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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06 서울 경기(의존교회) 영화 1-3강의예레미야

Re..06 서울 경기(의존교회) 영화 1-3

이름 : 이장우(IP:)

06 서울 경기(의존교회) 영화 1-3

06. 2. 13 강의 이근호목사

세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독생자의 영광이란 것이 사람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는, 정말 싫어버린 바 될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바와 전혀 상관없이 정말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그런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누구도 내 능력으로 메시아를 알아보았다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나는 내 능력으로 메시아를 알아보았다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도록, 자기 능력으로 구원받았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도록, 그 능력과 일치되지 않도록 그렇게 활동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를 이번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에, 예수님이 바깥에서 하시는 일을 듣고 세례요한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엄청난 벼락처럼 분노와 저주로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구약의 숱한 선지자들이 예언하기를 메시아가 오게 되면 세상이 불바다가 된다는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집어 진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에 보면 인자가 올 때에 구름을 타고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구름타고 다니는 이야기를 알지요! 옛날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손오공,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구름을 타고 돌아다닌다는데 구름이란 수중기가 응축이 된 것입니다. 먼지와 더불어서 수중기가 약간 얼은 것이 구름인데 그 구름에 80킬로 나가는 사람이 탔다고 합시다. 그러면 꺼집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칭 믿음이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구름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인가 아닌가를 무엇으로 확인을 하는 것입니까? 구름을 타고 오시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면 메시아이고 구름을 타고오지 않으면 메시아가 아닌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내었기 때문에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100% 맞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구름만 타고 오너라! 구름만 타고 오면 할렐루야 노래 부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오실 때에 구름타고 오셨습니까?

또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보니 메시아가 하늘로 올라갈 때는 불 수레 타고 올라간다고 그래서 말라기라는 마지막 예언서를 보니 장차 엘리야가 온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올 때는 구름타고 오시고 가까이 와서는 불 수레 타고 오겠지요! 또 갈 때에는 불 수레 타고 가기도 하겠지요! 엘리야이니까! 불 수레만 타고 오면 메시아로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실 메시아는 엘리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불 수레타고 왔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혼도 안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짐승이 태어날 더럽고 지저분한 자리에 태어났습니다. 그 지저분한 자리에어 태어난 아기 예수를 사람의 능력으로 찾아간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안경 낀 학생!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사람이 자산의 능력으로 찾아간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몰라요? 모르면서 왜 까부나? ㅎㅎ 없었어요! 그러면 동방박사는 무엇을 보고 왔습니까? 박사니까 논문 써서 왔습니까? 박사니까 사전에 공부한 것이 많아서 찾아왔습니까?

동방박사는 별을 따라 왔습니다. 이것이 또 골칫거리입니다. 별이 지구로부터 몇 만 년 광년 떨어졌습니까? 별이 예루살렘 가까이 왔다가 예루살렘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날 때는 다시 별이 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별이 어디에 멈추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의 어느 구유가 있는 곳 위에 올라선 것입니다.

별이 도대체 직경 몇 미터가 되어야 올라서게 됩니까? 그것도 좁은 지역을 제한적으로 딱 찍어서 여기야 라고 할 정도라면 그것이 별인지 부킹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아이들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요! 이 동네 복잡한 동네인데 어느 집을 정확하게 이야기 해 줄려면 별이 어느 정도의 크기여야 합니까? 조그마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야 헷갈리지 않을 것입니다.

딱 그 지붕에 표시가 날 정도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게 별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간에 동방박사는 신기하게 그 별 따라 왔습니다. 그리고 그 동방박사 보다 앞에 아기 예수를 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보았겠습니까?

역시 아닙니다. 목동들이 밤에 양을 지키고 있을 때에 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면서 천사들이 와서 찬송 부르면서 무어라고 하는가 하면 지금 베들레헴 어느 집의 구유에 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아기가 태어났을 것인데 그 아기가 너희를 구원할 약속된 메시아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이 아기예수에게 갔을 때에 아기예수에게 무슨 후광이라든가 빛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만약에 있었다면 자기 힘으로 찾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보통 아기입니다. 목자가 정확하게 어느 집에 가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알았지 그냥 놔두었으면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산부인가에 아기가 백 명이 있으면 그 중에 누가 누구인지 찾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못 찾지요! 다시 말해서 아기 예수는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찾을 수 없는데 바로 저 분이 메시아라고 알려주는 것은 성령님이 임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이 임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33살 먹은 청년이 이 땅에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남자들은 33살 먹은 청년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은 사람도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다가 죽었습니다. 수 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 세상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었는데 그 중에 메시아가 섞여있습니다. 그 섞인 메시아를 찾아내기란 보물찾기보다 어렵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나라마다 메시아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필리핀에서는 필리핀의 메시아를 이야기 할 것이고, 중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의 메시아를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메시아는 중국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 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나사렛 예수 그분이 바로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분 외에 다른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 분외에 다른 사람이 흘린 피는 우리의 죄를 씻을 수가 없지만 그 분의 피만이 새 언약의 피로서 우리의 죄가 용서될 수 있는 피라고 꼭 찍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오셔야 믿을 수가 있지 사람의 능력으로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 하는 것은, 세례요한이 말하기를 당신이 오실 메시아가 맞습니까? 잠시 세례요한도 무언가 몰라서가 아니라 확인하는 차원에서 분명히 하기 위하여 질문한 것입니다. 그 당시의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분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세상이 뒤집어지고, 세상이 멸망당하고, 나쁜 사람은 다 지옥에 가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이 조용하니 진짜 당신이 오실 메시아가 맞습니까? 한 것입니다.

잘 들어보세요! 오늘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절름발이가 걷고 봉사가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면 바로 내가 메시아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어냐 하면,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바뀌는가 하면 죄인이 의인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좀 어려운데 설명이 좀 필요합니다.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병자를 낫게 하여 준다고 하니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메고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것만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병자를 낫게 하면서 예수님은 병자를 낫게 하는 분이 아니라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데 그것이 무어냐 하면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죄 용서하는 권세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어떤 의도로 왔든지 간에 그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병이 낫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도 하지 않았던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너무 이상해서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병 고침을 받는 것과 죄 사함 받는 것이 어느 것이 중요하느냐는 것입니다. 너는 너의 의도로 왔지만 나는 너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하여 너를 사용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잘난 체 하려고 금식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은 술집에 가셔서 소주나 맥주를 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늘 그러신 것이 아니니 따라하지 마세요! 그 당시 사람들은 우리가 모든 사람들이 금식하면서 신의 자비를 구하려고 마음을 낮추는 이 판국에 저 예수라는 작자는 분위기 파악도 되지 않은 채 못 된 인간들과 함께 술을 즐기고 있을 수가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너희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 세상에 어떤 일 때문에 왔는지를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하신 것임을 알리신 것입니다. 여러분 의사는 누구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의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병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들이 죄인들이기에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아무른 대가없이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이 법칙은 어떤 법칙인가 하면, 이것이 내 시대, 새로운 시대의 적용되는 구원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방식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날 방식은 내가 착하면 내가 구원받는다는 방식입니다. 그 방식을 예수님께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착하면 착한대로 구원한다는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방식이 아닙니다. 새로운 방식입니다. 자신의 공로로 상대방을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로마서에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정결치 아니한 자가 의롭다 함을 받으며, 불법을 행하는 자가 행한 일이 없이 용서 받은 행복을 네가 아느냐고 합니다. 불법을 행한 자, 하나님의 법을 어긴 자가 나중에 보니 용서 받은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달라진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네가 행복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는 사실에 행복해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이것이 바로 행함이 아니고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독생자의 영광이 겉으로는 초라합니다. 비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면서 외면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초라함과 비참함 속에 무엇이 들어있겠습니까? 그 안에 거저 구원하시는 능력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교회 집사님의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제가 못 보든 요리가 나왔습니다. 그 사모님 요리가 대단하신데 어떤 요리가 나왔는가 하면 길쭉한 소고기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길쭉하게 되었는가 하니 우엉에다가 소고기를 외부에 감싸서 코팅한 요리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소고기인데 안에는 우엉인 것입니다.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만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작전이 바로 저 작전이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보고 좁은 길로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로 가는 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망하는 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좁은 길은 살짝 코팅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에는 생명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보 등신 같은 인간들은 멸망 길 인줄도 모르고 넓은 길로 넓은 길로만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넓은 길을 왜 좋아하는가 하면, 넓은 길은 아스팔트가 깔려져 있는 것입니다. 고속도로인 것입니다. 그런데 좁은 길은 미친놈이 아니면 못 가는 길, 정신병자가 아니면 못 가는 험하고 험한 길입니다.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길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못 가는 길이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좁은 길에 생명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넓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망하는 자는 많은 반면에 생명의 길은 소수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설적인 행위를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제가 독생자의 영광을 두 번째 시간에 초라하다는데 초점을 둔 반면에 이 마지막 세 번째 시간에는 독생자의 영광을 초라한 껍데기 말고 알맹이에 대하여 제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알맹이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면 죄인도 거저 용서하시는 주님의 용서가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거저 주시는 용서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위해서 주님께서 바깥에 무엇을 깔아 두었는가 하면, 인간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율법보다 더 센 율법을 깔아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산상설교입니다. 율법보다 더 센 율법입니다.

오른 손이 범죄 하면 찍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옛날 초대교회 때에 바보 등신같이 자기 오른 손이 범죄 하였다고 오른 손을 찍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왼 손이 수상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맹세하기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의 어떤 맹세도 장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래의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미리 계획 잡으신 대로 갈 뿐이지 네가 맹세한다고 해서 어이구 착하구나! 너는 여기에 넣어줄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려운데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면, 맹세를 저는 안하겠습니다. 하는 차원에서 예 하고 아니요 하라는 것입니다. 맹세 하겠다고 해 놓고 예 하거나 아니요 하게 되면, 일단 맹세를 해 놓고서 내가 무엇을 해야 맹세가 이루어지지! 예 할 것은 예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제 아들만 서울 대에 합격을 하면 제가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맹세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보니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나의 맹세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면 내 아들이 서울 대에 가겠지! 라는 것을 노리게 됩니다.

이것이 반칙이라는 것입니다.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는 말씀은 너는 맹세할 그런 자격도 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장래는 네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드시는 장래가 너에게 덧붙여지고 덧붙여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입니까? 그냥 가는 것이지요! 어제 목사님과 밥 먹다가 한 이야기인데 사람은 원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떠밀려서 가는 것입니다. 떠밀려서가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다가 어떤 할머니가 배가 기우뚱해서 물에 빠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뛰어들어서 할머니를 구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당신은 신사도가 대단하군요! 어떻게 그럴 마음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이 씨~ 누가 날 떠밀었어!

우리는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는 조건들이 나를 떠밀어서 지금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도종환 이라는 시인의 시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낸 유명한 시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은 이 길 말고 다른 길이 있었다. 이 길은 내가 원치 않는 길이었다. 하지만 원치 않는 길로 가고 있다는 이것이 나에게 중요하다.

내가 원치 않는 길로 가고 있지만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원해서가 아니라 강요된 선택인 것입니다. 이 강요된 선택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맹세 해보았자 괜히 스트레스만 받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제 경우의 이야기를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저는 틈만 나면 책을 보고 공부를 합니다. 이제 슬슬 맛이 가지요! 조금 했다고 교만의 본성을 드러내지요! 그 뒤의 말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제가 틈만 나면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이유가 나중에 책을 보고 싶고 공부하고 싶어도 남들 때문에 바빠서 책 못 볼 시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참 도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유 있다고 마냥 여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약간 빈틈이 있으면 그것이 찬스입니다.

그래서 그 찬스를 이용하여 공부를 하고 나면 이상하게 심방이라든지 음식쓰레기를 버리라든지 이상하게 어떤 지시가 날아오는 것입니다. 처갓집에 김 갖다 주라는 이런 것, 만약에 내가 여유 있다고 오랜만에 한가하구나! 이렇게 한다면 그날 책 한자도 못 보고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성경에 보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돈이 되든지 안 되든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이 운명이 내가 닦아 놓은 것이 아니고 좁은 길로 주님께서 미시는 대로 밀리다 보면 결국 도착한 곳은 그 끝은 생명이요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장담합니까? 예수님의 경우를 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밉상 받고 버림받고 억울하게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부활이었습니다. 어제부터 계속 부활이야기를 하는데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가시는 코스만 부활로 통하는 코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립보서 3장 10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증거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부활의 코스가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코스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십자가의 코스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코스입니다. 나는 죄인이며 주님의 공로로만 구원받는다는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죄는 예수님이 다 가져간다는 것을, 얼마든지 죄를 지어도 그분이 다 가져간다는 것을 아는 코스가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코스로 가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루지 못하는 말씀만 성경 전체에 다 깔아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말씀도 우리 힘으로 못 지키고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달아서 스스로 의인이 되려는 부담감에서 해방시키시기 까지 하십니다.

제일 나쁜 놈이 어떤 놈인가 하면, 놈이라고 해서 그렇지만 제일 나쁜 놈은 자기가 착하게 되려고 하는 자입니다. 참 이런 말하기 위하여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나 보다! 착하게 되고자 하는 자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모독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의 대신에 자기의 착한 의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 탔는데 병든 할머니가 탔는데 아무도 일어서니 않는데 자신이 일어서서 양보를 하였다. 그러면 갑자기 밀려오는 생각이 나는 왜 이래 대견해! 나는 교회 다니면서 인간 되었구나!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보다 더 착하겠구나! 아! 나는 왜 이리 착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일어서면서 정신이 없는지 만 원짜리를 흘린 것입니다. 그때 얼른 주워서 할머니에게 드리면 오늘 곱빼기로 착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두리번거리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세 번째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착한 일을 찾다가 자기 팔로 다른 사람의 옆구리를 치게 되면 착한 일에서 하나를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착하기 때문에 더 착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그 사람이 죄인이라는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이라는 사실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자기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감사가 멀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감사가 아니라 초조감이 밀려옵니다. 더 착해야지, 어제는 세 번 밖에 못했는데 오늘은 네 번 착해져야지!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 감사가 아니라 만약 어떤 인간도 나의 착함을 건드리는 인간이 있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주간 내내 455번 착한 일 해가지고 교회 왔는데, 목사님께서 설교하시기를 여러분들이여 우리 중에 아무도 의인이 없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다 용서하셨기에 의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쁘시지요!

그러자 그 교인이 화가 나서 착한 사람여기 있는데 왜 그래요! 목사님이 그렇게 설교를 하니 교인들이 착하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복음을 전하였는데 복음 전한 목사님은 그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나쁜 사람으로 배척을 받는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고 그 인간은 바로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악마의 화신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그 편안함과 가벼움은 돈 몇 십억을 주고도 바꾸지 않습니다. 정말 편합니다. 속청수 먹고 가스명수 먹어도 안 됩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그 순간보다 더 편한 것은 없습니다. 정말 편합니다.

아이들이 수학 시험을 쳤는데 0점을 맞았다. 집에 가면 어머니한데 매를 맞을 텐데 어떻게 말할까? 평소에 20점을 맞는데 문제가 잘못 나와서 0점을 맞았기에 다음 칠 때는 30점이 되겠다고 할까? 그러지 마시고 어머니 원래 제가 0점이었습니다. 지난번에 20점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되면, 맞아 이제야 내 본 모습을 찾았구나! 왜 그동안 전에 20점 맞았을 때에 감사하지 못하였던가! 이제 범사에 감사해야지! 이제 더 낮아질 때도 없으니 한문제만 맞아도 감사해야지! 그러니 시험 치르기 전에 감사하지 마시고 시험 치르고 난 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든 결과가 항상 나의 행위의 결과로 되는 것 인줄 알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코스 안에서 거저 주시는 은혜가 현재의 나의 인생의 길을 이런 식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소록소록 사건 사건을 통해서 맛보는 것입니다.

우리 전체의 소유권을 주님께서 거저 가져가셔서 용서하신다는, 그것이 주님의 전문분야이며 할일이기에 우리가 스스로 용서를 받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저 용서 받은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독생자의 영광을 빛내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독생자의 영광을 빛내어야 합니다. 독생자의 영광을 하늘나라에 신이 계신다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사기꾼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진정으로 자기가 죄인 됨을 안다면 세상의 영광이 가득함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영광이 이제는 죄인마저 십자가의 피로 용성하시는 그 영광으로 나타났다는 이것을 아신다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굴욕과 어떠한 비난과 어떠한 모욕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껍데기는 후패하여 지지만 속에는 독생자의 영광이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독생자의 영광! 죄 많은 나를 대속하신 그 주님의 용서가 여러분의 본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하늘에 그냥 계신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냥 계시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내 살과 떡을 먹으라는 이유를 이제 알았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한 것은 주님의 살과 피 이며
그것이 우리의 본질을 구성하여야 된다는 것을 이제 알았사오니
잘난 체 하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자랑하는
그러한 피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녹취 060718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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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 우리교회 Re..계 3:20-22(더불어 먹고)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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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 우리교회 Re..전 3: 12-15 (선 물) 전도서 최고관리자 0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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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7 설교 요한계시록 3:17-19 (계 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7-16
2,596 우리교회 Re..계 3:17-19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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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