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06 서울(의존교회) 060512 종말론 1-2강의히브리서

Re..06 서울(의존교회) 060512 종말론 1-2

이름 : 이장우(IP:)

06 서울(의존교회) 종말론 1-2
06. 5. 12 강의 이근호목사

종말에 대해서 어렵기에 다시 하겠습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오는 이런 종말은 거짓입니다. 이것은 허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종말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종말론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하면 이슬람교, 각종 철학, 또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하고 있는 종말론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이 마지막이 있다. 과거가 있든지 현재가 있든지 마지막은 미래에 끝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한 계시록을 해석해 버리게 되면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가 하면 이 마지막 때에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피하여 보려고! 징조를 좍 보면서 나 이것을 피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구원받을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기 위하여 몇 가지 정보들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것을 피하면 마지막에 지옥가지 않는다는 그런 것들의 힌트를 달라는 것이지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가려는 이것은 다 거짓 된 것입니다. 왜 거짓된 것인가 하면,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서 나와야 이것이 진짜 종말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나와야 진짜 종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인간의 머리에서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기에 전부 다 사기요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이 이야기한 종말론이 진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야기한 종말론이 어디에 나와 있는가 하면 히브리서 1장에 나와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등장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마지막을 몰고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끌고 오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붉은 옷을 입고 무언가 선물보따리를 가지고 오지요? 예수님께서 종말이라는 선물보따리를 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들고 온 종말이라는 선물보따리는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때는 인자가 구름타고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구름을 타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당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말이라는 선물보따리를 들고 오셔서는 내가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전 까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심판자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어려운 이야기이지요! 나는 인간이고 하나님은 저기에 계시는데 하나님은 심판하시는데 무엇으로 심판하시느냐? 말씀대로 잘 지키는가? 십계명대로 잘 지켰는가 하는 것으로 심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것은 소용이 없고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영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라고, 당신이 부자이니 그것을 팔아서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바로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였을 때에 따랐습니까? 뒤로 돌아갔습니까? 뒤로 돌아 집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 종말입니다. 예수님 가시는 곳으로 쪼르르 따라가면 그곳이 종말인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셔도 그것을 치워버리고 자기가 생각해 놓은 종말이 안 왔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종말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종말입니까 하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심판 받는 것을 면제 받는 것이 아니고 누가 종말을 몰고 오셨는가를 알아야 구원을 받습니다.

서기 몇 년도에서 몇 년도 까지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끝장내실 분이 누구신가를 알 때에 그 사람은 구원을 받는 것이고, 모르면 이미 종말에 의하여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것이 없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심판을 내게 맡기셨으니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심판이 있다.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을 최고로 잘 믿는 사람이라고 여긴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고 좋은 상을 받는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바리새인인 중에 바리새인이며 자신보다 의로운 사람이 없다고 자신 만만해 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이 자신의 의로움을 더 의롭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다고 예수 믿는 사람을 아예 작살을 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잡아 넣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보시기에 더욱더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고 여기고 또 종말 때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였는데, 그런 생각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바르게 산다는 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서 하시는 말씀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이 네게 고생만 실컷 더할 뿐이다. 주님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못살게 굴던 나사렛 예수다.

이것을 무엇을 뜻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때에 사람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독자적인 계약을 맺고 일하셨다는 것을 그때 사울이라는 사람이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어떤 일을 하든지 배제해 버리고 아주 독점적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종말이든 심판이든 이런 일은 하나님과 예수님 둘 만의 문제이지 제 삼자인 우리가 거기에 끼어들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여러분 속 편하지 않습니까? 소화제 하나 드릴까요? 쓸데없이 내 구원을 내가 관리하려고 하니 얼마나 자기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구원문제는 우리가 개입하거나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림을 그려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심판을 감행하실 때에 그 심판의 기준을 우리에게 물어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것이 심판의 기준인 것입니다. 뱀에 물린 사람에게 구원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아 올리고 쳐다보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쳐다 본 사람은 다 나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은, 이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들려야 한다는 것은 나머지기 나를 포함해서 수십억의 인구를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려야 한다는 것은 그 밑에 깔려있는 수백억의 인구들 중국사람, 필리핀 사람, 터키 사람 같은 다른 사람들을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구원받을 다른 이름을 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를 주신 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위한 예비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예수님 믿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이 말은 내 선에서 천국가려고 시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데 왜 하는 것입니까? 참 답답해 미치겠네! 하지 말라는데 왜 하는 것입니까?

해도 소용없는 짓인데, 해도 소용없는 짓을 하다가 안 되니 짜증내고 하나님께 달려들고, 하루에 성경 다섯 장 읽기! 괜히 자기가 정하여 놓고 못 지켰다고 다음날 헌금 더하기 또는 일곱 장 읽기! 그러다가 갑자기 친한 친구가 와서 성경을 읽지 못하였는데 차사고 나면 성경 읽지 않아서 사고 났다는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차사고 난 것은 미래의 주께서 너의 행함을 의지하지 말라고 너 성경 보았거나 안 보았거나 상관없이 차사고 일어나야 그 순간 이나마 네 자신을 탈피하고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는 것을 믿고서 차사고 나나 안 나나 내가 구원받았지! 내가 왜 차사고 난 것 때문에 왜 그렇게 신경을 썼는가? 차사고 나나 안 나나 구원받았는데 왜 차사고 안 나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이기주의를 챙겼는가? 하면서 회개하기 위하여 차사고 난 것입니다.

작년부터 제 머리 뒤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동영상 보는데 머리가 훤한 것입니다. 야구장 같습니다. 원인이 교회사 강의하느라고 신경을 써서 그랬구나! 창원에 어느 교회는 목사님이 머리가 빠지면 교인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3천만 원 들여서 머리를 심었다고 하는데 우리 교회는 3천만 원 대어줄 사람이 없어요! 내가 이만 원 주고 마이녹실 뿌려서 조금 난 게 이정도입니다.

왜 머리가 빠지는가 하면 머리 빠져도 구원됨을 이야기 해주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 빠지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거와 비교해서 과거에는 안 빠졌는데 왜 지금 빠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하였는데 왜 지금은 과거보다 못 하는가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또는 어제 내가 이런 계획이 있었는데 오늘 왜 그 계획대로 안 되었는가를 과거에 근거해서 오늘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근거해서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다 의논해서 된 것을 가지고 네가 쓸데없이 거기에 올라가서 흠집 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 십자가에서 사건에 계속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다운 사건이 뿜어져 나오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형편 따라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자기 행함과 자기 의로움과 자기 자존심을 어떤 것을 가지고 붙여하는 것은 주시하시다가 그것을 레이저 광선으로 때려서 자존심 의지하지 말고 높이 들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라고 지금도 그런 사건들을 계속해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종말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서론입니다. 종말론이란 쉽게 말해서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광고에 보면 ‘빨래 끝’이라는 것이 있지요! 주님 지금 나는 교회 다니면서 술도 안 끊고 담배도 안 끊었습니다. 하는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종말’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네가 담배 끊고 술 끊고 하는 것과 상관없이 저쪽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다 이루었다는 것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면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을 어떤 위인도 지킬 수 없는 모든 말씀을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행함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 이루심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자 어떻게 믿는가? 제가 예를 들어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은즉 우리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니라”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앞에 무슨 말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이며 이것으로 사랑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어봅시다. 같은 교인끼리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 그러면 목사님은 교인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 그러면 교인들은 목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까? 미쳤습니
까? 누가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이것은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어떤 경우도 안 됩니다.

성경 말씀에 우리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말씀을 던져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마땅하다는 것이 주님의 뜻이 맞습니다. 이 말씀이 예수님에 의하여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 몰랐는데 요한일서에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도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 다 이루심을 믿게 되면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에는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행위에 포함되어 있음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 이거 아무도 이해 못한다.

여기 물이 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물을 먹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안돼요! 마개가 막혀 있으니 못 마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물을 먹어야 된다는 것을 믿느냐? 믿습니다! 믿지! 예! 그러면서 이것을 한번 틀어봐! 이 물이 눈에 보이고! 트니까 열리고 그래서 어느 날 마시게 되고! 이것 다 누가 하신 것입니까?

다 이루신 주님께서 다 이루심이 어떠하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형제를 위하여 죽는 것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2차 3차거치고 보니 형제를 살리기 위한 희생으로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아 더 쉬운 것을 해야겠다.

뭐냐 하면 학교의 교수님인데 교회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교수님이라도 골프 치는 것은 사치다.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온 총장님이 교수님에게 골프를 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수님은 목사님이 골프 치는 것이 사치라고 하였기에 머뭇거리는데 총장님이 치자고 하니 어쩔 수 없어서 골프는 쳤는데 그때 옆의 교수가 고혈압으로 쓰러진 것을 보고 얼른 앰브란스 불러서 살려내었습니다.

결국 왜 골프 치게 된 것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본인은 형제를 구원할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그렇게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김 교수님은 형제를 살리기 위하여 골프를 쳤군요! 아닌데요? 저는 골프 칠 마음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형제를 살리는 일을 하도록 누가 조치를 한 것입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 일을 보고 김 교수님이 주여! 정말 다 이루셨군요! 나는 그 일에 증인으로서 부름을 당하는, 주님께서 다 이루심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하여 증인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골프를 칠 때는 이것은 윤리와 도덕적으로 보아서 사치로 보았는데 그러나 그 사치가 결과적으로 무엇으로 바뀐 것입니까? 성경 말씀을 이루는 재료로서 포함시킨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스데반 집사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마지막 종말인데 나 구원받아야지! 성경에 보니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되어 있으니 형제를 위하여 재산을 내어 놓아야지! 이렇게 나오신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다 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지켜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나타난 실적이 있어야 그 실적을 보고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적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판단한 잘못된 실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형제를 사랑할 때에 한달에 돈을 얼마나 주어냐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사람이 어떤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자신이 과거에 체험한 것을 대충 끼워 맞춘 엉터리 같은 기준에 불과하지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의 기준은 아닌 것입니다. 인간은 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고 해서 집도 마련하지 않고 그렇게 사시겠습니까? 그렇게 한다고 해 보았자 잠은 어디서 잘 것입니까? 그러면 노숙자 생활을 역 구내에서 할 것입니까? 역도 나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아무리 자기가 성경 말씀을 지키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이지 예수님의 기준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킬 수 없다고 안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으니 다 이루심을 믿는 것입니다. 주께서 다 이루셨는데 왜 우리가 지켜야 합니까? 다만 남아 있는 것은 다 이루심이 우리에게 적용이 될 때에 주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라고 반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이것이 얼마나 모호한 말입니까? 돈이 얼마가 있는 것이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해석은 인간이 행할 수 있도록 해석하는 것은 반칙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종말은 무엇이냐? 다 이루심이 그 내용물을 가지고 공중에서 살포하는 것입니다. 종말은 무엇이냐?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우리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는 것을 위에서 살포하는 행위가 종말의 행위입니다. 위에서 살포하면 우리의 얼굴에 무엇이 묻지요! 그것을 보니 다 이루신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13장에 보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보니까 예수님의 사랑이 묻었구나! 은혜이구나! 그러니 은혜를 아는 사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도이고, 아직도 말씀 몇 가지 더 지켜서 복을 받아야 하겠다고 이렇게 나오면 그 사람은 성도가 아니고 그렇지요!

말씀 하나하나가 다 은혜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가운데 어려운 사람이 있으니 도웁시다. 할 때에 목사님! 우리가 꼭 도와야 되겠습니까? 이미 십자가로 구원받았는데 도와야 구원을 받습니까? 이렇게 나옵니다. 그때 목사님이 지금 그 성도가 그렇게 어려움에 처한 것도 주님께서 이미 다 이루심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주님의 다 이루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도와줄 마음을 주신 분도 하나님의 다 이루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

방금 제가 이야기 한 것이 베드로전서 4장에 나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봉사를 하든지 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힘으로 하는 것처럼 하라 그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종말은 무엇이냐? 다 이루신 말씀을 공중에서 확 흩트리는 것입니다. 그 흩트리는 것이 무엇이냐? 용서입니다.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주님께서 너를 용서한 것 같이 너도 남을 용서하라고 되어있습니다. 다 이루심이 살포 되었기에 그 다 이루심을 받았다면 너도 그 다 이루심을 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네가 용서 받았으면 나는 이런 용서 받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세 번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 나 예수님을 저주한다고 할 때에 목사님 저 사람을 치리합시다하면 치리할 필요 없이 베드로도 그랬는데 그럴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설사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주께서 용서하심을 믿습니까? 그렇게 물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그런 용서도 받지 않는다고 하면 그러면 그 사람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몇 달 후에 제가 정말 잘못하였습니다. 하면서 올수도 있고, 안 올수도 있고 그것은 주께서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불러서 당신이 예수님을 저주하니 우리가 당신을 치리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옛날에 우리가 잘나서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에 예수님께 어떤 욕도 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그런 것을 개의치 않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옛 모습을 다 보여주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사울도 구원받았습니다. 사울도 사도로 부름을 받고 구원을 받았는데 이 말은 바울 앞에 어떤 누구도 나와 보라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았는데 복음에 대하여 나보다 더 빠삭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을 핍박하던 죄인도 구원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들도 말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주님의 용서가 임하면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복수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만 달란트의 빚을 용서 받아놓고 백 데나리온 안 갚는다고 할 때에 주님께서 그런 인간을 진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주님께서 다 이루셨는데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 될 텐데 새삼스럽게 인간들끼리 누가 높으냐! 누가 낮으냐!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짓은 십자가 밑에서 할 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왜 중요하는가 하면, 성경을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는가 하는 해답이 나옵니다. 성경은 어떻게 지킵니까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눈 감고 찾아서 어떤 본문을 보더라도 이 말씀은 예수님이 어떻게 다 이루셨으며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그것만 찾으면 성경해석은 만점입니다.

제가 눈감고 실험적으로 해 보겠습니다. 이 성경을 보니 잠시잠간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오신 다는 것을 이미 확정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앞당겨서 오시리라고 현재 우리에게 전달한 것입니다.

그러면 다 이루심을 믿는 사람은 장차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것도 이미 내 속에서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장차 오신다는 것이 가봐야 안다는 것이 아니라 가보지 않아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안 가보아도 오신다는 것은 미래이지만 그 오신다는 믿음은 현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지금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다 이루심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너는 왜 안 믿어? 내가 이것을 안 믿으면 지옥 가는데!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 이루심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종말 사건이 있다는 것, 하늘과 땅이 불에 살라진다는 것을 자꾸 안 믿으려고 하는데, 그것은 가 봐야 알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말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거창하게 나타날 불 심판에 대하여 묻지 말고 지금 예수 안에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왜냐?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떤 선을 그어놓고 어떤 한 인간을 세웁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선 안에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믿습니다. 그런데 이 선을 지우고 예수님을 그려놓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그러면 어! 나 밖에 없는데! 그러니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안이라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이것은 손에 잡히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안 믿으면서 마지막 때에 불 심판이 온다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마지막 불 심판을 믿기 전에 지금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네! 나 밖에 없네! 그렇게 나오면서도 나중에 하늘에서 벼락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은 믿고 싶은 이유가 무언가 사적인 맺힌 것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 한 맺힌 것이 많은 모양입니다.

지금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안 믿는다면, 장차 불 심판이라는 것은 괜히 자기가 상상해서 한번 그려보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더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자기 나름대로 상상해서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옳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미래에 될 일이 이미 도착해 있어서 나는 이미 그 미래와 함께 미래로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그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좀 쉽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힘이 들지만,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습니다. 이 십자가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하면 능력이 나옵니다.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구원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잘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컵을 드는 것이 누구의 능력입니까? 사람의 능력이지요! 그러니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에 물이 있는데 제가 물을 잡지요! 그런데 어떤 인간도 이 물에서 능력이 나와서 나로 하여금 이것을 안 잡으면 못 배길 정도로 만들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우리가 십자가를 붙든 것이 아니고 십자가가 우리를 붙들어서 데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성경을 사람들이 납득이 되도록 믿으면 안 됩니다. 납득이 안 됩니다. 내가 물을 잡고 김치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내가 물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데, 성경에는 물이 나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찍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보이는 주체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보이는 주체의 행동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것 까지 쥔다고 이렇게 보는데, 성경에서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이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능력이 십자가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부흥회할 때에 교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목사님! 귀찮은 소리하지 말고 우리가 어떤 능력과 어떤 행동을 하면 복이 떨어집니까? 그 이야기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귀찮으니 다 치우라는 것입니다. 어떤 장로가 어떤 행동을 하였더니 복을 받았다. 어떤 집사가 목사님을 섬겼더니 복을 받았다는 그 이야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성경을 몇 장을 읽었더니 복을 받고, 성경을 얼마를 읽었더니 병이 낫고, 어떻게 하였더니 교회가 부흥이 되고 하는, 인간 쪽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안겨주신다는 그런 이야기만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흥회입니다.

앞에서 강대상을 열심히 두드리며 찬송을 부르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저렇게 열광적으로 두드리면 오늘 은혜를 받을 것이다. 찬송을 열광적으로 부른다는 나의 행동으로 인하여 복이 거기에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부흥회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반대입니다. 오게 하시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은혜 주고 아니 주고 하는 것도 주님의 손에 달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공로와 영광과 능력과 찬송을 다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 주님에게 나왔다는 정도가 아니라 나에게서도 나오는 능력이 있는데 이렇게 나에게서 나오는 능력이란 악마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악마에게서 나오는 능력을 때려 부수시는 능력입니다. 악마를 때려 부수는 능력입니다.

악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원수로 만들고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집착해서 예수님은 왜 내 뜻대로 해주지 않습니까? 하면서 시시로 원한과 분노를 품고 있습니다. 혹시나 그것이 들킬까 싶어서 성경보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지만 항상 내부에는 시큰둥한 모습, 주님께서 어이 이근호 할말 있으면 해봐! 아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데요 뭐! 어허 할말 있으면 해보라니까! 아닙니다. 제가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이야기 해보라니까! 그러면 이야기 하겠습니다. 저는 왜 5천명 담임목사 안 해주는 것입니까? 그러냐! 또 뭐냐? 저는 왜 벤츠 못 탑니까? 또 이야기 해봐! 저는 왜 백 평짜리 아파트에 못 삽니까? 또 말해봐! 왜 저의 자식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못 됩니까? 진작 그렇게 나오지 또 말해봐! 아닌 척하고 성경보고 또 이야기 해봐!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를 까발리는 능력입니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니 까발리는 것이지 만약 우리 능력 같으면 우리는 감추기 바쁩니다. 무화과나무 밑에 왜 숨습니까? 감추려고 숨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능력은 자기 죄를 까발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교묘하게 감추기 위하여 모든 능력을 다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은 우리가 꼬깃꼬깃 숨겨 놓은 우리의 진짜 분노, 진짜 자기의 의라고 여기는 것, 진짜 안타깝다고 여기는 것, 진짜 주님이 나에게 실수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 까지 다 파헤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그것조차 다 이루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이룸으로 구원받았다는 그 능력이 바로 십자가에 나온 능력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십자가의 능력이 무엇이냐? 우리 가운데 가진 자가 누가 있으며 잘 난 자가 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못난 사람인데 택함을 입었기에 구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오직그리스도만 자랑하겠다고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라고 고린도 전서 1장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두 번째 시간에 무엇을 이야기 하였습니까? 십자가에서 능력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컵을 드는 능력, 물을 드는 능력과 다르지요! 어떤 능력입니까? 우리가 컵을 들던 무엇을 들던 우리가 꼬깃꼬깃 숨겨놓은 것들, 하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들과 예수님을 시큰둥하게 여긴 것들, 억지로 예수님 믿게 하는 요런 것들을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으로 십자가의 능력이 들어옵니다.

왜 가진 것으로 감사하지 못하는가? 그동안 살아온 것으로 감사하지 못하는가? 예수님은 33세밖에 안 살았는데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더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보면 얼마나 성경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길게 이야기 하였지만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쉽게 그림으로 그리면, 오늘이 며칠이지요! 5월 12일! 오랜만에 반응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2006년 5월 12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믿는 그 순간부터 과거가 되기에, 내일 13일이 되면 12일 믿었던 그것을 계속하여 가져가려고 시도를 하게 됩니다.

저 어제 믿었습니다. 오늘까지 효과 있겠지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13일 되면 이미 12일 은 과거사가 되기에 미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서 이것은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 그러면 내가 5월 12일까지 믿을 가지려고 애를 썼는데 그러면 5월 13일 되면 그 믿음이 사라져버린다면 5월 13일 죽으면 지옥 가겠네요!

그런데 제 말을 들어보세요! 5월 12일 믿는 십자가 믿음을 이미 과거물로 여기고 밀어내는 그 능력과 더불어서 5월 13일자 새롭게 십자가 믿음을 만들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꼭 옛날 기도원에 가서 은혜 받은 것, 방언 했던 것, 옛날 6.25때 폭탄 맞았는데 살아난 것, 몇 년 전에 큰 부흥회 열어서 은혜 받은 것, 그런 것들을 계속 우려먹고 그런 것을 밑천 삼아서 부흥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세요! 목사님 지나간 어제의 이야기 말고 오늘 주님은 어떠셨습니까? 그것을 묻고 싶습니다. 여기 목사님들 계시지만 목사님들의 시험거리가 무엇인가 하면 주일날 설교를 하려고 토요일 까지 준비를 합니다. 그러면 주일날 되면 토요일 까지 은혜롭습니까? 은혜롭지 않습니까? 그것은 토요일 까지 주님이지 주일날의 주님은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을 버려야 됩니다. 또 버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토요일까지 은혜 받은 것을 주일날 이야기 해 버리면 이것은 같이 은혜 받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받은 은혜를 교인들에게 강제로 가르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요한 일서 2:27절에서 보면 성령을 받은 자는 누구에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 어긋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제가 토요일까지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 또 이 성경을 보니 세상에 이렇게 깊은 은혜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라고 다 같이 은혜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목사든 교인이든 그러면 같은 성령 받았으면 목사님이 토요일까지 은혜 받은 것도 은혜가 되는데 주일날 받은 은혜 그것도 동감이 되네요! 같이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장성, 주님께서는 어제의 주님이 아니라 오늘의 주님이지요!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하신다는 말씀대로 늘 일하는 것입니다. 11일까지 주님이 역사하셨다면 오늘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 가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오늘 여러분은 주님께서 피곤하게 하셔서 잠이 오게 하십니다. 그래도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높이 들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능력이 나온다. 그 능력은 우리의 과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과거에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무언가 새롭게 규정을 합니다. 자꾸만 틀을 만듭니다. 세상은 이래! 예수님은 이래! 그러나 그러한 틀들은 미래에서 불어오는 십자가의 능력, 미래의 능력에 의하여 모조리 다 늘 상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듭니다. 기도를 하였더니 내 남편의 병이 나았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해야지요! 그것이 12일입니다. 그런데 13일 주님이 묻습니다. 네 남편 병 낫는 것이 낫냐? 네 남편과 함께 지금 낙원 가는 것이 낫냐? 나와 같이 얼굴 맞대는 것이 낫냐? 바울 사도는 빨리 나를 보기를 원하였는데 너는 남편이 나았으니 한 십년간 더 살고 싶으냐고 자꾸 묻지요?

아하- 어제는 남편의 병 나은 것이 감사하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주님의 나라에 가고 싶은 것을 가로 막는 하나의 방해요소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성도이고, 주님께서 남편의 병을 낫게 하셨는데 같이 한 평생 15년간 더 살고 싶습니다. 하면서 내 남편 다시 병들게 하면 예수님 안 믿겠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이것은 결국 욕심입니다. 주님이 주신 십자가보다 이 세상에서 내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겉으로는 웃고 계시지만 속으로는 뜨끔할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지적하고 누가 깨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합니다. 그렇게 안합니다. 내 남편 내가 기도해서 병 나았다. 1년 뒤에 우리 남편 내가 기도해서 병 나았다. 우리 같으면 우리가 기도해서 그 능력으로 병 나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이 임하면 그것마저 부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마저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3층천에 올라가면 그것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이 사건화 되어서 계속하여 우리에게 밀어 붙인다는 것이 이 두 번째 시간에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존재를 꾸미려고 하는데 꾸며보았자 주님의 능력에 의하여 꾸며놓은 존재를 부수고 내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은 오늘만, 내일은 내일 것을 주님이 주실 것입니다. 내일 주실 것인데 내일 굶어죽으면 그것은 고맙고 무슨 더러운 팔자가 되어서 더 살아야 한다면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팔자가 좋아서 내일 어떻게 죽어서 천국 간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팔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어떻게 사용해서 주님을 증거 할까 하는 주님의 문제입니다. 다만 주님께서 그렇게 이야기 하신 것을 제가 그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무엇입니까? 주님 우리 자녀가 내일 결혼식 하는데 주님의 재림은 결혼식 끝나고 재림하시기 바랍니다. 이것도 과거에서 흘러온 나의 자존심 덩어리 같은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 일을 누가 하는가 하면 고맙게도 마귀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하는 말은 우리가 마귀를 물리쳐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귀는 마귀대로 일을 하여 우리의 과거에 집착하도록 하고, 주님은 주님대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셔서 주님의 기도의 능력으로 우리를 건져주시는 일을 지금도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쉬고 마지막 시간 하겠습니다. 녹취 061016 이장우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3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열람 ➜ 강의 Re..06 서울(의존교회) 060512 종말론 1-2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6-10-16
2,816 강의 대구 10월 16일 존재란 무엇인가 - E 질송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6-10-16
2,815 묻고답하기 Re..이목사님?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10-16
2,814 우리교회 Re..전 5 : 18-20 (분 복) 전도서 최고관리자 06-10-15
2,813 우리교회 Re..전 5 : 18-20 (분 복) 전도서 최고관리자 06-10-15
2,812 우리교회 Re..계 7 : 1- 4 (인 맞은 자)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10-15
2,811 설교 인 맞은 자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6-10-15
2,810 우리교회 [일반] 10월 15일 주일예배 실시간 방송 [방송] 최고관리자 06-10-15
2,809 강의 기독교 윤리에 대한 두 관점 - 최고관리자 06-10-14
2,808 강의 안산 10월 13일 강의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0-14
2,807 강의 서울 경기 10월 13일 강의 미가 최고관리자 06-10-14
2,806 묻고답하기 아담과 하와가 자기 잘못을 시인...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0-14
2,805 묻고답하기 Re..연보의 뜻은?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10-13
2,804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의와 인과 신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10-11
2,803 우리교회 Re..사 22 : 1- 4 (이상한 예루살렘)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0-11
2,802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의와 인과 신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10-11
2,801 강의 Re..20050913 부산강의-피히테, 셸링, 헤겔 [신학] 최고관리자 06-10-10
2,800 우리교회 [일반] 이준 씨의 고백 로마서 최고관리자 06-10-10
2,799 묻고답하기 Re..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10-09
2,798 우리교회 Re..전 5 : 13-17 (폐 단) 전도서 최고관리자 06-10-08
2,797 우리교회 Re..전 5 : 13-17 (폐 단) 전도서 최고관리자 06-10-08
2,796 우리교회 Re..계 6 : 12-17 (여섯 번째 인)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10-08
2,795 설교 여섯째 인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10-08
2,794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10-07
2,793 우리교회 Re..사 21 : 1- 2 (해변 나라) 이사야 최고관리자 06-10-04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