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06 서울(의존교회) 060410 교회론 1-3
Re..06 서울(의존교회) 060410 교회론 1-3
이름 : 이장우(IP:)
06 서울(의존교회) 교회론 1-3
이장우 2006-09-14 14:12:26, 조회 : 7, 추천 : 0
06 서울(의존교회) 교회론 1-3
06. 4. 10 강의 이근호 목사
무엇이든지 공부를 했으면 남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하면 곤란하거든요! 오늘 공부를 하면서 교회란 아~ 이스라엘에서 나왔구나! 이스라엘이 먼저고 거기에서 교회가 나온다. 하는 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그러면 이스라엘 말고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하면, 우리가 만들면 우리의 행함으로 만들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다시 설명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공부하였으니 교회가 어디서 나온다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에서 교회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딴 데서 나오면 안 됩니까? 왜 안 되는가 하면 이 세상의 모든 나라 아까 몇 나라라고 하였나요? 대충 220여개 나라 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전부다 지옥 갈 나라인 것입니다. 그 나라의 왕초, 우두머리가 누구입니까? 악마가 왕입니다. 전부 악마에게 묶여있습니다.
이 나라는 누가 세운 나라입니까? 아벨입니까? 가인입니까? 가인입니다. 가인이 세운 이 나라는 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무서워하고 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목숨까지 빼앗는 무서운 법이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이 전 세계 220여 나라가 전부 다 그렇습니다. 왕초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재산도 다 빼앗고 죽여 버리는 무서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나라 가운데서 특별한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지금 교회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특별한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을 숨어서 용서해 주시는 메시아, 그리스도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그리스도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는 법대로 살면 복을 받고 법대로 살지 못하면 저주 받는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인간도 법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태생이 죄인이기에 탐내지 말라고 하면 탐을 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지 말라고 하는데 더 하고 싶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컴퓨터 게임 하지 말라고 하면 컴퓨터 게임이 생각나서 더 하고 싶은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법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다만 이스라엘은 용서 하시는 분이 있고 다른 나라는 용서 하는 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 빠져 나온 것이 교회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것이 세 번 째 시간인데, 우리 어린이가 수고를 하였는데 한 번 더 수고를 해보자 미안하다. 이 어린아이가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메시아는 숨어 있는데 출애굽 때에 어떻게 나왔는가 하면 유월절 어린 양으로 나온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용서받았습니다. 그 어린 양의 피가 신약에서 예수님이 등장하시니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분이 바로 메시아라고 하여도 아무도 알아볼 사람이 없습니다. 왜? 너무나 키도 작고 인물도, 힘도 없고, 재산도 없고, 구름 타고 오지도 않았고, 초라한 행색으로 내가 메시아다. 나를 믿으면 생명과 부활이다. 이런 이야기 밖에 안한 것입니다. (이제 들어가도 된다.)
예수님은 자꾸만 자기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까 말까 하는데, 예수님 맞은편에 누가 있습니까? 악마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마귀의 자손 마귀의 새끼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바리새인이라는 악마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면 죽인다는 나라의 법을 정한 것입니다. 아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무서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으면 나라의 법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하니 믿을까 말까 한 사람들이 안 믿을게요! 잘 못되었어요! 하면서 다 가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재판할 때에 아주 나쁜 강도를 옆에 세워놓고 빌라도가 하는 말이 이 강도를 풀어줄까? 자칭 메시아라고 우기는 이 예수라는 사나이를 풀어줄까? 누구를 풀어줄까 한 사람은 풀어주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강도를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를 어떻게 할까하니 죽여라고 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강도가 좋아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 뒤에는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인다는 그 법이 무서워서 예수님보다 강도를 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에 다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라는 수제자는 조그마한 어린애가 당신도 예수와 한패지? 라고 하니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하면서 저주하고서 부인한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 법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 한 것입니다. 그때 무엇이 울었어요? 1번 사이렌, 2번 소방차, 3번 초인종, 4번 기타소리, 5번 닭 무엇이 울었나요? 닭이 울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예수님이 닭이 우시는 것까지 아시는 예수님께서 내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그것까지도 아시구나! 하면서 얼마나 후회하면서 통곡하였는지 모릅니다. 막 울었습니다. 이렇게 못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시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였잖아! 그러면서 세 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서 끝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주특기입니다.
예수님의 주 특기, 장기가 무엇인가 하면 아무리 부인하고 아무리 저주하여도 예수님은 끝까지 잊지 않으시고 놓치지 아니하시고 계속하여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계속 찾아오셔서 십자가로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알려주는 그분이 구세주요 우리의왕이신 메시아입니다. 그 분이 살아계셔서 계속하여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교회로 나올 때에는 절대로 이스라엘의 자기 힘으로 나와서 교회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는 예수님이 찾아오셨고 요새는 누가 찾아오시는가하면 예수님의 부활하신 영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면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성령이 찾아오게 되면 그 사람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찾아오게 되면 어떻게 교회가 되는지 그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인간이 있고 성령님이 계시고 여기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찾아오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이 땅에 처음에 예수님이 오실 때에 성령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성령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마리의 몸에서 성령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모든 일을 다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모든 일을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하시는 일을 다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성령님은 하나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찾아오실 때에는 옛날에 인간 예수님에게 성령님이 오셔야 아버지의 일을 이루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과 우리 사이는 성령님이 오셔야 우리가 예수님의 한 몸이 되고 예수님의 뜻이 우리에게 담길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의 행함은 예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100일 동안 하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까? 안되지요! 그러면 102일? 안되지요! 그러면 백만 이일, 백만 삼일 기도해도 소용없지요! 우리 행함으로는 절대로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포크레인처럼 우리를 덥석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이 성령님 속에 예수님이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 함께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려워서 잘 안 되지요! 더 쉽게 합시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의 집에 책상이 있지요! 책꽂이에 도화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할 때에 도화지를 잡기 위하여 손을 내밀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끄집어내실 때에 우리가 도화지라면 도화지가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 듯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도화지를 끄집어 낼 때에 문제는 그 뒤의 문제입니다. 끄집어 내에 그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때에 그 도화지가 원하는 그림을 그립니까? 예수님이 원하는 그림을 그립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림을 그리시는 것입니다. 그 그림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의 의롭다는 것을 그 도화지에 그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는가 하면, 예수님이 의롭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 하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시다. 이런 그림을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화지입니다. 우리는 도화지인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알아서 지킬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우리가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하루에 몇 시간을 기도하여야 합니까? 1번, 20시간. 2번, 23시간. 3번, 23시간 30분. 4번, 24시간 기도한다. 이중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몇 번입니까? 4번! 그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은 주께서 이루십니다.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우리가 24시간 기도한다고 이룬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24시간 기도한 응답의 결과를 내게 심어 넣어주실 것입니다. 역시 예수님이 훌륭합니다. 우리는 못 지키지만 예수님이 이루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도화지 삼아서 이루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다 이루심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박힐 때에 그 일을 예수님이 우리를 도화지 삼아서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모임이 무엇인가 하면 주님께서 이러 이러한 일을 용서하셨습니다. 김 집사님은 어떻습니까? 나는 이런 일이 있는데 주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최 집사님은? 나는 이런 일이 있는데 주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용서하심을 높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전이라고 합니다.
성전의 관리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전이라고 하니 성전의 관리 책임자가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백이면 백 다 있는 것 같습니다. 성전인데 내가 거룩해야지! 그러면 어떻게 24시간을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성전의 관리책임자가 너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뜻이고, 나보고 지체라고 한 것은 그 지체가 지체답게 되는 것을 머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지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도화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화가인줄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성경말씀을 어떻게 다 지키나? 이것을 어떻게 다 지키지!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주님께서는 용서 하셨다. 예수님은 다 이루셨다. 하시는 것을 우리 속에 마치 컴퓨터로 글자를 치듯이 매일 박히게 하시는 것에 아멘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니 어떻게 돈을 사랑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탐내지 말라고 하니 어떻게 탐내지 않을까 하면서 자기가 자기 도화지에 그리는 것입니다.
나는 20살 때에 교회에 나오고, 25살 때에 은혜를 받았고, 27살 때에 기적을 체험하고 하는 식으로 자기가 도화지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도화지 찢어버리세요! 그것은 자기의 행함으로 남은 자 되고 교회가 되려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일인 것입니다.
굽이굽이 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건사건 때마다 주님께서는 떠나지 아니하시고 개입하십니다. 베드로전후에서 보면, 베드로가 이미 세 번이나 부인하였지요, 그런데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실수가 많고 그렇게 실패를 많이 한 베드로가 결국 마지막으로 고백하는 말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광을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10-11절을 봅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성경 어느 부분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지만 왠지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다른 말씀은 좋지 않다는 그런 건방진 말을 할 수가 없지만 이 말씀을 좋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미 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릎을 꿇게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성령님입니다. 그런데 도화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이 누구나 다 믿어지는 것입니까? 아무나 믿습니까? 여기 시장에 아줌마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다 믿습니까? 다 믿지 않습니다.
우리도 믿지 않습니다. 안 믿지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사 나 밖에 모르는 이 고집불통, 세상 전부를 정복하고 싶어 하는 정복욕으로 들끓은 우리, 모든 눈에 보이는 세계를 나의 욕구를 위하여 충족시키려는 우리, 이렇게 자기 밖에 모르는 이런 이기적인 우리에게 지금 타자기로 무엇을 새기는 것입니까? 모든 무릎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는 것이 박히도록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값을 주고 샀으니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 된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고 주님은 용서하셨고 그러므로 주님의 자신의 의가 높아졌다는 증거물로서 이런 저런 사건들이 우리 교회에 우리의 가정에 퍽퍽 터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천우 목사님이 교통사고가 났지만 교통사고가 일어남으로 인해서 교통사고를 유발시킨 주님의 일이 왜 의로운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심을 저는 믿습니다. 당한 사람은 약 오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어렵겠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이야기 해봅시다. 예수님의 일을 성령이라는 능력의 손을 통해서, 손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고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 성령을 능력의 손이라고 했습니다. 이 능력의 손을 통해서 성령께서 예수님의 일을 우리에게 시키시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하셨는데 다 이루신 이 일이 무슨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다 이루심을 우리로 도화지 삼아서 그린다고 하였는데 그 다 이루심이 무슨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하나는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것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은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을 들추어내는 일을 다 이룬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안 되지요!
둘째는 그 죄를 용서하는데 성공하였다. 첫 번째에 인간에게는 죄 밖에 없다.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무슨 일을 하여도 죄다. 인간은 죄 밖에 없다는 것을 들추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과 이것을 또한 용서 한 것이 성공한 이 두 가지 일을 다 성공한 것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림을 그리실 때에 무엇이 드러나겠습니까? 왜 나는 찬양을 하든, 기도를 하든, 설교를 하든, 강의를 하든, 무슨 짓을 하든지 죄 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사람은 무슨 일을 하여도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갑니다.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날 때부터 주위에 있는 모든 환경들을 다 끄집어내어서 자아를 공고히 하는데 다 투자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나는 나다는 견고히 하는 그기에 다 소모를 시키는 것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랬다고 하지요! 본인은 본인이야! 즉 본인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 밖에 모릅니다. 어떤 희생하는 일이 있어도 내가 잘났으니 희생을 하지! 남 같으면 희생을 하였겠나! 누가 자식을 사랑해도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의 아이가 잘못을 하면 교육을 저렇게 시켰냐고 하면서 자기 아이가 그렇게 하면 건강해서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상하게 분위기가 다운이 되었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영광과 자기 칭찬 외에는 듣기 싫어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찬양을 하고 헌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고 성경공부를 해도 결국은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화살이 꼬부라져서 돌아오는 것처럼 결국 내가 잘났잖아! 그러니 나는 아직도 살 가치가 있잖아! 남은 다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할 정당성이 확보되어 있잖아! 하는 전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사는 방법이 없습니다. 죽 쒀서 개주는 그런 것은 인간에게 용납이 안 됩니다. 무슨 일에 고생을 해도 나에게 잘 될 때에 보람이 있지, 자기가 실컷 고생해서 남 잘되게 하는 것이 무슨 고생입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잘해 주는 것도 나중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할 때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자식이 나중에 커서 자기 마누라밖에 모를 때에 부모는 섭섭하기 이를 때가 없지요!
그동안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사실 그것이 거짓말이지만 하여튼 그렇게 다 해놓았는데 이 놈의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하면서 미워하는데, 왜 미워하는 것입니까? 제가 첫째 시간에 교회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만족해야 하는데 거기에 나를 집어 넣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어떤 경우라도 거기에서 만족합니까? 거기에서 진보를 더 느끼고 변화를 느끼고 발전을 도모하고 더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만족하는 인간이 누가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 만족하면 처음에는 될지 모르지만 나중에 권태를 느낍니다. 지루한 것입니다.
아파트 50평에 살게 되면 처음에는 넓다고 싶지요! 그런데 동창회 가서 친구가 100평짜리 사는 것을 보게 되면 이것도 집인가? 내 인생 망했다. 내 친구는 100평 사는데 나는 50평이 무엇이냐!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니 어떤 인간도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지 않고서 살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을 바로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님께 빌고 기도하는 것도 다 네 잘되게 하기 위함이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죄라고 공격합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그때에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로 대하여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정말 만나고 싶습니까? 도저히 안 되지요! 자기 공격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데 언제 만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데 자기의 죄를 들추어내고 공격하는 그 분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고린도전서에서 사랑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사랑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왠지 나를 미워한 그것 까지 포함하여 그 분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만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니 성령께서 우리에게 다 이루심이란 무엇을 다 이루심인가 하면, 우리가 왜 죄인일 수밖에 없는 가를 다 들추어내는 일에 멈춤이 없는 것입니다. 너는 너 밖에 몰라! 이것을 계속하여 들추어내시면서 그런 죄까지 내가 이미 다 청산하였다. 다 처리하였다. 다 용서하였다. 하는 것을 일깨워주시는데 그 다 이루심이 무엇인가 하면 ‘의’입니다.
그러니까 졸지에 인간은 죄인으로 드러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죄인으로 늘 상 드러나는 그런 의인으로 변하고만 사람이 성도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다른 사람이 당신은 늘 죄인으로 드러나는데 어떻게 의인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예수님이 다 이루심을 주신 의 때문에 나는 졸지에 죄인으로 드러나는 의인입니다. 하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3:25절 중간부터 26절까지 봅니다.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어린이 여러분들도 보세요!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 즉 모른 체 하심을 누가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 자기가 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볼 때에 어떻게 보십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걱정하시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모른 체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시는 것을 받는 것도 못합니까? 이것을 우리가 지키려고 하면 그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주께서 그렇게 용서 해주시는데, 우리의 죄를 다 들추어내시고 또한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된다? ‘의’가 됩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는 그 사람도 무엇이 된다? 그 사람도 의롭다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믿는 자도 의롭다고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 이루심이 해야 할 과제 속에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알리안츠라는 보험회사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보험을 얼마나 잘하는지 보험 왕입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설명만 하면 다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알리안츠에서 제시하는 무엇을 보장하고 무엇을 보장한다고 할 때에 그것을 믿으면 되는 것이지! 암은 되는데 고혈압은 왜 안 되는가 하면서 걱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보면 모든 질병에 대하여 다 보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노후가 되면 주식의 변환에 따라 오른 것만큼 다 쳐준다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 계약서 내용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암은 되는데 당뇨는 안 되는가 하는 걱정은 그 계약서를 보면 다 들어있기에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로마서 3장에 보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자기도 의로우시고 자기를 믿는 자도 의롭다고 하시면 그 계약서대로 순하게 삼키고 받아들이면 되는 문제이지 본인이 아직도 죄인이라고 지옥 간다고 본인이 걱정하는 것은 결국 계약서를 찢는 것과 똑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안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숨겨준 메시아의 가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키 작고 볼품없지만 숨어 있는 메시아의 가치가 모독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 책을 지어낸 사람 중에 김동이라는 사람이 있고 또 이문열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람의 아들이라고 지었는데 제가 대학교 때에 그 책을 읽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김진홍목사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람이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그런 지마음대로 교리를 펼쳐낸 것입니다. 그 사람의 책을 보면 기독교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예수 믿지 않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예수라는 이름은 있지만 예수님이 만드신 그 계약서를 자기가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책을 자기가 소설로 쓰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의 다 이루심이 날마다 우리의 죄를 다 들추어내시고 그 죄마저 이미 화목제물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다 용서 되었다는 것이 그래서 주님도 의롭고 우리도 의롭다는 이것이 다 이루심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믿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인간의 자존심을 꺾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성령이 오셔야만 비로소 이러한 사실이 계약체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미 구원받았다는 것을 성령께서 보증금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의 임재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보겠습니다. 이것 하고 오늘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참 수고 많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2절입니다. 보증금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단단하게 못을 박는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은 노가 아니라 예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마음속에 주셨느니라”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증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 이루심이 그냥 우리 속에 언약이 체결되어 들어와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회냐? 날마다 이 두 가지가 느껴지는 사람이 교회입니다. 하나는 나는 백날 성경공부 해 보았자 나는 내 밖에 모르는 구나! 나는 남의 자식이 안 좋고 내 자식이 좋아! 독일하고 대한민국하고 축구하면 나는 대한민국 편들 거야! 나는 독일 편들지 않고 대한민국 편들 거야! 왜 대한민국은 내 나라이기에, 이처럼 모든 것이 내 중심입니다.
이런 것을 들추어내는 것도 주님이 하시고, 내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는 분도 예수님께서 계약대로 다 이루었다는 것을 통해서, 이제 내가 구원받는 것은 내 행함이 아니라 내 행함은 죄이기에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 세상에서 남은 자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구별하는 자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할 텐데
성경 말씀을 제쳐두고
자신의 윤리적인 감정과 도덕적인 그러한 체제와 교육받은 것으로 법을 정하여
그런 법을 지킴으로 잘난 체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잘난 체 하는 것을 주님께서 부수어 주시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심과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가 영생 얻는 기적인 것을
저희가 은혜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마치 베드로가 물위로 걸은 것처럼
마치 당나귀가 말을 한 것처럼
홍해가 갈라진 것처럼
죄 용서 받았다는 것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기적이 늘 이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녹취 060914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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