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저의 사견
[일반] 저의 사견
이름 : 이근호(IP:)
교회를 인간 존재자들의 모임으로 간주하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원칙처럼, 혹은 칼빈주의 교회관처럼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성도도, 하나님 백성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런 실험은 이미 유대교를 통해서 오랜 세월동안 실시한 바 있는데 결국 이 실험은 끝은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모독하는 처사로 이어졌다. 쉽게 말해서 "예수 너만 잘난 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절대로 무가치하게 버려두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에게만 모든 가치가 다 쏠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 지음받은 백성에게도 고유의 가치를 두었다"이다.
따라서
"새로 지음받은 자들이 모여서 유지해나가는 '교회'와 '그 교회 만들기 솜씨'를 결코 무시할 리가 없다"라는 정신이 바로 그들 교회에서만 허락되는 기본 교회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이런 교회관을 반대하고 나선다는데 있다.
즉 예수님에 대한 '무릎 꿇기'가 전혀 안되어 있는 마음가짐에서
소위 '잘난채 하는 자들에 대한 비위 틀어짐'이 기본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
교회 자체에 대한 무용론을 주장하고 나선다는 점이다.
'교회 모독하기' '교회에서 하는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훼방하기' '교회 무너뜨리기' '교회에 대해 야유하기'가 그런 태도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노골적인 악마적 훼방과 예수님의 교회상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십자가로 인한 용서받음'을 충만하게 드러내는가 아니면 드러내지 못한가에 달려 있다.
'거듭난 인간들에 의한 교회 세우기'와 '교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모두다 '예수님의 용서함' 앞에서 전적 죄인되기를 거부한다는데 있다.
쉽게 말해서 '죄'가 뭔지 아직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아의 죄인됨'은 인정해도 '죄인'으로서 '자아상'은 거부하겠다는 태도를 나타낸다.
즉 본인이 하는 일을 본인이 살펴서 죄인가 아닌가를 판정하고 싶어하지, 십자가 앞에서 당연히 죄가 되는 이유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것이다.
죄와 십자가 관계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아는 여전히 가치있는 존재로 계속 살아 버티고 있다.
참된 '주님의 교회'는 십자가 사건을 증거해서
십자가 앞에서 그 어떤 자도 무가치하며 단지 그들에게 제공된 예수님의 용서하심만 의미있고 가치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참된 교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1)이미 자신에게 분명 교회가 있으며(교회 없음이 아니라 )
(2)그 교회의 목자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된 자로 살아있기에 더이상 자신의 존재는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3)교회를 통해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용서하심을 증거케 하기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 쪽으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란, 곧 자신의 자아상에 붙어있는 가치가 자신이 결국 죽게 되는 궁극적 상황 안으로 당겨져서 사정없이 삭제당하는 사건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성도가 이런 사건을 만나게 하는 교회(그리스도 몸)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같은 그리스도 몸이 되는 지체를 거부하는 것도 말도 안된다.
만약에 자신의 자존심을 공격해주는 견제해주는 그런 주님이 보내신 지체를 거부하게 되면 남는 것은 '절대자아'의 신격화 뿐이다.
참된 주님의 교회 안에서는 성도가 품고 있는 모든 자존심과 체면이 죄라는 이름으로 토해지도록 주님께서 통치하신다.
그래서
왜 우리가 '용서받아야만 되었는가'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 부각되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성도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추악한 이름과 대비된 상태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성경에서 무엇 때문에 '모이기에 힘쓰라'고 하셨겠는가!
그런데
자신의 가치가 묵사발되는 것이 겁이 나서 도리어 십자가의 義만 증거하는 자리에 참석하기를 싫어하고 그런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나도 안다'라고 되풀이하면서 강력한 거부의사를 드러내는 것은 결국 복음이 없고 안들리는 곳으로 혼자 신격화되어 숨어들어가겠다는 자신의 악마의 심보를 드러내는 행위요 열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