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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강의 7번 녹취록강의스가랴

Re..강의 7번 녹취록

이름 : 오용익(IP:)

강의 7

어제 요엘선지서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요엘선지서의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종말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손해나는 장사가 일체 없습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면 되었지 여기에서 더 무슨 욕심을 냅니까? 무슨 욕심을 내요? 자유? 기쁨? 희락? 그런 것은 하늘나라 하나님만이 누리고 즐겨도 그걸로 된거예요. 하늘나라의 기쁨과 희락과 감사를 우리가 누릴수 있다면, 마치 천사와도 같이 그런 것을 누릴수 있다면 그것은 그자체가 보너스죠. 보너스! 그것은 보너스고 그 사항을 성경은 창세기 3장부터 죽 이야기 해 온것이라는 말이죠.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하늘의 천사가 누리는 그 영광, 해같이 빛나고 해와같이 빛나는 하늘의 형상을 입는 모든 것은 다 하나같이 보너스라 보너스. 그저 감격하고 고마워 할뿐이지 더 내놓으라는 것은 이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한 사상은 바로 이 종말이라는 것이 우리한테 물어보지 않고 이미 종말이 여기 와버렸다는 사실이 분명히 하는 겁니다. 종말이 와버렸는데 그 종말은 우리가 개입할 종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과 악마의 전쟁의 여파로 인하여 생긴 종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요엘을 공부하면서 이런 표현을 했지요. 조명기구도 꺼지고 이제는 파장 분위기다. 파장분위기. 철수해서 가버리는 그 분위기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렇게 종말이 와야 하며 이 세상의 해와 빛이 다 읽어져야 하는 이유는 전부 다 여호와 이름으로 벌이는 거룩한 전쟁의 여파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되고 그 사람만이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구원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요엘서의 내용입니다.

그 작업을 위해서 아모스, 호세아 그 수많은 선지자들이 깨는 작업을 한겁니다. 깨는 작업을. 나의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철수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장사 그만하고 다른데 가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아이고 지금 종말로 오시면 안됩니다. 여기서 장사 더 해야 합니다”라는 것은 자기가 흙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자기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그만 그 주제를 잊어 버리는데서 오는 겁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았다는 그런 야고보서의 말씀이 있는데, 도데체 그 아담이 욕심에 이끌려서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아담에게 생겼던 그 욕심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결국은 자기의 주제파악이 안된것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은총으로 누리고 있기에 더 이상 무엇인가를 욕심낼 입장이 못되는데 지금 따먹지 말라는 그 한가지 경계선을 넘어서 점령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그것이 문제가 된것인데, 그 욕심을 우리가 그대로 전수받아서 우리는 자기주제파악을 못하고 지속적으로 뭔가 새롭다고 하면 더 가지려고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대가 종말이 온다고 하니까 상당히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는거예요. 한참 재미 나는데 종말 같으면 “이게 뭐꼬? 그럼 영화가 우예 되는가?” 이런식입니다. 과년한 딸이 서른 넘어서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 주례할 때 “종말이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결혼에 걸면서 기대했던 소박한 희망과 즐거움은 순간적으로 날라가버리면서 핍박을 받게 되잖아요. 당연히 섭섭하지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뭔가 섭섭함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 분수를 몰라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느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종말이다.

야! 신난다

이렇게 되어야죠.

사도바울의 소망은 자기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아 드디어 나의 죽는때가 오는구나. 얼마나 고대했던고. 죽어서 주와 함께 거하는 이 순간을. 나는 고대하고 고대했다”.

참! 이정도 레벨이 되려면 아마 몇사람을 죽여야 그정도 될까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자기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는 그 정도가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몇 명을 더 죽여야 이런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수 있겠습니까? 몇 명을 더 죽여야. 사도바울이 사람을 얼마나 많이 죽였습니까? 사도바울처럼 자기가 죄인중의 괴수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일을 저질러야 될지.

<스가랴서>

오늘 이시간에는 스가랴에 대해서 하겠습니다.
<스가랴>하고 <학개>가 있는데 <학개>는 - 배울“학(學)”자가 아닙니다. 배우는 것 하고 학개선지서 하고 아무 관계없습니다. <학개>의 주제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예배에 참석하는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 신분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학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배에 참석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 학개입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지은 것은 하나님이 그 성전의 주인공으로 계시면서 많은이들로 자기것으로 하여금 영광을 받는 그러한 입장이 되기 위해서 성전을 짓고 거기서 영원한 예배를 시작한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때부터 이미 그것을 생각하시고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고 한 날을 따로 떼어서 거룩한 날로 지정하셔서 예배하는 날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피조물의 해야될 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사야서 6장에 보면 천사가 여섯 개의 긴날개로서 날개짓 하면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영원토록 거룩하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거룩한 보좌를 향해서 날개짓 하면서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만일 그 앞을 지나가고 있는 공사장의 건설회사 사장님이라면 물을 겁니다. “너 공사장의 깃발 흔드는 그 일 하면 일당 얼마 받는데?” 공사장에서 깃대 흔들어서 공사중임을 알리는 그 일이 일당이 더 붙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흔들면서 “공사중입니다. 공사중입니다”하는 사인을 보내는거죠. 얼마나 심심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위이겠어요? 그래서 어떤 동네의 깃발 흔드는 그곳에 가보니까 이일이 너무나 지루하고 심심한 일이 되다 보니까 그 아르바이트 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 친구가 아예 춤을 춰요. 차도 없는데 지가 춤을 춘다고. 너무 심심해가지고. 일당 좀 더 주는 모양이예요.

하늘나라의 피조물인 천사가 하늘나라에서 여섯 개의 깃대로 뭘 하고 있는냐 말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5분지났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10분 지났다. “거룩--” 20분이다. 도데체 이걸 몇 년동안 ‘거룩하다’고 해야 됩니까? 그 영광, 하늘나라 예배에 참석해서 하늘나라에 영광 돌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영광이 아닙니다. 거룩한 성산에 오를자 누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지루하다 재미었다 내 개성은 어디서 찾노?” 이런식으로 따지는 사람은 그 천사처럼 못합니다. 완전히 자기를 비우는거죠. 완전히. 원래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만들때는 완전히 모든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자기에게만 회수시키기 위해서 피조물을 그렇게 배치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 보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한 것은 모든 영광과 찬송을 홀로 주님만 받으시기에 합당하는 말입니다. 다만 천사보다 우리 인간이 더 위대한 것은 천사는 죄도 모른채 “거룩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구원받을수 없는 상태까지 이른 상태에서 그것이 극복이 되어가지고 천사와 함께 거룩한 예배에 참석했으니까 죽음을 알고 죄를 안다는 점에서 우리는 천사보다 월등하고 천사조차 재판할수 있는 더 고귀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천사에게는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묻어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거기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인되었다가 의인되어서 하늘나라에 간사람은 거기에는 흙같은 더러운 인간이지만, 더러운 흙같은 인간을 마다 않으시고 거기에 퍼넣는 식으로 투자하신 주님의 독생자의 생명이 그 안에 담겨 있기에 우리는 천사보다 더 귀하게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는 겁니다. 자기의 생명인 면류관까지 반납하면서(계 4:10,11).

그러한 창세기 1장부터 꾸준히 내려오면서 변동사항 없이 일관된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돌릴수 있는 자기 백성을 모집하여 그들속에 거하시면서 영원히 찬양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학개>에서는 나중성전이 옛날 있던 모형적 성전보다 그 영광이 더 크게 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학개>서 예언의 초점입니다. <학개>끝!

그다음에 <스가랴>를 보겠습니다.

이 <스가랴>는 하룻밤의 꿈이예요. <스가랴>의 핵심은 "하룻밤의 꿈”이라니까.
“하룻밤의 꿈”인데 그 하루를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하룻밤의 꿈이 인류의 역사가 천년 만년을 흘러도 이미 하룻밤의 꿈에서 인류의 역사는 다 종결되었고 확정되었다는 겁니다. 스가랴서 1장 7절에서 15절에 보면 꿈을 꾸는 중에 천사가 보이는 데 구원은 이미 모든 세밀한 부분까지 준비되었고 다만 땅에서만 모른다는 겁니다.

1장 7-15, 하룻밤인데 하루밤에 여덟 개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는 다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고 새아침이 밝습니다. 단 하루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 인류의 역사를 끝까지 장악합니다. 인류역사를 끝까지 지배하는 법칙이 되고 맙니다. 첫 번째는 뭐냐 하면 이미 모든 구원은 완료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힘있게 힘차게 종말을 마무리 짓겠다는 겁니다. “너희들이 아직 아들 장가도 안보내고 딸들 시집도 안보내겠다고 섭섭해 하지 마. 그런 것은 나 모른다. 모르고 다만 하나님께서는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끝낼 것은 끝내겠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지금 욕심이 내는 것은 외부에 있는 종말이예요. 그런데 인간의 내부에서는 자꾸 종말의 효과를 저지 합니다. 저지!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내가 종말을 믿을테니까 내 속의 종말은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이렇게 나오니까 이게 뭡니까 이게! 예? 이게 말이 안되거든요. 지금 외부에서 피난가고 난리가 났는데 혼자 남아서 남이 버리고 간 집 자기 이름으로 등기한다고 바쁘다는 식이라니까요. 자기구축한다고요. 자기구축이 되요. 여러분들이 풍선에 물을 담아 놓게 되면 풍선이 뺑뺑하지요? 똥배 나온것처럼 뺑뺑하다 이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종말을 바늘가지고 콕 찔러 버리면 똥배처럼 풍선에 물이 차 있던 것이 확 쏟아지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걸 원해요. ‘내가 신앙생활 잘하고, 나는 남같지 않으며 훌륭하게 바르게 살아갑니다’ 이런 완전히 물배, 똥배같은 이런 것 하지 말고 콕 찔러 가지고 바깥에만 종말이 아니고, 자기 살려고 ‘하나님은 저는 저의 바깥에 있는 종말을 추구하기 위해서 완벽한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는 식의 바깥에 있는 종말이 아니고 ‘네 속에서 종말이 일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속에서. 그래서 “나는 이래서 종말이 일어나야 마땅합니다” 하고 자기를 개방해야 합니다.

이것이 목사님들에게 필요한거예요. 목사님들이.

요한일서 2장에 보면 분명히 누구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성령께서 친히 너희들을 가르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일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여기서 목사님들이 헷갈리는 것이 뭐냐 하면, 분명히 성경에 보면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하라 했고, 또 목사가 아니더라도 서로 교인끼리 권고 하고 훈계하라는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라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하라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자의 가르칠 권을 인정했다는 말이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목사한테 가르침을 받는것도 은사의 관계로서 마땅히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 놓고, 왜 요한 일서에 와서 “누구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성령께서 너희를 친히 가르친다”고 되어 있느냐. 그것은 성령의 가르침을 인간의 가르침이 어떤식으로 방해놓는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목사에게 가르치는 권을 준것입니다. 가르침이 성령의 가르침이 있고 그 한단계 목사의 가르침이 있는데, 목사의 가르침은 성령께서 여러분을 가르칩니다 하는 점을 가르치기 위해서 목사의 가르침이 있다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증거라 합니다. 증거. 이것은 가르치는 차원이 아니고 증거하는 차원이거든요.

그런데 일반교인들이 흔히들 하는 말로 장사하는데 손님올때, 그저 달래가지고 물건 하나 더 팔라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런 것은 가게 주인이 지금 이순간부터 오는 손님을 내 손님으로 장악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거기다가 온갖 아부와 입발린 소리와 칭찬을 - 하이고 이렇게 이쁠수가요. S라인입니다. 잘 빠졌습니다. 옷 딱 맞습니다. 오빠 오빠! - 해줘가면서 애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목사의 할일이 옷가게에서 옷파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목사가 뭐하는 사람입니까?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이란 말이죠. 증거한다는 이것이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힘들면 신앙 개코도 안좋은 사람에게 “신앙 좋습니다. 멋집니다” 하면서 달래같고 심방다니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강렬해요.

공을 들였죠. 공을. 공을 들여놨는데 일년 뒤에 다른 교회로 가버리면 거기서 무서운 배신감을 느끼는 거죠. 그러니까 그걸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 “다른데서 배우지 말고 나한테 배워. 내가 더 잘 가르치잖아” 라고 할때 그 교인이 하는 말이 “아니 성령이 가르친다면서요?” 가게 주인이 손님 장악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그것이 결국 자기 똥배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사가 주님께서 그 사람을 구원시키겠다는 의도에서 가르치는 그것이 결국 내 사람으로 장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고 노동투자가 될 때에, 그것이 진정한 성령의 가르침을 방해하는 그러한 죄인으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여기에 모든 은사, 가르치은 것이든 뭐든지 다 좋은데 반드시 그것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해야 된다고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권면을 하든지 뭘 하든지 간에 사랑으로 해야 된다고. 내가 이렇게 너에게 권면을 해서 내 사람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야 된다는 겁니다. 사랑이란 어떤 대가가 없는 겁니다. 가르쳤더니만 다른 교회로 가더라 할때 복음적인 교회 간다면 그것은 상관없는 거예요. 사랑으로 하는 거예요. 사랑이라 하는 것은 자기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사랑이란 배신감을 느끼지 말아야 되요. 그냥 주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런 목사의 예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은 목사가 자기 교인을 맡아가지고 자기 똥배를 채우는 거예요. 그리 되면 만약에 그 목사가 구원받으려면 바깥의 종말이 그 목사의 속에까지 들어와서, 주께서 침으로 콕 찔러 줘야 해요.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뭐냐? “주여 나는 목사를 하면서 이런 죄를 짓는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나의 소원이 있다면 죽어서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될 때 비로서 그 사람은 말로만 종말이 아니라, 삶으로서 목사의 삶으로서 교인들에게 비로서 종말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제가 어제 토론시간에 서경수 목사님이 한 이야기를 듣고 밤잠을 못잤어요. 11시 반까지 밤잠을 못이루었어요. 11시 반 이후로는 잘 잤어요. 어떤점에서 제가 가슴이 아렸냐 하면 헌금을 가르쳐야 할텐데 헌금을 가르치는 내가 헌금을 가르치는 그 목적이 음흉하다는 것을 내가 알기에, 양심껏 헌금해서 교회의 어려움을 보충한다는 그런 생각으로 내가 가르칠까봐서 그것이 두려워서, 주의 종이 교인들에게 내가(목사가) 봉사하는 입장인데 나의 이러한 욕심이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봐서, 잠시 유보하면서 언젠가는 바르게 가르칠때를 기다리겠다는 그런 취지로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전에 강의시간에 뭐라고 했냐하면 목사님은 드라마를 보여주지 말고 자기 엔지 장면까지 다 보여주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서경수 목사님은 3분의 1을 헌금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참 내 세상에 어느 목사가 자기 수입의 3분의 1을 헌금하는 목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놀래 자빠질 이야기예요. 그대로 하라고 하면 아무도 천당 못갈거예요. 서경수 목사님 혼자 천당갈거예요. 그거 아무나 못합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거예요.

그렇다면 본인이 3분의 1일을 헌금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헌금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 헌금하면서 성경 그대로 ‘내가 주님의 용서받은 것이 너무 커서 3분의 1일이 이것도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하지만 우리 이능우집사님의 말씀대로 가족도 교회니까 가족에서 3분의 2는 사용하고 저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서 3분의 1을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3분의 1을 해요. 그렇다면 그 생각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헌금설교 댓길로 잘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그게. 지금 제말 틀렸습니까? 서목사님! 제말 틀렸습니까? 본인이 헌금할 때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헌금한다 하는 그걸 그대로 증거하는 그것이 고린도 후서 8장 9장에 나오는 멋들어진 최고의 헌금설교라는 말입니다. 헌금이 무엇이라고 가르칠 생각 말고, 나는 주님앞에 이 본문으로 이런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하면서 “여러분은 어때요”라고 하는 것이 그게 증거로서의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서목사님 제말 이해되지요? 그러니까 그런 고민이 나올 이유가 없다니까요. 그런 고민이.

교인들이 자기 소유같으면요. 책임을 느껴요. 내가 잘못가르치면 상처를 입을텐데. 그런데 우리의 목적은 예배에 있지, 주님을 경배하는데 있지,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그 교인을 잘 키우는 것은 주님 소관이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주로부터 와서 주를 경배하는데 목적이 있죠. 그러면 나는 이런식으로 경배한다 이말이죠. 이런식으로. 왜? 나는 그 본문 보면서 하이고 ‘주의 사랑이 이렇게 큰데, 내가 3분의 1을 해도 참 미안스럽지만 형편이 이것 밖에 안되니까 주여 이것을 드릴수 있는 이것도 감사하다’고 하는 식으로 그대로 자기의 있었던 일을 그대로 내놓으면 교인들은 목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고, ‘아하 목사님하고 나하고 생각이 같네’ 나도 한주일에 한 500원을 헌금하는데 참 주의 은혜에 감사해서 500원을 헌금했다는 거죠. 그러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한달 수입이 600만원인데 500원 헌금하거든요. 그런데 500원이 주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해서 한다고요. 액수에 관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남 눈치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의 목적은 경배하는데 있지, 주께서 죄를 알고 감사하는데 있지, 누구 눈치 보면서 얼마 했냐는 식으로 눈치보는 것은 이것은 나 잘났다는 똥배만들기입니다. 그걸 밟아서 확 찢어 버려야 해요. ‘나는 이렇게 삽니다’가 텨져 나와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제 우리 조장로님께서 - “장로님 어디 가셨노. 오늘 중요한 시간인데 빠지셨네” - 이야기 하신 긴 이야기는 한가지밖에 없어요. 어떤분은 조장로님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한가지는 뭐냐. 이것은 적으세요. 이것은 너무 중요해서 적으셔야 합니다. 적으라고 강요는 못하지만 저같으면 적고 싶습니다. 강요 비슷한데. “오줌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나오는 것이다” 오줌은 물 마시면 나오도록 되어 있어요. 우리 장로님의 긴긴 이야기는 그겁니다. 복음 알면 헌금으로 싸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뭐가 문제거리냐 이말입니다. 그런데 죄용서 받은 복음을 알아 놓고 오줌을 안눈다는 것은 복음을 지식으로 알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장로님의 생각입니다. 이것이. 장로님이 그렇게 표현은 못했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그런 이야기입니다. 들어간 것이 있으면 싸게 되어 있단 말이지요. 복음 들어가면 헌금 나오게 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그것이 뭐가 욕얻어 먹을 이야기고 그게 뭐가 난해한 이야기고 그것이 뭐 자유문제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말이죠. 들어가면 싸게 되어 있는데.

과부의 두렙돈이란 과부가 500원을 하든 20만원을 하든 관계가 없어요. 액수를 따지면 안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관여할 일입니다. 목사가 교인을 장악하면 안되요. 내가 이렇게 헌금 설교하는데 헌금안나온다는 식으로 하면 안되요. 목사는 핀조물로서 주께 자기가 경배하면 됩니다. 흙으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이지만 하나님께 경배할수 있는 자격이 된것만도 대단한 거예요. 자기는 경배하는 일에만 분주하면 되요. 얼마인가 그런 것 관계하지 말고. 그런데 반드시 성령께서는 들어가면 싸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것이 10원을 싸든지 20원을 싸든지, 두달에 한번씩 500원을 하든지 싸게 되어 있어요.

우리 교회 두달에 한번씩 나오는 분도 있어요. 그분이 두달이 한번씩 나올때 헌금도 두달 것을 다 모아서 한꺼번에 하는줄 압니까? 웃기지 마세요. 한달에 한번 나와도 천원이고 두달에 한번 나와도 천원입니다. 그분이 그 바쁜 시간에 그 먼 교회까지 온다는 것이 이것은 기적이라고 봐요. 저는 기적이라고 봅니다. 어디 거기다가 헌금타령을 할 수가 없어요. “복음 들어주는 것 만해도 감사합니다”. 같이 천당가고 같이 경배하는것만 해도 감사하지 ‘왜 헌금 안하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오줌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나오도록 되어 있다” 그냥 파이프처럼 위에서 쏟으면 그냥 밑으로 죽 빠지게 되어 있어요. 모든 것 하나 하나를 감사로, 돈으로 보지 말고 감사로 봐야 합니다. 만원짜리 회중들로 보지 말고 주의 형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어제 이야기를 들으니까 수련회 회비낸 것이 계산착오가 있었던 모양이라. 모자란다고 하는데, 저기 저 뒤에 헌금통이 놓여져 있습니다. 계산을 해 보니 한 가정이 아니고 한 사람당 1만원씩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저 헌금통에 오줌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싸대시기 바랍니다(웃음).

종말은, 종말이라는 바늘은 이것은 터뜨려내게 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은 <스가랴>에서 1장 7절에서 15절까지는 이미 구원은 완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땅만 아직 모르죠. 2장 1절에서 4절까지는 이제 천사가 나서는 겁니다.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에.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되요. 우리 집사님이 하신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난 인간은 두 번다시 안믿는다는 겁니다. “야! 따봉이다. 최고다”. 난 인간은 목사고 뭐고 두 번다시 안믿는다 것. 주의 증인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해보겠다는 것은 하늘나라 계획도 모르는 주제에 자기가 무엇을 합니까? 천사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어요. <스가랴>에서는 천사가 모든 일을 해요. 천사가. 너는 입을 다물라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신이라고 합니다. 신약에 오면 성령인데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한 것이 스가랴 몇장입니까? 한번 찾아 봅시다. 4장 6절이죠.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내가 두 번다시 인간을 믿지 않는다. 내가 사람을 믿으면 개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지 않으면서도 일은 일대로 되는 것은 천사가 도와주는 거예요.

사도행전에서 사도가 붙잡혔을때 옥문을 열어 준 것이 누구입니까? 간수에게 뇌물줘서 열어줬습니까? 천사가 옥문을 흔들어서 열어줬습니다(행 16:26). 그리고 로마로 가는길에서 풍랑이는 바울이 탄 배를 건져낸 것은 누구입니까?(행 27:44) 천사입니다. 천사가 매우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그 천사를 실체화 해서 내것으로 만들때 그 인간은 이단이 되어 버려요. 사람들이 안믿는다는데 안믿는다는데 또 자기가 남보다 더 뛰어난 능력자가 된것처럼 착각을 해가지고, 난 천사와 함께 있기에 날 건드리는 것은 곧 천사를 건드리는 것이며 날 해하면 저주받는다고 이런 사기를 쳐서 목사들이 돈뜯어 내고 말이죠. “목사님! 이제 그런 소리 식상하니까 그만 하라”고 하지만 지금도 저 논산에서 아직도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보건주일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보건주일” 이것은 참고로 들어주세요. 감리교회는 목사의 보너스가 19개월입니다. 보통 공무원들 보너스가 몇퍼센트입니까? 보통 보너스가 없으면 월급이 12개월 아닙니까? 19개월이면 12개월 더하기 몇 개월입니까? 7개월을 더 보태야 합니다. 이것은 12개월에 더하기 6개월의 보너스를 주고. 6개월 보너스라는 것은 매달 한번은 없고 한번은 보너스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12월달에는 입가심 하라고 한번 더 주고 그래서 19개월이예요. 봉급이 19개월. 그것도 모자라서 목사들끼리 회의를 해서 7월 한달중에서 한주일에 나온 헌금은 보건주일이라고 하는데 주일이라고 할때의 그 주가 주님이잖아요. 그런데 주님앞에 보건이 붙어가지고 보건주님이예요. 대체 무슨 보건주님이라는 주님이 있어요. 주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아니고 “보건”에게 영광돌리는 것인지, 보건소 소장에게 영광돌리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날인가 했더니 이날에 나오는 헌금은 목사들에게 보약달여주는 일에 바친다는 겁니다. 거기에 목사 애들 교육비에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노회에 계시는 목사님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예요. 지금 우리 노회 목사님들은 12개월이 아니고, 6개월내지는 4개월이예요. 12개월도 다 못받고 있어요. 6개월내지 4개월이라니까요.

이런 짓들을 가능케 하는 것은 ‘나는 천사를 봤다. 은혜를 받았다. 6.25 전쟁때 폭탄 터졌는데 안죽고 살았다’고 하는 이런 사기, 이런 것들을 긁어 모아서 ‘나는 너희들의 병을 고쳐준다’고 사기를 쳐서 돈을 갈취하는 짓들을 저는 “양아치” 또는 “바퀴벌레”라고 합니다. 바퀴벌레는 기분나쁠거예요. 더러운 목사들을 바퀴벌레하고 비교한다고. 목사의 목회요? 목사의 목적은 자기 생명을 걸고 주께만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께만 영광돌리면 되요. 그렇게 살면 되요. 그것이 하나의 증인으로서 박혀 있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그 가르침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 가르침, 성령의 가르침의 가르침에 합당한 것입니다.

두 번째가 세계제국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교재에 우리 이성희집사님께서 지적해 놓았는데 제가 만든 교재대로 다 하지 않습니다. 않하는 이유가 교재는 기본으로 다 알고, 뭐든 추가해서 더 아시라고 교재 바깥으로 튀어 나오는 겁니다. 이번에는 교재도 사실은 다 한 것은 아닌데 뒤에 나오는 <천년왕국운동사>를 요약해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책입니다. 제가 책을 소개하면 목사님들이 상당히 싫어해요. 왜 싫어하냐 하면 책을 소개할때는 보통 한 50페이지, 혹 60페이지정도 되는 단행본을 소개하면 좋겠는데 소개하는 책의 분량이 보통 600페이지이고 <노마디즘>같은 것은 합쳐서 1200페이지, 800페이지 이런식입니다. 이책도 만만치 않아요. 몇페이지냐 하면 455페이지예요. 책소개하고 나면 다음에 만날 때 인사 “그 책 읽어 보셨습니까?” 라고 물을 것이 분명하니까 이것을 어느 세월에 다 읽느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들 책소개 해줘도 책 제목만 알아두고 빨리 요약만 해달라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국>이란 책은 600페이지가 넘어요. 조금 가볍다는 책이 400페이지 인데 “질송”이 지은 <존재란 무엇인가>입니다. 모든 철학자들이 마지막에 최종 정리판으로 압축된 책이 질송의 존재론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중세철학이라든지, 모든 철학사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해답을 질송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인 <존재란 무엇인가> 거기서 찾아요. 무지무지 하게 어려운 책이예요. 그게. 굉장히 어려운 책이예요. 그리고 <제국>이란 책은 최근 다국적 기업, IMF체제하에서의 모든 세계경제의 흐름을 다 정리한 책입니다. 그것이 500페이지가 넘어요. 500페이지가 넘는데 그것이 술술 내려가는 500페이지가 아니고, 한문장 한문장이 너무나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500페이지라는 분량에 미리 질려요. 한문장 한문장 이해하는데 이틀씩 걸리기 때문에 500페이지가 넘는데 이것은 몇 년 걸려야 하느냐 말이죠.

이 책 <천년왕국운동사>를 제가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그리 어려운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나열인데 역사의 나열이란 그다지 어려운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단지 빠른 속도를 내서 읽겠다는 욕심만 버리신다면 됩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니 심심해서 이거나 보자라는 마음만 먹는다면, 이 책을 바짝 보시면 한 2주만에 보실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무려 이단의 종류가 서른몇가지가 넘습니다. 제가 <메시야왕국>이란 책에서 좀 보탰습니다만 하여튼 서른 몇가지가 넘는 이단들이 나옵니다. 이 이단들이 다 뭐냐 하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손으로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확인하겠다고 등장한 이단들이예요. 하나님의 일하신 기적을 그냥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는 속이 양이 안차니까 어떤 확실한 증거들을 꽉 잡아서 그러니까 이것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잡아서 소유하고 싶은 발상에서 나온것들이 이단의 출몰입니다.

그런데 이단이든 삼단이든 종말은 우리 말대로 뜻대로 하지 않고 여호와의 이름의 전쟁에 의해서 이미 저벅저벅 밀려 왔어요. 그래서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신 증거라고 여긴다’ 혹은 ‘훌륭한 교회다’ 이렇게 하지 말고, 그냥 똥배 터뜨리듯이, 하나님의 핀침을 가지고 터뜨려 버리세요. 바깥에만 종말이 아니고 ‘이미 내안에도 종말입니다’ 라고 자기를 그냥 터뜨려 버리세요. 이런 쓸데없는 공동체 운동같은 것 하지 말고요. 여기 나온 공동체 운동 여기 나온 것 오늘 시간이 없어서 다 못하지만, 그래서 책소개에 그치는 것으로 말겠지만 주제는 이거예요. 사도의 청빈한 생활을 자기들도 하고 싶다는 거예요. 성직자들이 감리교처럼 이게 뭡니까? 19개월이. 그래서 부끄럽다는 겁니다. 보건주일이 뭐예요? 주님앞에 뭐가 붙을게 있습니까? 예? 주님앞에 뭐가 붙어요? 무슨 여호와신이 따로 있고 보건신이 따로 있습니까?

그런 갈취행위들이 옛날에 있었다는 겁니다. 교회가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땅장사를 했습니다. 요새말로 하면 교회가 상가를 지어서 임대료를 받아가지고 그 돈으로 성직자들이 대궐같은 집을 짓고 거기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는 겁니다. 땅은 땅대로 챙기고, 돈은 십일조로 해서 또 챙기고요. 그당시 십일조란 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헌물의 십일조입니다. 예를 들면 계란중에서 제일 맛있는 계란을 바쳐야 하고, 양이면 양도 제일 실한 양을 바쳐야 하고, 사과같으며 제일 맛있는 사과를 바쳐야 합니다. 만약에 썩은 것을 가져다 바치면 말라기 성경말씀이 튀어 나옵니다. "내가 이 썩은 것을 먹겠느냐“는 식으로 나와요(말 1:7, 13,14). 하여튼 성경말씀을 희한하게 가져다 붙여요. 그러니까 헌물도 극상품만 챙기는 겁니다. 에스겔에 보면 목자들의 정신상태가 양이 갖고 있는 명품과 귀한 것을 빼앗는 일에 온통 경쟁적으로 시합벌이듯이 하고 있어요(겔 34:3, 8).

그러니까 그 성직의 자리에 그만한 권력이 있으니 성경도 모르는 인간들이 갈취하는 그 자리가 탐이나서 계속 가짜 성직자가 그 무리에 유입됩니다. 여기에 대해 민중들이 반발하게 되면서 이 책에 예로 든것같은 무리들이 등장합니다. 즉 성직자들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뜻이라고 하면서 나선 새로운 집단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 가난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운동들이 마구 일어나는데 그것이 천년왕국들입니다. 그것이 얼른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어제도 이야기를 했는데요 육적인 해석을 하게 되면, 여호와의 이름 곧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예수 잘믿는 나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종말이란 뭐냐, 세상이 아무리 돌아가도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 이것이 바로 종말입니다. “아! 역시 주님은 주님 자신이 영광받는 것 뿐이구나. 나는 그냥 흙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수지맞는 장사였구나” 하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천년왕국운동벌이는 인간들은 전부가 다 교주가 등장하고 그 교주가 기존의 교주를 비판하면서 등장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목사들이 참 얄밉다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얄미운 놈들이 한국교회 썪었다고 비판하면서 그짓하는 놈들이예요. 대표적인 것이 다락방운동이예요. 그리고 옥한흠, 하용조, 이동원 이런 놈들. 김동호 이런 놈들, 그리고 그 뭐고,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면서 두레마을 하는 김진홍 이런 놈들. 더 나빠요. 더 나빠! 그사람들은 이런 책 보지도 않았습니다. 종말을 몰라요. 종말을.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라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데. 한국교회를 개혁해요? 갑자기 목이 다 쉽니다 지금. 우리 장로님 기분 나쁘겠다. 남의 목사 데려다가 목 쉬게 만들어가지고(???).

요한복음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고 묻고 있는데 “저 사도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에라 인간아. 쟤가 내가 다시 올때까지 살아 있든 말든 왜 네가 신경쓰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가지기 위해서, ‘내가 이만큼 청빈과 희생을 하니까 이것이 내 믿는 증거가 아닌가’하는 겁니다. 믿음이란 것은 주님과 자기만이 아는 관계인데 뭔가 자기가 믿는 증거를 확보해야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불안정 한겁니다. 일종의 똥배입니다.

두 번째는 2:1-4 인데 세계제국은 천사에 의해서 파괴됩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2:5-9 인데 거룩한 성의 신축입니다. 자로 재면서.
네 번째 환상은 3:1-7 인데 여호수아가 주님으로부터 마귀로부터 이기고 깨끗한 옷을 입는 자유성입니다. 모든 죄로부터 씻음받는 자유성입니다.
다섯 번째 환상은 4:1-6 인데 두 감람나무가 나와서 마지막때를 증거하는 것.
여섯 번째 환상은 4:13-14 두 헌신자가 나타나고
일곱 번째 환상은 5:5-11 이 세상은 왜 심판받아 마땅한가? 악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악이기에 이것은 개혁이나 수정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종말이란 것은 이미 모든 것이 수정이 안된다는 것이 확정될때 나온 것입니다. 지금 종말이기에 개혁할 필요가 없어요. 결과론적으로만 교회되는 것이지 “바른교회”라는 것이 있을수 없어요. ‘이렇게 되니까 교회구나’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여덟 번째 환상은 6:1-8입니다. 처음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다시 아침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니 몇 번째 날이라”(창 1:31) “하루가 천년같고” 이 하루가 천년 같아요. 이하루에 일어난 환상이 천년이든 만년이든 미래의 세월을 다 통치하고 지배하는 원칙이 되는 겁니다. 그 원칙의 핵심은 “손떼라”입니다. “손떼라” 마지막때는 네가 설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설치는 겁니다. 성령께서 설치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것인데 그 가만히 있는 모습이 뭐냐 하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입니다.

뭘 하든 먹든지 마시든지 남눈치 보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식으로 항상 내 안에 종말이 이루어지는 것.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것. 그 종말의 개시점인 십자가가 나를 치는 것.

<스가랴>의 나머지 내용은 그 계획대로 천사가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나와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하루의 환상이 긴긴 미래의 세계를 장악한다고 한겁니다. 이것을 묵시세계라고 합니다. 이미 우리는 묵시세계에 들어섰습니다. 어떤분이 이것을 질문한 분이 있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 “세례요한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천국은 묵시가 아니고 역사적 개념의 천국이었습니다. 이 천국이 난데없이 주님이 오심으로 종말이 들이닥침으로 말미암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면서 모든 지나간 역사적 개념을 전부다 취소시켰습니다. 취소시킨 이유는 바로 그 유대인들이 최초의 천년왕국운동을 벌인 사람들이거든요. 하나님의 성전이 있겠다. 율법이 있겠다. 제사장이 있겠다. 이것을 주워 모아서 하나님의 뜻을 이땅에 펼치자는 천년왕국운동을 벌였는데 그 천년왕국운동이 한 아기예수에 의해서 전부다 심판을 받는 겁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회개치 않는자는 다 멸망하리라”고 "천국이 가까이 왔다” 세례요한이 다 이야기 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새로운 보이지 않는 천국이 보이는 천국을 쳐버리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종말은 이미 확정되었기에 아예 이의를 단다든지 토를 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느부갓네살이 꿈을 꾼 것을 보면 이미 금신상은 완제품이예요. 미지의 부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머리는 금, 가슴은 은, 배는 동, 철 이런식으로 내려와서 발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죠(다니엘 2:31-35). 어쨌든지 이미 그 신상은 다니엘시대부터 완결되었어요. 그 시나리오가 수정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해리 포터 주인공을 죽인다고 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독자들이 주인공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시나리오를 수정하라고. 그런데 세계역사는 하나님의 시나리오입니다. 세계역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벌이는 전쟁 때문에 생겨난 일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우리 이름이 수정해 달라고 요구할 입장이 못됩니다. 히스기야가 살려달라고 기도할 때 히스기야는 15년동안 수명이 연장되면서 알았던 것은 주님의 계획이란 수정됨이 없다는 그것만을 다시 한번 재확인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내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할때는 자기가 살게 해 주면 유다나라를 안망하게 하고 더 연장시키겠다는 목적이 있었지만 자기 사는 것과 유다나라 지키는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15년 더 살아서 비로서 확인했습니다. 그 사람이 괜히 15년 더 살아서 성전 창고에 있던 보물만 홀라당 다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살아서 뭔가 해보려고 하다가, 살았다는 이유때문에 도리어 종말을 더욱더 강하게 깊숙하게 느끼면서 살았어요. 80되신 분이 기도하면서 90되게 해달라고 하면 아마 연장할겁니다.

하지만 90되기전에 뇌졸중에 걸리면 그 연장된 10년이 똥싸고 오줌싸서 벽에다 바르면서 살겁니다. 내가 진작에 죽었어야 될 인간임을 확인할 뿐입니다. 결국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주의 계획은 변동사항이 없는 겁니다. 내 수명이 연장되는 것이 주의 계획의 변동사항에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계획이란, 피조물은 천사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돌린다는 이 확정된 일인데, 이 일에 대해서 주에게는 어떤 변동도 있을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이미 확정된 종말 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피하라”는 뜻이 아니고 마땅히 들이 닥치게 될터인데, 다만 ‘누가 이 비밀을 지혜를 가지고 풀수 있는가’ 하는 이 지혜의 문제입니다. 지혜, 다니엘의 지혜.

다니엘을 가지고 뭐라고 합니까? 처음부터 다니엘과 세친구는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그런 별칭이 붙었죠(다니엘 1:20). 그래서 그 지혜는 누가 알아주느냐 하면, 비록 적이기는 하나 바벨론 왕도 알아줍니다(다니엘 2:46,47). 다니엘의 지혜는 요셉이 당했던 그 지혜의 거듭되는 되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셉의 지혜는 절대로 요셉이 과외 받아서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지혜는 요셉이 홀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이야기 합니다. 요셉은 자기인생을 자기가 개척하고 자기가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지혜있는 분이 보디가드처럼, 그림자처럼 따라 붙어서 요셉을 자기 맘대로 되지 않도록 하는 그 관계가 지혜입니다.

그걸 흔히 스토커라 하지요. 스토커. 딱 달라 붙는 것. 요셉에게는 하나님이라는 스토커가 붙었어요. 요셉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나중에는 야곱도 알고 요셉도 알았습니다. 요셉 한 사람을 통해서 모든 식구가 세상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대로 되지 내뜻대로 안된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뜻대로 축복을 받아 보려고 하다가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죽을뻔 하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 지혜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브니엘”. 저 부산에 있다는 브니엘. 그것은 야곱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나서 죽을뻔 하다가 생명을 얻었다고 해서 브니엘입니다.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내가 주님앞에 살아 난것만 해도 이것이 복이다는 말입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곧 야곱은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주장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신명기에 보면 모세가 종말을 알리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이 모세가 지은 것이 아니고 뒤에 편집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나쁜 사람들이예요. “세상에 모세가 무슨 수로 미래를 다 알수 있나?” 하는 이 말은 “베드로가 무슨 수로 물위를 걷나”하는 말과 똑같은 소리입니다. 모세가 장래일을 알수 없다면 무엇을 삭제해야 하느냐면,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것을 삭제해야 하고, 오병이어 기적도 삭제해야 됩니다. 빵을 주는 데 줘도 또 생기고 줘도 또 생기고요. 수박을 샀는데 쪼개면 쪼갠 그 자리에 수박에 또 한덩이 생기고 쪼개면 그 자리에서 또 생기는 식이죠. 이러한 모습은 천국의 모습이예요. 경배했는데 또 경배하고, 거룩하다 했는데 또 거룩하다 하고--- 지루한게 어디 있어요?

사마리아여인은 만나죠. 솟아나는 샘물 또 솟아나고요. 마셨는데도 또 솟아나고 마셨는데도 또 솟아나고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입니다. 이것이 흙에서, 역사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지루함이 없이 끝없이 계속해서 채워지는 충만과 기쁨과 환희와 감격과 즐거움이죠. 아픈것도 없고 괴로운것도 없고요.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자기의 똥배를 바늘로 터뜨려서 내안의 종말을 자기답게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입니다.

요셉의 지혜는 뭐냐? 자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요셉의 지혜가 그대로 그대로 다니엘의 지혜로 왔어요. 다니엘은 하나님의 종말을 받고 회복될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내가 뭔가 한다는 것이 있을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심지어 느부갓네살이 참으로 무리한 질문을 했는데 제가 한번 그것을 그대로 재생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목사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잃어버렸습니다.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아는 사람!” 그걸로 끝나면 괜찮아요. “여봐라 모르는 사람 다 죽여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때 다니엘과 많은 사람이 말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으로만 되지 사람은 안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모든 지혜는 성령이 임해야 종말이 종말답게 우리 속에 내장되어 있는 겁니다. 이것은 왕의 남자라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왕하고 붙어 다닌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예요. 나의 종말, 내가 종말이 되어야 해요. 내가.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기를 부인하라고 안합니까?

십자가가 내 안에 꽂혀서 이미 내안에 종말이 싹트네. “싹트네-- 싹터요--” 복희간사님 어디 가셨어요. 그노래 참 잘하는데. 내 안에서 종말이 싹터야 되요. 종말의 관점에서 성경보세요. 성경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 어디 있나. 다 되지. 종말의 관점으로 “나 죽겠습니다” 하는 관점으로 성경 보세요. 이해가 다 되지. 성경 해석 안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되지. 살려고 하니까 육적인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에 의해서 이미 세상은 그 성격상 끝장났다는 것이 저희들에게 환희와 즐거움과 안심으로 다가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것이 종말앞에서 다 해체 되어서 남은 것은 주께 경배하고 감사할 일만 남아 있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남아 있는 행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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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4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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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9 강의 Re..강의 6번 녹취록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08-22
2,658 강의 Re..강의 5번 녹취록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08-22
2,657 강의 Re..강의 4번 녹취록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06-08-22
2,656 강의 Re..강의 2번 녹취록 아모스 최고관리자 06-08-21
2,655 우리교회 Re..전 4: 7- 8 ( 수 고 ) 전도서 최고관리자 06-08-20
2,654 우리교회 Re..전 4: 7- 8 ( 수 고 ) 전도서 최고관리자 06-08-20
2,653 우리교회 Re..계 4: 6- 8 (거룩한 천사)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8-20
2,652 설교 요한계시록 4:6-8 (계 4: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8-20
2,651 우리교회 [일반] 어떤 평신도의 글(이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08-19
2,650 우리교회 [일반] 어떤 분의 글 [일반] 최고관리자 06-08-19
2,649 우리교회 Re..사 18: 1- 3 (구스의 멸망) 이사야 최고관리자 06-08-16
2,648 우리교회 [일반] 평. [일반] 최고관리자 06-08-15
2,647 우리교회 [일반] 남의 일 같이 않은 수필 [일반] 최고관리자 06-08-15
2,646 우리교회 Re..갈 3:22-24(하나님의 의(義))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6-08-13
2,645 설교 갈라디아서 3:22-24 (갈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 갈라디아서 최고관리자 06-08-13
2,644 우리교회 [일반] 8월 13일 낮 예배 설교 요약 로마서 최고관리자 06-08-13
2,643 우리교회 [일반] 문경수련회장 가장 빨리 가는 방법(다시) [수련회] 최고관리자 06-08-10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