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22-27 /요셉 지파
창세기 49:22-27 /요셉 지파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요셉 지파
2003년 6월 15일
본문 말씀: 창세기 49:22-27
49: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49: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49: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49: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49:26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 오리로다
49:27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12지파에 내린 축복의 내용들을 조사해 보면, 하나님께서 전사 같이 키우시려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전사는 전쟁하는 군사를 말입니다. 싸움을 잘하게 된다고 칭찬하는 것이 축복의 내용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들이 생각하는 축복이란, 가진 재산을 말하지 개인적인 취향의 바뀜을 두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를 많이 모았느냐를 가지고 측정하지 결코 하고 싶은 일이 바뀐다는 것을 가지고 축복을 받았다 아니받았다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이란 인간 자체의 변화를 겨냥합니다. 시편 1:1-2에 나오는 말씀과 같습니다. 즉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런데 율법을 묵상하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말입니까? 전쟁을 잘하는 전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싸움꾼'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이런 속성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출애굽기 6:2-4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축복을 내리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면 그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되는 축복으로 이스라엘을 휘감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은 참으로 큰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언약'을 던져놓고 그 '언약' 성취에 대해서 일말의 양보도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전능하심'이라고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축복이란 다름아닌 바로 이 언약 성취의 뒤에서 팍팍 밀어주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으로 이 언약대로 온 우주가 진척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호와 하나님이 전쟁을 벌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세상 인간들이 그런 언약 성취에 대해서 용인할 마음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약 말고 다른 것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요구했다가는 여호와와부터 징벌당할 준비를 아예 해야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쟁이란 비언약에 대한 징벌 차원에서의 전쟁입니다. 이 언약 외에 다른 것은 절대로 신경쓰지 않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의 내용말고 딴 것을 얻고 싶다면 여호와가 아닌 우상에게 빌어야 합니다.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던져진 언약대로 수행에 나서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사다리를 통해서 많은 수의 천사들을 파견하여 야곱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로소 모든 사태가 야곱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결코 야곱이 원하고 있는 바대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야곱은 결국 자신이 원치 않는 일의 중심인물로 쓰여지고 있는 입장입니다. 야곱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12자식에게도 동일한 운명의 체계가 주어지게 됩니다. 여기 12지파에 주어진 축복을 다시 하나로 뭉치면 야곱에게 내린 하나님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여름철에 애용하는 부채가 이러하지요. 접혀면 짧은 막대기 모양이지만 펴면 공작새 날개 모습이 되지요. 지금 오늘 본문은 공작새 날개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원래 공작새의 취지를 알기 위해 펼쳐진 것을 다시 하나로 모아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는 점입니다.
출애굽기 7:4에 보면,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찌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수호천사는 아무나에게 늘 달라붙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언약 안에 놓인 자만 보호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언약만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보니 야곱의 12아들은 아버지 야곱이 만난 하나님이 전쟁을 하기 위한 하나님이신줄 잘 모르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그 여호와 하나님만을 만나고 난 뒤에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도 모두다 이스라엘은 전시체제를 대비한 군대로 만들기 위한 언약적 차원의 조치였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영광이나 개인적인 재산 모음은 참된 하나님이 하고 아무런 상관없는 짓들입니다. 우리 각자가 무슨 전쟁을 위한 가에 관심을 가지게 될 때, 그 사람이 참 이스라엘, 혹은 성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참예케 된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런 입장에서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잘 수행하는 자로 변모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목자란 하나님을 두고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힘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요셉지파만이 이렇게 단단한 전사가 아니라 단 지파도 그러합니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라고 해서 전쟁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갓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베내민 지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이라가 이참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셀 지파 같은 경우에는 병참 역할을 합니다. 후방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일 말입니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가름진 것이라 왕의 진수를 공췌하리로다"
납달리 지파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습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리고성의 무너짐을 최종적으로 소리의 외침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유다 지파 같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어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자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냐"라고 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계획은 명확해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내린 그 약속만 고집하면서 통치하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언약의 최종 내용은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는 무슨 전쟁을 치르는 전사이어야 합니까?
마태복음 26:26-28에 보면,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앞장 세우면서 모든 인간의 의를 비언약이라고 고발하는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인간이 구원받고 아니받고는 오직 예수님의 새언약 뿐입니다. 인간의 행함은 결코 그 언약 속으로 스며들기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에게는 성령님도, 천사도 도와주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성도를 지키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명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서 등떠밀 듯이 축복이 작용하는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마치 자신의 신앙으로 축복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것은 불신앙이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에 접어들어 마침내 언약대로라면 반드시 주시기로 되어 있는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탐꾼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낙담합니다. 그들은 장대같고 자신들이 거기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는 겁니다. 이런 태도는 마치 자기 신앙으로 자기가 얻을 축복을 따내는 것인양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언약 성취의 상황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측복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담대하게 비언약과 싸우면 되는 겁니다. 비록 우리 가정과 교회와 회사에 그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언약을 성취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이점을 우리는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이런 자만이 오늘날의 '영적 싸움꾼', 즉 '이스라엘'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개인적인 일에다 하나님을 끌어넣지 말고 우리가 도리어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포섭되도록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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