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9월 18일 제국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대구 9월 18일 제국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이름 : 이근호(IP:)
우리교회(IP:220.♡.176.141)
08-01-20 22:31
daegu060918
06 대구강의 11 - [제국]을 읽고
2008-01-15 22:07:46 이름 : 구득영
06 대구강의 11 - [제국]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저, 윤수종 역, 이학사(서울: 2005)
06,09,18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오잉, 웬 '제국' !!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국' 이라는 책을 공부하겠는데, 이렇게 시커멓게 생긴 기죽이기 좋을 만한 책입니다. 지은이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인데, 들뢰즈 이후 세계 최고의 사상가로 인정받는 자들로서, 신마르크스주의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너무 너무 어려운데, 손성식 목사님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책을 이 달의 책으로 소개해놓고 있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페이지 정도가면 손을 들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을 하나 하나를 알려고 하면, 거기에 뒤따르는 개념들을 또 일일이 알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조금만 읽다보면, 자기가 이것을 꼭 읽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라고하면, 자기에게 주어지는 현실이 자기가 생각한 것이라고 우기지만,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되어진 것이 자기에게 덮쳐온다는 것이다. 이미 어릴 때부터 말이다. 즉 이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입장이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문법적인 버릇 !!
이것을 전에 강의를 하면서 '문법적인 버릇' 이라고 했는데, 예를 들어서, '비가 온다' 라고 하는데, 그 앞에 'It'을 붙인다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 때도 '먹는다' 라고 하는 동사만 있을 뿐인데, 그 앞에 'I'를 붙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버릇인데, 현재 먹고 있는 자가 누구냐고 할 때, '나' 라고 하면 말이 되는데, 동사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누가 먹는지가 나오면 말이다. 그런데 "내가 한번 먹어볼까? 내가 먹어볼까? 그래, 한번 먹어봐" 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먹고 싶다는 것이 생기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먹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움직이는 이상은 동사가 우선이지 명사라고 하는 것은 뒤에 덩달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 라고 하는 것은 '너'를 의식할 때만 생기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저 사람 누구지?" 라고 하는 순간, 이미 '나'는 따로 챙긴다는 것이다.
◈ 유아들의 주체성은?
이런 현상이 6개월에서 24개월의 유아들에게 생기는데, 이것을 '주체성'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런 주체성이 확립되어야, 유아들은 어떻게 종교관이 만들어지고, 도덕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것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하는지 그 뒤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 토대가 무엇인고 하니, 언제 유아들이 타인을 통해서 타인이 아닌 '나'를 언제 발견하느냐는 것이다.
◈ 누가 울 엄마를 때려, 잉잉 !!
그 이전까지 아기들은, 누가 엄마를 때리면 그것을 누가 자기를 때리는 것으로 착각해서, 그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런 흔적들이 뒤에 좀 많이 남는데, 이런 현상을 우리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하면서 자랐는데, 엄마와 자기가 분리되지 않았기에, 즉 '분리체(分離體)'가 아닌 '동체(同體)'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리가 되면서, 즉 엄마가 밥을 먹는 것과 자기가 밥을 먹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배부르다고 해서 자기가 저절로 배가 불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분리가 되는 것이 인간들은 좀 늦은데, 인간은 19세까지이고, 원숭이들은 3년 정도로 본다는 것이다.
◈ 19세 미만은 출입금지 !!
인간은 엄마 배에서 나올 때부터 인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두뇌에서의 질서 잡힘이 19세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에로물은 해로우니 보여주지 말라고 하는, '19세 미만' 이라는 것도 여기에서 나오고 말이다. 아직까지 정체(正體)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즉 어른의 잣대를 아이에게 갖다대면 상처를 입으니, 그 아이가 커는 수준에 맞추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대자적 존재, 즉자적 존재 !!
이렇게 '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즉 '너와 나'가 되면 이것을 철학에서는 흔히들 객체와 주체라고 하는데, 헤겔은 이것을 '대자적 존재'와 '즉자적 존재'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이야기하면, 타인을 아는 것을 객체라고 하고 자기는 주체가 되는데, 그러니 '나' 라는 것이 성립이 될 때 객체가 있고, '나' 라는 것이 없으면 객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객체가 주체를 넘보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고, 역시 주체도 객체를 넘보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데 손무성 목사님은 이것을 자꾸 '방종'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좀 거슬린다는 것이다. 아니, 본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소주 10병에서 5병으로 줄였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신자라면서 왜 자기처럼 술을 끊지 못하고 마시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은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데, 즉 '설득' 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2장에는 설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데, 그래서 성도는 그것을 증거할 뿐이지, 설득을 하든 말든 그것은 주님의 소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객체와 주체로 나누었고, 그리고 헤겔은 이것을 대자적 존재와 즉자적 존재로서 나누었는데, 이 대자적(對自的) 존재라는 것은 타인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즉자적(卽自的) 존재라는 것은 타인이 없더라도 스스로 자기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헤겔이 왜 이렇게 나누었는고 하니, 이 즉자적 존재를 삼위일체와 연관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삼위일체와 말이다.
◈ 헤겔은 삼위일체의 신학자 !!
보통 헤겔을 철학자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헤겔을 전공한 김균진 교수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혼난다는 것이다. 헤겔은 철학자라기보다는 사실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헤겔은 삼위일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연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신학자인데, 헤겔은 이렇게 처음부터 삼위일체로 시작해서 삼위일체로 마친다는 것이다.
헤겔의 신학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성부가 계시는데, 성자는 이 성부로부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는데, 그것이 성육신인데, 이 성육신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회기하기 위해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헤겔의 전체적인 신학인데, 다시 말해서, 성육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역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교수들은 여기에 대해서 무지한데, 기독교 교리를 모르기에 철학적으로 따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헤겔의 신학은 성육신 신학이지 십자가 신학이 아닌데, 이것도 차이가 나는데, 이 성육신 신학으로, 즉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신학을 가지고 인간의 모든 계몽주의, 즉 칸트의 계몽주의 철학을 공격하는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여기 '즉자적 존재' 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 인데, 이것이 나중에 키에르케고르에게까지 넘어가는데, 키에르케고르가 주장한 실존주의 단독자 개념이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신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와 객체, 객체와 주체가 성립이 될 때, 그런데 여기 이 '즉자적 존재'를 두고서 후대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헤겔 선생님, 이 즉자적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대자적 존재를 통해서 만들어낸 하나의 사물에 불과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교인이라면 당연히 목사로부터 영향을 !!
이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교회에 안 나오다가 교회에 나오고 난 뒤에, 그 교회 목사를 만나서 설교를 듣는다면, 그것은 바로, 그 이전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주체였다가, 그 다음부터는 교회에 다니는 주체가 되면서 누구에게 영향을 받는고 하니까, 당연히 그 교회 목사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고, 예수님 앞에서 어떻고" 라고 말은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인고 하니, 그 교회 목사에게 배웠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즉자적 존재에서 구성을 했다고 해도 대자적 존재로부터 즉 객체에게서 인수인계를 받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이해가 됩니까?
앞서 말한, 주체는 객체에게 영향을 줄 수 없고 객체는 주체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이야기한 것은 칸트의 계몽주의인데, 이 칸트의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성을 가지고서 사람을 계몽해야 한다는 것으로, 즉 어둠에 계속해서 있지 말고 빛으로 내보내야 하는데, 그것은 교육을 통해서 말이다.
◈ 유치원도 필요하고 !!
이러한 계몽주의가 발달하면서 처음으로 유아교육이 등장했는데, 그때 유치원이 처음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전문 교육자는 아니지만 페스탈로치가 독일에서 유명해지고, 그 이후에 아이들만 가지고 노는 교육용 장난감이 등장하는데, 제 아내에게 들었는데, 그것을 '???'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주체가 우선인데, 객체가 무슨 소리를 해도 거기서 다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의 주장인데, 아무리 경험이 오더라도 자기의 오성의 빛으로 재구성해서 자기만의 것으로 하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너 다르고, 나 다르다" 라는 것이다.
◈ 칸트님, 개체와 주체보다 더 위대한 것이 !!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맞지 않더라는 것인데, 그러면 왜 맞지 않는가? 객체가 주체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즉 객체가 아무리 영향을 주려고 해도 주체는 자기의 것만을 따로 챙겨서 다시 만든다는 하는 칸트의 주장이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객체보다도 주체보다도 더 위대한 것이 있을 줄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쩐쩐쩐 - 드디어 '돈'이 주인공으로 !!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화폐' 라는 것인데, 놀랍게도 18세기까지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객체이고 주체이고 간에 사람들이 돈에 모두 다 굴복한다는 사실을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이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까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이었고, 계몽된 이성이었고, 윤리와 도적이었고, 나라의 질서였고 체계였고,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인간이 자본주의에 그렇게 굴복할 줄은 상상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史的) 유물론으로 말이다. 물론 유물론은 유신론의 반대말로서, 이 유신론은 칸트에게서 나왔는데, 칸트는 아무리 인간이 경험을 해도 자기가 구성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 것은 자기가 챙긴다는 말이다.
◈ 마르크스 - 사람은 돈으로 산다 !!
여기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말하기를, "웃기고 있네. 유신론이 아니고 유물론이야"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양심이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떡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떡으로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즉 "사람은 돈으로 산다" 라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 경제적인 전문용어로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생산양식' 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인간은 새로운 생산양식에 의해서 돈을 얻고자 하고, 또 그 생산양식이 도와주었을 때는 거기에 적응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 마르크스 -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역사 !!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러한 생산양식에는 5단계가 있는데, 공동체 생산양식, 노예제 생산양식, 봉건제 생산양식, 근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있고, 그리고 마지막엔 자본주의가 물러나고 공산주의 생산양식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산양식에 대해서 인간은 세포라는 물질로 되어있기 때문에, 즉 인간은 떡 때문에 여기에 적응하고 순응할 수밖에는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서 '유물사관(唯物史觀)' 이라고 하는데,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론에 관한 것이고 말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인간론이 아니라 역사인데, 왜냐하면, 역사라는 객체가 인간이라는 주체를 재조정하고 지배하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역사의 분위기와 흐름에서 홀로 탈출할 인간은 아무도 없는데, 그것을 마르크스가 그냥 책상에 앉아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신화적이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을 다 모아서, 그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 제국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는 '제국'이라는 책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바로 이런 유물사관에 입각해서 전 세계의 다국적 기업의 활동에 대해서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현재 다국적 기업의 활동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또 외국 노동자들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제가 아주 쉽게 7페이지 정도의 글을 써놓았는데, 이것을 공부하기 이전에 그 기초로서, 이런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오기 이전에 인간의 사고가 그 시대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설명이 되지 않으면, 신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이들의 주장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현재 위대한 학자로 불리는 것은, 아직까지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 반박의 여지가 없다는 것인데, 즉 완벽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또 거기에 우리가 모르는 것까지도 다 알고 있으니, 그런 사람들을 두고 '위대하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들뢰즈도 위대한 철학자로 불린다는 것이다. 이들도 들뢰즈를 무지 많이 인용한다는 것이다.
◈ 존로크와 마르크스 !!
여기에서 먼저 존로크의 '소유론'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자면, 마르크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좀 복잡해도 존로크는 쉬운데, 존로크의 소유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의 모든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다" 라는 것인데, 이렇게 신이 인간에게 주었으면 만물은 누구 것인가? 창세기 1장 28절에 근거해서 그러한 주장을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을 맡아있다는 것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 존로크 -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것 !!
이것이 존로크 철학의 시작인데, 그의 주장은 일종의 하청개념(?)으로서, 그러니까 받은 것을 잘 보관했다가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연에 대해서 인간의 권리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을 바로 마르크스를 낳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조그만 차이가 말이다.
이것을 복음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인데, 그런데 이러한 주님의 소유가 우리 속에 들어왔다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그것은 내 것이다" 라고 하고자 하는 죄를 까밝히기 위해서 지금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담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계속해서 자기 것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러나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라고 했는데, 이러한 주님의 것과 독자적인 자기 권리를 갖고자 하는 갈등이 바로 하나님의 의와 죄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존로크는 이런 복음적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자연이라는 것은 이미 신이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제대로 권리행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다 생략하고 엄청 쉽게 이야기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감나무가 있으면 이것은 누가 따던지 간에 공동의 소유인데, 그런데 이런 공동체에 게으른 놈이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데, 물론 게으른 사람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러나 부지런한 사람은 감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딴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땄을 때 그 공동체는 부지런한 사람의 권리를 인정주자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소유권이 되는데, 이 소유권은 신이 인간에게 주었다는 말이다.
◈ 빈부의 격차도 자연스럽게 인정 !!
물론 이렇게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이 차이가 나는 것도 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데, 그 사람이 부지런해서 감을 따서 그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은, 그 사람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부자가 되라고 은사를 주셨으니 그 권리를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것이 존로크의 주장인데, 이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생기고 그것을 인정해주게 되는데, 이러한 빈부의 격차를 없애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지런함을 주신 하나님의 가치를 인간 쪽에서 부수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없애면 안 되고, 국가 개인들과 계약을 맺어서 위탁을 주는 특수업무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을 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말이다.
그 법적인 보장이 첫째로 상법(商法)을 만드는 것인데, 소유권에 대한 재산권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법을 만들고, 그리고 둘째로 부자는 돈 벌기에 바쁘니 국가가 치안을 담당해야 하는데, 즉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유재산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라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경계선을 터고 무역도 하고 해냐 하는데, 그러니 국가 국방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로크에게 있어서, 결국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부지런함을 떨어서 가지고 있는 소유권을, 이것이 존로크의 굉장히 유명한 '배타적 권리' 라고 하는데, 이 소유권을 절대로 그것을 남이 빼앗아 갈 수 없는 자기만의 권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 존로크의 주장에 마르크스가 흥분한 이유는?
여기서 마르크스는 '팽' 하고 돌아버렸는데, 왜 그렇게 흥분하고 화를 내었는고 하니, 만약에 여러분이 마르크스의 입장이라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한번 지적해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같으면 제대로 지적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국가와 관료사이에는 계약이 성립하게 되는데, 그것을 '사회 계약설'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 계약설이라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노력에는 총기나 아이큐, 건강도 다 포함되는데, 건강해야 공부를 하니 말이다. 아무튼 자기는 고 3때 펑펑 놀아놓고, 친구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가 되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그래서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한다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자기는 마구 놀아놓고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과학도 일종의 재능인데, 그런 재능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님께서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이 인정한 소유권이 있는데, 이 소유권을 위해서 계약제로 해서, 즉 법으로서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로크에 의하면 말이다.
이런 소유권을 인정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하여튼 17, 18세기는 하나님을 빼놓으면 이야기가 안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철학자들은 이것을 빼지만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김동호 목사는 무슨 '청빈한 부자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참 웃기는 소리지만 말이다.
◈ 존로크님, 왜 '시장'을 간과하셨나요?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빠트렸는고 하니, '시장' 이라는 요소를 그만 빼먹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렇게 노동을 해서 재산이 나오는 것은, 시장이 발달하지 않는, 토지생산이 주가 되는, 즉 농업시대에는 이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 놈은 배짱이처럼 기타를 치고 있고, 한 놈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때도 물론 시장은 있었는데, 물론 그 당시 시장은 이쪽 농토와 저쪽 농토 가운데서 서로 물물교환을 하는 시대이기에, 서로 농지에서 난 채소같은 것과 바다에서 난 물고기를 교환하면 되는데, 물론 화폐도 사용되는데 교환수단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시장인데, 다시 자기 본업으로 돌아가면 없어지니 말이다. (마치 시골의 5일장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대규모의 시장이 되어버리면, 그 이전에는 자급자족을 위한 일시적인 교환용 시장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장이 스스로 확대재생산을 하는, 즉 팔아먹기 위한 잉여상품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즉 팔아먹기 위한 시장이라는 것이다.
◈ 문제는 바로, 돈 놓고 돈 먹기 !!
마르크스가 존로크를 보고서 그렇게 빈정거리면서 공격을 한 것은, "존로크 당신은 왜 시장이 커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라는 것이다. 아니, 자기가 노동을 해서 재산을 늘리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라, 문제는 바로 '돈놓고 돈먹기' 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사실 왜 그런고 하니까, 이 존로크 시대에는 자본의 구조가, 즉 시장의 구조가 교환적인 역할을 주로 감당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 시장이 불로소득을 양산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로소득을 말이다.
그러니 항상 처음부터 감을 따서 돈을 모으고, 또 감을 따서 돈을 모으고,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그 돈을 가지고서 노동자를 고용해서, 감을 따서 버는 돈의 반값으로 감을 따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1000원어치의 감을 500원에 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500원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자본가가 남기는 '잉여가치'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자본론 - 잉여가치여, 그대는 어디 출신인가?
그렇다면 이 잉여가치는 어디서 생긴 것인가? 과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인가?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자본론 1,2'이 주장하는 것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바로 이 잉여가치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를 따지는 책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잉여가치가 어디에서 나왔느냐에 대해서, 그러한 시장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보았지만, 그러나 마르크스는 착취한 것으로, 즉 빼앗은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 착취하는 방법에는 산업자본, 금융자본, 상업자본으로부터 착취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어서 고리이자로 빼앗고 말이다.
◈ 유물사관 - 역사는 노무자와 자본가의 계급에 의해서 !!
모두들 이렇게 뜯어먹는데, 그래서 결국 남는 계급은 두 가지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계유지에 급급한 노동자, 사실은 노무자가 더 적합한데, 이런 노무자와 약간의 잉여가치를 가지고 굴리는, 자기 노동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은 그 사람이 논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자기의 노동의 가치 말고 다른 무엇을 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돈을 빌려주어서 적당한 이자를 받는 것은 괜찮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 외에 다른 것을 더 원하는, 그런 자본가에 의해서 역사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유물사관' 이란 것인데, 노무자와 자본가의 계급에 의해서 말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잉여가치가 나오는 곳마다 그것을 모두 들추어내어서 까발린 것이 '자본론'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실상을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라는 책보다 더 리얼하고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품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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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론 [資本論, Das Kapital] - K.마르크스(1818~1883)의 대표적 저서(1867년 발행) - 원저명은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economie》 이다. 시민사회·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의도한 것으로, ‘사회주의의 바이블’로 평가된다. 마르크스 자신의 손으로 간행된 것은 제1권(1867)뿐이며, 그의 사후 F.엥겔스에 의해 유고가 정리되어 1885년에 제2권, 1894년에 제3권이 출간되었다. 현재 《자본론》으로 불리는 것은 이상의 3권이다. 제4권에 해당하는 부분은 1905∼1910년 K.J.카우츠키가 편집하여 《잉여가치학설사 Theorien uber den Mehrwert》로 간행되었으며, 1956∼1962년 소련·동독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 의해서 《자본론》의 속편을 이루는 것이라 하여 새로이 편집·간행되었다.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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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르크스는 1939년에 왜 대공황이 생겼는지도 다 설명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상품이란 'C'가 화폐라는 'M'을 통해서 다시 상품을 사기 위해서, 즉 감을 판 돈으로 고기를 사고, 그렇게 되면 상품에서 시작해서 상품으로 끝이 나는데, 이럴 경우에 돈은 구 자체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는 것은 마지막으로 상품이 남으니 말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시장이 확대되면 그렇게 되지 않고, 돈이 상품을 사게 되는데, 그러니 이제는 상품이 목적이 아니라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즉 '+알파'를 더 획득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장사치들이 다들 그렇게 하고 말이다.
이렇게 감을 팔아서 고기를 사겠다고 하는 것은 돈을 축적하겠다는 것이 아닌데, 즉 상품이 상품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들여서 필요치 않는 상품을 사고, 다시 그것을 돈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즉 '화폐에서 상품'으로, 다시 '상품에서 화폐'로 가는 것은, 이렇게 되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돈이 되는데, 그러니 돈을 축적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이다.
◈ 돈이 사용가치를 넘어서 !!
하지만 마르크스의 생각은 무엇인고 하니, 원래 돈이란 것은 저쪽 상품과 이쪽 상품을 대등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자기 역할인데, 이것을 두고 '사용가치' 라고 하는데, 교환하기 위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돈은 돈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환을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오는데 어떻게 그 냄새나는 고등어를 헌금하고, 그 무거운 감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 헌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냥 오면 별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감을 사려고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옷을 살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이 화폐가 그 얼마나 편리하냐는 것이다. 새로운 교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상품을 사기 위해서 있는 돈이 아니라, 돈이 돈을 남기기 위한 시대가 올 줄이야 존로크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데 딸이 생각나서 사탕을 사주고 싶다면, 돈을 벌어서 그렇게 하면 누가 뭐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사탕은 비인격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탕을 먹고 이빨이 좀 썩고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 드디어 돈으로 영혼도 !!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돈이 주인공이 되면 요한 계시록에도 나오지만 인간의 영혼을 산다는 것이다. 인간의 품위를 사고, 인격을 사고, 양심을 산다는 말이다. 그동안은 인간의 인격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제 그것이 아니라 "당신의 인격을 돈으로 사서 얼마나 더 추가적인 돈을 남길 것인가?" 라는 것에 동원되는 인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목사를 구할 때 그 기준이, "그 목사를 통해서 교회에 얼마나 헌금이 더 늘어나서, 즉 돈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 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을 해서 목회자를 구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돈을 가지고 인격을 사서 더 돈을 남길 때, 그럴 때 비로소 인격의 가치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가치가 이런 사용가치에 있었는데, "당신, 한 시간에 땅을 얼마나 많이 파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돈의 가치로, 이렇게 돈 위주로 나가버리면 이 사용가치가 돈의 가치에 의해서 삭제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가 한 시간에 얼마나 파는가?" 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라고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그대는 빨다가 버린 사탕 ??
그렇다면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양심이나 믿음 같은 것은 어떻게 되는가? 그런 것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열열하게 사귀다가도 결국 마지막에는 돈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하듯이 말이다. 그 전에 사귀면서 가졌던 감정은 사랑이 아니고 즐기는 수준이었는가? 맛있다고 처음에는 빨다가 버리는 사탕에 불과하냐는 것이다.
◈ 마르크스의 천재성 - 돈 속에 놓여진 인간 !!
여기서 마르크스의 천재성이 발휘되는데,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돈을 나쁘다고 여기면 별 문제가 안 되는데, 나쁘다고 하면 고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되니 말이다. "그래, 돈을 좋아하면 안 되지. 역시 양심이 더 중요해" 라고 하면, 그것은 양심을 되찾으려는 마음이 있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것이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순진한 사고방식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유물론적 사관에서는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말고 할 것이 없이, 우리가 그것이 나쁘던 좋던 간에 그 안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고칠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놓여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에 있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라고 하는 것이 소용없는데, 인간이 그것을 안다고 해서 고쳐질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아니, 자기 양심을 팔아서 돈을 버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것이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것이 좋던 싫던 간에 거기서 단 한발자국도 못 빠져 나오는 것이 이미 시대상황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누가 데모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말이다. 구조자체가 그렇게 굳어졌으니 말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인간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흘러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 과연 다른 대안이 있는가?
이것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인데, 사람이 마치 자기만 양심적으로 알아서 살면 문제가 해결될 줄로 알지만, 그러나 대세가 그렇게 흘러가면 그렇게 결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연쇄적으로 추돌사고가 나듯이 말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어렵게 이야기를 해보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보면, 자본에는 이렇게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이 있는데, 이 고정자본은 감가상각이 되기 때문에 자꾸만 유동자본으로 바뀌고, 그것이 곧 잉여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 자본가가 이윤을 남기는 것이 과연 나쁜가?
예를 들면, 여기에 천 원을 투자해서, 그것은 오 백원은 기계를 사고, 이 백원은 임금을 주어서 기계를 굴리고, 그 나머지 삼 백원은 자기의 이윤으로 되어야, 그렇게 나는 것이 투자를 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무슨 사업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나쁜가?
토지가 있어서 농사만 지을 경우에는, 옛날에는 장사하는 것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았는데, 하지만 지금은 토지자체가 리카도에 의하면, '차등 지대제' 이라고 해서 토지가 비옥한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 100이 생산되고 저기서 50이 생산되면 100이 50을 흡수해버리는데, 즉 헐값에 팔아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다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사람은 떡으로 산다는 원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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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도 [David Ricardo, 1772.4.18~1823.9.11] - 영국의 경제학자. 고전학파의 창시자인 스미스 이론을 계승·발전시킨 고전학파의 완성자. 노동가치설에서 출발, 분배론에 이르는 이론을 《경제학 및 과세의 원리》에 저술하였다. 차액지대론(差額地代論), 임금생존비설을 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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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도시로 가서 장사를 해야만 하는가?
원래 토지는 다 같은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토지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차이가 나게 되니, 50이 되는 사람이 100이 되는 사람에게 팔아먹어서 그것이 150이 되니, 또 그 옆에 80이 되는 사람도 팔게 되면 230이 되고 말이다. 그러면 그렇게 땅을 팔고 난 사람은 어디로 가는고 하니, 도시로 가서 장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사를 하면 당연히 이윤을 남겨야 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땅도 없는데 무엇으로 먹고사느냐는 것이다.
◈ 자본가는 '확대재생산'을 통해서 !!
조금 전에 1000원을 투자한 이야기를 했는데, 거기서 300원이 남았는데, 그러면 다시 이 남은 300원을 합쳐서 다시 1300원을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임금을 조금 더 주어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게 되면, 앞에 남았던 것보다 이윤을 더 많이 남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확대재생산' 이라고 하고 말이다.
자본가는 이렇게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재투자를 하는데, 그러면 노동자는 재투자를 할 것이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전에 200원을 받다가 220원을 받으니 조금이라도 더 남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똑같은 물건이라도 가격이 올라버리면 노동자는 돈을 더 주고서 물건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물건을 말이다.
자본가는 상품의 값이 소비자가 능히 구입할 수가 있는 그런 가격 이하로는 내리지 않는데, 이윤이 줄어들기 때문에 말이다. 지금 이 시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지, 틈만 있으면 이윤을 더 남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생산지 밀 값이 올랐다면서 밀가루 소비자 값을 그 이상 올려버리고 말이다.)
◈ 기업의 이윤추구는 기업의 유일한 도덕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기업이 사회에 최고로 기여할 수 있는 도덕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이윤' 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기업의 이윤이 있어야 주식에 투자한 사람에게 배당금이 돌아가고, 그 회사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생필품도 사고 문화활동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업은 이윤추구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가는 어떠한가? 그 이전의 이윤만큼 나오면 때려치우는데, 이윤이 그 이상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토지임대를 예로 들어보면, 마르크스는 이것을 '절대지대' 라고 하는데, 리카도는 '차등지대' 라고 하고 말이다. 여기서 이 절대지대(絶代地代)가 무엇인고 하니, 그 토지에 있는 임대 값을 받을 때 얼마를 정해놓고서 받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주의에 의해서, 즉 은행의 이자율을 따져서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은행 이자율보다 낮으면 미쳤다고 그런 임대를 하느냐는 것이다. 팔아서 은행에 넣어놓으면 되지 말이다.
그러니 은행은 무엇을 보는고 하니, 산업 자본가들이, 즉 투자가들이 이윤조정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왜냐하면, 은행 자체가 경쟁이 되기 때문에 말이다. 은행은 조금이라도 더 이윤이 많은 쪽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가들은 은행이자를 빼고 또 무엇을 빼고 해서 남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남는 최종적인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일단 기계는 아닌데, 그것은 감가상각에 의해서 없어지니 말이다. 그것은 바로 기계를 만든 노동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00만원 짜리 기계를 만들 때 재료값은 50만원 정도 들어가고, 노동자를 하루에 10시간 투입해서 그렇게 100만원 짜리 기계를 만들었다면, 그런데 그 기계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노동자가 12시간을 일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감가가 되어서 50만원이 아닌 40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 신이 하늘에서 떨어뜨려서 준 축복은 없다 !!
그래서 마르크스가 하는 말이, "이 세상에 신이 하늘에서 떨어뜨려서 준 축복은 없다" 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구조자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모든 객체는 그 객체 속에 우리가 다 포함이 되어있기에 말이다.
◈ 마르크스은 왜 계급을 차등 적용했는가?
마르크스가 그의 이론에서 실패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계급이론' 때문인데, 그런 계급이 있다는 것이 애매모호하기 때문인데, 만약에 마르크스가 "모든 인간은 다 그렇다" 라고 하면 몰라도, 그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은 아니고 자본가들만 그렇다" 라고 하니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즉 플로레타리아가 나라를 움직이니 나라꼴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자본가가 다 되어버리니 말이다. 노조를 만들어도 그 노조 안에 계급이 다 생기고 말이다.
인간이 떡으로 산다고 하는 것을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면 문제가 안 되는데, 그런데 그것을 마치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는 것처럼, 물론 착취를 당하는 쪽은 있지만 말이다. 이것이 좀 어려운데, 착취를 당했다고 여기는 그 분류 안에서 또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마르크스가 몰랐는데, 왜 그런고 하니까, 정보사회를 그가 접한 적이 없었기에, 그 당시는 산업사회이었다는 것이다.
'제국'의 저자 마이클 하트가 바로 이러한 점에 대해서 공격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 '제국' 이라는 교재를 하겠는데, 물론 붕붕 뛰면서 말이다. 교재 1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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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내내, 혁명의 과실들이 하려하게 나타날 때마다 평화 요구가 최고의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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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혁명을 하는 이유가 봉건시대가 근대국가로 바뀌면서, 즉 봉건제도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십일조를 거부하면서 교회에 반항하고, 드디어 계급제도가 뭉개지면서 가진 자들이 새로운 신분으로 등장하는 시기를 말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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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주권 이론은 사회를 권력 속에 흡수함으로써 새로운 '개인'을 실현했다. 점차 행정부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와 권력 사이의, 대중과 주권국가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어 이제 권력과 국가가 사회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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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특징은 처음에는 단순하다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법은 계속해서 똑같이 자가 재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법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거미줄처럼 퍼지는데, 즉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법이 퍼져나가면 그 퍼진 법망을 피해서 사기를 치는 놈들도 같이 퍼져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법은 따라가고 사기꾼들은 또 피해가고 말이다.
◈ 법은 스파이더맨 !!
권력은 이 법을 통해서 오는데, 법이 없는 권력은 없다는 것이다. 권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법은 있으나 마나 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러서,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가 5만원이라면, 그것을 실행하는 권력이 없다면 계속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이렇게 법망이 있는데, 이 사이에 들어가면 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바다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면 다시 법이 그것을 잡으려고 거미줄을 치고 말이다. 그래서 시골 할머니가 육교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 밑으로 걷다가 벌금 5만원을 가져다바치는 것이다. 자기는 걸은 것밖에 없는데, 실제로 교통경찰이 스티커를 발부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드디어 법치국가의 등장 !!
그러니 이제는 과거와는 역전이 되어서 국가가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인데, 다시 말해서, 어떤 사회이든 간에 사회는 국가의 틀을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치국가' 인데, 이러한 법치국가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독일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교재 2페이지에 나오는데, 전에는 신분계급이었지만 이제는 신분이 무너지고 귀족이든 누구든 법 밑에서 다 평등하다는 것이다. 귀족이라고 해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귀족도 심지어 왕이라고 해도 모두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계약인데, 즉 법이 최고이고 그 밑에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신분제도가 조금 남아있지만, 법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교재 2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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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말과 19세기 세기 사이에, 국민 주권 개념은 마침내 완전한 형태로 유럽 사상에 출현을 했다. 국민 개념은 제 3의 신분, 즉 부르주아지 개념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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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다가 드디어 18, 19세기에 신분이 깨어지고 '국민' 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개념은 귀족을 인정하지 않고 왕족도 인정을 하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국민은 백정이나 천민도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계급제도가 남아있다는 것은 완전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개념은 나라가 정한 동등하다는 개념이지, 어떤 사람은 많이 지켜야 하고 어떤 사람은 덜 지켜도 된다면, 그렇게 되면 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개념이 등장하면서 그 개념이 추상적인데, 그것은 곧 법이 추상적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이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데, 이렇게 국민이 추상적 개념이고 법이 추상적 개념이라면, 그렇다면 실제적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돈' 이고, '권력' 이라는 것이다.
◈ '돈'이 있어야 국민대접도, 나라꼴도 !!
다시 말해서, 돈이 있는 사람이 국민으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실종되었다면 아마 육해공군을 다 동원해서 찾으려고 하겠지만, 그러나 어느 선교사가 실족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국민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놈은 국민 대접도 받지 못한다는 말인데, 그러니 법도 돈 있는 자를 보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돈이 없는 자를 보호하게 되면, 돈이 있는 자의 공격을 받기 때문에 나라에 힘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정리하면, 국가가 추상적 개념이라면 이것을 실제적 개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 권력은 시장중심의 자본주의 구조에서는 경제가 발달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나라꼴이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 역시 똑똑한 토고 선수들 !!
이번에 월드컵 때 토고선수들이 왜 수당을 미리 자기들에게 주지 않는다고 데모를 했는가? 피파 조직위원회에서 토고라는 국가에 주게 되면, 그 국가는 반군을 소탕하고 어쩌고 하면서 선수들의 수당을 다 주지 않고 따로 챙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외국에 나가있는 선수들은 안다는 말이다. 그러니 국가가 이렇게 돈이 없으면 자기 나라 국민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는 추상적인데 그것을 실제적으로 만드는 것은 곧 돈이고, 그것은 시장의 힘인데, 더 쉽게 말하면 '가치' 라는 것이다. 농사를 지어도 그 자체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을 때 얼마를 받느냐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5만원을 받았으면 5만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그 농부는 '5만원 짜리' 라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엄연한 현실 !!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인데, 국가도 그 나라의 상품을 내놓았을 때 그것이 국제시장에서 그 나라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추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런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한발자국도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 목사님, 그냥 복음 좀 전해주세요 !!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돈은 못 드리지만 그래도 복음을 전해줄 수 있느냐고 하면, 우리는 처음에는 당연히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꾸만 반복이 되다 보면, 자기 돈이 자꾸만 들어가니까, 나중에는 결국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방종' 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차비도 안 주고 말이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 '방종' 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인위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 2페이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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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민이 근대적 주권 개념과 그 주권의 종속 및 지배장치에서 떨어져 나와 자율적인 민주주의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한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인민'이다. 국민(nation) 개념과 인민(people) 개념 사이의 연결은 말 그대로 강력한 혁신이었다. 주권이 불안정해지자 근대성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서 처음에는 국민을 언급했고, 그후에 국민 역시 불안정한 해결책으로 드러났을 때는 인민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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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개념, 인민개념, 대중개념 !!
여기 인민개념과 국민개념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인민이 국민보다 더 실제적이라는 것이다. 인민개념은 결국 민족개념과 가까울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람은 다 우리 국민이다" 라고 하다가 민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면, "니는 조선족이고, 우리는 한민족이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또 경주 이씨가 어떻고 하면서 따로 나라를 세우면 그것은 인민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차이점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자꾸 불안정하니까, 지금 국민개념으로 해서 주권을 비록 추상적이지만 한 곳으로 모으려고 하는데, 그런데 국민개념으로는 불안정하니 인민개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만큼 더 민주주의적으로 되었다는 말이다.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설립 기념식에서 행한 유명한 링컨의 연설인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 (The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라는 말은, 사실 국민보다는 '인민'으로 바뀌어야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왕이 말하기를, "내가 국가를 세울 테니, 즉 사회 계약설에 의해서 나도 법을 지킬 테니 너희도 법을 지켜라. 그리고 나는 왕이고 너희는 국민을 해라" 라고 했는데, 이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개념이라면, 그러나 여기에 비해서 인민개념은,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라고 해서, 우리가 직접 뽑는 개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 으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원래 이 인민개념은 없었는데, 그런데 국민개념이 위에서 내려오는 개념이니, 그것이 무슨 민주주의이냐는 것이다. 왕이 자기 혼자서 다 해놓고, 법도 자기가 다 만들고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거부하고 밑에 있는 권력이 점점 더 세어지면서, 그러면서 계급자체가 점점 더 와해되는 추세로 나타나는 것이 곧 인민개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국민개념과 인민개념이 둘 다 무엇으로 시작하는고 하니까, 국가라는 것이 있어야 하겠다는 국가개념이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 깨어지는데 '민중개념'에 의해서 말이다. 도대체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즉 노무현 정부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는 것이다. 이 민중개념에서 대중개념이 나오고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국민개념은 어떻게든 국가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이고, 그런데 나라를 만들어놓고 보니, 법은 위의 놈들은 지키지 않고 우리에게만 지키라고 강요하니, 조세와 납세의 의무를 다 집어넣어서 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를 위한 나라를 만들고자 한 것이 '인민개념' 이라는 말이다. "그래도 나라는 있어야지 없으면 안 돼" 라고 말이다.
◈ 도대체 국가가 우리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이것이 곧 '대중개념'으로 흘러가 버리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요즘 이라크에 가면 돈 받고 미군들을 대신해서 폭탄을 맞아주는 별난 가슴아픈 직업도 다 있는데, 주로 가난한 동남아 국가 출신들이 간다고 하는데, 그들에게는 나라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기 나라보다는 자기에게 그런 직업이라도 주는 그 나라가 더 낫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라를 버리고 팔려 가는 그런 배신자의 느낌을 주는데, 그러나 그런 국경을 몰래 넘어가는 개념이 아니고, 자기 나라도 지키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나라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요?
◈ 이제는 국가가 아닌 '제국'으로 !!
국가의 경계선이 분명히 되어있으면, 외국으로 돈을 벌려고 간다면, "에라이, 가거라 이 못된 놈들아. 나라도 모르고 말이야" 라고 할텐데,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즘 다국적 기업들이 많은데, 그런 '시티은행'과 같은 회사에 취직해서 어디서 근무하든지 간에, 미국이든 홍콩이든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더라도, 즉 '론스타'와 같은 회사에 취직해서 다니는데, 그만 우리나라와 소송이 걸려서 그 회사 편을 들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오늘날 대규모적으로 확대된 것이 곧 '제국(帝國)'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국가라는 것이 없고, 노동에 대해서 더 많은 품삯을 주는 쪽으로 국가라는 경계선은 다 허물어지고, 물론 종교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조선족이 마구 몰려들어오고, 우리는 또 미국이든 캐나다든 마구 몰려나간다는 것이다. 자식교육 문제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국가가 우리 인민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 국민개념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도 모두 국가를 위해서 갔다는 것이다. 물론 도망간 놈들도 부지기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들을 외국으로 이민을 가더라도 자기 민족의 위상을 높이고 어쩌고 하면서 나름대로 애국심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제국' 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은, 지금 일반적인 추세가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추세가 어떠한지, 즉 어떤 쪽으로 허물어지고 있는지를, 그것을 예언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그래서 중요한 책인데, 즉 지나간 것을 읖조리는 수준이 아니라 예언적인 요소까지 있다는 말이다. - 혹 선지서?
◈ 마르크스, 당신이 인터넷을 알어 !!
그런 예언된 요소 중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인터넷' 인데, 이것이 마이틀 하트가 말하는 '정보사회'에 있어서 마르크시즘이란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이것을 모르고 인간은 그냥 기계만 붙들고 돌리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 정보사회 - 노동자가 곧 자본가 !!
이렇게 기계를 돌릴 때, 그것을 가지고 간섭하는 사람은 자본가이고, 죽으라고 기게만 돌리는 사람은 노동자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계급은 구분되는 것이 맞기는 맞는데, 그런데 지금의 정보사회에서는 지금의 노동자가 곧 자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당시에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이 있다면 오직 '돈'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한결 같다는 것이다.
지금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인간이 유물론적으로 산다는 것은 동의하는데, 그리고 인간은 현재 있는 벌어놓은 것 가지고 그냥 재확대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고, 즉 그냥 있는 것만 달랑 먹고살고, 또 그렇게 먹고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무엇을 하나 사더라도 그 다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를 살 때도 이 다음에 팔아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우차보다는 현대차를 더 선호했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중고시세가 더 좋으니 말이다.)
아무튼 상품이란 'C'가 화폐라는 'M'으로 나가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물론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에는 자본가가 이것을 했는데, 요즘은 좋은 말로 '사용자' 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지금은 정보사회라서 자본가나 노동자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다 이런 방식으로 할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마르크스의 주장이 맞다는 것인데, 그의 유물사관의 역사가 말이다. 물론 그의 공산주의사회는 틀렸지만 말이다. (이 책에 의하면 말이다.)
◈ 종교, 도덕 - 잉여가치에서 빼먹은 가치 !!
여기서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면, 이 '가치' 라고 하는 것은, 즉 종교적 가치, 도덕적 가치 등 모든 가치는 경제의 잉여가치에서 빼먹은 가치라는 것이다. 지금 마르크스는 종교나 도덕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심급'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아튀세르가 이것을 '심급(審級, Instanzengliederung der Gerichte)' 이라고 했는데, 차원, 계층, 매개(?) 등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러한 심급들 속에서 종교는 종교대로, 도덕은 도덕대로 따로 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서로 중층으로, 즉 겹겹이 싸여서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들뢰즈가 말한 것인데, 마르크스나 아튀세르도 다같이 주장을 하기를, 이것들이 독자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 아튀세르의 '심급'에 대해서 !!
여기서 심급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일단 계급은 아니라는 것이다. 계급은 누구와 마주보는 것이지만, 그러나 심급은 독자적인 것으로 계급은 아닌데, 하지만 둘 다 폐쇄적인데, 즉 자기 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다 닫혀있고 말이다. 하지만 최종적인 것은, 모두 다 잉여가치를 다 노린다는 것이다. 교회든, 학교이든, 병원이든, 가정이든 간에, 심지어 고아원도 말이다. 그러니 각자가 모두 독자적으로 해도 그 안에는 각각이 마르크스가 다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라는 경계도 날아가고 말이다.
◈ 이제 독점자본주의 시대로 !!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초기의 자본주의에서는 금융자본이 발달하니까, 국가가 그 자본을, 즉 삼성이나 현대 등과 같이, 국가가 이러한 자본가를 위해서 나선다는 것이다. 이것을 '독점자본주의' 라고 하는데, 이것을 두고 마르크스은 '제국주의' 이라고 했고 말이다. 제대로 지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기업을 후원하기 위해서 국가가 하나의 주식회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잉여가치를 남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고 하니, 싼 노동력과 싼 원료를 구입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프리카나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