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8월 13일 낮 예배 설교 요약
[일반] 8월 13일 낮 예배 설교 요약
이름 : 이근호(IP:)
2006년 우리교회 여름수련회 설교 요약
하나님의 의(義)
2006년 8월 13일 본문: 갈라디아서 3:22-24
(갈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갈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를 보고 ‘죄인이다’고 지적하면 누구나 다 기분 나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될 수 있는 한 자신을 죄인에서 벗어나 의인의 부류로 속하려고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자진해서 죄인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의인이라고 간주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과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호응과 도움을 받을 확률이 많아지기에 그러한 보람있는 결과를 스스로 포기할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가지고 자신을 의인으로 되는 틀로 삼게 됩니다. 이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실천에 옮기고 준수하면 점차 의인으로 간주되어 복도 비례해서 증가한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여망과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경은 우리를 의인되게 하는 지침서가 아니라 도리어 죄 아래 가두어두기 위한 지침서입니다. 즉 그 어느 누구도 성경 밑에서 죄인이 아니다고 할 자가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입니다.
만약 성경 말씀 그대로 우리가 무엇을 해도 죄인이 되어버리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달라고 요청한 자격조차도 박탈당한 입장에 있음이 분명해집니다. 죄를 짓고 있으면서 복을 달라라든지, 구원해달라 라든지 말은 건방진 요청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된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고 그 대신 다른 현실을 느끼며 삽니다. 예를 들면, 중앙일보 경제면에 보면, 매일같이 흔히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부동산 가격에 대한 정보라든지, 기업 부도에 관한 기사라든지, 은행 금리라든지, 시중의 이자률과 새로운 창업에 대한 호응도라든지, 경매 물품 소개라든가, 신기술 개발에 따른 어느 회사의 번창 사례에 대해서 신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문을 보면서 조금도 그런 내용을 비현실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참된 현실의 전부로 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중앙일부 경제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고 칩시다. “우리는 모두 성경에 의해 죄 안에 갇혀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신문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의 교리의 선전문구를 그 신문에 실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신자들은 오로지 현실을 감각과 느낌으로 판단해버립니다. 하지만 신자는 이 감각적인 현실말고 또다른 현실을 믿습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이미 ‘죄 아래 갇혀있다’는 겁니다. 신자라고 해서 시장에서 물건 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라고해서 세상 것을 싫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신자는, 인간이 어떤 노력을 하든지 간에 여전히 그는 죄 이래 갇혀있어 죄와 욕망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며 살고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는 이 세상이 비현실이라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이 현실 외에 또다른 현실이 이 현실세계를 장악하고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무엇을해도 죄인이 되는 걸까요? 로마서 3:23-26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들은 예수님이 하신 행동과 비교대상이 됩니다. 즉 예수님처럼 행동하지 않는 한 인간의 그 어떤 행동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게다가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어 죄의 지배 아래에 있게 했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본인의 양심대로 바르게 살고 싶어도 자기 마음 안에 품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이 자기 마음를 장악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대로 순응못하게 만듭니다.
이렇게해서 인간들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서 성경에게 의로움이 나오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신 화목제물의 공적으로 널리 우주 곳곳까지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뽑힌 자들이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의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는 특징입니다.
그들 성도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 말고 하나님의 화목제물되신 예수님의 하신 일의 가치를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그들로 통해서 외부로 증거되게 됩니다. 특히 로마서 3:22에 보면, 하나님에 의해 선물로 주어진 의는 어떤 사람이 지니고 있던지간에 ‘차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든 그저 받은 입장이요 외부에서 주입된 의로움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전부 죄인되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의로움을 오직 한 분, 예수님의 행하심에만 국한되게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각자의 역량으로 제작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만든 믿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니라 최면에 해당됩니다. 참된 믿음은, 그 믿음이 때가 되어야만 오시기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믿음이 오기 전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믿음이 각자가 그때그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공통된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 와서 행하시고 완성하심에 의해 주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차이가 없는 겁니다.
성도는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랑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죄 아래 갇혀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여 오직 그 가운데서 이끌어 날마다 구원하시는 주님의 손길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