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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계 2:24-29 (사단의 깊은 것)우리교회요한계시록

Re..계 2:24-29 (사단의 깊은 것)

이름 : 이근호(IP:)

사단의 깊은 것

2006년 6월 4일설교 본문: 요한계시록 2:24-29

(계 2:24)『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계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계 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 2:29)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어느 인간의 협조나 도움도 받지도 않으시고 혼자서 일을 다 앞서 처리해 버리십니다. 인간의 봉사나 전도나 종교성 있는 헌신이나 예배성을 기다리지도 않고 알아서 모든 일을 말씀대로 진행시키십니다. 마치 기관차가 급속도로 지나칠 때, 바로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엄찔하고 그 힘에 놀라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속도감있는 예수님의 활발한 활동이 스치고 지나치면 성도는 오직 기쁨과 더불어 놀랄 뿐입니다. 이 능력으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잡아채는데 실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이 아닌 자를 단호하게 제거하고 단절시키시는데 있는 역시 오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는 이 성경을 펴놓고 그 성경대로 힘있게 홀로 일하시는 주님께 대한 경탄과 함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그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은 이미 실효성이 떨어진 과거 신화적인 유물로 취급합니다. 한물 간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 일어나게 유발해서 그들로 하여금 기어이 구원에서 제거해 나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활발한 활약상입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사단의 깊은 곳’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흔히 인간들이 생각하는 악마개념과 다릅니다. 그런 인간들의 악마 생각은 도리어 ‘사단의 깊은 곳’에서 유발된 ‘사단의 얕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악마는 사람들이 사단의 진면목을 못알아보도록 조작해낸 가짜 악마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단의 깊은 곳’을 아는 사람은 역시 ‘하나님의 깊은 곳’을 알고 있는 참 하나님의 백성들 밖에 없습니다. 즉 ‘사단의 깊은 곳’이란 ‘하나님의 깊은 곳’을 의식하도 활동하는 겁니다. 따라서 ‘사단의 깊은 곳’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깊은 곳’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10에 보면, ‘하나님의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지혜란 곧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니 이 십자가=‘하나님의 깊은 곳’을 공격하고 겨냥해서 하는 모든 사단의 활동이 ‘사단의 깊은 곳’에서만 나오게 됩니다. 참 신앙인과 가짜 신앙인이 마주친 곳이 바로 구약 욥 이야기에 나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서 일어난 모든 일을 통해서 욥이 신으로부터 저주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사단의 깊은 곳’에서 나온 오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서 묻습니다. “황무지에 비를 내리는 이유를 아느냐?” 그 때 욥은 말하기를 “모릅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답은 “내가 내리고 싶어서 내린다. 마찬가지로 내가 너에게 고난주고 싶어서 고난 주었다”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사단의 세계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건성이며 얕으며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 있는 경솔한 것임이 드러나 버린 겁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욥의 덩치보다 하나님의 덩치가 더 크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욥을 가지고 비신앙적 세계, 즉 ‘사단의 깊은 곳’을 발각시켜 내는 겁니다.

바로 성경 전체는 이러한 두(2) 노선으로 진행됩니다. 마치 두 열차가 서로 다른 노선 위에서 끝을 향하여 정신없이 질주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열차가 나란히 달릴 때는, 창문 열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가지 일에 대해서 공통적인 관심사를 나타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공통적인 관심사에 마음이 하나가 된다할지라도 그 순간에도 각자 놓여 있는 철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치달리고 있습니다. 이 두 노선을 갈라디아서 4:24에서는 ‘두 언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언약이 한 세트를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창세기 3:15에 나오는 약속에서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한 세트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한 세트입니다. 그리고 방주와 물심판과 한 세트를 이룹니다. 모세가 든 놋뱀과 사람들을 물어죽이든 불뱀이 한 세트가 됩니다. 욥과 욥의 친구가 한 세트입니다. 바알의 제단과 엘리야의 제단이 한 세트입니다. 이런 짝이들이 서로에게 요청되고 필요한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깊은 곳, 즉 십자가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에스겔의 경우, 그는 어느 때에 190일동안 왼편 옆구리를 대고 돌아선 채로 잠을 자야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앞으로 당할 190년의 징벌을 선지자가 미리 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른편으로 돌아누어 옆구리를 대고 돌아선 채로 잠을 자야 했습니다. 남쪽 나라 유다의 190년동안 당할 저주를 온 몸으로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24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도 울지 말아야 합니다. 장차 사랑하는 가족과 잃어야 하는 시절을 미리 선지자가 다른 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깊은 곳’을 토대로 움직이고 일하는 선지자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친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런 일들은 그들 선지자들이 꾸며낸 일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이 그러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의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새벽별’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어두움 가운데 빛의 상징물이 떠올라야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기록된 성경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복음의 광채란 곧 빛 덩어리입니다.

빛은 결코 물과 공기에 붙잡히지 않습니다. 단 그 안에 들어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금 그 물 속도 어두워지고 이 대기도 어두워집니다. 이처럼 복음의 빛의 광채는 인간에게 포획되는 것이 아니라 빛 스스로 일하셔서 우리 속을 말씀이 이해되는 세계로 전환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게 된 것은 주님의 일방적인 일하심의 결과인 것을 알게 됩니다.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는 그 누구도 다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스스로 찾아오셔서 주신 믿음은 그 누구도 도로 없애버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험한 불신앙의 세계 속에 놓여 있는 이유는, 신앙의 빛은 그런 가운데 더욱 진가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오직 들을 귀 있는 자만 듣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활발한 활동의 결과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힘으로 알 수 없는 비밀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복음 듣기를 마다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1-05-02 18:42

015강-계2장24-29(사단의 깊은 것)-rev060604

설교:이근호 목사님

계시록 2장24절에서 29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401페이지입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당황하신지. 또 명백하신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대해서 일체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단독적으로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지고 지금도 부지런히 일하십니다.

한국에 와 있는 어떤 독일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가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독일에 차두리가 문제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은 공이 저기 가면 다른 사람이 공을 잡고 뒤따라가서 공을 몰고 가는데 차두리가 문제가 된 것은 공보다 제가 먼저 가 있다는 겁니다. 한국에 있는 독일 교수가 그렇게 이야기한 모양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자기 백성 구원하겠다는데 누가 말릴 사람이 없어요. 차두리 같아. 굉장히 빠르고 부지런해서 우리의 헌금 봉사 이런 것 제끼고 완전히 단독으로 골인이에요. 그런 봉사 같은 것 받지도 않고 그냥 혼자서 다 일처리 해버리는 겁니다. 마치 빠른 기관차가, KTX가 빠르게 지나가게 되면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움찔’ 하지요.

큰 철 덩어리가 획, 지나가지니까 ‘헛!’ 움찔하고 겁나지요. ‘뭐가 이리 빨리 지나가나?’ 우리 주님 하시는 일이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자기 일을, 건질 자를 건지십니다. 어떻게 추천할 새도 없어요. 추천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내 백성이야’ 하고 건져내시는 겁니다. 협조 공문 띄울 그런 것도 없어요.

어떻게 구원을 잘 해내시는지 우리 주님께서 명백하게 자기 백성을 알아내시는지 사도행전3장에 보면 영생받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라고 돼있습니다. ‘영생 받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람이 꼬드겨서 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영생 주기로 작정된 자가 분명히 있고 그 자들은 우리가 다가서기 전에 주님께서 이미 그 사람을 낚아채서 구원해내신다는 겁니다.

구원해내실 뿐만 아니라 또 무슨 일을 그 차두리처럼 잘하시느냐 하면, 제거할 자를 아주 명쾌하게 과감하게 잘라버려요. ‘너 교회 오지마라! 천당 오지 마라 너 같은 자 필요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알아서 주님께서 척척 재거하시는데 그 면도칼의 역할을 하는 것이 뭐냐 ‘성경말씀’입니다.

우리는 철이 없어가지고, 우리는 성경말씀보고 뒤늦게 책 펴놓고 ‘주님이여! 큐티하면서 지켜볼까요?’ 뒤늦게 어설프게 접근하면 주님께서는 ‘이 말씀 벌써 내가 다 지켰다’ ‘이 말슴 네가 큐티해서 지키는 게 아니고 내가 다 지켰다 내가 지키는 거야.’ 사단의 비밀, 깊은 곳 오늘 본문에 사단의 깊은 곳에 매료되지 아니하고 거기에 빠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천국에 들어가고 만세를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라는 이 작업을 누가 말립니까?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런 안목과 그런 지혜를 주셨는데 누가 가로챌 수가 있습니까? 주님이 주신 지혜를 누가 빼앗아올 수 있어요? 만약에 목사가 줬다면 ‘도로 내 놓으소’ 할 수 있지요. 제가 준 게 아니고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 성경말씀에 기초해서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의 보루를 알게 했다면 어느 집사 장로 목사가 그걸 뺏습니까? 못 빼앗습니다.

차두리 같다니까요. 우리가 생각하기 이전에 작업을 다 벌이고 계세요.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날 때에 중매쟁이가 주선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고넬료는 거기에 전담하는 천사를 보내가지고 ‘베드로가 너하고 만날 거야’ 라고 이야기해놓고 베드로에게는 고넬료라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고넬료가 너와 만나게 될 거다’ 모든 작업은 앞서 주님께서 다 해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하시는데는 그런 작업과 동시에 이 성경말씀 그대로 너희에게, 고넬료면 고넬료 베드로면 베드로 이 본문 말씀 그대로 선물로 한 보따리 안기는 것으로 먼저 찾아가시는 것이에요. 먼저 찾아가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책을 펴놓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 ‘이 말씀을 지킬 게요’ 라는 뜻으로 성경을 펼치면 안 되고, 우리가 못하는 것을 얼마나 재빠르게 주님께서 다 하셨는가, 거기에 대한 환호성. 거기에 대한 고마움, 이런 차원의 입장에서 성경을 들여다봐야 되는 겁니다.

특히 이 본문을 가지고 불신자에게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 ‘사단의 깊은 곳…’ 이렇게 나왔다 말이죠. 그러면 불신자들은 이야기하죠, 사탄? 악마? 사탄이 악마죠. 악마의 깊은 지혜, 또는 깊은 곳, 비밀, 악마가 알고 있는 비밀이 있다. 라는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 있는데, 성경에 나와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면 불신자는 말하기를, 그것은 신화의 세계. 옛날 고대 사회 신화적인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해명이 안 되니까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악한 천사 좋은 천사, 이렇게 이분법으로 했다. 라고 설명할 거예요. 소위 고상한 사람들은. 옛날 한물 간 이야기다 그런 뜻이죠.

그 점에서는 주님께서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래 나오더라 말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이걸 「너희에게 깨달을 수 있는 새벽별을 주겠다.」이래 이야기한다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앞뒤로 맞춰 보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런 이야기예요.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것은, 한쪽 발로써 철저하게 오지 못하도록 삭제하고 저지하고 제명시키는 작업과 병행해서 자기 백성을 고이고이 건져내시는 작업, 이 성경말씀이 믿어지느냐는 그걸 통해서 환원시키는 작업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말씀을 확인시키는 작업.

아까 불렀던 찬송가 가사 475장 3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 문 보게 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이래 돼 있습니다. 아주 가사가, 리듬이 8 8 8 8 로 돼있는데 상당히 신나면서도 간단하지요? 다시 한 번 더 읽어드리면, ‘육신의 눈 못 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 문 보게 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불신자가 들었으면 ‘미쳤나!’ 이럴 겁니다.

인간의 시력이야 ‘1.5 2.0 그걸로 끝나는 거지 신령한 눈 따로 있고 육신의 눈 따로 있다니? 육신의 눈 갖고 있는 인간은 천당가려하면 글렀네?’ ‘글렀죠!’ 글른 거예요. 그렇다면 뭐땀시 성경말씀 믿지도 않은 걸 왜 전하느냐! 철저하게 전하는 과정을 통해서 왜 나는 저 사람과 동일한 신의를 갖고 있으면서도 나는 이 말씀이 믿어지는데 왜 저 사람은 안 믿어지나?를 통해서 이것은 성경말씀을 지켜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이미 어떤 작업이 나에게 가해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느끼는 거예요.

방금 이 말씀 드리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뜻은 항상 두 개의 노선을 깔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기차게 칙칙폭폭 칙칙폭폭 하면서 기관차 몰고 두 노선을 깔고 그냥 질수해버립니다. 그냥 골인하죠. 두 기관차가 함께 가게 되면 자기 선로가 같은 선로인 줄 알고 착각해 창문 열고 ‘어이, 잘 있었나?’ 옆의 기관차와 이야기하고 서로 몰라요. 하나님의 말씀이 개입되기 전까지는 십자가의 의미가 뭐냐 개입되기 전까지는,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보편적으로 사는데 아무 지장도 없어요.

저는 그것을 어디서 확연하게 느끼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아버지여, 나를 받으소서」예수님과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밑에 있는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옷을 서로 차지하려고 ‘가위 바위 보, 묵 지 빠’ 하면서 옷 달라하고

‘너 구원한 적 없네! 너 완전 망상이야! 과대망상증이야 또라이야 너, 혼자 착각했어,’ 라고 놀림과 야유가 십자가 밑에서 왕왕 올라온다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사흘 만에 부활했고 로마 군병 지옥 갔겠죠. 너무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다 말이죠. 가까이 해요.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는 것은 예수님의 살갗과 자기의 피부가 서로 마주칠 수도 있다 말이죠. 하지만 그걸 딛고 있는 기관차 철로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는 거예요.

이걸 사도바울이 알고 갈라디아서 4장에서 이걸 가지고 뭐라 하냐면, 방금 제가 기관차의 두 노선이라 했는데 방금 두 노선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은 두 언약이라고 해요. 두 언약. 그래서 이 언약 개념이 어려운 것예요. 두 언약이라 한 쪽은 법에 속한 언약인데 이것은 저주 받을 노선위에 살아가는 사람이고 한쪽 사람은 약속노선인데

이 약속노선의 특징은 그 난 곳의 어머니가 하늘에 있다. ‘하늘에 있다’ 이렇게 했어요. 갈라디아서 4장24절에 보면. 방금 제가 이야기한 두 언약을 역시 불신자나 절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릴 겁니다.

제가 왜 이 본문을 시작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되느냐 하면 사탄의 깊은 곳이 뭐냐 하면, 사탄의 얕은 곳이 아니에요. 얕은 곳이 아니라는 말은 사람에게 들킬만한 사탄은 아니에요. 사람들에게 쉽게 발각되는 그런 악마는 악마 값도 못합니다. 제가 젊을 때 본 영화 ‘오멘’ 오멘 영화 보고 저는 기절할 뻔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엑소시스트.

엑소시스트 그런 영화를 보면서 뭘 느꼈냐 하면, 큰 은혜를 받았어요. 어떤 소녀에게 귀신이 들어있는데 소위, 귀신 좇아내는 짱이라고 그런 신부들이 와서 귀신 추방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쓰는 방법이 뭐냐 하면 온 방에다, 어떤데서 제가 충격을 받았냐 하면 온 방에다가 성경말씀을 떼어가지고 도배를 해놔요.

저는 그때 처음 교회를 나갈 때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 속에 있으면 거기에는 악마가 침투 않는 줄 알았어요. 아직도 순진하지만 그때 참 순진했어요. 기독교 문화로 인테리어를 해 놓으면 악마는 그 기독교 문화가 겁나서 침투 않는 줄 알았어요. 성경말씀을 도배를 해놨어요. 영화에서 말하기를 ‘놀고 있네’였어요. 종이쪼가리가 무슨 의미가 있냐 말이죠.

십자가를 이마에 대고 ‘사탄아 물러가라!’ 사탕이나 빨아라 말이죠. 이게 뭐예요. 사람들은 악마를 만들어내 가짜 악마를 악마라고 섬기면서 지금 기독교문화라는 걸 만들어냈어요. 악마가 만들어준 가짜 악마. 자기 신수가 펴느냐 꼬라박느냐, 라는 그걸로 측정되는 악마는 가짜 악마입니다. 신수가 훤히 트이면 복 받은 것이고 신수가 꼬라박으면 이건 악마의 벌이고 악마에 시험든 거고. 이런 식의 악마라면 그거는 악마의 얕은 거예요. 그것은 악마의 깊은 곳은 아닙니다.

악마의 깊은 곳. 하나님의 깊은 곳을 알고 악마의 깊은 곳을 아는 두 그룹 사이에 불꽃 튀는 충돌이 구약의 욥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악마가 내세우는 조직신학은 이겁니다. 그 진리는 이겁니다. ‘하나님 말씀 들으면 복 받는다.’ 이게 욥의 세 친구가 내세운 겁니다. ‘욥이 네가 복 못 받고 자식 열 명 다 죽고 집안 말아먹고 온 몸에 악청이 나고 네 마누라 저주하고 떠나버린 것은 네가 신의 벌을 받아서 그렇다는 이러한 논리가 악마 쪽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악마 쪽에서 터져 나온 유명한 성경구절이 뭐냐 하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믿슙니까?’ 이게 악마 쪽에서 나온 거예요. 집에 액자로 해놨겠지만 기독교 문화를 쫓아 악마 쪽에서 나온 거예요. 욥은 처음에 몰랐어요. 나중에 하나님 찾아와서 알았는데, 십자가 비밀에서 나온 원리는 뭐냐 하면 ‘욥아!’ ‘예 하나님’ ‘네가 황무지에 비 내린 이유를 알겠느냐?’ ‘황무지에 채소도 없는데 왜 비를 내립니까? 왜 내립니까?’ ‘모르겠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면서 네가 아는 척을 하는 거냐. 나는 황무지에 비를 내릴 수 있는 그런 분이야. 따라서 나는 너에게 고난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는 그런 분인데, 네가 나에게 할 말 있나?’ ‘할 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감추어진 비밀이에요.

난데없이 믿음 좋은 욥에게 저쪽 악마의 부류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돼, 이런 일이 있으면 곤란해’ 라고 겁나게 만드는 모든 겁나는 일을 생뚱맞게 욥에게 한꺼번에 나타나게 함으로 말미암아 욥의 친구들 진영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는 것을 발각시키는 수단과 도구로서 욥을 사용하는 거예요.

항상 성경은 세트로 됩니다. 창세기 3장15절에 세트가 있고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 세트로 짝을 맞추어서 진행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신앙대로 살았는데 형한테 졸지에 죽고 말았어요. 돌에 맞아 죽었는지 하여간 죽고 말았습니다. 그 아벨노선과 가인노선은 그 원칙에 따라서 새롭게 세트가 되어 있어요. 노아가 만든 방주하고 그 당시 떨어진 물심판하고 한 세트입니다.

방주에 안 들어간 사람은 그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관계없이 물 심판 그걸로 저주 받았습니다. 방주 안 들어갔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이 평소에 행실이 어떠냐 상관없이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를 받는 그 사실과 방주 안의 축복과 세트를 이루어서 성경은 그 다음 차례로 뒤로 넘겨줍니다. 바톤을 넘겨주죠.

놋 뱀과 불 뱀은 세트입니다. 불 뱀은 사람 죽이는 것이고 놋 뱀은 쳐다보기만 해도 생명을 얻는 하나의 세트입니다. 이 모든 세트, 엘리야 제사장과 바알의 제사장이 하나의 세트예요. 바알의 제단은 자기의 헌신과 충성과 바칠 것 더 바치고 저녁 늦도록 자학하면서 자기를 치면서 ‘불쌍히 여기소서’ 겸손한 면을 보이면서 열광적으로 설쳐대면서 종교적인 모든 풍류와 모든 열성을 거기에 다 갖다 바치죠.

반면에 엘리야 제단은 ‘약속을 지키시옵소서, 저한테 약속하기를 비 온다 했잖아요. 약속을 지키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란 것과 인간이 평소에 품고 있었던 그러한 종교성과 항상 대비를 시키는 방향으로 성경은 두 기관차가 질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옥과 천국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고 있어요.

따라서 사탄의 깊은 곳을 발각하려면 이쪽에서는 사탄의 깊은 곳이 아니라 예수님의 깊은 곳이 나와야 되요. 사탄의 깊은 곳과 예수님의 깊은 곳이 대비되는데 사탄의 깊은 곳을, 다른 성경에는 번역이 이렇게 돼있어요. ‘사탄의 비밀’이라고 돼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예요. 사탄이 갖고 있는 비밀인데, 사탄의 비밀이 뭐냐 하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뿜어내는 원천, 그런데 그 원천은 보이지 않는, 마치 원유와 갖죠.

원유는 땅 밑에 있는데 끄집어내는 탑을 세워서 펌프질해가지고 퍼내잖아요. 사탄이 사탄 짓을 하는 그 원천지는 깊은 곳이라고 했어요. 깊은 곳. 따라서 제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많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은 사탄의 깊은 곳을 노출시키고 발각시키는 작업들을 해온 겁니다. 욥도 그렇고 노아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그 선지자들은 흔히 남들이 다 보는 그런 안목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육신의 눈으로 본 게 아닙니다. 영적인 눈으로 사탄의 깊은 곳을 발각시키는 작업에 그들은 투입된 사람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의 깊은 곳을 발각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십자가의 비밀이 있어야 됩니다. 현재 그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것이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고린도전서 2장10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고 돼있어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0』

재밌는 표현이죠? 하나님의 깊은 곳이라고 돼있고, 이곳은 하나님의 얕은 곳이 아닙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알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깊은 곳은 어느 인간에게도 발각되지 않고 그냥 ‘깊은 곳’ 그대로 있는데 이것은 바로 성령이 임해야 깊은 곳을 통달할 수 있다, 하면서 그 깊은 곳을 뭐라고 표현 하냐면 구체적으로 ‘십자가’라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잠정적으로 제 설교의 결론을 내린다면, ‘사탄의 깊은 곳을 아십니까? 또는 사탄의 깊은 곳을 알고 계십니까?’ 십자가의 눈으로 보일 때만 사탄의 깊은 곳도 거기에 맞은 편의 정체를 흐물흐물하게 드러내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십자가의 비밀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돼있습니다. 십자가의 비밀.

따라서 많은 선지자들은 십자가의 비밀을 온 몸에 품고 폭탄을 몸에 품고 자살테러 한 것처럼 십자가를 몸에 품고 세상 앞에 등장하니 세상 사람들은 ‘미쳤다’ ‘돌았다’ ‘정신병자다’라고 놀리면서 그들은 사단의 깊은 곳대로 이쪽에 야유와 핍박을 가하는 형식으로 성경은 진행되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이 놓치게 되면 ‘성경을 자주 읽으세요. 하루에 석장 주일날 다섯 장 읽으면 일 년이면 다 뗍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성경이 하나의 역사책이지 무슨 의미인지 의미를 발견하지를 못해요. 지금 제가 사탄의 깊은 곳과 마주치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영으로 충만한, 성령으로 충만한 선지자를 대면시켜서 어떤 식으로 그 사람을 사용했는지를 저는 에스겔을 예를 들어서 말씀드립니다.

에스겔24장을 제가 보면서 조금 눈물이 나왔어요. 왜냐하면 거기 보니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에스겔아 내가 너한테 하나의 지시를 내리겠다,’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네 눈에 보기에, 참 아름다운 것이 있는데 그걸 내가 빼야 되겠다. 네가 얼마 후에 네 사랑하는 아내가 죽을 것이다. 죽더라도 거기다 장례음식 먹지 말고 울지 마라.’

아내가 죽었는데 울지 마라는 거예요. 저는 어떤 문학책을 봐도 이처럼 마음을 괴롭게 하는, 이렇게 안타깝게 여기는 대목이 별로 없어요. 「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하신지라 」라고 돼있습니다. 눈물 흘리지 마라. 이렇게 돼있어요.

이것은 왜 그렇게 하냐 하면, 에스겔 선지자의 그 부인은 장차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졸지에 다 죽어버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난데없이 에스겔 선지자의 부인을 하나님께서는 앗아가 버립니다.

그럴 때 주변사람들은 ‘당신 부인 죽었으니까 저주 받았다.’고 하지만 이 사정을 혼자 알고 있는 에스겔은 이것이 바로 당신들 앞으로 닥칠 여러분들의 운명이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입장에서 자기 마누라 걱정을 안 하고 자기 백성들 걱정을 해야 하는 이 심정. 이 심정이 예수님 십자가의 심정을 미리 앞당겨서 맛보고 있는 거예요.

이런 십자가 안목이 아니면 이 세상의 사탄의 원천에서 나오는 모든 일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또 에스겔 4장 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에스겔아’ 에스겔은 인자야 부를 때마다 땀이 짝짝 나는 거예요. 190일 동안 너는 왼쪽으로만 틀어서 자거라. 옆구리를 대고 틀어서 자거라. 190일 동안.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북쪽 이스라엘이 지은 죄 때문에 너는 모로 누워야 한다. 불편하지?’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 불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하나님께 징벌 받을 때 불편함을 네가 앞당겨 체험하면서, 체험 가운데 그걸 말해줘야 한다. 그다음에, ‘190일 끝났느냐?’ ‘끝났습니다.’ ‘이번엔 오른편으로 모로 누워서 자거라’ ‘이건 또 왜 그러십니까?’ ‘이거는 남쪽 유다의 죄 때문에 190일 동안 해야 돼’ ‘하필 왜 190일입니까?’

하루를 일년 취급해서 앞으로 190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 된다. 그걸 앞당겨 보여주기 위해서 에스겔은 190일 동안 이쪽으로 자고 190일 동안 이쪽으로 누워서 자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줄로 꽁꽁 묶어라. 움직이지 못하도록 꽁꽁 묶은 거예요. 사람이 환장할 지경입니다.

이사야 25장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내복 바람으로 다시 말해 팬티바람으로 3 년 동안 길거리에 돌아다녀야 합니다. 3년 동안. 저 군대생활 3년 가까이 했습니다. 환장합니다. 그런데 3년 동안 벗은 몸으로 길거리에 나서서 예언을 해야 됩니다. 예레미야13장 같은 경우에는 허리띠 풀어가지고 유브라데강 옆에 가서 허리띠를 감추고 다시 썩은 허리띠를 확인해야 되요.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이렇게 썩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선지자라는 것이 자기 몸이 자기 몸이 아니고, 사는 게 자기 삶이 아니에요. 주님의 계시가 듬뿍 담겨있는 그러한 삶이 통째로 굴러 들어와서 자기 삶을 지배하는 삶이 바로 성령과 함께 투입된 삶이 선지자들의 삶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람들은 그 선지자 에스겔 예레미야 이사야 보면서 뭐라고 느꼈냐 하면, ‘참으로 기이하다’ ‘참으로 특이하다’ ‘참으로 요상스럽다’라고 느낄 거예요.

그게 바로 두 언약, 한쪽노선에 있는 사람과 다른 노선에 있는 사람과의 구별되고 차별됩니다. 차이나는 거예요. 사람이 교회 와서 지식적으로 그걸 정리하고 어떤 체계를 잡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자기 구원으로 이어지지를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28절에 보면, 27절 마지막에 보면 「그러하니라」28절에「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이래 돼 있어요. 새벽별 이게 샛별인데요, 베드로후서1장에 보면 ‘샛별’ 나옵니다. 그 샛별 나오는 대목을 제가 한번 읽어드리면,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벧후1:20-20)』라고 돼있습니다.

뭐냐 하면, 성령은 사사로운 소설책이 아니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만든 것이 이것이 성경책이다. 그 다음에, 성경책 맞은편에 성경책은 누가 이를 것이며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우리 마음속에 샛별이 떠올라야 비로소 성경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비밀을 사탄의 깊은 곳까지 다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비로소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겁니다.

베드로후서1장에서 그 예를 설명하면서 베드로가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자기가 예수님과 더불어서 열두 제자 가운데 임원진들, 재무담당과 부회장, 회장과 셋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이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에 그때 졸지에 예수님께서 딴사람이 되고 말았어요. 완전히 딴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와 같이 빛났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 라는 이야기를 산 밑에 있는 어느 백성, 어느 민족 어느 국가 사람들이 그걸 순하게 인정하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대목을 설교하면서 이것은 「내가 공교로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요, 」라고 돼 있어요. 15절에 보면 「… 내가 이것을 공교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요 …」그 다음에 중요한 말은, 그 복음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한테 마음에 비치니까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제대로 이해했다 말이죠.

그렇다면 자기 후배들, 후배들은 그 변화산 올라가도 소용없잖아요. 지금 성지순례 간다고 돈 들여 가지만 거기는 먼지뿐이다 말이죠. 예수님이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은 변화산 이야기가 성경 속에 담겨있는데 다만 담겨있다 뿐이지, 그걸 캐내는 작업은 우리한테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캐내는 작업은 샛별이 떠올라야 ‘아하, 성경이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그러하구나,’ 그리고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이 성경말씀 대로 진짜로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아는 거예요.

이 대목을 어떤 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는데 참 잘했어요. 뭐라고 하냐면 그 학자가 이래 이야기해요. 빛은 공기 속에 있을 수 있다. -좀 어렵지만 들어보세요.- 빛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다. 맞지요? 물속에 빛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공기 속에 빛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과 공기가 그 빛을 소유할 수는 없다. 이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어떤 교인이 주일날 ‘주여! 성령 충만케 하옵소서.’ ‘방언하게 하옵소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옵소서.’ 하면서 길길이 뛰면서 기도원에서 백일 동안 밥도 안 먹고 ‘백일 동안 밥?’ 하여튼 며칠 동안 밥도 안 먹고 해서 그 능력을 받았다 합시다. 그 능력을 받았으니까 내 속에 있는 능력을 발휘하면 되리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성경적이 아니다 이 말이죠. 비복음적이다 이 말입니다.

왜냐면 빛은 물속에 있을 수 있지만 빛이, 태양이 저버리면 물속에 있는 태양빛도 사라져요. 이게 빛의 특징입니다. 빛은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지만 빛이 빠져버리면 곧장 어둠으로 변해요. 어둠으로. 빛을 내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요한복음에서 이 세상을 빛과 어둠이라고 하는 것은 빛이 주도적으로 우리에게 이 말씀대로 적용해서 성경 속에 숨어있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것이 실재다 하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지. 내가 성경공부 신학공부 해가지고 박사 돼가지고 이걸 내 실력으로 갖고 있다 해서 그것 카드 내밀면서 천당 문 열리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 말이죠. 천당이 자동문이 아니에요. 그거는 내 능력으로 열리는 문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말입니다. 첨부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묻고 싶은 게 그거예요. 당신의 능력으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까?를 거기에 있다는 게 특히 중요한 거예요. 신앙이라는 것은 신앙의 방해꺼리가 많을수록 신앙은 빛이 나게 마련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오늘 교회 올까?’ 그러는데 교회 올까가 아니라 교회 오지 마라, 고 건장한 보디가드가 있더라도 창문 깨고 들어가야 됩니다. 그게 신앙이에요.

‘나 환영 안 해주나?’ ‘나 안 반겨주나? 삐진다? 삐진다?’ 이게 교회 온 게 아니고 누가 나보고 교회 가지 마라해? 다 가지마! 나 혼자 갈게. 그게 신앙이어야 한다 말이죠. 그 교회가 복음만을 전한다면. 교회가 사람 관계가 아니잖아요. 이게. 선지자들 보세요! 에스겔 보세요! 욥 보세요! 우리 같으면, 인간적인 자기 능력으로 예수 믿을 것 같으면 그 사람들 벌써 삐져가지고 하나님 안 믿을 사람이에요.

진짜 그 사람이 고넬료처럼, 베드로처럼 진짜 영생주기로 작정한 사람인데 자기가 먼저 나온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먼저 ‘너는 내 백성이야’ 하고 포착된 빛에 의해서 낚아챈 사람이에요. 첨부터 낚아챈 사람은 끝까지 주께서, 빛이 그 사람을 떠나지 않고 낚아채 인도하십니다. 이미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것을 영화롭게 하는 그 코스에서는 성령께서 보증금을 걸고 이탈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끊으리요. 환란과 핍박? 곤고나 서러움?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끊어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바로, 십자가의 영을 받아서 성령을 받아서 진짜 약속의 노선에, 하늘에 어머니가 계시는 그 약속의 노선에 있는 이런 사람들 앞에, 저와 여러분 다 되기를 바랍니다마는,

이런 저와 여러분들 속에 이 성경말씀에 야유하고 오늘 본문 말씀 사탄의 깊은 곳에서 말하는 ‘놀고 있네~ 옛날 신화 만화책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믿나?’ 이런 사람들이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가득가득 모여 있는 그런 현장으로 여러분들을 파견시킬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받은 그 신앙을 누가 뺏어갑니까. 주님이 주셨는데.

주님이 내 백성이다 하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줬는데, 그 십자가가 크게 보이는데 기관차가 크게 보이고 우리는 움찔하면서, ‘주님께서 나보다 먼저 일하셨네, 놀라워라~ 주님 부지런하기도 하셔라.’ 주님의 크신 덩어리가 보이는데 작은 빈대 같은 인간이 거기에 대해서 무슨 반발을 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 결국에는 죽은 자도 부활되고 악한 자도 부활되고 결국에는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같이 만나게 될 걸 생각해볼 때, 끝을 미리 댕겨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샛별이 있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누가 주님 하신 일을 말릴 수가 있습니까. 일이 안 된다, 못 됐다. 뭐가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것 다 우리 생각이고 주님은 말씀대로 다 매끄럽게 이끌어지도록 일 잘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은총도 잊어버리고 그 사랑도 놓쳐버리고 자기 일에만 열심하다 낙담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짜증내고 참 어리석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신 능력인 샛별이 다시 떠올라서 세상 모든 것이 주님의 뜻대로 되어 진다는 이 안도감에 행복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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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4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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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