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도중 하차한 복음
[일반] 도중 하차한 복음
이름 : 이근호(IP:)
사람이 자의에 의해서 복음을 가졌으면 나중에 그 복음을 멀리 갖다 버리는 것도 가능할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복음에 의해서 부름을 받았으면, 자진해서 그 복음을 폐기처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옆길로 빠졌다는 말은, 처음부터 복음에 의해서 부름을 받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14에 보면,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너희는' 오직 '복음'에 의해서 부름을 받은 자를 말한다.
복음으로 부름을 받지 않는자는, 잠시 그 복음을 이용만 하려 한다.
따라서 일단 흡수된 듯 싶다가도 어느새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일은 마치
길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생을 만나서 반가워하다가 며칠 지나면 기억조차 안되는 경우와 같다.
즉 복음이 늘 그 사람 속에 함께 있어 그 사람의 모든 지배하고 있는 '복음의 사람'으로 변모된 것이 아니라 복음과 무관한 처지에서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도 바울의 말한 고백에 동참되지 못한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 1:5)
어떤 사람이, 뒤늦게 내어 놓을 복음이 없다는 말은 처음부터 복음으로 부름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속이려 한다.
"저는 복음으로만 값없이 구원됨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논리라면 복음의 능력이란 항상 소진될 수 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단언되어야 한다.
과연 복음의 능력이 도중에 소진될 수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 부인'이 되다가 나중에는 '자기 부인'을 시키지도 못할 그런 무능한 것이 과연 십자가 능력인가?
십자가 능력이 초창기에만 반짝 효과보다가 조금만 지나면 폐기처분해도 괜찮는 것인가?
복음을 버린 목회자들이 왜 설교 시간에 십자가 복음을 말하기를 꺼려할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에, "교인 여러분,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만 이루어집니다"라고 무심코 이야기했다가는,
교인들이 분명히 다음과 같이 질의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사님,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 믿으면 이 후로 아무 것도 안해도 구원이 확정된 것 맞지요?"
이 교인들의 질의에 그 목사는
"그렇습니다"라는 답변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습니다'라고 하면 돈을 교회에다 안 갖다바칠 공산이 크다고 본 것이다. 경험상 충분히 겪어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목사는 다음과 같이 대꾸할 수 밖에 없다.
"아니요!"라고.
그렇게 되니 교인들이 또 물을 수 밖에 없다.
" 그렇다면 아까 목사님이 말씀하신 '구원'이라는 개념이 품고 있는 뜻은 무슨 뜻이요? '덜된 구원?', '미진한 구원?' '그냥 진행해보는 구원?"
즉 교인들은 의아해 한다. 예수님의 그 고귀한 십자가의 피에 의해서 그저 주어지는 구원이라는 것이 고작 '덜된 구원'이나 '미진한 구원'이나 '그냥 추진해보는 구원'에 불과한다 말인가?
하지만 목사는 교인들의 그런 궁금증에는 아랑곳 없이 문제는 교회에 돈이 들어오느냐 마느냐에만 신경이 곤두 써가지고 있을 뿐이다.
"당신들이 무엇이 궁금하든지 간에 관심없고 나에게는 당신들로 인하여 내가 밥먹고 사는 일이 급선무요"
이게 오늘날 목사들이다.
그들은 애초부터 복음으로 부름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복음은 무슨 복음!
신학교 입학 할 때부터 신경은 딴데 가있다.
"이같은 자들은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 16: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