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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050425 부산강의-철학에는 적이 없다강의[철학]

Re..050425 부산강의-철학에는 적이 없다

이름 : 한윤범(IP:)

20050425 부산강의-철학에는 적이 없다
(강의:이근호 목사)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재가 굉장히 어려워요. 얼마나 어려운지 제가 137페이지, 세 째 줄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한자는 무(無)규정성이라는 의미에서 질료적 속성을 갖는다. 이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체(그러니까 신적인 것)가 아니라 크기를 완성하기 위한 질료일 뿐이다. 즉 가능성이 있는 전체이지 현실적인 전체가 아니다.]

한글로 되어 있지요. 한글로 되어 있는데 신문기사를 이렇게 적어 놓으면 아는 사람 한 서너 명 밖에 없을 거예요. 이렇게 어렵다는 것은 일부러 독자들을 어렵게 애 먹이려고 한 것이 아니고, 너무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지면상, 또는 시간 관계상 함축해서 집어넣어버려요. 만약에 이 세 줄을 풀어서 쉽게 한다면 책이 한 권이 나옵니다. 그 다음 세 줄도 책이 한 권이 나오니까 이것 다 하려면 책이 1000권 이상 나올 셈이니 그래서는 안 되거든요. 그래서 세 줄로.

여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아저씨가 어떤 아저씨인지, 어느 동네 아저씨인지, ‘무한자’의 의미가 뭔지, ‘규정성’이라는 말은 뭔지, ‘질료적’이라는 이것도 무슨 말인지 이렇게 상당히 어려운데, 이번 강의는 이 어려운 것을 정말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렇습니다. ‘내가 누구냐?’ 하는 그것을 동굴 안에 갇힌 채, 또 교도소 안에 감방에 갇힌 채 내가 누구냐? 아무리 자기한테 물어봐야 인간은 성이 차질 않아요. 마음에 차질 않아요. 그런데 옆방에 옆 동굴에 또 어떤 사람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묻는 겁니다. 옆 사람, 옆에 있는 아저씨, 내가 누굽니까? 라고 물으면, 전에 내가 누구냐고 한 20을 알았던 것이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가 누구냐를 좀더 많이 알게 되어서 10을 더 알게 되어서 30정도 알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쪽에 여자 분이 또 계시더라고. 내가 누굽니까? 하니까 당신은 성질이 급하고 어떻고 나온다고. 그러니까 이거는 하나의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어 40을 아는 거죠. 그런데 옆쪽에 이쪽에 사람들도 많이 있다 보면, 내가 누구냐를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나에 대해서 좀더 정확하게 알겠죠. 나에 대해서.

하나의 예를 들면, ‘나는 착하다.’라고 여기는데 회사 취직을 했어요. 취직을 하니까 회사간부가 하는 말이 속임수를 써서라도 실적을 채워라. 이렇게 나오더라 말이죠. 너, 속여서 실적 채울래, 안 그러면 회사 나갈래. 그런데 평소에 회사 입사 전에는 자기는 착한 거예요. 착해요. 착한데 아니 회사가 나를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 지금 막 만들려고 한단 말이죠.

그러면 내 속에 있는 양심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꼭 이렇게 해서 돈을 벌어야 되겠느냐? 이런 갈등이 생기지요. 갈등이 생기지만 그 갈등도 술 한 잔 먹으면 업어지고, 그 다음날 되면, 예, 시키는 대로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가 뭐 형편이 콩인지, 된장인지 그걸 가릴 입장이 안 되는 걸 본인이 너무 알기 때문에. 그러면 이 회사 말고 다른 회사 같으면 안 시키겠습니까? 마찬가지거든요.

그럼 세상 그 회사 말고 농사짓는다고 해서 속임수 없겠습니까? 농사져도 역시 농약 써놓고 유기농법 했다고 속여야 이게 돈이 되지, 그냥 정직하게 유기농법 해서 생산물이 안 나오니까 마찬가지에요. 약간 정도는 있지만 마찬가지고. 고기잡이한다고 그걸로 순수하게 살아갈 입장이 못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이렇게 핑계되죠. 저는 착해지려고 애쓰는 줄 하나님 아시죠? 하지만 지금 잠시 형편이, 이걸 고상하게 이야기하면 ‘환경’이라고 하는데, 형편이 이러니까 제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그 점만 좀 알아주세요. 내가 착해지려고 애쓰는 그 점만 알아주시고, 제가 앞으로 형편 따라서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거는 형편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지, 내 본심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아시겠지요? 변명하면서 가는 거예요.

가다보면 이 환경이 여기서 더 큰 다른 환경을 줘버려요. 큰 환경을 줘버리면 착함에서 점점 멀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하도 어려운 이야기라서.

자기가 회사 다니기 전에는 나는 누가한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나는 착하다. 회사 다니기 전에는 착하다고 안 거예요. 착하다고 해보니까 이 회사가 사회에 나가서 나로 인하여 피해자가 발생되는 됩니다. 회사 시켰던 내가 애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했던 간에 내가 살아남아야 돼. 나는 돈 벌고 살아야 돼. 라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게 마련이에요. 근데 점점 더 큰 환경에 나가면 그 피해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 셋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며느리가 취업전선에 하기 전에 집에 있을 때는 시어머니하고 아침저녁마다 반찬하고 밥하고 잘 하다가 형편상 그만 회사에 나가서 돈을 하다보니까 자연적으로 시어머니 관계가 멀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시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네가 살라고 애쓰는 것 때문에 자동적으로 나는 가만있는데 나는 뭐가 되느냐? 피해자라는 거예요. 어머니, 어떻게 해서 피해자입니까? 옛날에는 아침에 밥해 주지만 요새 왜 밥을 안 해 주느냐? 그러니까 옛날에는 밥해 주는 그 며느리가 기본인데 지금 밥을 안했기 때문에 나는 피해자고 너는 가해자가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시어머니 말이 맞습니까? 이걸 따지는 거예요. 이게 본문, 이 내용들이에요. 맞습니까? 나는 시어머니니까 밥 세끼 챙겨 먹어야 돼. 그러한 인식은 어디서 날아온 거예요? 그건 옛날에 호 세월 때. 사회 물정을 모를 때 며느리 입장도 생각 안 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할 때는 당연히 며느리가 나한테 밥해 줘야지. 이걸 당연지사로 여기는 거예요.

그리고 며느리도 사회 물정도 모르고 그럴 때에는 자기는 시어머니한테 하는 것이 당연하고 당연히 그런 수준에 있을 때만 나는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가서 남을 속여가면서 돈 벌어서, 하지만 그걸 통해서 애들 공부시키고 하는 이것도 어떤 면에서 새로운 착함의 영역으로 넓혀지는 거예요. 새로운 착함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도대체 누가 말이 옳습니까? 시어머니 말이 옳습니까, 회사 나가서 열심히 돈 벌어서 남 좀 속이고, 갈수록 점점 피해자가 늘어나지만, 하여튼 남 피해 받든 말든 남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나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남들도 다 나를 속이고 나도 속고 속이고 하는, 고린도전서에 나오거든요. 성경에 나오거든요.

속고 속이는 세상 아닙니까? 속고 속이고 어쨌든 살아남았잖아요. 밥 먹고 살잖아요. 그러니까 밥 먹고 살고 내 식구 산다면, 도대체 누가 나서서 이것이 착함이라고 내세울 그게 어디 있느냐 말이죠. 모든 인간은 자기 입장을 변명하는 그러한 식으로 평생을 보내고 있다는 그런 결론이 나오겠지요.

이게 혼자 집구석에 있을 때는 이걸 몰라요. 신문 지상에 사기 치는 걸 보면 지금 남의 일 같지만 막상 그 현장에 어쩔 수 없이 다 본분이야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었었는데. 그리고 여러분 사기라 하는 것이 혼자서 사기 치는 법은 없고, 저쪽에서 사기가 밀려오니까 밀리다 보니까 이쪽이 밀리는 경우가 있어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만있는데 저쪽에서 미니까 밀리다보니까 나보다 연약한 할머니가 아야, 하고 발을 밟힐 수가 있다니까.

사회는 뭐냐 하면, 사회는 밀리면 밀리는 것이 사회입니다. 참, 오랜만에 좋은 말 했는데. 사회라는 것이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1960년대에 유행했던 패션 옷 입고 40년 견딜 수 있는 여자들이 없어요. 유행 따라 가야 돼요. 반짝이 나오면 반짝이 해야 되고, 뭐 나오면 뭐 해야 됩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걸 제가 간단히 이야기해서 사회가 나를 새로 만듭니다. 그것도 매일같이. 내가 누구냐를 몰라요. 내가 누구냐를 모르고 남들이 입혀준 옷을 입고 그 옷을 입고 설쳐야 돈이 들어와요.

그러니까 제가 여기서 강의를 일단 멈추고 방정식을 하나 쓰겠습니다. 이게 방금 이야기하는 게 철학이거든요. 이게 성경이 아니고. 철학인 동시에 사회 아닙니까? [철학에는 적이 없다.] 이게 공식이죠. 이것 하나 적어 놓으세요. 철학에는 적을 만들지를 않습니다. 딱 적어 놓으세요. 설명해 드릴게요. 철학에는 적이 없다. 이 세상 학문에는 적이 없습니다.

이걸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마 오늘 강의에 핵심이 될 것 같아요. 사회라 하는 것은 서로 돕고 서로 친구가 될 때만 나한테 힘을 실어줍니다. 힘이 옵니다. 니, 내 적이지. 하면 그 사람한테는 손해가, 본인한테 손해가 되어 있어요. 뭐든지 좋게 지내야 되고 어떤 사람이든지 화목하게 지내야 그 사람이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뭘 만들면 안돼요? 적을 만들면 안돼요.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고객이든지 고객을 왕으로 삼아야 되고, 그래야 나한테 다 도움이 돼요. 설사 저쪽이 나한테 나쁘게 나오더라도 잘 구슬려서 잘 자주 찾아가서 잘 다듬어서 언제가 내가 어려울 때 도와 줄 수 있는 그러한 나의 후원자로 삼을 때 그것을 인생에 성공한 사람, 인생에 승리자로 보는 겁니다.

사회가, 조직이 사회라 하는 것은 조직이니까 조직이 되려면, 많은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 돼요. 외톨박이는 조직을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해서 포용하고 얼싸 안을 때 그 사람은 그 조직에 기여한 사람이 되고,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은 조직의 장이 되는 겁니다. 어느 조직이든 교사, 경찰관, 공무원, 일반회사, 심지어 여기 수출하역노조, 어느 집단, 어느 단체, 학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원에 선생 하나 뽑아놓으니까 얼마나 붙임성이 좋은지, 이건 어떤 종류의 애들 와도 전부다 자기 친구라. 그러니까 학원 선생님 하나 오니까 애들 50명, 60명 불어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은 너무 뻣뻣해서 애들 10명 붙여놨는데 두 명 밖에 안 남아요. 다 가버려요. 두 명 밖에 없다하면 돈 날아간 거잖아요. 학원이 뭣 때문에 운영됩니까?

세상은 적을 생각하면 안돼요. 모든 것이 나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다. 비록 나한테 잔소리를 하고 뭘 해도.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 어느 정도냐 하면, 너, 말이야. 인간성 더러워. 라고 욕해도 맞습니다. 옳습니다. 그렇게 지적하니까 나보고 그렇게 지적한 사람 없었는데 당신은 정말 훌륭한 사람 같습니다. 제가 나중에 밥 하나 사드릴 게요. 이러면 정말 욕한 사람이, 아, 저 사람은 참, 보통 사람이 아니야. 인간성 참 좋구나. 그래, 당신 어려울 때 나한테 찾아온 나. 도와줄게. 이래야 한 사람, 두 사람 계속 늘어나서 어떤 사람도 다 자기 사람으로 적환시켜버립니다. 그럴 때 사회는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제가 철학이라는 어려운 말을 했지만 그냥 쉬운 말을 하면, 경영학. 경영학도 철학에 속하거든요. 국문학, 인류학, 세상에 있는 모든 학문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가정에서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배우는 그것도 마찬가지고. 경영학을 해도 그건 뭐냐 하면, 마지막 결론은 뭐냐? 절대로 적을 만들지 마라. 적을 만들면 니가 외톨이가 되고 니는 이 사회에서 나 혼자가 되고 결국 니는 죽는다, 못산다. 그러니까 사람이 진득하니 참고, 진득하니 견디고.

어디 담배 피우나? 나, 담배 연기에 예민한 것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데. 담배 피우면 냄새 좋다, 이래야 되는데. 문 좀 닫아주세요. 담배연기 들어와서.

지금 제가 성경 말씀, 신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사회적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늘나라가 하늘나라와 세상 나라와 차이점이 뭐냐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세상 나라를 애굽으로 보거든요. 또 소돔과 고모라. 소돔과 고모라로 보는 것은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을 뭐로 규정하기 위해서 소돔과 고모라와 동일한 도성이다. 라고 규정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 증거가 어디 있느냐 하면, 소돔과 고모라의 하늘에서 뭐가 떨어지느냐 하면, 유황불이 떨어졌잖아요. 소돔과 고모라에만 떨어졌던 유황불이 마지막 때는 온 지구상에 떨어집니다. 그것은 뭣을 뜻하느냐 하면, 사실은 소돔과 고모라만 썩어 빠진 도성이 아니라 사실은 모든 지구상의 도성이 다 그런데 이걸 앞서서 '본이 되게'라는 말로 소돔과 고모라에 앞서서 미리 당겨서 한번 본때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죠. 본때를 보이고 그 다음에 마지막에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이 온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교회 가서 무엇을 듣고자 합니까? 경영학 강연을 듣고자 합니까? 교회 가서 회사 성공하는 걸 듣고자 합니까? 교회는 다른 데와 달리 무슨 말씀이 울려 나오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거든요. 방금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말씀 중에 하나가 이 세상은 무슨 나라다? 이 세상은 애굽이고, 애굽이라는 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애굽이라는 게 요한계시록에 나오고요.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고,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다. 이렇게 되어 있다 말이죠.

그러면 강단에서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하면 교인은 이렇게 앉아서 뭐를 납득해야 되느냐 하면, 이 세상은 애굽이고 소돔과 고모라라는 그 이유를 여기서 납득을 해줘야 돼요. 여기서 '믿습니다.'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 이래서 이 세상은 내가 속해 있는 애굽이고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인데, 이 세상이 애굽이고 소돔과 고모라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애굽에서 이걸 탈출시킨다.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느냐 하면, 구원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이거에요. 머리 좀 안 좋아도 다 알 건데. 구원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어떤 나라다? 애굽이고 기껏해야 소돔과 고모라에 불과하다는 것은 먼저 전제로 인정한 사람에게만 구원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성경적으로 옳은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뭐냐 하면, 이겁니다. 이거 머리 속에 기억했지요.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이 뭔가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항상 이렇게 차이가 나요. 사람들이. 세상이 사람이 생각하는 구원이 뭐냐 하면, 자기가 살다가 늙어가지요. 가면 나중에 뭐 됩니까? 죽잖아요. 죽은 다음에 가는 세계. 이건 부활의 세계, 또는 천국, 불교처럼 극락, 이런 것, 이걸 구원이라 보는 겁니다.

방금 제가 설명한 하나님 쪽에서 이야기한 이 구원과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적인 이걸 가지고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여러분, 어떤 데서 차이 나는가를 감 잡으셨습니까? 이건 평생 가면서 감 잡아야 돼요. 하루아침에 감 잡을 게 아닙니다.

이럴 때에 여기서부터 어려운데. 어려울 때는 천천히 하겠습니다. 지금 내가 나 혼자 이 세상에서 자식들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해서 고생하고, 고생하다 보니까 일찍 병도 들고, 세월 가니까 늙어가고 죽는다. 그럼 난 죽어서 이 세상에서 고생했으니까 죽어서는 좋은데 편히 쉬어야지. 라고 이렇게 할 때 지금 이것을 구원이라 할 때 여기 뭐가 빠져 있습니까? 이게 참 중요해요.

뭐가 빠져 있느냐 하면, 죄가 빠져 있지요. 만약에 여기서 구원이라면 뭐냐 하면, 연약한 나가 있지요. 그리고 늙어가는 나. 그리고 쇠퇴해 가는 나. 보잘 것 없는 나. 그런 건 들어 있는데 하나님 앞에 죄 짓고 있는 나. 그거는 여기서 빠져 있어요.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내가 이 땅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태어났는데, 뭐 어떻게 우리 조상이 잘못 됐는지 이 세상 살아보니까 사는 게 수월하지 않고 힘들게 살았다. 좀 억울한 느낌이 안 듭니까?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태어나게 해서 나에게 고생을 시킵니까?

그래서 어떤 자식은 자기 부모한테 대들기를 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킵니까? 아예 이렇게 나를 고생시킬 것 같으면 나를 낳지 말지, 왜 낳아서 이렇게 고생을 시켜놓고 이제 와서 대출도 안 해주고 집도 안 잡히고 대출도 안 해 준다고 하고. 내가 돈 버는 게 다 아버지, 엄마 노후를 위해서 하는 건데 팍팍 좀 도와주지. 영감쟁이, 할머니 늙어서 돈 해서 어디 먹겠다고 자식한테 안 주고 왜 그러냐?

누구 이야기하는 줄 모르겠습니다만 은근히 그런 부아 안 납니까? 그런 화가 안 난다고요? 진짭니까? 다 이런 화가 있어야 되는데? 이게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인 게, 만약에 형제간에 둘이 있잖아요.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가 동생이라면, 형한테 재산 다 주면 아무리 천하 도인이라도 완전히 뿅 갑니다.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마 다른 동생들, 다른 형제들 돈 다 줘버리고 죽으면서 돈 한 푼도 안 줄때 지독하게 화 날 걸요? 자기도 화나지만 옆에 있는 마누라는 화 더 낼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결국 뭐를 뜻하느냐 하면, 좀 더 깊어지죠. 깊어지면 이해 안 될 까봐 제가 걱정이 되는데. 뭐냐 하면, 왜 괜찮은 나를 왜 주위 사람들이 더 나아가서는 그런 환경을 만드신 하나님이 나를 왜 괴롭히느냐 말이죠. 나를 괴롭히시니까 내가 이 땅에서 고생한 만큼 신이 사랑스럽고 자비롭다면 내가 고생한 만큼 보상해 내라 이 말이죠. 나를 위해서 천국이 있다고. 당연하지. 내가 이 땅에서 고생했으니까.

다시 할게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 뜻에 의해서 태어났잖아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태어났는데 내가 고생하고 싶어서 고생합니까? 하나님 주신 환경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잘못 만나서 또는 친구 잘못 만나서 보증 잘못 서서 돈 다 날렸다 말이에요. 그렇다면 결국 따지고 보면 그 원이 누구한테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를 잘 배려하지 않고 인도를 잘못해서 이런 고생이 온 거예요.

여자 분한테 그런 게 많아요. 왜 다른 남편은 잘났는데 내 남편은 못났고 돈도 못 버느냐? 결국 그 탓을 가만히 따지고 보면, 결국 누구 탓이냐 하면, 하나님 탓이에요. 하나님이 괜찮은 나, 착하게 살려는 나에 대해서 지금 차별 대우하고 있는 겁니다. 아까 아버지가 죽으면서 유산은 다른 형제한테 아무리 좋은 자식이라도 다른 형제에게 편애해버리면 갑자기 없는 화도 나지요.

마찬가지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 교회도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데. 이러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께서 내가 예상치도 않은 다른 어떤 돈을 못 번다든지, 어떤 나쁜 환경을 줘버리면, 갑자기 같은 여편네 김 집사, 박 집사는 잘 되는데 같은 하나님 밑에서 철야 기도하는 나한테는 전혀 그런 혜택 안 줄때 이게 화가 안 나겠습니까?

물론 그때는 화를 안 내요. 하나님, 이래도요. 그 사람은 돈은 벌었지만 믿음이 없어요. 나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감사합니다. 폼 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폼이고. 얼마나 부아가 났으면 그런 식으로 하나님한테 항의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괴롭혀도 나는 하나님한테 영광 돌리겠습니다. 이런 되도 않는 오기를 부리면서요.

또 목사들이 그렇게 시키지요. 어려울 때 감사 헌금하라고 그러면 세 배로 갚아준다고 사기를 치든가 하는데, 하지만 마음속은 본인은 속일 수가 없어요. 왜? 이건 뭔가 도대체 결국 뭐냐? 모르겠다. 처음에는 하나님 뜻을 모르겠다, 해요. 더 들어가면 뭔 줄 압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도 모르겠다, 해요. 정말 내가 예수 40년 믿었는데 아직도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나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의심된다.

이건 교인뿐만 아니라 목사도 마찬가지에요. 목회생활 오래하면 하나님이 안 믿어져요. 왜 안 믿어지냐 하면, 하나님이 시킨 대로 다 해보니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거든요. 하나님 시킨 대로 기도해라. 야고보 1장에 보면 기도하고 의심하지 않고 기도하면 받은 줄로 믿으라. 이런 것도 다 해봤고. 뭐, 온갖 마음을 낮추면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그런 것도 다 해봤고.

목회 40년 동안 무슨 실험을 안 해 봤겠습니까? 다 해봤어요. 다 해보니 결국은 사람 좋아하는 대로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역시 교회가 부흥되지, 말씀대로 해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정말로 절실히 안 뒤에는 그 다음부터는 목회 한 40년 하면 하나님을 안 믿는 목사가 돼요.

이거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에요. 나중에 노인 되면 교회 왜 가는지 압니까? 점심 먹으러 가고 하나님 사랑하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들을 잔소리는 들을 만큼 들었어요. 목사보고 잔소리 그만하세요. 그렇게 합니다. 내, 당신 말 다 압니다. 부흥사 부흥회 많이 들었고 설교 다 들었으니까 나한테 잔소리하지 마라.

그러니까 뭐냐 하면, 결국 한번 정리해 보면,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왜 힘들게 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천국을 만들어 주는 것은 나 같은 인간한테는 이건 당연한 거다 말이죠. 그리고 왜 천국 보내려면 처음부터 이 세상에서도 고생을 덜 하고 천당 보내야지, 병 주고 약주고 식으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 속마음은 그렇고, 겉마음은 성경대로 하나님 범사에 감사합시다. 이렇게 약간의 아부성 연기를 피우지만 속마음은 늘 불만 같은 것이 변비처럼 불만이 변비가 되어서 꽉 차 있지요. 그렇게 심통을 부리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될 때 연약한 나를 하나님께서 부당한 대우를 했기 때문에 천국에 죽어서 좋은데 가는 거야, 거기서 누구보다 충성을 다 했기 때문에 교회에 충성 많이 하고, 목사 말 잘 듣고, 하나님 충성 많이 했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야지 누가 들어가겠어? 당연한 걸로 여기지요. 이러한 구원은 죄라는 것이 빠져있습니다. 죄가 뭔지를 죄인을 구원한다 하는데, 이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는 거예요. 죄인을 구원하는 게 아니고.

제가 보기에는 이런 식으로 구원을 가르치는 교회가 우리나라는 몇 군데 되지는 않습니다만 99.9. 우리나라의 모든 교회가 대부분 순도 99.9 전부다 이런 식이에요.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이게 뭐냐 하면, 불교입니다. 불교를 공부 안 해 봐서, 이게 불교에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게 민중 신앙이에요.

하나님 말씀은 없고, 인간들이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불쌍한 나, 신이시여, 좀 건져주소. 구원해주소. 라는 그 심성이 보편화되어 모든 것이 평준화되어 있고 다 보편화되어 있으니까. 대충 이걸 선 끊어서 우리교회 나오시면 가정이 화목해 집니다. 좋은 아버지 되기 운동 이런 거 만들어서 대충 선 끊어서 이 구역은 니 해라. 떡 끊듯이 케이크 끊어서 이거 우리교회, 이건 너희 교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말씀이라는 게 하나님 뜻이라는 게 없지요.

그런데 자, 이제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 구원을 보게 되면, 이 세상이 애굽이라. 아까 이 이야기 너무해서 다 잊어버렸지요.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이 애굽이고 이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라는 것을 누가 최초로 이야기한 겁니까?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했습니까, 어느 철학박사가 이야기했습니까,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이거는 아무도 이야기한 적이 없고, 누가 이야기했느냐 하면, 하늘에서 오신 예수라는 목수의 아들의 모습으로 태어난 예수라는 분이 와서 비로소 그분이 입을 열어서 이야기해 주니까 이 세상은 애굽이고 이 세상은 소돔과 고모라라는 것이 그 사람의 입에서 최초로 선포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 하는 말의 취지가 뭐냐 하면, 머리만 떼어서 이 세상을 연구하자. 그래, 애굽이야. 이렇게 인간들끼리 맞대어서 한 10년 6개월 동안 연구해서 나온 결론이 뭐냐? 애굽이고 소돔과 고모라다. 이렇게 나온 게 아니고, 합의해서 나온 게 아니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물론 그전에 세상이 완벽하지 않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아요. 여기에 나온 아리스토텔레스도 알아요. 알지만 뭔가 완벽하진 않지만 선한 것도 있다. 이 정도거든요.

역시 이 세상은 나쁜 것도 있지만 선한 것이 태반이고, 가끔 되도 않는 미친놈들이 있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다. 라는 그런 식으로 세상이지, 전적으로 이 세상은 아무도 의로운 사람은 없고 다 죄인밖에 없으며 어떤 국회의원이든 의학박사든 상관없이 유황불을 맞아야 된다.

그게 노아홍수에 보면 나와요. 방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그 사람이 얼마나 이웃사랑을 많이 하고 구제를 많이 하든 상관없이 방주를 중심해서 새로 만든 방주에 들어갈래, 안 들어갈래. 들어가면 구원이고, 안 들어가면 지옥 홍수에 넣는다. 라고 그런 식으로 애굽이고 소돔과 고모라하는 사람은 세상에선 찾아볼 수 없는 소리죠. 낯선 소리에요. 그 일이 그 낯선 이야기가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입에서 최초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나오는 결론이 뭐냐 하면, 이것 좀 머리 써야 돼요. 그 다음부터 나오는 결론이 뭐냐? 행함이 아니고 그 말을 믿느냐, 안 믿느냐? 둘 중에 하나 밖에 없어요. 믿으면 구원, 안 믿으면 지옥이에요. 그래서 성경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에요.

더 어렵게 이야기해볼까요? 넓은 길로 가면 멸망의 길이고, 좁은 길로 가면 영생의 길이다. 라고 했을 때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래, 좁은 길로 가야지. 이렇게 되거든요. 예수님은 그런 뜻이 아니고, 좁은 길로 가면 영생의 길이고, 넓은 길로 가면 멸망의 길이다. 라고 이야기한 사람, 그 분 자체를 니가 믿느냐, 안 믿느냐 이렇게 본 겁니다.

그렇게 이야기하신 분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느냐, 안 믿느냐를 묻는 것이지, 좁은 길로 가면 구원받는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좁은 길로 가야 영생이 있다는 말을 한 그 사람을 니가 그 사람이 다른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까지 다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좁은 길로 가야 영생이고, 넓은 길로 가면 지옥이다. 라고 말하신 그 분이 십자가에 올라가서 피를 흘리시면서 이 피가 너희의 모든 죄를 씻어주는 어린양의 피라 이야기했거든요.

그러니까 듣는 사람이 좁은 길로 가면 영생이고, 넓은 길로 가면 지옥이니까 좁은 길로 가야지. 라는 행위로 보면 안 되고, 그렇게 말씀하신 분의 그 십자가의 피가 나의 이런 모든 죄를 씻어준다. 까지 더불어, 함께 믿을 수 있는 겁니다.

말을 길어져서 더 어려워졌는데, 쉽게 이야기합시다. 어떤 사람이 저를 믿는다면, 오늘 해가 동쪽에서 떴거든. 이야기한다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만 스톱, 스톱, 스톱. 뭐 이근호, 당신이 해가 동쪽에 떴다고요? 당신 말 안 믿어. 내가 확인해 볼게. 어, 동쪽에 떴네. 당신 말, 믿습니다. 이것은 나를 믿는 게 아니에요.

내 말을 했더라도 그거는 바깥에 세워놓고 그 말만, 당신은 들어오지 말고, 그 말만 들어와. 그 말만 들어와서 자기가 실험해 보고, 맞으니까 당신을 믿는 게 아니고, 당신이 한 말 중에서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한 그것만 믿을게. 라고 하는 것은 누굴 믿느냐 하면, 그 바깥에 있는 사람을 믿는 게 아니고, 자기의 인식과 자기의 선입관과 자기의 확인능력을 믿는 거예요. 자기의 믿음을 믿는 거예요. 이거는 지옥 갈 사람입니다.

그런데 해가 동쪽에서 뜹니다. 그 다음날 제가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뜰 겁니다. 가만 있어봐. 또 확인할 거야. 진짜 나를 믿는 사람은 동쪽에서 떴다하던 서쪽에서 떴다하던 다 믿어버려요. 그 중에 하나가 예수님께서 자기 눈에 들보를 빼고 남의 티를 봐야지, 자기 눈에 들보 있는 것도 모르고 남의 티를 빼느냐? 그 말이 맞아. 나도 경험해보니까 남 욕하다가 내 약점이 되었어.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내가 죽으면 부활되거든. 에이, 그거는 내가 실험해 보니까 죽으면 끝나더라.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앞에 있는 것은 윤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받아주고, 무릇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거는 미루는 거예요. 조금 있다가 봅시다. 그건 나 죽고 난 뒤에 봅시다. 이럴 것 같으면 그거는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말씀하신 가운데 믿을 만한 가능성이 있는 것만 골라서 잡는데 그건 결국 골라 잡아내는 능력자인 나를 믿는 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지옥 갑니다. 그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이 돼요.

자, 지금까지 강의를 들어보니까 믿는 사람 같으면 의외로 문제가 간단하지요. 왜냐하면, 이런 사고방식을 세상적인 사고방식을 포기하는 겁니다.

연약한 나를 보상해주는 식으로 사랑의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셨다. 고생 많이 했지. 천당 가서 쉬어라.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다. 하는 이것은 진짜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 내가 만들어낸 나의 메시아요, 나의 예수요, 나의 삼위일체요, 나의 성부, 성자 하나님이에요. 내가 만들어낸 천국이고 내가 만들어낸 교회사고 그렇다 말이에요. 신앙이다 말이죠. 결국 내가 나를 믿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은 뭐냐? 니가 죄인이니까 내가 죽잖아. 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내가 어디 죄인이냐 하면, 간음죄, 살인죄, 그게 죄인이 아니고, 내가 평소에 그냥 쉽게쉽게 생각했던 그 전체가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되었기에 그런 몽땅 그것을 나를 위해서 십자가 대신 죽었어요. 예수님 죽음은 대신 죽는 겁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인데 죽었어요. 누구 때문에? 대신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으신 분이다 말이죠. 대신 죽었다는 말은 사실 거기에 못 박혀야 될 대상은 예수님이 아니고, 사실은 저와 여러분이어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런데 대신 죽은 것 때문에 대신 대표로 달려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곧 죄인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여겼던 이 죄를 용서해 달라는 거죠.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서.

이 세상이 애굽이라는 것이 사실인데 우리는 이걸 애굽이라는 사실로 안 보고, 내가 생각한 환상으로 상상한 그러한 나의 세계를 따로 꿈꾸는데, 그걸 자꾸 사실인 것처럼 우기더란 말이죠. 내가 스스로 나한테 우겨요. 나는 공부 많이 했으니까 돈 많이 벌어야 돼. 이거는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꾸며낸 겁니다. 꾸며내 놓고 그 다음에 이거는 사실이야. 그런 거야. 진짜야. 이러고 있다 이 말이죠.

그 사실 때문에 진짜 사실하고 항상 마찰을 일으키고 충돌을 일으키고 거기서 신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튀어나오고,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 줍니까? 이런 식으로 짜증을 내면서 또 죽어서 지옥 보낼까 싶어 겁나서 억지로 교회 가고, 이런 식으로 억지로 돈 안 내서 복 받으려 하고.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돈을 원하는 게 아니고, 우리 전부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돈을 못 박은 게 아니에요. 표현이 재미있지요. 돈이 나쁜 게 아니고, 돈을 못 박은 게 아니고, 돈이 좋다하는 인간 자체를 못 박아 버렸으니까 돈이 죄가 아니고 돈이 죄도 아니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인간 자체를 못 박았으니까 돈을 좋아하는 내가 문제 있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아까 강의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제 좀 강의가 좀 이해가 되지 싶으니까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처음에 제가 뭐라 했든가요? 나라는 것은 누가 만들어준다고요?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누가 만들어줘요? 아까 처음에 그림 했죠. 동물이야기 했죠. 잊어버렸습니까?

동물이 있었는데 나 혼자 있는 것 하고 옆에 있는 사회가 만들어주죠. 그럼 사회가 뭘 좋아합니까? 돈을 좋아하잖아요. 나라는 것은 텅텅 비어있는데, 사회가 돈을 좋아한다는 그 사고방식이 텅텅 비어있는 내 마음속에 흘러 들어오지요. 흘러들어오면 그들과 함께 같은 동질화되지 아니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살 길이 없습니다. 아아, 이해 잘 못하시는데 다시 강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어떤 조직이든 어떤 직장이든 사람이 성공을 하려면 붙임성이 있어야 됩니다. 기억납니까? 이 말 한 것. 적을 만들면 안돼요. 붙임성이 있어야 되고 하나라도 내 친구로 만들어야 되고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됩니다.

붙임성이 있어야 된다는 말은 뭐냐? 그 사람과 대화가 가능해야 돼요. 대화가 가능하다 하는 것은 평소에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과 내가 갖고 있는 사고방식과 얼추 맞아떨어져야 됩니다. 맞아 떨어져야 그 동네에 살아요.

생전 골프 치지 않은 인간이 강남의 아줌마들 전부다 골프채 들고 가는데 골프 이야기하고 있는데, 골프라는 게 어느 커피회사 제품입니까? 이렇게 나오면 곤란한 이야기 아닙니까? 아이고, 이거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이제 재하고 놀지 말자. 이런다 말이죠. 또 그쪽으로 놀아야 돈이 나온다고.

그리고 그 다음에 뭘 배워야 되느냐 하면, 골프를 배워야 돼요. 골프를 배워서 같이 참여해야 되고, 그쪽에서 외제차 타고 다니는데 지는 티코 타고 다니면 안 되니까 티코 버려야 돼. 빚내서 외제차 타야 돼요. 그래야 그들과 어울릴 때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같이 어울려서 거기서 휩쓸려서 돈이 나온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세상 자체가 애굽이라는 말은 그 애굽에 편승했고 거기에 동조했던 당사자가 누구란 말입니까? 내가 바로 이게 애굽이 되던 소돔과 고모라가 되던 그거는 뒷전이고, 나는 좋다 이 세상이. 세상아, 나를 좀 반겨줘. 나는 이 세상에서 같이 어울려 살래. 나는 이게 좋아.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교회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도 세상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동창회도 색색 동창회 다 있어요. 초등학교부터 초등학교 동창모임 따로 있고, 중학교 동창모임, 고등학교 동창모임, 대학교 동창모임 다 따로 있고, 거기다가 직장에다가 심지어 암웨이 동창까지 다 따로 있고, 온갖 동우회는 다 걸쳐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세월 가는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불러내니까. 스케줄 짜기에 바빠요. 달력이 새 빨게.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 오늘은 놀러 가는 날. 그럼 너, 그렇게 왜 달력에 노는 날이 많으냐? 하면, 많은 게 아니라 일년에 두 번 밖에 안 된다. 일년에 두 번 밖에 안 되지만 하도 많으니까 매주 노는 거예요.

왜 그렇게 자꾸 어울리느냐 하면, 내가 누구냐를 하나님 말씀 앞에 찾는 게 아니고 십자가 앞에 찾는 게 아니고,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그런 사회성 안에서 내가 이렇게 가치 있는 인간이고, 아직도 내가 알아주는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 받을 때 세상이 날아갈 것 같아. 정말 기쁘고 즐겁고 신나죠.

그래서 만약에 지금 자기가 만약에 어떤 조직에 취임되어서 친구들이 회장해라. 해서 회장되어서 연설하려고 하는데, 바깥에 어떤 사람이 지금 연설 빨리 끝내야 되는데요. 연설 끝나고 부폐식당에서 식사하고 자기 회장축하연 열고 있는데 바깥에 있는 어떤 사람이 와서 지금 30분 내에 끝내야 되겠습니다. 왜요? 30분 후에 예수님 재림하거든요. 아이, 예수님 재림이 싫은 기라.

왜 싫으냐하면, 간만에 10년 만에 공들여서 회장 됐는데 회장 되자마자 예수님 재림해 버리면 유황불에 다 날아가 버리잖아요. 얼마나 짜증나겠습니까? 이뿐만 아니고 애 결혼식 하는데, 선 열 두 번 봐서 겨우 하나 되어 시집 억지로 보내는데, 거기서 선지자 와서 지금 5분 뒤에 예수님 재림합니다. 하면 결혼식 개판되어 버렸잖아요.

그게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고.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할 때에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 깨어있으라! 누가 결혼식 할 때 누가 주께서 오실 것 고대하는 자가 누가 있으며, 밭을 갈 때 밭을 갈면서도 시장에 가서 장날에 팔아야지 이것만 생각하지 밭을 갈면서도 지금 주님 재림하셔도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밭가는 사람 나와 보라고 그래. 밭 갈지 말라가 아닙니다. 결혼식 하지 말라가 아니고, 옛날 노아홍수도 마찬가지에요. 노아홍수 때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하지 말라, 설거지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주여, 이 세상 더러워서 못 살겠습니다. 빨리 좀 재림해 주세요. 라는 그런 고대하는 구름타고 오실 분을 고대하는 마음이 과연 그런 신앙이 누가 있었느냐? 이걸 묻는 겁니다.

제가 방금 하나님 말씀을 이야기했지만 참, 기가 찰, 아마 기존의 교회에서 이런 소리했으면 그 목사 사표 내야 돼요. 왜냐하면, 교인들이 교회 올 때는 이 세상의 확신과 소망을 포부를 희망을 추가해서 달라고 교회 오거든요. 돈 줘서 헌금했으니까 그만큼 그 이상으로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며 당신은 희망 있어. 잘만 하면 성공해. 라는 그런 희망과 기쁨과 비전을 얻기 위해서 왔는데 거기에 초쳐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부터는 다른 교회 가죠. 교회가 한 군데 밖에 없으면 괜찮은데 꼭 다른 데 간다니까.

상점에 그 마을에 하나가 있으면 불친절해도 억지로 오게 되어 있는데, 그 불친절한 상점 옆에 딴 상점이 생겨버리면 그 불친절한 상점 망해버립니다. 독점이 안돼요. 그래서 손님들, 교인들 하나 둘 다 빠져버리면 그 교회 장로님, 처음에는 목사님, 복음 전하니 좋습니다. 하다가 다 빠지고 헌금 빠져버리니까 목사님, 뭔가 목회 잘못 한 것 아닙니까? 나가주세요.

그럴 때 진짜 신앙적인 목사는 뭘 느낍니까? 교회 자체도 세상이고 소돔과 고모라의 연장이구나. 그거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면서, 그 목사 자체가 주여, 바로 이런 세상에 은근히 기대했던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내가 마치 괜찮은 목사라고 된 양 남한테 과시하고 싶어 했던 어떤 출세욕, 목회자로서의 출세욕, 세상 영광을 바라봤던 사도 바울, 예수님, 이런 것 전혀 안 바라보고 큰 교회 목사, 벤츠 굴리는 목사, 연봉 10억이 되는 그런 목사, 사택이 100평이 넘는 그런 목사를 은근히 시기질투하면서 부러워했던 내 죄를 내가 이렇게 목회 실패하게 하면서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무 소리하지 말아야지요.

그게 그래서 제가 어제 오후에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면, 제가 방금 이런 이야기해도 여러분한테 소용없습니다. 교인들도 귀에 안 들어가고, 우리교회 교인들도 귀에 안 들어갑니다. 내가 설교하면 다 알아요. 안 들어가는데 다만 제가 믿는 게 있어요. 성도라면 이 세상은 반드시 애굽이며 나는 반드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식으로 그 집안에 사건을 일으키는 거예요.

제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분란을 일으켜요. 그 집안과 신상에. 사건을 일으켜서 내가 굳이 목회하지 않더라도 주께서 알아서 목회하시는데, 목회 방향이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애굽이야. 니가 애굽을 너무 좋아했지? 좋아하다가 니, 혼났잖아. 애굽이야, 이제 알았어? 내 말씀대로 한 것은 취소되지 않아. 애굽이라면 애굽인 줄 알아. 몰랐어? 애굽이야. 그리고 너는 죄인이야. 알았어. 니가 자기 의, 소용없어. 너는 죄인이야. 라는 것을 깨닫는 식으로 주께서 폭탄 터트리듯이 폭탄 폭격하듯이 툭툭 사건을 만들어요.

그러면 목사는 뒷북쳐서, 거 보세요. 내 말이 맞잖아요. 목사님 말이 참 맞네요. 맞습니다. 하고 돌아서서 이틀 안 갑니다. 목사가 알아요. 이틀 가면 많이 간 거예요. 두 시간도 안 가요. 한 30초 은혜 받고 돌아서면 또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친구야, 만나자. 한 잔 해야겠다. 도저히 기분 나빠 안 되겠다. 목사는 목사대로 은혜 받고, 또 자기 성깔은 술로 풀고.

그래도 목사는 염려하면 안 돼. 왜냐하면, 그렇게 사건을 유발시킨 게 목사가 아니잖아요. 목사 기도해서 주여, 저 놈 망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서도 안 되고. 아예 악담을 해.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주께서 이렇게 좁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좁은 길로 인도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제 말을 오해해서 그러니까 매 맞기 전에 집이 네 채 있는데 세 채 팔고 교회 받쳐야지. 또 이렇게 나오는 사람이 있어요. 집이 네 채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아까 십자가에 돈을 못 받는 게 아니고, 집이 네 채 있던 다섯 채 있던 세상 한 채라도 노숙자라도 돈 좋아하게 되어 있어요. 노숙자 된다 해서 그 사람이 신앙 좋은 사람이 아니고. 세 채, 네 채 상관없이 나는 이 세상은 애굽이고 나는 죄인이다. 알면 그만 이에요.

이거 팔아서 교회 받치고 할 이유가 없다 이 말이지요. 이거 한다고 하나님께서 기특하다고 다시 보상해주고 그런 거 없어요. 하나님의 뜻은 떠나자! 이거에요. 잘 먹고 잘 살아라 이게 아니고, 떠나자 이거에요.

어디로 갑니까?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고 사기꾼도 없는 그 세계가 원래 세계인데 원래 천국인데 너는 잃어버렸다. 이제 고향으로 가야지. 니 시민권이 있는 곳으로 니 호적이 있는 곳으로 가야 될 것 아니냐? 니,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니,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뽑혀서 가자! 모두 털고 가자!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성경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그네'라고 합니다. 나그네는, 여기 애굽입니다. 애굽이 뭐냐 하면, 어려운 말인데, 애굽이란 성도를 나그네화 시키는 곳입니다. 이게 애굽이에요. 성경에서 구원이 뭐라고 했습니까? 애굽에서 벗어나야 구원 아닙니까? 그죠? 구약에 보면 애굽에서 벗어나서 무슨 땅? 약속의 땅. 약속의 땅에 가야 이게 자기 고향에 도착하는 것 아닙니까?

그럼 애굽을 무엇을 유발시키느냐 하면, 자기 하나님 백성으로 하여금 나그네로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것이 애굽이에요. 그러니까 애굽이 없으면 우리는 나그네인 줄 모르게 되죠. 참, 말이 이상하다. 하여튼 어색한데, 이 세상이 애굽이 될 때 그래야 우리가 나그네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나그네라는 것의 특징이 뭐냐? 나그네라고 할 때 딱 떠오르는 특징이 뭐냐 하면, 외롭다는 거죠. 참, 외로워요. 나그네 특징이 외롭습니다. 도와주는 사람, 친구도 없고 그래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제가 아까 세상 친구라 했는데, 제 말 또 오해해서 자꾸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세상 친구를 멀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친구를 붙여 주거든 하나님께서 전도하라고 붙여준 것으로 고맙게 여겨야지, 나는 예수 믿는다. 떨어져라. 이러면 아까 집 세 채 파는 것과 똑같은 사고방식,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상 친구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요. 붙드는데도 떨어져 나가요. 이게 미치는 기라. 세상 친구와 어울려서 2차, 3차 간다고 술 먹는다고. 니는 교회 다닌다고 술 안 먹지? 아니야, 나 교회 다녀도 술 먹어. 술 한 잔 더 먹을게. 근데 니가 술 먹는데 술 먹는 인상이 우리하고 인상이 다르다. 이상하게 니는 느낌이 달라. 자꾸 느낌이 다르데, 사고방식이 다르데. 저쪽이 먼저 알아요.

내가 교회 다닌다고 너하고 원수지간하고 그런 교인 아니다. 나는 이근호 목사한테 잘못 배웠는지 잘 배웠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이근호 목사는 그럴 필요 없다 하더라. 세상 친구라도 친하게 지내라 하더라.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그러니까 그거 아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상하게 너는 느낌이 달라. 우리하고 노는 동네가 다른 것 같아. 사고방식이 정신세계가 다른 것 같아. 저쪽에서 알아서 철수해 나가요. 환장하죠. 환장해.

이거는 집안 친척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서하고 관계가 이상하게 서먹서먹해지고, 벌써 대화하는데 끼어서 이야기해보면 분위기 싸늘해 돼있고. 요새 옷 샀는데 50만 원짜리 있는데 벌써 불쑥 튀어나와 하는 말이, 그 옷 좋아서 뭐 하는데? 이렇게 하면 분위기 싸늘해져버리고. 어떤 때 동서 아들, 서울대학 법대 들어가서 난리났다. 하면, 법대 들어간들 요새 취직되나? 분위기 이상하게 어색하게 만들어버리고. 새로 들어온 며느리, 가가 인물이 못나서 싫더라. 혼수도 적게 해오고. 인물이 못나도 사람 되면 되지. 그러면 분위기 이상하게 돼버리고.

세상적인 화려함, 사치, 이런 것과 전혀 관계없이 뭔가 딴 데를 지향하는 딴 데를 쳐다보고 사는 남들은 땅을 보는데 저는 달을 바라보는. 달의 우아함, 은은함, 그런 것, 뭔가 딴 세상 사람처럼 산다는 것을 저쪽에서도 감지하지요. 점차로 감지한다니까요.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가 누구냐고 마귀가 이야기해요. 마귀가 고백합니다. 너는 말이야. 니가 아무리 속여도 니는 내 편이야. 이 마귀 편이야. 사도 바울은 누구 편이라고? 예수 편이라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 편이라는 겁니다. 영적 세계에서 이미 다 눈치를 챕니다. 눈치를 채고 있어요.

좀더 깊이 나가 봅시다. 이왕에 깊이 나간 것, 이제는 나도 더 쉽게는 못합니다. 계속 깊이 나갑니다. 그렇다면 애굽에 있어서의 구원이라고 탈출이라면, 그냥 좋게 탈출하면 되는데 하나님께서 애굽사람들로 하여금 이 탈출해 나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천국 사람 되겠다 하는 사람 사이에 뭘 만드느냐 하면, 적을 만들어요. 적을 만들어버려요. 아까 제가 이야기 한 이상하게 분위기 썰렁해지고 저쪽에서 감지하는 뭔가 적이 되는 관계를 만들어요.

이것이 창세기 3장 15절 보면, 여자가의 후손 편 따로 있고, 뱀의 후손 편이 따로 있습니다. 그걸 한번 봅시다. 저도 이건 뭐, 수백 번 봤지만 볼 때마다 섬뜩해요. 제가 창세기 3장 15절 섬뜩한 이유를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지요.

제가 이 대목 볼 때마다 아니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섬뜩한 게 뭐냐 하면, 나의 행복이 여기 자리 잡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나의 편안함, 나의 편안한 여생이 여기는 포함이 안돼 있어요. 놀라운 사실은 뭐냐 하면, 나는 예수 믿고 행복해 하고 싶습니다. 라는 그러한 나의 요구사항이 이 본문 속에서 완전히 빠져 있어요.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전쟁을 벌이는데 내 요구조건 들어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고, 내 요구조건은 사실이 아니고, 진짜진짜 이 세상의 사실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상관없이 이 세상을 이미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 그것도 아담 이후에. 우리 조상 아담 이후에 누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든, 사람들이 인생이 무엇이냐 어떻게 정의를 내리든 상관없이 창세기 3장 15절에 의해서 모든 것이 종결된 상태. 그러니까 이미 종결이라는 말을 알겠습니까? 더 이상 변동이 없는, 이미 종결된 상태로 굳어져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우리는 섬뜩하다 이 말이죠.

제가 한 예를 들게요. 지금 버스를 타야 되는데 시간을 보니 지금 버스를 타야 시간 맞는데, 115번 버스를 타야 되는데 막 달려가는데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달려가는데 버스가 떠나버렸어요. 그러면 한 10분 또 지각하는 거예요. 그때 화나지요. 아이, 하나님께서는, 꼭 뭔가 하여튼 이해 안 되면 하나님 다 걸쳐요.

하나님께서는 좀 태워줘서 강의 시간 맞추면 될 텐데 무슨 뜻으로 왜 나를 차를 놓치게 합니까? 라고 할 때,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니 버스 놓친 것 하고 이미 상황이 종료된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이죠. 이미 버스를 놓친 것 하고 니가 여자의 후손에 속하고 저쪽은 뱀의 후손에 속한 것, 그 하나님이 실행하는 작업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말이죠.

니가 버스를 놓치지 않아야 되겠다는 사실은 뭐냐 하면, 니가 버스를 안 놓치면 강의시간에 맞춰 들어가죠. 맞춰 들어가면 강의자가, 하여튼 목사님은 시간은 잘 지켜. 그러면 그것이 나한테 자기의 의가 되서 옆에 마일리지가 쌓이지요. 목사님은 백 번이면 백 번 시간은 잘 지켜. 이게 나의 인격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그 목사는 인격이 좋아.

그런데 이게 누적이 되면 누적이 될수록 누가 억수로 좋아하느냐 하면, 뱀의 진영 쪽에서 그러니까 골리앗 쪽에서 되게 좋아하는 거예요. 뭐냐 하면, 골리앗 쪽에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여기 골리앗 쪽에 시간 대낄로 잘 지키는 사람 있는데 그쪽에 여자의 후손 쪽에 시간 되게 잘 지키는 목사 한번 나와 봐. 이근호 목사, 니 나와. 누가 시간 잘 지키는가 한 번 붙어보자. 그럼 이쪽에서 목사님 나가이소. 목사님 시간 잘 지키데. 강의 지금 백 시간했는데 한번도 안 어기고. 나가요. 저쪽에서 어이, 천 번 잘 지킨 사람 나와. 둘이 시간 누가 잘 지켰는지 누가 더 신사적인 사람인가 대결하잖아요.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 이길 때 누구 힘으로 이겼습니까? 다윗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골리앗 이마에 빈 칸을 놔두고 그 돌멩이가 여기에 박히도록 조치한 거예요. 그래서 다윗이 하는 말이 내가 이김은, 지금 살아계신 만군의 하나님의 이김이다 말이죠. 그러니까 어린아이라도 이길 수 있다. 그러니까 다윗이 어른 되어서 힘차게 돌릴 때가 아니라, 어린아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 골리앗을 이기도록 했어요.

이것은 결국 뭐냐? 지금 이 전쟁은 사람의 자질과 자질의 전쟁이 아니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과의 전쟁이라는 것을 연약한 소년을 통해서 아무 자질도 없는 능력도 없는 갑옷도 벗었어요. 갑옷 벗으면 완전히 노출된 겁니다. 이거는 위험에 노출된 것. 그런 인간을 세워서 하나님이 승리했지, 이 전쟁은 하나님에 속한 전쟁이지, 니가 너의 착한 누적된 마일리지 축적된 너의 착함과 훌륭한 인격에 누적된 그것으로 전쟁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죠.

그렇다면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스토리가 시나리오가 길어졌습니다만 다시 당겨보면, 다시 잘해봅시다. 버스 놓쳤습니다. 왜 놓쳤는가? 니는 시간 어겨도 마땅한 놈이냐, 너는. 그래 이번 어겨봐. 아마 욕 되게 얻어먹을 걸. 니, 욕 얻어 어도 싸야 돼. 목사님 우리 길게 기다리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이래야 돼요. 사실은. 백 번을 시간 지켰던 한번 어기면, 그것이 어긴 것이 내 본성이에요.

그러니까 죄 짓는 것이 나의 본성이지, 열 번 착한 일 한 것은 내 본성이 아닙니다. 혹시 착했다면 주님의 은혜지. 나의 본성은 십자가에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간음할 수밖에 없고, 살인할 수밖에 없고, 거짓말 잘하고.

지금 내가 목사니까 거짓말 적게 하죠. 만약에 직장생활 해 보세요. 사기 친다고. 이 정수기 먹으면 만병통치야. 아주 꼬시는데 저거. 이거 무이자 할부입니다. 뒤에 조건은 이야기 안 해 줘요. 처음에 계약금 바친 사람에 한해서, 이야기 안 해줘. 무조건 무이자 할부해놓고 나중에 글자 하나 돋보기 해도 안 보이게 써 놓고. 이래야 이 사회에서 ( ) 삽니다. 그 조직에서 살아남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지금 취직을 안했기 때문에 이렇게 큰소리치지만 내가 막상 지금 취직을 해야 될 판 같으면, 우리교회 헌금이 안 나와서 돈을 벌어야 할 건데 적자가 나서 안 되겠는데, 직장생활 한다면 또 이쪽으로 돌아가는 머리가 나쁜 곳에 또 안 돌아갈까요? 역시 잘 돌아간다니까. 기똥차게. 속이는 머리는 동일한 머리가 어디 갑니까? 변장을 잘하죠. 잘 할 거란 말이죠. 그쪽으로 또 잘 속아 넘어갈 겁니다. 속여서 할 겁니다. 주께서 그럴 때가 오시면 순종해서 취직해서 ....

단지 여기 목사할 때는 좋은 소리, 말씀하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는 의인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어서 주의해야 돼요. 그래서 내가 목사들이 제일 나쁜 점이 뭐냐? 자기는 가르치는 자고, 남들은 배워야한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죄, 고해성사하는 자에요. 교인들 앞에서. 뭘 가르쳐? 자기는 주의 종이고 어쩌구저쩌구. 내가 보면, 궁뎅이 차버리고 싶어. 옆에서 발길로 차버리고 싶어.

성경보세요. 가르치는 것은 성령께서 가르쳐요. 성령께서 가르치고 목사는 가르치는 자가 아닙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순간이에요. 말씀 보고 저, 목사인데 이 말씀 이렇게 죄 지었습니다. 고백하고 서면, 교인들이 그 고백에 동의합니다. 왜? 다 같은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아이고, 목사님은 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백하면 영광은 누구한테?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것뿐입니다. 가르치니까 돈 내라. 돈 바쳐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그건 무당이 하는 짓이에요.

오늘 137페이지, 세 째 줄 밖에 안 넘어갔는데, 이거 어떻게 영광 되는가? 한번 보면 이렇습니다. 철학자들은 신을 찾아가는데 혼자서 찾아가려하니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혼자서 찾아가면 이 신이 나만의 신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나만의 신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신에게서 선을 얻고자 힘을 합치게 돼요. 다수의 다수가 많이 모이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신이라는 그것에 점점 더 분명해진다. 라고 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돼요. 과학자가, 과학도 철학자거든요. 세 번을 실험했는데 딱딱 맞아 떨어지더라. 발표할까 말까 하는데 옆에 있다가 교수님. 왜? 한 열 번 더 하세요. 그래. 열 번 더 해야 되겠지. 나는 열세 번을 더 했습니다. 그러면 이건 진리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암을 억제하는 물질을 개발했다. 임상실험에 들어갑니다.

열세 번을 했다 하니까 어떤 회의 참석한 교수가 저, 김 박사. 예. 나는 56번 다 맞아떨어져서 발표하고 난 뒤에 나중에 임상실험에서 104번째에 아다리 되서 그 약 먹고 부작용 일어나서 1982년도에 나, 그 약 철수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 많아요. 김 박사, 당신 몇 번 했다고? 열세 번. 좀 더 하세요. 다 좋은데 당신 같이 그런 것 같으면 여기 50번 한 사람도 있는데, 그것 하지 말고 한 200번 더 하시고 발표하시면, 우리 과학협회에서 인정해 주겠습니다. 이렇게 되거든요. 이게 과학입니다.

과학은 철학에서 나왔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많이 해서 동일한 결과에 나오면 어디에 가깝다? 진리에 점점 가깝다는 거죠.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내가 아는 하나님하고 장로님이 아는 하나님하고 목사님이 아는 하나님하고 많이 모여서 많이 납득이 되면, 비로소 그 신은 참다운 신에 가깝다고 여기는 겁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래요.

예를 하나 들게요. 십일조해서 복 받은 사람이 우리교회에 많습니다. 목사가 그런 소리했어요. 십일조해서 복 받은, 십일조하기 전에는 복이 없었는데, 십일조를 하고 난 뒤에 십의 일을 내고 난 뒤에는 복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할 때 어떤 교인이 있다가 목사님, 신약에는 십일조 하는 것도 없고, 그것도 문제지만 십일조 없는데도 하자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목사님이 생각하는 복이라는 것이 에베소서 1장에 나오는 그 복과 다른데 ....

에베소서 1장의 복이 뭐냐 하면, 죽어도 천당 가는 복이에요. 예를 들어서 고린도전서 같으면 사도 바울의 복이 뭔지 압니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아직도 살아있다는 게 복이에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이 뭐냐 하면, 내가 세상 철학을 전하는 게 아니고, 지금 예수님 살아계십니다. 예수님 곧장 재림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피가 여러분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런 말을 남한테 사랑으로 전할 수 있는 그런 사명, 그런 직분을 준 자체가 나한테 상이고 복입니다. 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강도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굶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면서, 자기 아프니까 기도했어요. 하나님 아버지, 진짜 하나님 살아계시니까. 하나님과 대화를 했어요. 아버지, 또 하나님, 주님이여, 제가 지금 몸 아픈 게 보이잖아요. 왜 좀 병 낫게 하면 더 복음 전할 건데. 왜 안 합니까? 세 번 기도했어요. 응답이 나왔어요. 어이, 그 은혜가 너한테 좋다. 니 족하다. 너 지금 아파야 니 약함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하는 것이 남들한테는 약한데서 강함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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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