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7:4-8 (계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Re..계 7: 5- 8 (144,000명)
이름 : 이근호(IP:)
144,000명
2006년 10월 22일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7:4-8
(계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계 7:5) 『유다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계 7:8)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하늘 나라에는 좌석이 있습니다. 마치 극장 안에 지정된 좌석들이 있는 것처럼 지정된 숫자 만큼만 천국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배제됩니다. 그 자리를 앉게 된다면 다른 그 어떤 자도 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배정받은 자들은 한결같이 이스라엘의 지파 지파에만 국한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인류 가운데 야곱의 12 아들에게면 천국의 복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연히 다른 자손들의 반발이 있겠지요. “우리와 왜 저들 이스라엘 민족과 차별을 두는가! 이런 차별을 두면서도 만인을 공평하게 대하시는 정의롭기도 하고 자비롭기도 하는 그런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도리어 깡패같은 하나님상이다”라고 반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반발하는 자를 두고 ‘개’라고 표현하십니다. 자신이 원래 생각해 놓은 그 인간이 아니기에 개와 다를 바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하기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왜 개같은 인간밖에 안되는지를 염두에 두지도 않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따지려 드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7:26-30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 하나가 자신에 대해서 ‘개 같은 여자’임을 고백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인 가를 너무나도 명확히 아는 자입니다. 원래 인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이런 지상의 삶을 살던 자가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살던 자입니다.
그 때는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을 안가졌던 시절입니다. 인간이 선과 악에 대해서 지식을 갖고 있을 때부터 인간은 그 좋던 낙원에서 가차없이 추방당했습니다. 그 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자기를 살려내어야 하는 힘든 시련의 인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가치나 의미를 원래 하나님의 창조성에서 찾지 않고 이 세상 삶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자신이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빼놓고서는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은 마치 당연히 천국에 가야할 인물로 간주하고 시작합니다.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히 된다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이런 객기에 말려들어가지 않고 죄를 가지고 다가섭니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인간도 구원될 자격자가 못되고 도리어 지옥에 반드시 가야한 자로서 노출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보고 ‘개’라고 묘사한 것은 참으로 합당한 용어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의 개를 보세요. 그 때 개나 요즈음 개에 무슨 차이점이 나던가요? 없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문명과 문화의 옷을 껴입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는 시선과 안목은 동일합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발단과 발전상을 증거로 내세워도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전혀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동일하게 흠없는 분의 피로만 구원될 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이 지옥가도 하나님 편에서 당연한 조치를 취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서 은혜 줄 자와, 긍휼을 입을 자들이 등장됩니다. 그들이 야곱의 12아들로서 나온 이스라엘 12지파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가 덧입혀졌기에 자기네의 방식으로 구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만 구원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히 지옥 갈 개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구세주, 자신이 메시야인 하나님 아들이 왔지만 그들이 자기 행위에 의존했기에 메시야를 배척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궐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숫자가 모자란 것입니다. 이 자리에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 바울을 보내어 그 부족한 자리를 이방인 그리스도 사람으로 채우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배반한다는 사실을 미리 아시고, 기존의 혈통적인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여기는 그 인간들의 신학적 오류를 거부하시고 오직 예수님 자신이 짠 천국의 실상을 소개하십니다.
그것은 혈통의 아브라함 자손이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야로, 심판주로, 천국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영적인 자만이 참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 자손으로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여, ‘이리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겠나이다’라는 이방인이 천국가는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기존의 혈통적 아브라함 자손들은 천국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로 삼기 위해 12제자들을 뽑아 12지파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들 제자들의 말을 듣는 자가 곧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이 12제자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말씀이 곧 이 성경 말씀입니다. 사도의 죽음을 끝으로 성경 내용도 종결되었습니다.
개같은 이방인들의 구원은 율법을 준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성령께서 먼저 오셔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부르는 것으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곧 하나님의 맹세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1:8에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25에서는,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라는 말씀도 나옵니다. 이런 말씀을 과연 자신이 만든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믿음으로 받아드리십니까? 이런 판정은 우리가 환란과 어려움에 처해 봐야 하고, 또한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럽고 책망할 게 많고, 자살 할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지경에서도 주님 덕분에 구원됨을 의심치 않을 때 알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자가 바로 택한 받은 자입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습니다. 사망과 심지어 천사나 악마의 유혹 앞에서, 십자가의 공로가 의심되지 않아야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세 친구를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몰아세우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늘 죽음 지경으로 만들어 그 가운데서는 십자가 생명의 능력을 확인케 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는 우리가 늘 세상 것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 속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이기 위한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가짜는 기어이 하나님의 그 선택된 자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마땅히 개같은 존재이며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절감하면서 그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이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더욱더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