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광주 우인숙 집사님의 글
[일반] 광주 우인숙 집사님의 글
이름 : 이근호(IP:)
우인숙 2006-07-09 20:01:57, 조회 : 49, 추천 : 2
*이 편지는 요사이 화평의 밥상머리에서 3시간 이상씩 너무 육신이 허약해서 우리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오 목사님의 십자가 사랑의 화신이 된 모습으로 토해놓는 질문과 답에 대한
정리인 셈입니다...ㅇㅇ님께서 받은 메일을 저와 나누고자 제게 보낸걸 게시판에 올립니다.....
믿음에 관한 마지막 정리
요한복음 17:11절과 12절의 말씀에
"11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믿음으로(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어주심으로 응답된다는 뜻)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내용속에 예수님의 믿음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은 내(예수님)가 나의 피로 거룩하게 한 사람에 한해서 구원해주시고, 내가 나의 피로 거룩하게 하지 않은 인간은 반드시 지옥가게 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이 믿음속에는 어떤 인간의 믿음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응답된 결과물로서 말입니다.
그래서 믿기를 예수님의 믿음하고 하나가 되게 믿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은 이 지상의 어떤 인간의 선택(믿음-구원을 위해 발휘할수 있는 인간의 모든 지혜)도 무시하고 예수님의 선택만으로 지옥도 천국도 결정하기에
나는 내 믿음이 아니라(내 믿음은 아무리 나와도 지옥갈 믿음뿐이기에)
예수님의 선택(십자가의 피공로를 줄자에게 주고 안줄자에게 안주는 식으로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예수님의 믿음-인간의 모든 구원시도를 무산시키고 예수님이 주님노릇 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 )만으로 구원되었다"고 믿는 겁니다.
예수님의 믿음(영)에 인간의 믿음(육)이 포함되게 되면 "하나"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은 영이고 육은 육이라고 한겁니다.
그러니 이런 믿음은 이 지상에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만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선택을 당해서 예수님의 믿음을 받게 되면 나타나게 되는 현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자기 생명으로 자랑하는 사람 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체 혹은 믿는 주체자가 되어야 하는 자기조차 죽은자로 간주하면서요.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런 믿음만 하늘나라 가는 믿음입니다.
육체에 의한 자기 기만적 믿음에 빠진자 이라면
"믿음이 없다"가 아니라 내가 믿는 믿음은 구원받을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방식으로 "주님의 믿음이 온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믿음이 오게 되면 내가 믿어서 될 구원은 일체 없고 그 믿음안에 예수님의 피공로만 담긴채 다가온 믿음임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믿음이 오게 되어서 믿게 된 사람은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자랑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때 성도라도 자기쪽에서 믿는다는 이 믿음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때까지 계속 내쪽에서 믿는 식으로 주께 다가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본인이 끊어내지 못합니다.
이것을 십자가의 공로로 일생토록 죽여주시고, 십자가의 죽음만이 생명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이런 관계로 예수님과 성도는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관계(상태)를 일컬어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믿음이란 내가 무엇을 믿는다든지, 안믿는다든지를 두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선물이라고 하는 취지는 믿음안에 내가 애쓰고 수고해야할 내용물이 일체 담겨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은혜위에 은혜러라"고 합니다. 로마서에서는 "믿음에서 믿음으로"라고 합니다.
자! 이때 이런 반문이 나올수가 있습니다.
다 알아듣기는 하겠는데, 그럼 지금 목사님께서 위에 말한 모든 것조차 또 내가 그렇게 믿고 싶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나를 또 가장하고 구원받고 싶은 마음에 그것까지도 내 마음이 조작해서 되어진 것이라면) 어찌 합니까?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위의 질문에서 질문자가 문제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믿고 싶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내 마음이 조작할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행위하는 자기를 계속 쳐다보고 있기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일종의 자기반성이고 자기반추입니다.
자기를 아무리 들여다 보고 자기 행위를 아무리 뒤집어 봐도 믿음은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진짜 믿는것이 맞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것입니다.
성령받은 성도에게 의심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런 것조차 바로 예수 믿는 일에 전혀 무의미한 일인것까지도 알려 주신다는 말입니다.
자기쪽에서 믿는 것이 안된다는 말은,
더 이상 자기가 믿는지 안믿는지를 확인할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겁니다.
자기가 진짜 믿는지 안믿는지를 헤집어서 믿음을 확정하는 일 자체가 안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믿는지 안믿는지를 본인이 따져서 확정하고 그것을 믿는다고 여기는 식으로 자기 믿음을 확정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진짜 성령받은 사람이라면 믿음의 근거를 십자가의 피로만 확정짓는 겁니다.
예수 믿는다는 말은 십자가의 피외에 아무것도 안믿는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나조차도 믿음의 대상에서 제외시킨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내가 믿었는지 안믿었는지 그걸 확인하려고 하든 말든, 나에 대해서 개의치를 말아야 하는 겁니다. 나는 믿을만한 나가 못되기에 뭘 하든지 개의치 않아야 한다는 것을 성령받고 나서야 비로서 알아채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으로만 구원되는 겁니다. 믿음은 선물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에 나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에덴에서 쫒겨난 인간의 실상이란 자기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행사할수 없도록 되어 있
다는 뜻입니다.
나를 안믿고 외부의 누군가를 믿는 일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기가 되죠.
오늘 진짜 복음 듣고 내가 그것을 믿었다고 해도 돌아서면 곧바로 그것을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소유하게 되고 그리되면 그것이 또 자기것을 자기가 믿는 식이 되어서 곧바로 사기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믿음은 오늘의 믿음이 아니라고 한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기치려 듭니다.
믿어지기는 하는데 이것이 진짜 믿은것인가 아닌가?
처음부터 자기가 믿었으면 그렇게 따져물어도 되는데, 자기가 한일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따져묻는 것일까요?
그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이겁니다.
나에게 처음부터 믿음이라곤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000님도 저도 계속해서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 믿음도 없고, 의도 없고, 그 무엇도 없으면서도 없다는 것을 인정치 않으려 들고, 뭐라도 좀 있나 하고 찾아 헤집으면서 자기구원의 확증이나 찾으려고 시도하는 - 죄인중의 괴수입니다.
00님! 제속에도 00님 속에도 믿음 없습니다. 없는데 믿었는지 안믿었는지를 뭐하려고 찾으려 들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찾으려고 듭니다. 그게 우리의 죄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믿음없는 우리를 끌고 가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십자가의 공로)만 있습니다.
그 괴수됨을 들키우면서 십자가의 사랑을 도장찍듯이 또 찍고 또 찍어 주는 식으로 끌려 가는 것이 성도의 일생입니다.
그래야 내 일생 다가도록 은혜만 남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공로로만 구원될것이 아닙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잘 믿어서 구원되면 내 공로 들어가고 그리되면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겁니다.
이래서 죄가 더한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한것입니다.
그점(십자가의 공로)을 성령께서 문득 문득 일깨워주실때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는 십자가만 자랑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복음에는 수준(Level)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복음에는 수준을 논할수 없다는 것이 지당하십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복음 자체가 가지는 기능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이란 예수 이름만 높이자는 취지로 하나님께서 일 벌려서 하나님께서 끝장을 다 본 일이기에
어느 수준높은 인간의 이름조차 다 지워지는 현장이 바로 복음안이기 때문입니다(엡 1:3-6).
누가 전하면 복음이 더 수준이 높아지고, 누가 전하면 복음이 수준떨어지는 복음이 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고전 1:12,13).
누가 혹시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예 복음이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겁니다(고전 1:18).
예를 들어 제가 남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진리를 먼저 알아채서 그것을 남들보다 더 빨리 전한다고 해서 저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또 제가 그렇게 전해주었기에 그 진리의 수준이 전보다 더 가치와 수준에 있어서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고전 2:1-5).
진리를 깨닫는 다는 것은 내가 어떤 지식을 소유했다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내 수준도 높이고 복음의 수준도 높여 놓았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끝없이 깊고 넓은 복음안에 있는 사랑을 다 안것처럼 교만하게 굴었다는 죄를 들키우며, 인간의 잘남(수준, 레벨)이란것이 얼마나 십자가앞에서 헛된것인지를 회개케 하는 겁니다(고전 1:29-31).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서열을 매길수 없고, 우열을 가릴수 없는 이유도 순전히 복음에 있습니다.
복음에 수준이 없기에 나보다 더 먼저 깨닫고 나보다 더 많이 깨달은 사람도 있을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엡 3:7-11).
사람의 수준에서 보면 이런것이 다 서열매기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민수기 16장).
그러나 복음입장에서 보면 도리어 이런 면이 복음이 어떤 인간에게도 소유되지 않으며, 도리어 주님께서 복음으로 교회를 주관하고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이는 게 됩니다(고전 3:10-15).
같은 종노릇을 해도 어떤 종은 등짐을 더 많이 지고, 어떤 종은 좀 적게 지는 식으로 보일수 있는 겁니다. 이것도 항상 그런것이 아니고 언제든지 바뀔수도 있고요.
그런다고 해서 종이 주인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고전 3:6,7).
이때 종이 다른 종 보면서 왜 나만 이렇게 무겁게 지고 가야 하느냐고 따진다든지,
혹은 왜 나는 이렇게 가벼운 짐만 줘서 수준떨어지게 했느냐 하는 것은,
종주제에 주인의 일에 참여 되었다는 고마움보다는 자기 체면챙기고,
자기위신이나 챙기겠다는 태도이겠지요(고전 3:9).
주님이 다 알아서 하니, 나는 그냥 게을러도 되고 놀아도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 태도입니다(고전 4:1,2). (목사들의 이런 사고방식은 언제나 누구로부터도 책망받아 마땅합니다)
나외에 누구라도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가리지 말고 기꺼이 참여해서 들을 마음이 있어야 하고, 나도 내가 깨달은 복음을 대상을 가리지 않고 기꺼이 증거할 맘이 있어야 합니다(고전 4:1).
그래야 00님 지적하신 대로 복음외에 어떤 인간의 레벨과 수준도 인정할수 없다는 복음의 취지가 성립되는 것입니다(고전 1:21, 23,24).
왜입니까?
복음만이 사람을 구원하는 유일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예수님의 피공로 외에 서열과 우열을 논하는 기준이 되는 어떤 인간의 수고와 노동의 가치도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11:6).
그런 취지로 이근호목사님의 강의를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어려워도 힘껏 들어야 한다고 제가 추천한 겁니다.
저도 이근호목사님도, 누구라도 복음의 종된 목사라면 다 같은 취지로 복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 쳐다보지 말고, 이 세상 어떤 인간도 기대하지 말고, 당신 자신도 기대하지 말고
예수님 한분만 쳐다 보고, 예수님 한분만 의지하고, 예수님 한분만 사랑하고 예수님 한분만 기대하라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2:1-5).
십자가 지신분이 예수님 한분 뿐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13)
이런 취지로 누군가 복음전한다면 주께서 보낸 종인줄 알고 마음껏, 원없이, 들어줘야 하는 겁니다.
그런 종들의 도움을 마음껏 받아서 주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주님과 더 깊이 사랑하고 교제하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