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어떤 분의 글
[일반] 어떤 분의 글
이름 : 이근호(IP:)
사도들의 말씀을 접할 때마다 깔려버린 오징어는 불도저의 위력을 실감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불도저에 처절하게 밀려버린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기도 할 것이다. 사도 바울도 그렇지 않았던가?
(고전 4:13)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그러나, 만약 오징어가 여전히 자신의 그러한 처지에 집착한다면, 그는 아직 제대로 밀려버리지 않은 오징어일 것이다. 마치 좋은 물고기는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듯이 세상 끝에도 천사가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고 했는데, 어쩌면 좋은 오징어 중에서 그런 못된 오징어를 내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내 글의 취지는, '오징어가 불도저의 위력 앞에서 납작해져 버린의 모습을 바라보며 늘 자신의 그러한 처지를 의식하는 것은 언제인가? 사도들의 말씀을 대할 때 그러하다'는 데 있다. 왜 그런 것을 느끼는가? 사도들의 말씀 어느 부분을 대해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오징어로서의 태생적 한계 - '인간 = 십자가 앞에서의 죄인' -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뭉개진 오징어는 더이상 뭉개지기 전의 모습이 아니라, 불도저의 위력이 결정해준 새로운 모습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언제? 사도들의 말씀을 대할 때 말이다.
'"-하라"체는 '회개용'이다'라는 글을 쓰면서 사도들의 말씀이 "권면과 위로 등을 배제한 채 무조건 회개용이라고 몰아붙이는 것 - 어떤 분의 지적을 그대로 옮겨 표현한다면 - "은 아니었다.
그 글을 쓸 때의 취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부분 인용---------------------------------------------------------------
"-하라"체는 '회개용'이다.
이준 2006-08-01 19:31:48, 조회 : 171, 추천 : 2
성경의 수많은 말씀들 - 바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신약성경, 특히 서신서에서 신약 성도들을 향해 요청된 수많은 말씀들 - 의 용도가, 과연 성도라는 인간이 마치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이미 받은 구원을 발판으로 삼아 온갖 거룩한 행실을 실천해감으로써 비록 상대적이지만 상당한 수준의 윤리, 도덕적 경지에의 도달이라는 의미로서의 '성화'의 과정을 목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성도라는 인간이 여전히 근본적인 죄성의 영향 하에 놓여 있기에 그러한 성도의 실존을 향해 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머물러 있으라, 또는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머물러 있음을 늘 인식시키기 위한 - 나는 이 글에서 이것을 ‘회개’라 부른다 - 방편으로 주어진 것인 지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그동안 질문답변란에 올라온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이 양자 구도로 대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내가 위의 글을 쓴 취지는, '네온싸인'으로서 덕을 비추는 것이든, 오물을 자연스레 배설하는 것이든, 그외 어떤 다양한 모습이든 간에 인간 스스로가 신앙의 주체가 되어 성화라는 거룩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열심히 달음질함으로써 성취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러기에 '회개'의 개념부터가 다르다(회개가 자기 반성적 성격이 아니라는 나의 언급도 이러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도저에 깔린 오징어의 회개는 결과적으로 불도저의 위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만약 불도저의 위력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이것봐, 나는 말이야, 불도저에 깔렸던 오징어인데, 정말 불도저 지나간 뒤에 줄무늬 한번 기차게 끄여졌지. 어때, 전보다 나는 더 멋진 오징어처럼 보이지, 그치?"라고 생각하는 오징어가 있다면, 그 오징어는 참으로 불도저와는 상관없는 오징어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의 글을 통하여 내가 겨냥한 바는 '사도들의 말씀 = 권면과 위로 등을 배제한 채 무조건 회개용'이 아니라, '사도의 말씀 = 회개용(윤리, 도덕적 경지 도달로 이어지는 자신의 성화 능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회귀시키는 능력)'에 있었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