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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060704b.c 무엇이 현실인가?(2)강의로마서

Re..060704b.c 무엇이 현실인가?(2)

이름 : 한윤범(IP:)

20060704b, c 부산강의-무엇이 현실인가?(2)
(강의:이근호 목사)

조금 참으세요. 간단한 두 번째 시간인데.

바벨탑있지요. 바벨탑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가 됐다. 이제 우리끼리 살아도 된다는 것을 근거를 뭐로 잡느냐 하면, 언어로 잡아요. 그러면 인간을 공격하면서 뭘 공격하느냐 하면, 언어를 분리시키면 언어가 다 깨지면서 그 다음에 뭐냐 하면, 서로가, 서로가 적이 돼요. 언어 다름이 언어 다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싸움이 되는데 왜 그러냐 하면, 언어 자체가 뭐가 담겨 있기 때문에? 권력이 담겨 있거든요. 권력은 주체를 만들어냅니다.

내가 쓰는 언어가 주체가 될 때 이것은 다른 쪽을 종속해야 돼요. 이게 폭력입니다. 이것이 악마의 폭력성이 등장하는 거예요. 가인의 후예가 재판되는 거예요. 뭘 통해서? 문자와 언어를 통해서. 그래서 그걸 언어를 해놓고 언어가 아닌 걸로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언약 보냅니다.

언약은 언어가 아니에요. 뭐냐? 몸이에요.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받아요.

조금 더 이야기할게요. 아비멜렉 추장있지요. 한번 물어볼게요. 아비멜렉 추장이 아브라함 만나기 전에 애 잘 낳습니까, 못 낳습니까? 잘 낳지요. 그걸 축복이라고 보겠습니까, 안 보겠습니까? 안 봤어요. 그냥 정상적으로 애 낳는지 알았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개입하니까 갑자기 태가 닫히고 애 못 낳지요. 다시 아브라함이 기도하니까 잘 들어보세요. 아브라함의 기도죠. 아브라함의 몸이 등장하니까 다시 태가 열리고 애 낳지요. 그럼 그전에 애 낳은 것은 무슨 언약이에요? 노아언약이에요. 아브라함이 개입하는 것은 그전에 있던 노아언약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브라함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에요.

예수님께서 우리가 흔히 사기꾼들, 나쁜 놈들, 안 죽는다고 귀신이 안 잡아가느냐고 우리 불평하지요. 예수님이 십자가 지심으로 말미암아 왜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비를 내리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노아언약은 개인의 잘잘못을 묻지 않고 하나님의 일방적인 자기 맹세로 인하여 주어지는데 그 맹세가 뭐냐? 은혜의 주체가 등장할 때까지만 그렇습니다. 은혜의 주체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 등장하고 재림할 때 하면 노아언약은 끝이고 세상은 불로 멸망 받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도의 존재는 뭐냐 하면, 노아언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이야기해서 새언약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가 등장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나쁜 놈들이 우리를 공격하려 할 때 저런 나쁜 놈들도 지금 노아언약 속에 은총을 받고 있는 놈이라고 수용을 할 때 환난 중에 인내가 나오는 겁니다.

세 번째 시간.

이 문자에서 문자 하나하나가 권력이 들어가야 됩니다. 그걸 제가 아까 모세시대 했거든요. 모세시대 문자는 백성을 깨고 모세 자신을 지적하는 문자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몸과 몸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은 뭐를 빠뜨리느냐? 은혜와 긍휼이 빠진 채로 그냥 십계명이란 문자만 그들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아, 나를 살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아니 하나님이 육 살려서 뭐 할 건데요? 육 살릴 거 같으면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죽이는 겁니다.

로마서 3장에 있는 것처럼 모든 율법은 우리를 죽이고 그냥 죽이는 게 아니고, 우리를 심판 아래 두게 하신 죽음이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죽을 죄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기 삶의 입장에서 사람이 문자를 사용하니까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결국 살아있어야 문자가 해독되잖아요. 내가 죽어버리면 문자도 소용없잖아요. 내가 나를 살리는 문자로 이해하게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은. 그런 오해가 바리새인까지 계속 됩니다. 물론 오늘날까지 계속 되지요.

모세시대의 문자는 이게 깨어졌다는 데 의미를 두고 행하라. 이 십계명이. 십계명은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십계명이 누구 때문에 깨졌다? 너희들 때문에 깨어져서 그 십계명은 캄캄한 상자 속에 갇혀서 그걸 누가 지킨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보혈의 피가 하나님의 거룩한 희생의 피가 그러니까 이게 닫아둬야 폭발 안 하지, 만약에 피가 폭발해버리면 다 죽어 버린다 이 말이지요.

이 말은 뭐냐? 죽어야 될 인간과 함께 동행하는 하나님이에요. 진작 죽어야 될 인간과 함께 동행하는 하나님, 모세언약인데 사람들은 문자시대에 이미 돌입했기 때문에 그 당시 문자시대기 때문에, 문자라 하는 것은 아까 제가 바벨탑 이야기했지요. 바벨탑이야기의 문자는 단합하는 결집하는 인간과 인간이 의사소통해서 두 가지 생각이 하나의 생각으로 결집하는데 그냥 뭉쳐지는 게 아니고 이게 정치적 타협을 거쳐서 뭉쳐집니다.

예를 들면 소돔과 고모라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있었지요. 롯이 천사를 만날 때는 그냥 온 몸으로 알아봤어요. 그런데 장인어른 롯이 사위들에게 문자로 전하지요. 문자로 전하니까 농담으로 여겼지요. 자기 온 몸으로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단 말이죠. 그러면 사위들은 천사들은 직접 안 만나서 그렇다. 아닙니다. 직접 만났던 사람도 소금기둥 되었습니다. 누구냐 하면, 롯의 처 같은 경우에는 직접 영접했는데 만나도 그 사람의 말은 온 몸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그냥 문자로 다가오는 거예요. 근데 그 의사소통에서는 자기의 갖고 있는 몸이 거부해 버렸으니까 소통이 되지 않은 거죠. 결국 믿지 않고 가버린 겁니다.

성경 오랜만에 찾아봅시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으니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등불과 샛별의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뭐냐 하면, 샛별은 우리가 떠라, 떠라 한다고 뜨는 게 아니고 그냥 우리가 뜨기 전에 이미 준비된 별이죠. 다만 장막만 걷혀버리면 떠오르잖아요. 내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떠라, 떠라 내가 주문해서 떠오르는 게 아니고 옛날부터 그전까지 있었는데 비로소 밝은 별이다 의미가 샛별이에요.

그런데 의미는, 시편 18편 28절 봅시다.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보세요. 이게 기억세대 아닙니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고 누구 몸이에요? 하나님 지 마음대로 다루는 몸이에요. 나를 뭐냐 호롱불 담아놓는 등불 켜 놓는 뭡니까? 과거로, 과거. 과거로 보고 살아가는 거예요. 지 마음대로 불 켜. 내 허락도 안 받고. 불 켜자. 아이고, 이제 밝지? 어두운데 등불을 켜버린단 말이에요.

오늘 이 시대에 베드로후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장에. 그냥 등불 켜버려요. 켜버리면 내 몸이 아아, 그때 시내산에서 봤던 그 영광, 주님의 영광이 있구나. 아는 거예요. 그게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보면 뭐냐 하면, "복음의 광채가 비취"인다 그러죠.

복음의 광채란 말을 할 때는 참, 이 표현 같은 것이 설교할 때 해석할 때 어려운데 복음의 광채가 비춘다 하니까 사라들이 그 느낌이 안 오는 이유가 자기가 이미 밝다고 생각하니까 밝혀봐야 안 밝잖아요. 복음의 광채가.

깜깜해야 돼요. 다른 말로 하면 비참해야 돼요.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 비참해야 돼요. 비참할 때 비로소 광채가 빛 값을 하죠. 찬란하게 비추잖아요. 자기가 형편 무인지경이 돼야 진짜 이거는 사는 게 아니고, 거지 나사로가 대표적인 거 아닙니까? 개가 와서 핥고 다니고 자기는 거지고. 이거는 말할 수 없는데 자기는 말할 수 없이 기쁘죠. 왜냐? 주께서 스위치를 켜니까. 스데반집사도 마찬가지. 돌에 맞는 그런 형편없는 상황에서도 스위치 켜버리니까 누가 보입니까? 주님이 보이죠.

-그런데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다” 할 때에 ‘이것’이 문자입니까? 문자로 볼 때에 등불이 또는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

당연히 문자지요. 왜냐? 그 문자는 오직 빛이 있는 사람만 이해되는 문자지요. 아까 했는데 왜 문자로 오느냐 하면, 문자시대기 때문에 그래요. 왜 문자로 와야 되느냐 하면, 우리 몸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덮치는 식으로 주께서는 계시하십니다.

문자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이미 벌써 맛이 갔다는 거예요. 이 땅에 산다는 자체가 맛이 간 거예요. 보세요. 에덴동산에 사는 그때보다 이 땅에 추방당했다는 나가라, 이놈아. 문 걸어 잠갔다는 것은 문제 있다는 거예요. 가인보세요. 가인이 뭘 드립니까? 제사 드리니까 안 받잖아요. 안 받는다고요. 괜히 설쳐 보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재미있는 것이 아벨도 안 받으면 되는데 아벨을 일부러 받아버려요. 가인이 갑자기 안색이 싹 변하면서 니 제사하고 내 제사하고 차이나나? 해서 뿔다구나서 죽여 버려요. 이것은 뭐냐 하면, 인간이 한 성깔한다는 거예요. 전부다 한 성깔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깔을 뒤집히고 성깔을 이렇게 건드리시는 분이 누구냐? 주님께서 그렇게 건드리게 해요. 그래서 동생은 죽어버리고. 그냥 살다가 제사 잘 드리고 죽어버렸어요.

문자라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면 안 됩니다. 문자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총신에 김지찬 교수 밖에 없어요. 거 뭐, 자랑스러워. 문자 사랑하는 거. 문자 사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되고. 세상에, 성경에 보면, 천국에는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다 했어요.

이게 시편 19편에 보면 자연세계가 언어가 없다 했는데. 뭐, 인간이 하나님 형상을 받은 증거가 뭐라고요? 직립보행에다 불을 사용, 손에 도구, 언어사용. 언어사용이 하나님 형상이라고? 박윤선, 박형룡, 어느 주석자, 이상근, 전부다 이렇게 다 이야기해요. 칼 바르트는 몰라. 하나님 관계란 모호한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부다 한 거예요.

사람이 문자로 하게 되면 권력이 형성되고 권력이 모이면 주체가 됩니다. 이거 또 어려운 이야기에요. 권력이 모여서 주체가 됩니다. 군대 쫄다구들 주체 없습니다. 왜 없는 줄 알아요? 계급이 낮거든. 군대 쫄다구들 주체가 없습니다. 권력이 없거든. 교회 처음 나온 사람들, 입 다물고 가만있습니다. 목사가 무슨 짓을 해도 입 다물고 있어요. 그런데 장로 쯤 되면 그 다음부터 한 소리합니다. 왜? 권력이 있다 이거지.

그래서 주체가 있으면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또는 사회는, 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씽이라 했지요. thing, 뭡니까? 그것. 이 그것이라 하는 것을 규정할 때는 질료로 하는 것은 인간의 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형상이 중요한데, 왜 질료란 말을 사용하느냐 하면, 인간은 나중에 흙 되잖아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생물학자니까 가만히 관찰해보니까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지가 죽어버린다 말이죠. 뼈다귀 되더란 말이죠. 뼈다귀 보고 인간이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지 흙이 인간은 아니잖아요. 그럼 흙 밟고 다니면 인간 면상 밟고 다니는 겁니까?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다움은 재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어디에 있다? 형상으로 결정 나는 것이다. 형상의 차이로 결정 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형상이라 하는 것은 네 형상, 내 형상, 따로 구분되어야 되니까 구분 지을 때마다 하나하나 무엇이냐 묻는 거예요. 지금 아리스토텔레스는 니가 어떤 인간이냐 할 때 니가 무엇이냐 할 때는 이 기준이 있습니다. 역시 플라톤에게 배워서 선배들한테 문자를 배워서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선이에요. 선.

오래 살면 착한 사람이고 일찍 죽으면 나쁜 놈이죠. 왜냐하면 오래 산다는 것은 오래 존재하잖아요. 존재가 길면 그만큼 선이 길어지는 겁니다. 이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자기 스승으로부터 다 탈피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요.

그런데 선으로 말미암은 이 형상, 존재의 가치는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함, 선함의 몇 가지 가치가 있어요. 선함이라 하는 것은 최고의 선인데 이게 뭐냐 하면, 도덕적인 가치도 있지만 그 다음에 지식의 가치도 있고 그 다음에 뭐냐 하면, 아름다움. 아름다움인데 사실은 진중권 씨 같은 경우에는 도덕이나 진리보다도 아름다움.

이걸 뭐라 하느냐 하면, 조화라 하고 이걸 피타고라스는 비례라고 합니다. 우주, 코스모스는 모든 것이 하나의 비례, 적당한 비례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계산을 했어요. 어떤 때 미인이냐? 눈과 입의 비율은 몇 대 몇, 키가 몇 대 몇. 그렇다면 짧은 사람은 뚱뚱한 사람은 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선하게 바꿔서 살을 빼줘야 보다 선한 그 본질에 가깝게 성화되는 겁니다. 만약 그냥 쌍꺼풀 수술 .... 아름다워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김용옥 같은 경우에는 도덕과 진리보다도 지식보다도 아름다움을 이건 철학가들 대부분 특징이 그래요. 상당히 시인과 예술가들을 존경합니다. 예술가들은 뮤토스라고 해서 신화적 존재들이에요. 감정을 느껴야 된다. 이거 우리가 공부 많이 했지요. 많이 빠졌지만 공부 많이 했잖아요. 그냥 감정이고.

뮤토스 말고 학자들은 뭘 따진다? 로고스. 따지는 거예요. 근데 따져봤자 따지는 게 정상이다? 따지는 게 우선입니까, 느끼는 게 우선입니까? 느끼는 게 우선이라는 하는 디오니소스. 그런 존재로 해서 니체와 오늘날 들뢰즈까지. 심지어 오늘날 모든 철학들은 다 들뢰즈 쪽에 다 빠져버려요. 니체 쪽에 다 빠져요. 역시 꼴리는 대로 사는 게 최고다. 김용옥 교수도 꼴리는 대로 사는 게 최고다. 따져봤자 피곤하다.

이게 현재 라캉, 프로이드 같은 경우에는 무의식에서 오는 리비도, 성적인 욕망을 누가 막느냐? 이 말이죠. 다만 그걸 사회적 질서 때문에, 문자적 질서 때문에 억제하다 보니까 스트레스 쌓이는데 스트레스는 노래방에 가서 술로 풀면 된다. 이렇게 돼요.

지금 그게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했죠. 지금은 어떤 시대? 포스트휴먼 시대. 그렇게 따지고 억제도 귀찮다 이 말이죠. 욕망이 있느냐, 없느냐 따지기도 싫고 나는 그냥 욕망이 없는 죽은 시체가 될래. 그걸 무슨 놀이? 시체놀이라 해요. 요새 시체놀이가 최고에요. 방콕이에요. 방콕세대. 방에 콕 들어 앉아 박히는 거. 월드컵하면 월드컵만 보고, 골프하면 골프만 보고 집에 들어앉는 게 최고에요. 하다가 기분 나쁘면 사건 일으켜서 길바닥에 나가 데모해버리고 사건 주목 받아서 또 사건 일으키고. 또 점멸. 그러니까 점멸, 사라지고.

그런데 형상을 할 때 이 형상이 주체가 등장하죠. 주체는 뭐가 있다고 했습니까? 권력이 있어야 되죠. 권력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옛날에 권력이라 하는 것은 이미 문자를 해독을 갖고 있는 사람이 권력을 다 쥐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문자가 있어야 질서가 잡히거든요. 그러면 질서에 관여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귀족들과 그리고 성직자들과 그리고 기사계급이었습니다. 땅에 대해서 산다는.

따라서 그 사람들이 지금 권력 없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주체지요. 그래서 호스트 같은 사람은 주체를 그냥 놔두면 서로 잘났다고 싸우니까 왕초, 최고 왕초의 주체에 모든 주체를 권력을 이양해서 그 사람한테 복종하는 것이 옳다 해서 그걸 입헌군주제라 해요. 그냥 군주제 같으면 지가 대장질하니까 안 되고. 일반 사람들의 권력을 법적으로 사회계약적으로 계약을 맺어서 일단 양도해놓고 그 계약대로 안 되면 그때는 쿠데타 일으켜서 왕 자리를 꺾어버리자 하는 것이 입헌군주제고.

거기에 반대하고 우리 가진 사람들끼리 놀자 하는 것인 존 로크의 사회계약설입니다. 존 로크는 의회주의고 그냥 입헌군주제와 차이가 있어요. 존 로크의 사회는 뭐냐 하면, 권력이라 하는 것은 생산 주체가 누가 생산할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주체가 된다 이 말입니다. 왜? 돈 갖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하니까. 부자의 착함은 어디서 나옵니까?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거잖아요. 가난한 주체는 부자 주체의 돈 가진 주체로 바뀌지요.

처음에는 뭐냐 하면, 그냥 있는 질서, 땅이라는 질서, 이게 봉건시대인데 봉건시대는 땅 자체가 이미 있는 것이고 다른 공장이라든지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없었어요. 그러니까 땅에서 나온 생산물로 그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에 땅을 갖고 있는 주인이 그게 권력이고, 다른 사람은 그 권력, 큰 주체에 작은 주체로서 문자적으로 시킨 대로 그러니까 통제죠, 지배죠, 종속이죠. 시킨 대로 함으로 말미암아 질서가 잡히는 겁니다.

따라서 그 당시 종교라는 것은 기독교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위에서 주교들이 삼위일체, 공동회의해서 법을 정하면 그걸 믿어야 돼요. 사도신경도 마찬가지고. 전부다 문자로 된 하나하나가 명령이에요. 이대로 성만찬도 마찬가지고. 집사가 와서 성만찬 주지 말고 목사가 해야 사제가 해야 성만찬 효과가 있고 주님이 함께 있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정말 떡에 매여 있는 성령이 어디 있습니까? 유아세례 안 받았다고 지옥 갑니까? 떡에 매여 있는 예수님이 어디 있어. 그 성만찬을 해준다 하는 자체가 권력의 나눠주는 주체와 객체가 나눠지는 겁니다. 사도 같은 경우는 사도는 진리의 전수자이기 때문에 성경 계시의 전수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성만찬을 성례식을 내가 반대하는 게 아니고 그걸 목사 해야 된다는 자체가 그게 정말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아줌마가 하면 안 됩니까?

그런데 여기서 약간 어렵습니다. 여기 좀 어려워도 참으세요. 마지막 시간이니까 참으세요.

땅으로 있을 때 그때 목사님, 시장은요? 시장이라는 게 이쪽 마을과 이쪽 마을은 각각 영주가 다르기 때문에 폐쇄된 상태에 있습니다. 그걸 자급자족이라 합니다. 시장이라 하는 것은 여기 있는 물건, 남은 물건 교류하기 위해서 시장이에요. 하고 난 뒤에 시장 없어져요. 다시 따로 돌아가요. 이게 자급자족 시대 때의 시장 형성입니다.

상인들이라 하는 것은 뭐냐? 상인들의 개입이 여기서 전달하고 먹는 것이지 상인들은 독보적으로 나올 계기가 없어요. 왜? 상인들은 땅이 없으니까. 땅이 없으면 생산물이 없다니까요. 그냥 몇 푼 팔아서 남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해외식민지 개발해버려요. 식민지를 개발하면 값싼 원료가 나오잖아요. 값싼 원료로 대량생산돼버려요. 대량생산되니까 식민지 팔아먹기 위해서 농사짓는 농민들 쫓아내버리고 거기다 양을 키워 버립니다. 엔클로저 운동인데 이게 문제가 된 게 어떤 문제가 되느냐 하면,

옛날 토지는 농노시대에서는 토지를 차남에게 주지를 못하고 장남에게만 줍니다. 차남은 뭐냐? 차남은 결혼도 안하고 장남이 난 아들을 그냥 부양해야 되죠. 그럼 토지는 형 이름으로 대고 형이 한 농사에 도와줘서 거기서 얻어먹는 대로 평생토록 총각으로 사는 거예요. 단 형이 아들 없이 죽었을 때는 여분의 리필하면 돼요. 대타가 돼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이 토지는 계속해서 영주가 있더라도 영원히 임대차 계약했기 때문에 아들에게 물려주는 거예요.

그런데 영주가 지주가, 지주가 아니고 지주 자본가가 돼버려요. 지주하고 지주 자본가가 달라요. 지주 자본가가 되니까 식민지개발하려 하니까 선원들 월급 줘야 되지 배 만들어야 되지, 또 보험 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식민지개발하면서 금융자본주의, 보험업이 크게 형성돼요. 배 만드는데 돈이 필요하니까 돈 일단 빌리고 나중에 장사해서 무역해서 남으면 돈 갖다 주고. 금융자본주의는 가만있어도 막대한 돈을 받고, 서로 도와주고.

국왕이 다른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서 식민지개발하기 위해서 군대를 모집하려 하면 그 당시 군대는 상비군이 아니거든요. 월급을 주는 용병이라고. 돈 어디 있습니까? 금융자본주한테 돈 빌려서 은행 같은데 해서 빌리고 나중에 왕한테 받아내고 왕실의 보물 담보로 해서 이런 식으로 했다고.

그래서 옛날 동화책에 보면 그런 거 많잖아요. 배를 타고 가는데 파산해서 밀가루 실었는데 이게 이래서 나중에 밀가루가 고물 되서 나오잖아요. 전부 그런 이야기에요. 이런 영주마다 개별적인 나라가 되기 때문에 이 영주의 아들을 뭐라 하냐? 왕자라 하고 영주의 딸을 공주라 합니다. 백설 공주하고 뽀뽀했던 남자가 어디 있냐 하면, 사실 옆 동네 총각이라. 일곱 난장이는 저 동네 살지만.

어쨌든 제가 이야기한 포스트 사회이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 없던 거예요. 그런데 이걸 하나로 묶어버렸다고. 묶어버리니까 노동자들이 어디 갑니까? 땅이 없잖아요. 땅이 없으니까 노동자들이 어디 갑니까? 도시로 가잖아요. 도시로 가니까 갑자기 도시에 임금노동자가 많아지고, 일자리가 없으니까 임금이 싸지면서, 사람이 노동을 제공하는 게 아니고 노동력을 제공해요. 노동력을 제공해 버리니까 노동력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시켜버리고 인간은 하나의 상품화되어 버려요.

인간이 상품화된다는 말은 인간은 없다 이 말이에요. 사람은 없어요. 하나의 물건이에요. 미아리에 하얀 드레스 입고 희멀건 네온사인에 그냥 앉아 있는 거예요. 돌 인형, 바비 인형 구하듯이 어이! 니. 이렇게 하면 가는 거예요. 인력시장 가보세요. 손 목사님, 가봤습니까? 어이. 도배질 할 줄 아세요. 얼마? 5만원. 오케이. 열매 따러 갈 수 있어요? 예.

인간의 고유 가치가 오르락내리락 변동이 일어나지요. 그럼 권력은 무슨 권력입니까? 가치를 매기는 자가 권력 있잖아요. 그 가치를 매길 때 뭐로 매깁니까? 돈이지요. 돈이 뭐냐? 문자가 되지요. 옛날 문자로 했던 질서를 잡고 권력을 딱 잡던 그 문자의 기능을 돈이 그 기능을 하니까 오늘날 대학교에서 학생수 안 모이는 철학과 폐지하라 이 말입니다. 철학교수는 아이들 모집해라. 철학교수가 영업사원이라. 모집 못하면 자진해서 계약 파기해서 나가야 돼요. 요새 제일 좋은 게 고등학교 선생이라 안 합니까? 골프 치러 다니고. 교수 힘없어요.

옛날에는 한 10년 전만 해도 교수가 좋은 점은 정교수만 되면 정교수끼리 집단을 만듭니다. 그걸 뭐냐? 집단 이성, 무리 주체. 여러 주체가 하나로. 주체가 없어요. 만약에 내가 정교수다. 철학과 정교수인데 다른 정교수 있을 것 아닙니까? 만약 그들 하고 의견 안 맞으면 나는 거기서 잘려나가야 돼요. 집단 주체에 내 주체를 사라지게 만들어요. 그리고 나는 점멸되는 주체로 만들어요. 집단 이성, 집단 주체가 모든 걸 새로운 가치와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한 때 그랬어요.

지금은 뭐냐 하면, 백날 교수끼리 모이면 돈 누가 줍니까? 역시 애들이. 아이들, 학생들이 와야 저희가 밥 먹고 살아요. 옛날의 재단은 뭐냐 하면, 공납금 보고 사는 게 아니고 교육에 대한 희생적인 헌신적인 입장에서 바깥에 사업을 해서 이익금이 학교에 들어와서 운영했습니다. 원래 그랬어요. 지금은 사학은 뭐냐? 부동산 장사하는 놈들이에요. 집 지어놓고 땅 값 오르면 그거 팔아서 또 땅 사서 또 짓고. 학교는 허울 좋은 빌미고. 땅값, 그 밑에 있는 토지 값, 땅값 보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 공납금 받아서 그 공납금 가지고, 지금 공납금 운영비율이 90% 넘는다는 것은 외부에서 돈이 안 들어온다 이 말이거든요. 그 말은 애들 돈 빼먹고 산다는 뜻이에요. 공납금이 그렇게 오른 거예요. 그렇게 되면 뭐냐 하면, 학생들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면 기성세대가 자기의 권력을 애들한테 전수가 안 됩니다. 뭐, 말발이 서야지, 말발이 안 서는데. 애들이 그걸 모릅니까? 뻔히 아는데.

교수님, 깊은 학문의 세계로 인도해주세요. 이렇게 안 합니다. 교수님, 어느 회사 회장님 잘 아십니까? 그거 물어요. 교수님, 나중에 졸업할 때 학점 줄 때 어느, 어느 회사에서 추천장 들어온 거 몇 장 갖고 있습니까? 추천장 확보 못한 교수는 백날 학문 잘 가르쳐도 소용없어요. 여간해서 안 먹혀요. 취직을 시켜주는 교수가 최고에요. 그러니까 자기 친구들 기업에 많이 아는 사람 있기 위해서 그들과 술 먹고 그들과 이미 하나의 연관을 갖게 해서 우리 학생 몇 명 있는데 좀 뽑아 주소. 인턴이라도 뽑아주소. 이렇게 뭔가 취업 세일즈를 해야 된다니까. 연줄로. 결국 뭡니까? 중간 매체가 뭐가 된다? 돈이 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이야기했어요. 자본론에서 잉여가치라는 게 원래 상품이 교환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는데 새로운 가치는 생산기계와 그 노동력이 투입되는데 생산기계와 노동력이 투입되었으면, 생산기계를 대여한 자본가가 얼마 먹고, 노동력을 노동자에게 얼마 돌아가야 되는데, 자본가가 미쳤다고 돌아갈 것 같으면 그렇게 하느냐? 자본가는 분명히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내가 기대하지 않은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경우에만 자본을 투자하게 되어 있어요. 이거는 동일한 생산품이 나왔는데 가치라는 게 뻔하잖아요.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은 뭐냐 하면, 어떤 돌려주지 않을 가치를 내 쪽에서 빼먹어야 비로소 잉여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그 잉여가치는 어디서 생기느냐? 기계는 그대로 있고. 빼먹을 거 어디서 빼먹습니까? 노동력을 착취해서 그걸로 내가 이번에 자본투자하길 잘했지. 라고 하는 겁니다.

기업이 그렇게 될 때 그 기업의 주식을 샀던 사람들에게 주식의 가치가 날마다 높아져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런 잉여가 많이 남는 삼성전자나 그런 데 많이 투자하지, 삼성전자가 맨 날 돌려 줄 게 많고 저희끼리 다 먹으면 뭐 하려고 투자합니까? 투자 안하지요. 주식을 투자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작으나마 소규모나마 자본가로서 하겠다는 거예요. 영원히 노동자가 아니라 나는 자본가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옵션제도라 해서 지금은 사원 자체를 아예 자본가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제도를 하는데 그걸 보너스 주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있지요. 망해버리면 다같이 망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일종의 무서운 거예요. 부동산 다단계 컨설팅하고 똑같은 거예요. 뭐냐 하면, 회사에 노동력을 제공하려고 왔는데, 어이, 김대리, 이리 와. 요새 회사에 자본이 딸리는데 자네 집 전세로 옮기고 2000만원 투자해. 옵션이야. 회사 살면 니 살고, 죽으면 다 죽는 거야. 이거는 자기는 노동력 제공하려 왔는데 갑자기 뭘 만듭니까? 주주로 만들어버려요.

주주로 만들었다는 말은 만약에 여기서 부도나면 채권자들이 돈 누구한테 받습니까? 이거는 2000만원 받는 게 아니에요. 달려들어서 2000만원 아니라 투자하지 않은 자기 마누라 친정집까지 날릴 판인데. 그래서 노동력이 아니고 동업이 돼버리죠. 동업이 된다 하면 책임에 대해서 무한책임을 지는 거예요. 끝없는 책임을 져야 돼요. 그래서 요새 회사 취직하면 보증금 내시오.

어떤 의미에선 참 공평하지요. 실컷 노동자가 누굴 공격한다? 자본가를 공격해 놓고 자본가가 니도 자본가 되 볼래. 하니까 슬슬 꽁무니 빼는 거예요. 이건 개척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 저는 설교만 하겠습니다. 예. 저는 돈 대겠습니다. 잘 안되거든. 목사님, 좀 내세요. 내야 그래야 교회도 정이 붙고 이 교회가 내 교회다 생각해서 열심히 하지. 교회일 안 하면 아이고, 내 돈 한 푼도 안냈다. 미쳤다고 하나. 목사님 놀려 다니고 등산 다니고 안 됩니다. 냈어요. 이렇게 되면 공멸의 길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교회를 새로, 목사님 보니까 교회 지금 지하실에서 탈출하자 이렇게 하는 모양인데, 탈출할 때 그냥 자기만 탈출하는 게 아니고 같이 탈출하려고 하면, 목사님 그동안 돈 모아놓은 거 날려야 돼. 아이들 공부 다 시켰다니까. 크면 다행이고. 크면 양심이 있기 때문에 목사님, 전에 얼마 냈지. 아이고, 그때 참, 고생 했는데 목사님 돈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되는데 문제는 안 크면 조져나는 거예요. 안 크면 돈 안 주고 싶은 게 아니라 줄 돈이 없는데 어떡해요.

그러면 교회 지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 부동산경기를 내다봐서 안 될 경우를 예상해서 팔아도 돈이 남을 걸 하든지, 안 그러면 서울처럼 주식투자를 하든지. 모든 가치가 돈의 가치가 오면서 주도권이 드디어 땅 주인에게 가는 것이 아니고, 자본가들의 세계로 바뀌지요.

그때 생긴 것이 뭐냐? 부르주아의 나라를 자기고 그때 처음으로 생긴 것이 뭐냐? 국가. 그전까지는 국가라는 게 없어요. 하나의 민족이지요. 국가는 없어요. 제가 아리스토텔레스 할 때 뭐라 했어요? 이것이 무엇이냐가 없다고 했지요.

그런데 뭐 생기고? 문자 생기고, 이것이 무엇이냐? 생긴 것처럼 시대가 드디어 기호가 문자가 돈이 문제가 될 때 등장하는 것이 뭐냐? 국가라는 게 생기면서 여기서 애국주의 생겨요. 애국주의 자체가 뭐냐? 기업입니다. 기업. 기업이라는 말은 경제적 차원에서 국가를 보지 아니하면 국가로 보지 않는 거예요.

독도 왜 우리 땅인가? 경제적 효용 때문이에요. 왜 중국이 아프리카에 축구장 지어주느냐? 아프리카에서 나오는 지하자원과 석유 때문에. 중국에 아프리카에다 월드컵 경기장 한두 개 지어준 게 아닙니다. 엄청나게 지었습니다. 마치 일본이 옛날에 아프리카에 한 것처럼. 지금 중국이 한 게 그거에요. 중국의 경제발전은 석유에너지에 달려 있어요. 확 끌어 앉으니까 석유 값 60달러, 70달러 올라가는 거예요. 큰 대국이 다 끌어가니까. 모든 가치라 하는 것이 이렇게 되었다 이 말이죠.

그 다음에 그러면 돈이 가치가 되면 마지막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돈이 가치가 되려면 옛날에 20세기 초반에는 돈을 가지면 이자 받으면 돈 번다 했지요.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돈을 굴려야 돼요. 갖고 있으면 바보야. 왜? 은행의 이자가 낮아요. 돈 되는 이자 많은 곳에 굴려야 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굴리려 할 때 사람이 의심하는 거예요. 굴리다 날아가면 손해 아니냐? 이렇게 하는데. 사람들이 뭘 깨닫느냐 하면, 어디 돈 되는 곳으로 굴리는 것이 아니고, 이건 옛날 생각이고, 굴리는 그 자체가 돈이 되는 거예요. 하아, 이게 사기잖아요.

예를 들어서 부산이나 대구나 재개발하죠. 재개발해서 아파트해서 이윤 남겨서 벌잖아요. 이거는 결과로 나온 거고. 재개발한다는 자체가 막대한 숨어있는 돈이 몰려서 돈 한 푼 없어도 돈 짓고 돈 벌게 되어 있어요. 돈은 돈 버는데 있어서 투자하는 게 아니고 그건 무식한 소리하는 것이고, 사기를 치는 거예요. 허황된 사기를 쳐서 사기범이 왕 모일 때 결과적으로 진짜 돈 버는 거예요.

교회 짓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교인수가 없더라도 출구 앞에다가 수천 명 모이는 사진을 찍어 놓으면 그게 사람 모이게 한다니까. 그걸 뭐냐 하면, 시물라시옹. 환상이 현실이 있어서 현실이 원본이고 거기에 의해서 복제판이 환상이 아니고, 환상이 원본이고 만들어진 것이 현실인 거예요.

현실은 인간이 만든 욕망과 환상에 의해서 현실이, 현실이 이어져 가고 있다는 거예요. 아, 무서운 시대. 정말 제가 말해도 엄마야. 너무 무서워. 이게. 한 마디로 막가자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을 본받아야 됩니다. 지금 죽어서 주와 함께 거하는 게 최고야. 다른 희망은 없어요. 이게 지금 막가자는 이야기에요.

그게 이동하지요. 이동속도가 사진술이 발달하고 난 뒤에 문자가 아니고 사이버 세계로 가버려요. 사이버 세계로 가버리면 어느 한 곳이 중심이 아니고 사이버세계가 흐르는데 그걸 내가 만약에 포착한다면 포착한 내가 내 중심이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다. 왜? 사이버세계는 이렇게 매트릭스세계기 때문에. 그중에 내가 이걸 잡았다, 아까 이야기한 사건화 시키지요. 길을 가로막고 뭐한다? 파업하죠. 파업하면 신문에 나요. 내가 신문에 난다고.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 중심이 되는 거예요. 이게 주체가 점멸되는 주체지요.

그리고 그 사이버세계에서 나오는 정보들은 환상이 환상을 낳는 거예요. 옛날에는 현실이 환상을 낳고 다시 현실로 바뀌는데 이제는 환상이 환상을 낳는 거예요. 그런데 환상 속에 들어가야 비로소 우리가 돈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왜? 환상 보고 끼어드는 돈들이 있기 때문에.

자,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이거 예 들고 마치겠습니다. 그래픽 영화하죠. 50년 전에 그 기술 써먹을 데 뭐가 있습니까? 아무 쓸데없어요. 그래픽 하는 사람이 미대 출신이니까 미대 출신 옛날 한 것이 뭐냐? 몽마르트 거리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거예요. 사람이 원본이 있지요. 초상화 그리죠. 이건 복제판이죠. 이걸 그려서 밥 먹고 사는 거예요.

그런데 그래픽 기술이 발달해서 그래픽이 그래픽을 낳아요. 지금 한반도라는 영화라든지, 반지의 제왕 전부 그래픽이잖아요. 그 사람이 앉아서 컴퓨터 안에서 그래픽 할 때 그 사람이 콩나물을 심습니까, 땅을 팝니까, 뭐 합니까? 그래픽이라는 환상을 더욱더 환상답게 만드는 일만 하죠.

그런데 뭐가 들어온다? 막대한 돈이 들어오는 거예요. 왜? 사람들은 뭘 하느냐? 사람들은, 영화가 저게 뭐고 그래픽해서 좀 환상적으로 뿅 가도록 만들어야지. 영화가 저게 뭐야? 어디 기술자 없나? 반지의 제왕, 뉴질랜드 같은 그런 영화기술 없나? 우리도 한국도 할 수 있습니다. 태풍, 한반도, 블랙버스터 영화를 만들어라. 보세요. 우리의 그래픽 기술. 야, 잘 하는구나. 돈 주고 볼게.

그 돈이 어디서 나옵니까? 앉아서 TV보면서 그래픽 했던 사람들에게 돈이 올라오지요. 여기서 올라오면 노동의 가치가 빠르게 소통하기 때문에 어이, 그래픽 기술자, 초짜 말고 경험자 없나? 10억 줄게, 20억 줄게. 가치가 막 올라요.

그런데 만약에 50년 전에 그래픽 기술 소용없을 때 어떻게 됩니까? 저 한 5000원만 주면 하겠는데? 필요 없다 하지요. 환상이 결국은 자기한테 월급을 주는, 그게 점멸하는 깜빡거리는 주체. 내 주체란 깜빡거리는 주체. 깜빡거리다 보니까 도덕도 없고 윤리도 없고 신앙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런 시대지요.

이게 전부다 결국은 복음의 광채보다도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의 광채를 대신 믿고 싶어 하는 악마의 역사입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목사님들은 이 십자가가 이미 이걸 다 알고 있고, 결국은 그렇게 환상을 쫓는 그 몸을 지금도 부지런히 죽이고 있다는 거. 아무리 환상해도 꿈꾸다 죽는다는 사실. 죽음이라는 의미가 그냥 죽이는 게 아니고 이런 환상을 부풀게 하는 그것이 죄였다는 것을 그것이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배척하고 버리고 주님께 달려들고 주님께 대항하고 이렇게 죄를 유발하는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식으로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처음부터 위험했던 시대고 인간들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죄를 만들어내고 양산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그들 때문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은 것을 알 때 바로 우리가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면서 우리를 날마다 주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고 주님을 우릴 통해서 나타나서 참된 소망을 증거 할 수 있는 천국을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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