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계 4: 4- 5 ( 24 장로 )
Re..계 4: 4- 5 ( 24 장로 )
이름 : 이근호(IP:)
24장로
2006년 8월 6일 설교 말씀: 요한계시록 4:4-5
(게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계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흔히 땅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천국 간 사람들이 이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저들이 하늘 나라에서 뭘 하며 지낼까?”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광스럽게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하십니다. 예배란 하나님께서 전체 피조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생각해 놓으신 뜻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해 놓고서, 그것을 기념하여 ‘안식일’이라고 하는 특별한 예배날을 따로 구별시켜 놓을 정도입니다. 즉 피조물들은 나름대로의 따로 자기 목적을 챙길 입장이 되지를 못합니다. 영원히 예배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자는 영원히 축복받은 자요, 그렇지 못한 자는 영원히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극히 초라한 행색으로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그 당시 성경에 정통한 성직자들이 조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고대했었는데 그 메시야는 하늘에게 오는 자이지 결코 먼지 펄펄 나는 길을 통해서 피곤한 기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그런 자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나를 경배하지 아니하면 저 돌들이 소리지르면서 경배할 것이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주님은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자를 찾으려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로마서 15:16에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된 것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그들을 마치 쟁반에 담아 올리는 어린 양들처럼 그들을 제물로 바쳐서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예배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뜻에 따라 그 거룩한 예배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음을 예수님은 확인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하늘 나라에게 하나님께 영원히 예배드릴 생각은 조금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나 활동은 모두 이 땅의 세게 안에서 자기 능력에 따라 살아남겠다는데 쏠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성경의 예배는 실없는 소식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누가 그 예배의 자리에 초청받아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24장로들의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복장은 흰 옷이요, 그들의 머리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은 어디에서부터 이 천국까지 무사히 통과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한계시록 2장-3장을 걸쳐서 하나님은 교회 7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존재 자체를 모두 천국의 예배자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천국에 합당한 상황에 부합되느냐 마느냐를 놓고 심사받고 있는 인상을 받습니다. 제대로 주를 섬기지 아니하면 천국이고 뭐고 없다는 식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24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섰다는 말은 제대로 그런 과정을 통과했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생명을 면류관’을 쓰고 있다는 말은 곧 그들이 실제로 예수님 때문에 죽은 순교자라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보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과연 연약한 몸을 지닌 인간이 죽음의 공포와 위협으로부터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 까요? 선지자들의 특징들은 그들은 하늘의 천상회의를 보았다는데 있습니다. 열왕기상 22:19-22에 보니,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선지자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실은 다 하늘의 천상회에서 결정나버린 사항을 전개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죽음이 들이닥치는 것으로 인해 자기 마음이 변신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삼층천을 보고 온 사람입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도리어 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고백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도리어 나에게 복이다”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24장로석 앞에는 일곱 영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7 영은 십자가 시련과 유혹을 통과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성령을 말합니다. 24장로, 이들이 하늘 나라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자력이 아니라 성령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히브리서 12:1-2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운동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먼저 골인에 성공한 선배들은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힘을 내. 포기하지 말란 말이야.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 그 분은 지금 네가 당한 모든 유혹을 다 견뎌내었단 말이야”하고 말입니다.
인간에게 찾아드는 마지막 유혹은, 그동안 신앙생활 한 것이 다 착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라는 인물도 자신이 뇌세포 작용으로 그려지는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마저 그런 시험을 만나고 겪여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시험조차 아버지의 뜻이라고 보았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의 뜻이면 언제 이 세상을 뜰지 모르니 남들에게 죽음이란 경게 밖에도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