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사 18: 1- 3 (구스의 멸망)
Re..사 18: 1- 3 (구스의 멸망)
이름 : 이근호(IP:)
050강-사18장,1-3,(구스의,멸망)-isa060816
구스의 멸망
2006년 8월 16일
설교 본문: 이사야 18:1-3
(사 18:1)『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사 18:2) 『갈대 배를 물에 띄우고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 경첩한 사자들아 너희는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로 가되 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
(사 18:3) 『세상의 모든 거민, 지상에 거하는 너희여 산들 위에 기호를 세우거든 너희는 보고 나팔을 불거든 너희는 들을지니라』
세상에 끝날이 닥친다는 표현은 약간은 미약합니다. '끝날 세상‘이라는 표현이 확실합니다. 세상이 처음부터 끝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사시던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땅에 그 어떤 희망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해져 살고 있는 세상에 끝날이 찾아온 것에 대해서 대단히 섭섭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안와도 될 끝날이 쓸데없이 찾아든 것처럼 오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소망이란 환란 가운데서만 보입니다. 환란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 생각되는 소망이란 그저 이 땅에 대한 강한 미련 같은 것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죽음과 인간 종말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인간의 종말과 심판이 없이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가짜입니다. 사람들이 뭘 원하고 어떤 것을 고대하고 있다할지라도 심판을 가지고 다가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 부질없는 여망에 불과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만 하더라도 구스라는 나라는 참으로 강한 나라였지만 나중에는 동물들의 휴양처가 되고 맙니다. 여름과 겨울을 나는 짐승들의 안식처가 될 정도로 황무해져 버린 것이 오늘의 예언입니다.
사람들 눈에는 평소에 구스 나라는 이웃하고 있는 애굽나라와 대등한 위세를 떨치고 있던 나라였습니다. 날랜 대사들이 강한 신체를 지니고 있는 나라들과 교류하면서 그 만만치 않는 힘을 발휘했던 나라가 구스 나라입니다. 구스라는 말은 ‘시커멓다’라는 말입니다. 지금의 이집트 남쪽 수단 지역입니다., 이디오피아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국가가 지닌 체면과 위신도 아무런 효과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종말은 모든 인류에게 기정 사실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다음에 심판이 있다는 것도 확정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되고 선택된 사람에게는 이러한 심판과 종말이 앞 당겨 적용된다는 겁니다.
거기에 비해 불신 세계에서 있어 여호와 하나님이 벌리시는 심판과 종말은 자꾸만 지연됩니다. 참으로 아예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마저 부인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구원될 선택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 앞당겨져 자신이 알게 됩니다. 성도가 성경을 보는 태도도 이와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흉한 모습을 한 주님이 계십니다. 십자가에서 엉망진창이 된 일생을 보낸 분의 운명이 매달려있습니다. 일그러진 인생은 곧 실은 우리 자신의 일생입니다. 죄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자에게 주어지는 추한 최후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골입니다. 성도는 바로 이런 자신의 본 모습을 성경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마주대하게 됩니다.
종말이란 모든 것이 숨김없이 그 실체가 폭로되는 시점입니다. 가리고 감추는 모든 시도도 다 소용없습니다. 차라리 흉측한 자신의 본 모습을 십자가를 통해서 미리 알아서, 평소에 자기 잘남과 의로움을 위해 쏟아붓는 모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에게 덧입혀진 모든 것은 주님의 축복이요 사랑이요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구스를 비롯해서 이방나라에게 주어지는 심판은 그들이 괜히 유다 나라 주변에 얼쩡거리다가 당하는 심판입니다. 실은 그들의 우상들이 유다 나라에게 영향을 주었고, 이로 인하여 유다 나라와 이방 나라 사이의 구별이 엷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나라를 같은 원칙에 준해서 심판하시되 그 사실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자에게만 알게 하시는 겁니다.
스바냐 선지서에 보면, 거기에도 구스가 나옵니다. 물론 당연히 심판의 대상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유다 나라의 심판이 먼저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된 나라에게 떨어진 심판의 기준이 그대로 주변에 있는 나라를 심판할 때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유다 나라나 이방나라들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이유가 무엇일까?
스바냐 1: 6에 보면,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소극적 태도를 지닌 자들이나 민족들도 반드시 멸절 당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스바냐 1:12에 보면, “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신을 잘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태만해 하는 지를 특징짓는 방법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복이 실제로 얻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을 상대로 한 시험과 실험은 하나님쪽에서 반드시 거부당해 결국 남는 것은 실망 뿐입니다. 원래 인간들은 인간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신의 존재를 후차로 돌리는 것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본심을 감출 수 없는 입장에서 보면,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인간의 감정에 적합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50년을 믿어왔든지 70년을 믿어왔든지간에 선택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를 우선시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든 예수님을 배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되지도 않는 자가 천국 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신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본색대로 되돌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기 마음의 편안을 위해서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심란할 때는 그동안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포기할 것이 분명합니다. 스바냐 2:15에 보면,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 하더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적이 없는 인간은 반드시 이 본심에서 못 벗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한 하나님 외에는 달리 하나님의 가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이방 모든 민족의 신관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이 먼저 있고, 그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온 특징들을 한데 모아져서 인간 세계에 신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유다 나라가 이런 이방민족의 본을 보고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환란 속에서 참된 소망의 질을 보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본색을 십자가 앞에서 늘 재 파악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