정신이 하나님 성육신 정신이라면, 그리고 이 정신이 있어서 우리에게는 스스로 반성하고 아무리 악한 놈이라도 뭔가 나쁜 짓, 도둑질하면서도 잘했다 하는 놈 없어요. 뭔가 내가 밥 먹고 살긴 하는데 뭔가 잘못됐다. 잘못됐다는 걸 아는 것, 옛날 같으면 뭐라고 했어요? 그냥 양심이라고 했지, 양심을 기독교적으로 결부시킨 사람이 헤겔이 처음이잖아요. 헤겔이 처음이에요. 칼빈, 루터도 못했어요.

왜 칼빈, 루터는 못했느냐 하면,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를 외쳤지만, 루터도 그렇게 외쳤지만 항상 칼빈, 루터가 약점이 뭐냐 하면, 어거스틴 바탕 위에서 이어왔거든요. 신학이. 어거스틴 건드리면 우린 이단 된다. 그러니까 조심하자. 이렇게 됐다 말이죠.

어거스틴이 무슨 중심이냐 하면, 하나님 형상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는 우리 힘으로 안 되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이 온다. 이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펠라기우스한테 이긴 거예요. 펠라기우스는 이단 돼버리고, 이거는 정통돼버렸다 말이죠. 그러니까 어거스틴은 십자가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좀더 이야기해 봅시다. 이왕 나온 김에.

동방신학, 서방신학의 특징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사람 되어서 사람이 하나님 될 수 있다. 이것이 초반기에 기쁜 소식, 복음으로 간주한 겁니다. 이게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로고스 신학에서 나왔고, 로고스신학은 바로 스토아학파에서 나왔어요. 기독교하고 성경본문하고 아무 상관도 없어요. 없는데 이미 유럽 자체가 헬라철학에 기초하기 때문에 헬라철학이 뭐냐? 로고스철학입니다. 로고스라 하는 것은 하나 밖에 없는 신이 다양한 자기 모습의 자기 양태로써 각 사람에 파고드는 분점 같은 걸 로고스라 합니다.

‘로고스’라 하는 것이 그냥 번역하면 말씀인데, 왜 말씀이냐 하면, 사람이 짐승과 달리 말한다는 것은 속에 있는 짐승과 다른 요소가 있어서 그게 말하다, 하다 하니까 이거는 신적인 요소다 해서 그 로고스를 말씀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이라 하는 것은 말하다 말씀이 아니고, 말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다양한 하급 신을 가지고 로고스라 합니다. 그 로고스를 하급 신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아리우스는 추방된 거예요.

참, 재미있는 게 아리우스가 로고스를 하급 신이라 해서 로마 쪽에서 약이 오른 거예요. 왜 약이 올랐느냐 하면, 만약에 로고스가 사람돼버리면 우리는 하급 신이 사람 된 거예요. 진짜 하나님이 사람 된 게 아니고. 그런데 왜 아리우스는 로고스가 하급 신이라고 첫 번째 신이 아니고, 두 번째 신이라고 했느냐 하면,

아리우스는 철저하게 유대교의 예언이 약속된 것을 신약으로 봤기 때문에 유대교의 예언, 그러니까 구약의 예언 중에 하나가 뭐냐? 유일신이에요. 유일신이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같이 신이 돼버리면 신이 몇 명이냐 하면, 두 명 돼버려요. 아직 성령은 시릴리우스 나와야 성령까지 신되지, 아직까지 성령은 신으로 간주되지 않은 시대에요.

신이 둘 된다고요. 신이 둘 되니까 물론 아리우스는 예수님이 하나님인 걸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여호와증인처럼 그렇게 천사처럼 보는 게 아니에요. 아리우스가 동의하는 것은 예수도 하나님인데 신과 신 사이에 서열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 서열화 되느냐? 아버지하고 이들이니까 예수님이 자신이 아들이라 했으니까. 아들이라 하는 것은 아들이 없을 때도 있었다고 보는 거예요. 아버지만 있었고. 아버지가 창조한 것이 아들이니까. 아들도 하나님인데 이건 인간적인 세계가 아니고,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거지요. 우리의 이성으로는 모르지만. 창조했다는 말은 아예 없을 때가 있었단 말이지요. 처음에는 아버지 하나님만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이 있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모든 출처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그것이 구약성경의 내용, 구약성경도 진짜 하나님의 예언 아닙니까? 구약성경의 예언과 맞는다고 본 것이 이것이 지금도 그리스도 정교회의 주장입니다. 나중에 정교회가 모스크로 바꿔요. 콘스탄틴이 왕 되고 난 뒤에 모스크바로 이동하며 정교회, 제3의 로마가 모스크바에요. 러시아 되고 난 뒤에. 러시아 이거는 훈족한테 몽고족한테 당해 놓고 설움 받으니까 자기가 종교 받아서 으샤으샤 하는 그런 인간들인데.

러시아 정교회는 삼위일체는 뭐냐 하면, 성부 중심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동방교회, 러시아 정교회가 성령이 예수님에서 나온다는 걸 부인한다는 게 아니에요. 인정해요. 인정하는데 뭐냐 하면, 성부로부터 예수님을 통해서 나온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서방에서 로마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고, 성령은 성부에서도 나오고 아들에게도, '에게'라는 말이 '필로꾸베'란 뜻이에요. 에게라는 말이. 전치사가. 그게 필로꾸베 논쟁이거든요.

아들에게도 나온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동방에서 하는 말이, 미쳤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나오는 성령과 아들에게서 나온 성령이 서로 의견 충돌하면 어떻게 할래? 근데 아까 이야기하다 말았지만, 서방교회에서 예수님을 하급 신으로 보지 않고 똑같이 보려면, 그러면 두 분이 아니고, 한 분 되잖아요. 한 분 되면, 이거는 유대교처럼 일신교지, 예수님은 하나님 안 되잖아요. 그러면 나눠야 되잖아요.

나누면서 같은 하나님이 되니까 여기서 철학적 용어가 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우시아’라는 용어에요. 유사본질이 아니고, 호모 이 우시아가 아니고, 호모 우 우시아에요. 동일본질로 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동일본질이라는 용어와 유사본질이라는 용어가 이게 성경에 없는 용어에요.

그런데 왜 이걸 동원시키느냐 하면, 어떤 개념이나 용어를 하나 잡게 되면, 신학자 그룹 말고 문자 해독하는 사람 말고, 하급의 무식한 일반 대중들이 간편하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패스트푸드에요. 간편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올바르게 개념 된 그 신부나 성직자한테 그 사람이 이벤트 벌이는 성찬식에 참석해서 떡과 잔을 마시게 되면, 한 하나님 밑에 한 감독이기 때문에 뭐가 되냐 하면, 구원이 간편하게 됩니다. 일반대중들은 간편하게 구원받으면 되지, 호모 우 우시아고 호모 뭐뭐뭐 그건 아무 관심 없어요.

따라서 누가 정통이냐? 용어 싸움이 등장한 겁니다. 하나 밖에 없는 교회에서 누가 대장질 할 것이냐를 가지고, 용어 싸움으로 결정짓자는 겁니다. 그 용어에 대해서 적당한 용어가 있느냐? 없습니다. 있으면 좋겠는데 없어요. 왜 없느냐 하면, 성령은 문자에 매이는 분이 아닙니다. 백 날 해봐야 가짜만 양산하죠.

예수님도 하나님이고, 아버지도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한 것은, 그것이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결합이 될 수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십자가 사건을 니가 알아? 하는 그런 차원에서 성경에서 이야기한 겁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할 때에 하나를 백 날 분석해 보세요. 하나에서 둘이 나오는가? 하나냐, 한 분이냐? 이것 때문에 싸운 거예요. 차영배 교수가 맨 날 하는 이야기가,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고, 하나라 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이 참 안 됐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것 가지고 싸우는 거예요.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너희들이 생각하는 하나라는 개념은 영적인 개념하고는 다르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문자적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있다, 없다? 없다는 뜻에서 하나란 말을 한 거예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그 문자해석해서 천당 갈 놈을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데.

12장. 여기에 사도 바울이 삼층천에 올라간 말을 하는데, 4절 한번 보세요.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한 말이죠.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가 본 천국 아니면 나머지 바깥은 다 지옥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말씀을 믿게 되면 천국이고, 말씀 안 믿으면 지옥이에요. 간단해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사도 바울에겐 목숨을 바칠 어떤 이미 목적이 확립되어 있다는 겁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문제가 자기 목숨을 어디 바칠지를 몰라서 우왕좌왕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목숨은 소비하려고 있는 겁니다. 목숨은 붙잡으려고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이 어디서 인간이 불행해지느냐 하면, 갖고 있는 목숨을 소비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사람이 불행해요. 살려고 하니까 불행해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원래 주신 하나님의 목숨은 피조물 목숨이에요. 창조주 목숨이 아니고.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를 위해서 소비하고 허비하도록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가 선악과 따먹고 지가 신이 돼버리니까 신은 목숨을 부지해야 되거든요. 히스기야가 12년 목숨 연장하려고 기도한 게 그거 무슨 객기입니까? 그거 무슨 망발이에요? 12년 유지해서 나라 말아 먹었잖아요.

돈가스한다고 내가 뭐라고 하는 게 아니고, 어떤 경우라도 어떤 직업을 가져도 좋아요. 그것은 살려고 해서는 안 되고, 복음을 위해서 삼층천을 위해서 천국을 위해서 소비하기 위한 목숨을 유지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은 참, 겁대가리 없는 인간이죠. 갈지도 못한 갈지도 못한다는 말은 그게 말만 그런 게 아니고, 정말 죽기도 하고 광야에 유리해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지요.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아예 감당치 못하잖아요.

철학을 하고 우리가 철학을 하고 교회사를 하고 답답한 게 죽으려는 사람이 없더란 말이죠. 전부다 삼위일체해서 살아 보려고. 어거스틴도 마찬가지고. 다 마찬가지에요. 초창기 루터는 안 그랬어요. 정말 복음을 위해서 목숨 걸어 논 거예요. 왈도, 후서, 여러 가지 나왔습니다만 그 사람들 전부다 어거스틴의 범주를 못 벗어납니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의 범주를 못 벗어난 것은 그 당시 전체가 니케아회의 범주를 못 벗어요. 니케아회의를 벗어나면 무조건 이단 돼요.

심지어 아리우스파를 따랐던 게르만 민족이 400년부터 유럽을 점령했거든요. 점령하고 세운 나라가 프로비스에 세운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그때는 프랑크입니다. 그 사람들이 프랑크 왕국 세울 때 뭐 했는지 압니까? 아리우스 포기하고 로마 캐톨릭으로 완전히 개종했습니다. 그게 유행이 되어서 영국도 마찬가지고. 나라는 땅은 로마 땅 점령해 놓고 종교는 로마 캐톨릭으로 다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누가 화 낫는 줄 알아요? 누가 화 낫겠어요? 동방교회에서 화낫지요. 그래서 동방교회 이름이 뭐냐 하면, 정교회라. 그럼 결국 교회가 아니다. 그거는 왜 교회가 아니냐 하면, 그거는 무식한 야만족, 바이킹족, 노르만, 무식한, 땅 얻어먹고 땅 영토 얻어먹고 그 사람들에게 머리에다 안수해서 신성 황제로서 훌륭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간주했던 정치적 타협을 했던 놈들이지. 그래서 정통교회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동방교회에선 정통교회 아니라고 봐요. 세상과 야합한 인간들이에요. 그래서 이름이 정교회에요. 오소독스, 정교회에요. 그런데 로마교회는 캐톨릭, 모든 걸 모두모두 우리 편~ 범 교회, 저쪽에는 정교회. 개신교는 바꿔보자 교회.

삼층천에 올라 본 교회는 없고, 천당 아니면 지옥이에요.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에요. 삼위일체가 없어요. 예수님이 언제 삼위일체 주장했습니까? 삼위일체가 없어요. 예수님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고 나머지 예수님 사랑하면 천국이고. 이게 성경이야기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개념으로 다져지지 않아요.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렇게 했던 것이, 스코투스, 이 사람아 아주 철학에서는 대단한 사람으로 봐요. 스코투스가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이제는 성경책, 신앙 다 때려치워도 인간의 이성으로 이성이 아니지, 그 사람 좋아하는 감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스코투스에요. 둔스 스코투스. 뒤에 나오는 사람이 윌리암 오캄. 성경을 가라! 신부는 가라. 교회는 가라. 우리끼리 감각으로 경험해서 하겠다.

여기서 나온 게 베이컨, 경험주의. 경험주의에 충실한 에라스무스, 베이컨, 여기에 충실한 그 밑에 제자가 누구냐 하면, 존 로크, 흄, 이런 사람들. 이 사람을 가지고 뭐냐? 자연신론자다. 우리 여기는 존 로크는 구분해 가르치지 않았어요. 왜 안 가르치느냐 하면, 지금 학교에서 다 가르치고 있어요. 만져지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럼 뭐가 있는가? 딜타이입니다. 뭐다? 역사다. 딜타이의 역사는 뭐냐 하면, 아무리 사람이 과학적으로 옳다, 옳다 해도 세월 지나면 그것은 다 아이고, 그거는 수정, 여기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개정의 여지. 여기 몇 페이지에 나오느냐 하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항상 이거는 바꿔야 돼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그러니까 믿을 만한 것은 역사 밖에 없지, 역사 속에서 그 사람들이 진리라 하는 것을 거부한 것은 아니에요. 여기 180페이지 봅시다. 180페이지 중간에 그걸 생체라고 하는데, 생체라고 최초로 이야기한 것이 딜타이입니다.

왜 생체라 하느냐 하면, 여러분 생이라 하면 특징이, 느낌이 뭐냐 하면, 촉촉함, 손에 물렁물렁함, 이게 생이죠. 그야말로 생체란 특징이 뭐냐? 생생한 것만 인정하고 일체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생생한, 탄력성 있는, 생생한 것만. 현실은 생명이라는 것은 아주 촉촉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만 인정하자는 거예요. 그럼 그것만 인정하면 뭘 인정하느냐 하면, 결국 뭘 인정하게 되느냐 하면, 의학, 과학만 인정하는 게 돼요. 손에 만져지잖아요.

아픈데 기도해야 소용없잖아요. 아프면 깊숙이 들어가면 약 먹어야 되고, 아프면 째야 되죠. 째서 안에 있는 것 제거해야 되죠. 디스크 문제 있다면 수술해서 디스크에다 심 박아버려야죠. 그러면 그 환자한테 예수고, 하나님이고 그 따위 소리해야 소용없어요. 의사 와서 박으면 됩니다. 박으면 되는 걸 그러면 됩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어도 철심을 박으면 일어서리라. 하면 일어서는 거예요.

어떤 영화에 초반부에 아주 재미있는 게 있어요. 어떤 게 있느냐 하면, 어떤 거지가 저, 상이용사입니다. 저, 이렇게 앉은뱅이인데 여러분이 동냥해주시면 제가 걸을 수 있습니다.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주인공이 쓱 가서 동냥이 여기 있잖아요. 돈을 쓱 가져가는 거예요. 동냥을 하는 게 아니고 돈을 가져가니까 벌떡 일어서는 거예요. 거봐. 내가 걷게 해줬잖아. 돈이 걷게 해주는 거 맞잖아요. 돈이 걷게 해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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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3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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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