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 2003년 4월 13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7:15-20
Re..마 7:15-20 (거짓 선지자)
이름 : 이근호(IP:)
거짓 선지자
2003년 4월 13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7:15-20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오늘날 우리는 원치 않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봐도 '거짓 선지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그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거짓 선지자임을 잘 파악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면, 왜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를 지상에 깔아두느냐 우리 인간을 귀찮게 하느냐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아예 이 지상에서 거짓선지자 씨를 마르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누구를 만나도 다 제대로 된 선지자라서 안심놓고 그들의 말을 믿고 천국가게 하면 더 능률적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들어가야 될 천국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천국이란 우리 인간들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자신의 생명의 면류관까지 주님 발 앞에 던집니다. 도저히 자신이 쓸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고 찬양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에 들어가야 될 자들은 예수님에게 간이라도, 쓸개라도 다 내어놓을 정도로 전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되어야 이런 상태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실망을 해야 합니다. 자신으로서는 내세울 것이 전혀 없이 모든 것이 파괴되어야만 마땅하다고 여길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야 천국가서도 오로지 예수님의 공로만 영원토록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기에 철저하게 파멸되어야 마땅한 자인 것을 압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현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세상에 거짓 선지자들을 깔아두신 것입니다. 평소에 인간들의 마음 가짐으로서 얼마나 참 선지자를 핍박하고 그 대신 거짓 선지자를 환영하는지를 똑똑히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구분은 간단합니다. 참 선지자는 오로지 "용서받아라"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죽을 때까지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계속 용서받는 사람이 되려면 계속 죄인으로 들추어져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어서 나름대로 판단력과 요조모조 따지고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결정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머리로 하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게 됩니다. 이 감정이 이성적 행동보다 앞질러 나옵니다. 우리 자신도 깜짝 놀라는 그런 행동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줄 알았다고해서 그것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주체못할 정도로 원치 않는 악한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마련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한 때, 혹은 잠깐 동안 선한 동시에서 의로운 태도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는 전무합니다.
20대에 착했다고 해서 그 착함이 60대에도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의 용서가 불필요한 순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 선지자을 앞장 세워서 온 세상의 가치와 죄 용서의 가치를 서로 비교시키면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하나의 전설이 나옵니다. 베데스다 호수에 물결이 일어날 때, 제일 먼저 그 호수에 뛰어든 사람은 천사의 자비로 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전설입니다. 그런데 숱한 병자들이 그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중에 38년된 병자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병 낫겠다고 대기하고 있지만 물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를 번쩍 들어서 물가로 데려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죽치고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 죄 용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안아서 호수물까지 데려갔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38년된 병자보고 능력의 말씀으로 명령했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38년 만에 처음으로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이것이 얼마나 고귀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인지, 주위에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위협을 주어도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즉 요즈음 말로 해서 "너 국법을 어겼으니 체포되어 사형당한다"고 말해도 "나는 방금 죄용서 받았어요. 나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저에게는 이제 제 권리라는 것은 아예 없습니다. 구원되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어떤 소위 의로운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어떤 여인을 데리고 와서는 예수님 앞에 내동댕이 칩니다. "이 여인을 당신이 하나님이 법대로 처리해 보라"는 겁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둘러 선 관중들에게 되묻습니다.
"누구든지 죄가 없는 자는 이 여인에게 돌로 쳐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사람들에게 묻든지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너 죄있니 없니? 죄있거든 용서받아라. 그래야 산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물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저는 돈이 이만큼 있고 부동산이 이 정도이고, 교회에서 이 정도 되는 사람이요, 5대 째 기독교 가문이요, 저는 열심 사회 봉사에 열심히 종사하고 있는 중이고"라는 등등의 대답을 해도 전혀 예수님에게 먹혀들지 않을 것입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당장이라고 돌을 칠 기세로 등등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씩 그 여인의 곁을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를 고소할 자가 있느냐?" 여인은 대답합니다. 없습니다. 이제 죄인인 여인과 예수님만 그 현장에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조건적으로 그 여인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인물보고 용서한 것이 아니고 신장이나 가문보고 용서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죄가 있기에 그 죄를 씻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예수님만이 참 선지자인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거짓 선지자는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노략질'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양을 노략질 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성경을 모르고, 신학을 공부 안하고 기도나 심방을 안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7:22에 보면,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까지 실제로 열심히 수행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은 엉터리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는 자신의 행위의 모든 목표가 이미 확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양을 노략질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자신을 노략질 하는 사람을 더 선호하고 반길까요?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의 짓거리가 일반 교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사업하는 행위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회에 나가서 장사한다든지 사업하시는 분이 타인을 대할 때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서 대합니까 아니면 그 사람의 돈지갑에서 어떻게 하든지 돈이 지출될 수 있는 것을 노리면서 온갖 아부를 다 동원하는 것입니까?
아마도 손님을 위해 희생하기 위해서 장사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자기 사람으로 장악해서 나의 세력을 더 키우는데 한 몫보려고 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모시는 교회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이왕다닌 교회가 더 크지고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 그들은 온갖 수단과 성경적인 용어들을 총동원해 가면서까지 자기네 교회사람으로 붙잡을려고 합니다. 완전히 장사속입니다.
이 일을 효율적으로 잘 진척시키기 위해서 거짓 선지자에게 전권을 일임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1:20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찌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라고 말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과 거짓 선지자는 한통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도가 분명히 첫 번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분명히 복음을 전했건만 고린도후서 11:14-15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의 사도로 위장한 악마의 하수인에게 맹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통한 용서보다는 자기네들의 교세확장과 단결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22:27-29에 보면,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이 땅 백성은 강포하며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의 몇 가지 특징이 나옵니다. 첫째, 불의의 이익을 취하고 두 번째는 겉치레에 신경을 쓰고, 세 번째 여호와의 말씀을 아닌 것을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우기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양을 노략질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오직 양을 노략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고자 합니다. 만약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게 되면 전혀 노략질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씀을 예수님처럼 양을 위한 희생이 바탕에 깔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십자가 자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참 선지자이십니다. 이 참 선지자의 마음이 담길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참된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었던 누구되었든지 참 용서함이 계속 유지되는 자 안에서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보입니다. 마치 38년된 병자가 막 첫발걸음을 떼는 것처럼, 혹은 방금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그 순간이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그저 호기심이나 재미로 거짓 선지자를 바라보지 않게 해 주옵소서. 우리 자신이 도리어 거짓 선지자를 더 찾고 있는지 않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