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어떤 글
[일반] 어떤 글
이름 : 이근호(IP:)
2006년 6월 7일 맑음
울산의 두분 목사님과 부산의 권사님이 잘 들어가셨겠지
형제들과의 우연한 교제의 예고. 반갑기만 한 마음으로 아내와 집을 나섰는데
헤어질 때는 모든 것이 다 와르르 무너지는 처참한 기분이 되어서 돌아왔다.
내가 휘두른 칼에 속절없이 베어지고 무너진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나를 베어낼수 있겠는가?
나는 그냥 껍데기일뿐 언제나 내가 제대로 품고 있다고 여기는 그 복음은 도리어 나를 겨냥하고 있음을 다시 감지하는 두렵고도 고마운 사건이었다.
이 참담함을 누가 견디어 낼수 있겠는가?
하나님과의 동행이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고 인자의 죽음안에서나 가능한 낯선 현실이라면 형제의 만남조차 인자의 죽음이라는 낯선 사건이 뱉어내는 묵시일수밖에 없기에, 그 예정된 사랑을 도무지 저항할 길이 내쪽에서는 있을수 없다는 너무나 무섭도록 정해져 버린 이 새언약의 현실성만을 이 참담함의 유일한 핑계로 삼고 싶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콩나물 한주먹 사면서도 사? 말어? 하면서 의사결정이 잘 안되는 내 마음 어느 구석 어떤 심보가 누가 보더라도 잘난척에 지나지 않아 보일만한 언행을 함부로 일삼게 되는 것일까?
때로 나는 개인적인 한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할때가 많다.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예수라는 분이 자기 피로 낳은 가족이기에,
예수 같은 형님들 앞이기에 그렇게 마음껏 허물없이 까불수 있는 것이라고.
아마도 후자가 분명 맞을 거다.
자유를 생각해본다.
자유란 내가 무엇인가를 향유하는 개념이라기 보다
혹은 내가 어떤 향유를 제어한다는 개념이라기 보다
아예 나와 전혀 상관없이 이미 다 이루어진 완성된 세계를 받들지 않으면 안되는 종의 입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고 그리고 오후에는 설교할참이다.
이 상한심령을 강단에서 고스란히 전해 줄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000목사님이 저(서경수 목사)와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저(서경수)에게 “설교할 때 제대로 준비해서 십자가가 온전히 드높여 지도록 하라”는 취지의 말씀을 아주 강하게 하신 후에, ‘너무 심하게 몰아붙여 혹시나 상처는 입지 않았나?’하는 심정으로 다음날 보내온 메일입니다. 당시에는 정말 화가 나고 무지 아팠지만 이것이 주님의 사랑임을 알기에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