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05 서울 경기(의존교회) 양자, 성화 1-3
Re..05 서울 경기(의존교회) 양자, 성화 1-3
이름 : 이장우(IP:)
05 서울 경기(의존교회) 양자, 성화 1-3
05. 12. 12 강의 이근호목사
마지막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성화의 첫 번째 이야기는 거룩함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함 속에 들어간 신분을 성화라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점차 거룩하여 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자끄 엘룰이 말한 것처럼 이것은 인간의 철학인 것입니다.
그 철학은 진선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칸트라는 사람이 이것을 추구하였습니다. 진선미를 천국으로 보았습니다. 니츨, 하르낙 이런 철학자들이 전부 이런 주장을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필요도 없다고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선미를 이룰 능력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진선미의 추구 이것은 성화가 아닙니다.
성화란 이미 거룩함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거룩함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방에서 무엇이 쏘아 됩니까? 거룩함이 막 쏘아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사우나에 가면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나오는 것처럼 거룩함의 열기속에 놓이게 되면 그 자체가 거룩하게 됨, 성화됨, 그런 뜻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 인간에서 거룩함이 주어지는가? 그런 자격이 되는가? 우리는 그런 자격이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거룩함을 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의 일입니다.
흐르는 요단강 물에 예수님께서 물에 잠기시고 세례요한은 털옷을 입고 예수님의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에 잠기시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줄 때에 세례요한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곳은 죄인들만 오는 곳입니다. 회개할 거리가 있는 죄인들만 오는 곳입니다. 회개할 거리가 없는 사람은 여기 오시면 안 됩니다. 제가 주님에게 세례를 받아야지 어떻게 제가 주님에게 세례를 줍니까?
여기는 어떤 곳이라고요? 죄인만 오는 곳입니다. 저 죄인 맞습니다. 하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다고 의인 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하는 것이 물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이 오셔서 나도 죄인이라고 하면서 물속에 들어오시는 것이기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들어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오히려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하는 대목에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죄인 속에 들어오신 것은 예수님이 회개하는 이 죄인들을 데려가기 위하여 죄 속에 들어오셔서 몽땅 끄집어내어 천국에 데려가기 위하여 죄인들 그룹에 죄인들 집단에 손수 자신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신비롭지요! 이것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어린 양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요? 세상 죄를 짊어지신 어린 양입니다.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어! 나의 죄가 저기에 있네! 나의 죄를 위하여 내 속에 친히 침투하여 들어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내가 죄 짓고 있을 때에 나는 죄 짓고 예수님은 바깥에 계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죄 짓는 그 현장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죄 지었다고 하니 이상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여! 입을 것 주옵소서! 먹을 것 주옵소서! 비록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지만 나도 답답해서 구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면 주여 입을 것을 구한 죄를 용서하시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데려가야 우리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거룩이라는 공간이 마련되는가 하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거룩이 쏘아대는 그 공간에 놓이게 되었는가 하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 짓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해서 뛰어내려 오셨는데 왜 뛰어내려 오셔야 하셨는가 하면,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실 일이 무어냐 하면 세상 죄를 짊어지기 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죄인데 어떤 세상 죄인가 하면, 구약 성경에 보니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어디에 나오는가 하면 마태복음 1:21절을 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자기 백성의 죄입니다. 하나님의 예언된 자기 백성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슴이 아픕니다. 어떻게 가슴이 아픈가 하면 천사가 동방 박사 에게는 헤롯의 궁전으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고 합니다. 또 천사가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아기 예수를 데리고 피하라고 합니다. 헤롯이 너를 노리고 있으니 애굽으로 도망치라고 합니다. 천사가 예수님을 애굽으로 피신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가슴 아픈가 하면, 예수님 하고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베들레헴이라는 동네의 아이들은 아무른 천사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어떤 징조도 없었는데 갑자기 헤롯의 군사들이 들이 닥쳐서 베들레헴의 두 살 아래의 아이는 다 잡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군대가 철수하고 나서 그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것이 슬픈 크리스마스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면서 찬송하는데 그들을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누구 때문에 죽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태어났다는 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위험합니다. 예수님이 보통 위험한 분이 아닙니다. 천사의 계시를 듣지 못한 사람은 죽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크리스마스 때에 이 슬픈 기억이 있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 다음에 가사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우리는 죽었다. 이런 식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가자는 제가 지어낸 것입니다. 아무도 그런 가사로 노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베들레헴의 아이들은 왜 죽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출생과 더불어서 이 세상이 왜 어두움이며 이 세상이 왜 지옥인지를 보여주어야 예수님 때문에 구원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극장에 가면 캄캄합니다. 극장이 캄캄해야 화면이 밝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당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못됐다는 것을 절감하도록 우리 속에 그런 사건이 터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조치를 하시는 것입니다.
별을 따라 온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입니다. 별이 낮에 뜹니까? 밤에 뜹니까? 밤낮으로 다 뜹니다마는 보이기는 밤에 잘 보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마치 어두운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별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까만 우리 마음에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그런 예수님으로 여러분 마음속에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보통은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하는데 그냥 바랍니다.
정말 예수님이 안개 낀 듯이 흐릿하지 말고 너무나 검은 우리 마음에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반대로 그토록 이 세상에 죄악 가운데 있다는 것을 부각해야 예수님이 증거 됩니다.
따라서 이것은 여담이고 제 생각입니다마는 믿지는 마세요! 크리스마스만 되면 더 온갖 죄악들이 흥청망청 다 모이지요! 주의 은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이 짙을 때에 빛은 더욱 찬란하게 비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때에 술집이 장사가 잘 되고, 어두울수록 예수님의 빛은 더욱 반짝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글에서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흐르는 어둠의 물결을 벗겨서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시면, 예야! 낮에 다니라고 합니다. 아니 낮에 다니는데요! 낮에 다니라니까! 낮에 다니고 있잖아요! 광명에 다녀! 지금 광명에 다니고 있는데요! 그런 뜻이 아니야! 지금 어둡기 때문에 세상의 어두움을 볼 수 있어야 해! 어둡기에 빛이 오셔서 빛의 사람을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잔다고 합니다. 우리도 자지 않습니까? 자는 게 아니라 죽었다. 그러면 우리도 자는 게 아니고 죽었구나! 그러니 자로 가자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러 가자고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이 얼마나 지옥인지를 압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오래 살다가 보니 살만한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 안 믿고서도 큰소리치면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건희같은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이건희 딸 죽었을 때에 원불교 식으로 장례 치렀습니다. 그 사람들 예수 안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황우석 교수 불교식으로 도 닦는 사람 아닙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요즈음 인기가 없어요! 그런데 그런 어둠이 있다고 해서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수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으심으로 이 세상을 밝히셨습니다. 이제 다시 들어가 봅니다. 예수님이 일단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세례가 무슨 세례인가 하면 죄의 세례, 제로 덮어씌운 세례입니다. 죄 세례란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세례란 것은 합일되는 것입니다. 죄 세례가 무언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 속에 합일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에는 죄 없이 태어났습니다. 죄 없으신 분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 세례를 받으시고- 죄 세례란 말을 가지고 이단소리 하겠는데- 무언가 덮어씌워 져서 죄인 속에 들어오셨는데 그 안에서 죄 안에서 무엇을 이루셨는가 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만들어내고 일구어 내는 그런 숙제를 아버지의 뜻에 의하여 드디어 출발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면, 제가 하는 이런 이론이 거짓말이라면, 예수님이 구태여 세례요한 본인도 반대하는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세례요한이 당신은 나에게 세례 받을 필요가 없고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자신해서 세례를 받겠다고 하신 뜻은 그 세례를 끝이 있을 것입니다.
그 끝은 죽음 속에 들어와서 죽음을 이기고, 율법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탈출하는 지하 탈출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무언가 흐름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 성화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지하라고 하지 지하상가가 생각됩니다.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오는 곳이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습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으시고 그냥 세상에 사셨다면 혼자 잘나서 혼자 구원받습니다. 나는 죄가 없네! 나 혼자 구원받아야지!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무서운 하나님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자비의 하나님도 있습니다.
율법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면 공의의 하나님도 있지만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이웃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이웃 사랑을 누가 성취할거예요?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지요!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은 이웃사랑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것이 이웃사랑입니다. 그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면 이웃사랑이란 이웃이 있어야 하고 그 이웃을 사랑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죄 없으신 분이 죄 세례 받으시고 이것을 죄 세례라고 하지 말고 죽음의 세례라고 합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개핀 교수는 이것을 불세례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받을 불세례가 있다고 하시면서 그 다음에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누가 서로 높으냐고 길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자 된 자가 어떤 것을 기도해야 될지를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구하여야 할 것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 예수님이 마시는 그 고난의 잔을 저도 마셔야 합니까? 라고 기도해야 하고 그 정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래 마셔야 된다. 나의 잔을 마시기는 하겠지만 나의 좌우에 앉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안 죽고 있다는 것이 답답한 것입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 날 대구의 모 식당에서 환갑잔치에 참석했습니다. 다른 교회 목사님이 설교하시고 저는 가족이라서 군소리 없이 밥만 먹었는데 환갑잔치에서 이런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4장의 갈렙이 85세에도 강건하여서 모세의 유언 따라 전쟁을 하였듯이 오늘 환갑을 맞는 분도 앞으로 더 강건해서 주의 일 많이 하시고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는 이런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하~ 그렇게 성경해석 해서 죽은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의 그런 해석이 예수님을 가린 것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또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저주받는 복음을 교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십자가의 복음으로 설교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지금 죽어서 천국에 사는 것이 본인으로서 좋으나 모세에게 주어진 언약이 있으면 죽든 살든 주님의 고난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이 권사님아!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권사님 60까지 고생 많이 하신 것 아시겠지만, 아직도 주께서 안 데려 가신 것을 보니까 고생 더 하라고 주님을 위하여 고생을 더 하라고 안 데려가신 것입니다. 본인은 지금 안 죽은 것이 섭섭하고 답답하겠지만 좀 더 참으시고 남은 목숨을 주의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야 그 갈렙이 나오는 본문을 통하여 새 언약의 복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봉사해서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 복 많이 받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까? 그 말은 권사님 죽지 마시고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이 말입니다. 사는 목적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권사가 신성화 되는 것입니다. 진선미입니다. 진선미가 복 받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교회는 무어냐? 예수님을 가리는 적 그리스도적인 교회이지요!
그러면 그런 목사를 누가 원하는 것입니까? 교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왜? 교인들은 자기의 실체를 파헤치는 그런 목사를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의존교회 교인들 목사님이 실체를 파헤치면 싫어할지 모르겠습니다. 교인들은 자기보다 좀 못한 목사를 좋아합니다.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너무 아는 것이 많으면 부담되는 것입니다.
여기 김 목사님 말고 예수님이 목회하시면 다 달아날 것입니다. 제직회 한다면 다 달아날 것입니다. 부담 된다고! 부담 될 수밖에 없지요! 결혼한다고 아내를 위하여 반지를 준비하였는데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 같이 여겨라 그러면 김 다 새는 것입니다. 돈 벌어서 기분이 좋은데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시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 예수님 같은 목회자는 단체로 나서서 반대하고 좀 어수룩하고 자기보다 못난 자를 목사 뽑아서 돈 가지고 마음대로 놀 수 있는 그런 만만한 목사를 오늘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 안 해보면 모릅니다. 이론상 이야기해서 모릅니다. 이것은 정말로 진짜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자는 대 환영이고 성경을 좀 알면 그 사람은 교회에서 퇴출감입니다. 그러니 한국교회 자체가 이단 인 것을 알아야 되고 명심해야 됩니다. 이런 마음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면 너무 심하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때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못 느낍니다. 우리는 죄 짓는 것이 신나기 때문입니다. 죄 안 짓는 것이 서글픈 것입니다. 지금 떡을 먹고 있지만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고, 몰래 먹는 사과가 더 맛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천성이고 본성입니다. 타고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무엇을 모르시는 분이십니까? 죄를 모르시는 분이 죄 속에 있어 보세요!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심지어 예수님은 광야에서 배가 고팠습니다. 배고픔을 압니다. 그리고 뛰어내리면 겁나는 것도 압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매력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님이 도우셔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하나님만 섬겨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역사 하시니 그런 놀라운 고백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역사 하시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큰 해방의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이웃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죄인이 당하여야 할 그 저주스럽고 무서운 심판과 불세례를 향하여 죽 갑니다. 죽 가는데 갈 때에 처음에는 누구와 만났는가 하면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들과 만납니다. 나중에 갈수록 이 사람들 배후에서 조종하는 실체와 만납니다. 이 이야기 하고 오늘 강의 마칩니다. 여러분 많이 피곤 하셨지요!
자 예수님께서 이 죽음의 지하상가 저주스러운 지하상가 끝 지점에서 아버지의 뜻을 만납니다. 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본디오 빌라도라는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반드시 예수님을 팔아 넘겨야 될 그러나 사람인 것을 예수님이 압니다. 심지어 자기 부인이 여보! 여보! 여보! 당신이 무슨 재판을 합니까? 예수를 재판한다! 그 사람 함부로 재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제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합니다. 그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렸습니다.
빌라도 이 사람이 양심이 고와가지고 예수님이 죄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당시에 제일 나쁜 사람 바라바라는 강도를 내 세워서 여러분 강도가 좋습니까? 예수님이 좋습니까? 아무래도 강도가 더 싫지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바라바를 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디로 빌라도가 물 떠놓고 손을 씻습니다. 왜 손을 씻는가 하면, 주여 저는 죄가 없습니다. 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저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만약 죄가 있다면 그 죄는 저 유대인들에 돌리시옵소서! 라고 손을 씻습니다. 손을 씻는 것이 아니라 목욕을 해 본들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모든 것들은 성경의 예언된 뜻대로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살기 위하여 천사가 올 수 있지만, 내가 죽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아버지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가 성령께서 피가 물처럼 흐르도록 기도하게 한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거저 아버지의 뜻대로만 되게 하옵소서! 그 기도가 모든 성도의 기도의 정답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만 내게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그 뜻이 무엇인지 자기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 뜻대로만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시고 뜻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승천하시고 뜻대로 성령을 보내셔서 예수님의 십자가로만 구원받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죄를 아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일방적으로 죄 속에 들어오신 것처럼,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아버지의 뜻대로 예수님이 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성령과 함께 지하 동굴을 빠져 나오게 하였다면 이것이 바로 거룩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선이라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이 되지 못하는 인간의 의입니다. 이런 선과 악의 굴레 자체로부터 예수님께서 벗어났다면 그것을 세례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연합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화라는 것은 단번에 거룩함은 얻었다는 것입니다. 단번에 얻었다는 히브리서 10:10절의 말씀이 맞잖아요! 이 지하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착해지려고 착한 일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이 착하냐 아니냐 하는 것에 대하여 쟈크 엘룰에 의하면 착한 것을 해 보아도 그것이 착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착한 일은 착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는 주님의 기도만이 착한 것이며 나머지는 착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이라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드러낼 때에 그것만이 거룩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거룩한 모습입니다. 그것을 위하여 베드로전서에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후서 1:5-7절입니다.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가 하면 주어진 사건 하나하나에 주의 뜻대로 우리를 통하여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공중에 떠 있어서 우리가 따 내려서 되는 일이 아니라 그 말씀이 우리를 사용하셔서 성령께서 그 말씀을 이용해서 이것이 우리 속에서 이룰 수 있도록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아~ 이것이 믿음이구나! 이것이 절제이구나! 이것이 형제우애이구나! 이런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철저한 자기 부인입니다.
따라 합시다. ‘자기 부인’ 철저한 자기 부인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그렇게 하셔서 일어난 일입니다. 철저한 자기부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런 십자가와 동반해서 일어나면서 이 모든 말씀은 성도를 통하여 사건 사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착하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또 일을 벌이시네! 그러니까 이미 거룩함을 얻었지! 그것을 사건 사건 속에서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받으시고 죄인 속에 들어오셔서 십자가로 튀어 나올 때 까지 그 모든 것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죽음에서 건져내기 위한 필연적인 절차인 줄 압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더불어서 이 세상이 왜 죄악 되며 내가 왜 죄인인지를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많이 깨닫는 이미 거룩한 사람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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