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하나님과의 관계는 명령을 지키는 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교류가 왕래하는 관계입니다. 쉽게 말해서,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종교적 행위로 맺어지지 않는 사이라는 말입니다.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자신의 훌륭한 면을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위해 하나님쪽에서 어떤 큰 아품과 희생을 했는가를 통해서 사랑을 늘 확인해가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구약 때 안식일은, 제사를 정기적으로 드리는 날입니다. 이 제사에는 반드시 흠없는 희생제물의 억울한 죽음이 발생됩니다. 그렇다면 이 제물의 비명소리와 자신의 평소의 됨됨이를 안식일을 통해서 되새겨보라는 겁니다. 다음의 글은 제가 어떤 사람의 비슷한 질문에 대해서 답변한 것입니다.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애인과의 대화는 단순히 언어로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오고가는 관계입니다. 누가 남이 자기 애인을 욕하면 가만있지 않고 변호할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 받는 자라면, 자발적으로 그 용서와 사랑만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그리고어떤 것도 이 사랑과 용서와 바꾸지 않고 또한 방해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거룩함'이나 '자신의 의로움' 조차도 예수님의 사랑을 흐릿하게 만들다든지 훼방할 요소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예수님을 사랑을 알고부터는 도리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참으로 오만한 짓임을 압니다. 예수님도 우리 자신을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요 12:25)자신의 가치를 빛내고 광내고 윤기있게 만들어 쓸만한 강자로 만들라는 아니라 도리어 미워하고 쓸모없는 인간임을 알라고 하십니다.쓸모없는 인간을 쓸모있는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해야 합니다. 중력에 의해 추락당하는 희열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약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강자가 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원래 강자가 될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자기 행함으로 추락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추락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없이 낮은 저 밑바닥에서 비로서 예수님의 희생하심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마시게 되는 '쓴 잔'입니다.(마가복음 10:39)또는 어느 성경에서 '상한 심령'이라고 합니다.(시편 51:17)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는 마음이 이 마음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을 가지고 상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상한 심령이 되지 못하는 자는 계속 높아지고 강해지려고 하지 결코 약해지고 추락하고자 하지를 않을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때부터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로 인도받게 됩니다. 그 길은 주님의 사랑과 사랑이 계속 이어지는 노선입니다. 동시에 이 길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무너져서 한없이 약하고 쓸모없는 존재임을 인식케 하는 노선이기도 합니다. 이로서 성도는 오로지 주의 이름에서 나오는 사랑만 증거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곧, 더이상 '나도 신앙있는 대단한 자임'을 증거하는 길을 포기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들꽃: 그 길은 주님의 사랑과 사랑이 이어지는 노선,그 길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무너져내려서 한없이 약하고 쓸모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는 노선, 그 길은 오로지 주의 이름에서 나오는 사랑만 증거하게 되는 노선......아무리 읽어도, 읽을수록 새롭습니다.참으로 눈물없이는 아니되는 복음입니다...... [10/05-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