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십자가 피"는 피부치료제 연고가 아니다.
[일반] '십자가 피'는 피부치료제 연고가 아니다.
이름 : 이근호(IP:)
십자가 피가 피부치료제인 연고와 다른 점은, 한 번 바르고 버리는 것이 아니다.
마치 네온사인의 유리관처럼 한 번 '피'가 들어오면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피의 붉은 색채를 발산하게 된다.
먹든지 마시든지 '피'의 색깔만 터져나오게 된다.
그것은 십자가 피는, 그 분만의 이루어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십자가 피를 증거한다는 것은, 독보적이고 독과적인 분이 이루어신 그 분의, 독보성을 증거하는 것이다.
피없이 감사없고, 피없이 늘 회개없고, 피없이 영광없고, 피없이 기쁨없다.
따라서
영광을 돌려도 피 앞에서 서야하고, 감사해도 피 앞에서 감사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도 피 앞에서 자신의 죄를 다시금 발견될 때 영광이 된다. 자기에게로 독자적으로 관심돌린 통렬한 죄가 드러나고 용서의 능력의 달리 없음을 또다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십자가 피'를 증거하면서 다른 것이 증거되는 것이 용납 될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른 복음 전하면 저주받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모든 것이 십자가 피만의 증거로 이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십자가 피' 말고 다른 것을 증거하게 되면, 감사나 기쁨이나 영광이나 회개가 나올 수 없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 '피'에서 쏟아내어지는 말씀들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든 말씀도 '십자가 피'가 토해져 쏟아낸 '피의 피'들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도 '피'를 두고 말한다. 그 안에 예수님의 독보적 사역이 기능적으로 작용한다.
'죄'라는 것도, '피'에서 떠나 독자적인 생각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의'라는 것도. '피' 안의 관계를 뜻한다.
'산다'는 개념도, '십자가 피' 안에 함께 놓여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죽어도 살아있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개념도, '십자가 피'에서 무가치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피'를 계속 토해 낼 수 없는 자는 살아도 죽은 자이다.
만약에 이 '피'가 들어있지 않는 자가 성경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이런 사람도 나름대로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기뻐하고, 반성한다.
단지 피 안에서가 아니라 바리새인처럼 '완전'에 도전할 자격을 얻은 자아의 가치 위에서 나름대로 감사하고, 영광돌리고, 기뻐하고, 감사한다.
이런 사람은 생각하기를 예수의 피는, 자신에게는 일회용 알약 같은 것이 된다.
한 번 먹은 이상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피' 말고 다른 것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 되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피' 이야기는 더이상 자기에게 지나간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제는 독자적인 나에 대해서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인간이 선악과 따먹을 때의 심보가 이러했다.
완전이 눈 앞에 보이는데 질주를 왜 포기하느냐고 반문한다.
피와의 결별!
복음을 이야기해봤자 다른 복음이고, 예수를 이야기해봤자 다른 예수이다.
악마의 일꾼이 되었기에 나올 수 밖에 없는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