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계 5: 1- 5 ( 책 펴기 )
Re..계 5: 1- 5 ( 책 펴기 )
이름 : 이근호(IP:)
책 펴기
2006년 8월 20일 설교 본문: 요한계시록 5:1-5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성도는 본인조차도 참으로 이해 안 되는 현상을 속으로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기쁨으로 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승인이나 허락도 받지 않고 제 3의 능력에 의해서 벌어진 일의 결과물입니다.
성도에게 일어난 별난 현상으로 인해 성도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길에 접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노선’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이런 경우를 ‘복받은 경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복이 연발되어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저희 것임이요“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결된 복의 최종 모습은 바로 예수님을 위하여 수난받는 것 자체를 복받은 자의 멋진 모습이라는 겁니다. 옛날 구원받은 선지자들과 같은 노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복이란, 죄악된 인간들이 미처 예측 못했던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양상으로 주어집니다.
즉 죄악된 인간이 예상한 복은 복이 아닙니다. 그런 복은 세상사람들이나 탐을 내는 복입니다. 이로서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도저히 대화나 설득이 불가능한 분절된 딴 영역 안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알고 있는 바를 아무리 설명해도 불신자는 그 설명에 걸려들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알고 있는 것은 인간의 언어파악 능력에 해당되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알아듣지도 못한 딴 현실 안에 들어와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현실은 자본, 즉 돈의 힘에 이끌리어 다니는 세상입니다. 마르크스가 말하기를, “돈이란, 그 사람이 그 돈을 벌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를 다 묻히게 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즉 곡식을 생산하면 농부라는 직업이 뚜렷하고, 고기를 잡아 놓으면 그 사람은 어부인지가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돈으로만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고 보면,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를 가지고 인간 가치를 논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현실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책이 오늘날 ‘장부’, 혹은 ‘가계부’입니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책을 보고 웃고 울고 합니다. 장부에는 돈의 들어옴과 나감이 빼곡히 적히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보이는 곳으로 거침없이 옮겨다니면 살게 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현실이란 돈이 인격을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다른 책을 보게 됩니다. 그 책은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란 눈들이 촘촘히 천사들이 보좌하는 곳입니다. 즉 세상 만사가 이 눈들을 피해서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드신 책의 내용에서 비롯된 사태들입니다. 이 사태들을 유발하는 능력들도 그 오른편에 들인 책 속에서 나옵니다.
그 책은 사람의 책이 아닙니다. ‘주의 책’입니다. 시편 56:8에 보면,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40:6-8에 보면,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그 책의 내용의 실천은 인간이 실시할 사항이 아니라 책 주인이신 주님께서 친히 완성하고 완료시킬 책입니다. 출애굽기 32:32-33에 보면,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계신 곳에 책이 있고 그 책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내실 인간의 명단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워도 주님께서만 지울 수 있고, 인간들이 그 어떤 노력과 행위를 한다할지도 그 명단 있음과 지움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명단의 특징은, 그 명단에 적힌 사람의 구원은 오로지 명단자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책임지고 구원해 내신다는데 있습니다.
누가복음 10:17-20에 보면,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서 4:3에 보면,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속성들이 모든 펼침(설명)이 그 곳에 재생산되는, 혹은 모든 펼침 자체가 그 속에 표상적으로 펼쳐지는 지성에 상대적인 것은 속성들이 실체를 펼치기 때문이다. 그 때 문제가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울고 있습니다. 어서 그 책의 내용대로 실현된 세사이 되기르,F 원해서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 책을 열 사람이 등장해야 합니다. 책은 7인으로 봉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책의 실천과 실현은 오로지 천지를 7일만에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해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이 그저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받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피조물이 그 책의 내용대로 살 수도 없고 그 책의 봉인을 뜯고 현실화시킬 위치에 있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주님에 의해서 그 책이 다 펴지면 어떠합니까? 요한계시록 20:12과 15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란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책의 내용대로 진행되고 책에 명단이 적힌 그 사람에게만 영생이 돌아가게 됩니다. 가짜 신자는 국물 다리듯이 다 다려서 나중에 쪼아든 진액이 남듯이 자신의 불신성을 결국은 드러내게 하십니다. 이로서 구원된 자는 오로지 주님이 주신 믿음의 선물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행함으로 믿음 생활을 모방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