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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오용익 목사님의 애끓는 글우리교회요한복음

[일반] 오용익 목사님의 애끓는 글

이름 : 이근호(IP:)

몇주전에 유순자 집사님 내외를 만나고 왔습니다.

제 아내가 해남에서 교사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해남으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무안에 있는 교회와 해남의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산지가 일년이 넘었습니다.

아내와 어렵사리 통화가 되었다는데, 주고받은 내용인즉 다니던 교회를 옮겼다는 거지요.
만나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송제근 교수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배우고 온 박목사님이 그 가르침대로 교회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몇몇 분들이 목사의 목회방침(물론 목사는 자기뜻이 아니라 주의 뜻이라고 하겠지요)에 동의하지 않을거면 다른 교회에 가라는 식으로 되어서 교회를 나올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상 그렇게 되었다는 말로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바는 이렇습니다.

교회가 할일이란 교회라는 부동산과 조직과 인간관계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기 할일인줄 아는 사이비 목사를 보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일을 교회일로 안다면 차라리 교회라는 이름을 지우고 00회사라고 하든지, 00당이라고 하든지, 00협회라 하든지, 00노조라고 해야 합니다. 조폭들도 그정도는 알고 행합니다.

교회의 일이란 진리를 지키고 증거하는 일입니다. 진리를 위하는 교회라면 무엇도 교회 자신마저 진리를 위해서 부인되어야 마땅하다는 심정과 태도를 가져야 진리를 위한 교회라고 볼수 있습니다.

예외없이 진리를 설교하는 목사도 당연히 포함시켜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수가 한국교회는 지금처럼 신앙생활 해서는 도무지 안되기에 내가 성경에서 배운대로 다시 가르쳐서 제대로 된 교회를 다시 해봐야 겠다든지

혹은 어떤 목사가 어느날 제가 어디가서 기가막히게 성경을 가르치는 분을 만나서 배워보니 우리 교회는 지금처럼 신앙생활 해서는 안되고 제가 배운대로 신앙생활을 다 뜯어 고쳐야먄 제대로 된 교회가 될수 있다고 하는 가르침은

제가 보기에는 진리에서 나온 소리라고 보아지지 않습니다.

그게 진리라면 예수님과 예수님에게 배워서 진리를 알았던 사도들도 그런식으로 가르쳤어야 옳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교회다운 교회가 아니다. 내가 온것은 다시 가르쳐서 제대로 된 교회를 세우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한복음 6장)

사도들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 하기로 작정하였노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돗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1-5)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하려 함이라(고전 1:17)

이 가르침의 취지대로 성경의 모든 명령들을 대한다면 그 명령들을 이용해서 교회를 제대로 해 보겠다든지 혹은 그런 식으로 교회를 제대로 해서 목사의 위신을 세워보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도리어 그런 기만과 위선이 폭로되면서 십자가의 공로를 새삼 또 알게 되면서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가 고맙다는 정신만이 충만해서 그 복음만 외칠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들의 복음 증거였습니다.

즉 “이렇게 해야, 그다음에 이렇게 된다”는 인간의 행위의 가능성을 다 부인하고 오직 구원이 예수님의 소관임을 분명히 하자는 취지로 십자가복음을 증거해서 예수님만 높일겁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십자가만 전할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인간의 지혜와 행위로 눈치채지 못할것을 내놓은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이고

인간이 자기지혜를 맘껏 동원해도 절대로 자기것으로 소유하지 못할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뿐이기에

십자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십자가가 아니라 도리어 어떤 인간도 자력으로 구원받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그 십자가에서 나온 능력으로 택한 백성만 구원해서 십자가의 공로만 높이겠다는 것이 십자가에 담긴 뜻이다. 따라서 그 십자가를 헛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만 증거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만 들어가야 할 자리에 교회부흥, 사회개혁, 교회개혁, 제자만들기, 선교하기, 전도하기, 이웃사랑, 나라사랑, 선한문화이루기등등을 집어 넣는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원수로 볼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예수님이 목사님께 뭘 가르치던가요?

예수의 영께서 목사님에게 뭘 말씀하던가요?(요한일서 2:20) 제대로 된 교회를 해보라고 명령하시던가요? 교인들을 그냥 놔두지 말고 체계적으로 훈련받게 해서 제대로 된 신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던가요? 그것이 목사의 사명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던가요?

그일 제대로 못하면 천국에서 탈락시킨다고 겁주던가요?

그일 제대로 못해내면 목사답지 못한 목사라고 겁주던가요?

제 안에 있는 영은 저보고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는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제 안에 있는 영은 그런 짓을 하고 싶거든, 그런짓이 마귀에 사로잡힌 짓인줄 알라고 하십니다. 더 나아가 너도 그런짓을 할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교회를 장악하고 소유하는 식으로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건방지게 구원자 행세하는 십자가의 원수짓을 마음껏 발휘할수 밖에 없는 몸을 가졌기에 그 몸을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날마다 죽이시면서 돌보시는 중이라고 알려주십니다.

그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 고

끊임없이 연이은 파도가 덮치고 또 덮쳐서 더 큰 파도를 이루어 덮치듯이 그렇게 덮쳐오는 사랑으로 말입니다.

이 세상 어떤 일도 예수님이 일으키지 않는 사건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참새 한마리도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모든 사건들은 신자들로 하여금 더욱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만 의지해서 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조치로 다가오게 됩니다.

교회란 주님의 십자가공로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기에 그것을 믿는 교회라면 당연 누가 되었든지 설사 목사라고 해도 십자가의 공로외에 다른 것을 보태어서 교회답게 하자는 시도는

아무리 명분이 그럴싸 하고 보인다고 해도 마귀의 사주를 받은 짓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그 와중에 교회가 다시 한번 십자가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과정에서 십자가의 영을 받지 못한자들이라면 반드시 십자가의 공로만 증거하는 사람을 핍박하고 외면하는 사태가 일어나겠지요.

목사님!

만일 종에 불과한 목사주제에, 섬김의 대상인 교인들이 그들의 주인인 예수님과 의논해서 결정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는 것은 목사 그 자신이 교인들에 의해서 쫒겨날 짓을 했다고 봅니다.

교인들 제자답게 살게 해서 타락안하고 무사히 천국가게 해주는 일이 목사의 할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목사의 일이라면, 그렇게 만들어 주려고 애를 쓰는 목사 인정해달라고 우기는 것 밖에 뭐가 더 나오겠습니까?

자리보전과 월급챙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일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거룩한 일 하는양 위장하는 것밖에 더 무엇이 있습니까?

이 세상 어떤 인간도 자기 하나 책임못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 신앙생활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나선다는 것 자체가 복음을 모르기에 나오게 되어 있는 발상입니다. 본인이 죄인인줄 알면 그런발상 자체가 십자가지신 예수님께 혼날 일인줄 알겁니다.

목사가 해야 할일이란 본인이 받은 은혜의 내용인 복음을 증거하는 일로 교인들을 섬기고 돕는 일입니다. 이때 그 목사가 받은 은혜의 내용이 복음이라면 사도바울이 복음전한 취지대로 자기를 부인하는 가운데 십자가의 피의 공로만 증거될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성령을 받지 못한채 십자가에서 겉돌기만 할뿐 실제로 십자가의 사랑에 참여된 적이 없는 인간같으면 십자가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고 교회를 말해도 자기가 부인되지 않은채 십자가와 예수와 하나님과 그밖에 성경의 내용들이 실려 나오게 되고

이때는 반드시 성경의 내용들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식으로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들과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사도바울의 열심처럼, 믿음만으로는 부족해서 행위가 보태어질때만 온전한 믿음이라는 사고방식과 행태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목사님이 올리신 사이트의 모든 설교가 다 이런 취지로 충만해 있습니다. 목사님이 배웠다는 송제근 교수의 글과 설교가 다 마찬가지이고요.

목사님!
우리가 헤어진지 5년이 되었군요. 적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렇지만 이 짧고 날아갈듯이 지나가는 이 안개같은 지상생활에서 더욱 더욱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나누어 놓는 것이 세월이 아니라 복음인것을.

목사님! 더 늙고 병들기 전에, 아무런 낙이 없다고 할 해가 찾아들기 전에 십자가를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사자는 온동네 어김없이 찾아들고 오직 어린양의 피의 약속하나 믿고 숨죽이며 지옥을 막 떠나려고 서둘러서 이삿짐을 싸는 심정으로, 이전것을 다 몽땅 버리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복음안에서 만나뵐수 있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추신 : 송제근 교수가 쓴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에 대한 저의 평입니다.

< 송제근 교수의 “오경과 구약의 언약신학”을 읽고>

이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이면 누구든지 꿈을 꾼다.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 다 한결같이 꿈을 꾼다. 당장 죽음이 찾아든다 할지라도 오늘만큼은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달음박질을 위한 꿈이자 미래를 향한 포부이다. 그리고 그 미래의 미래가 성공적으로 쌓이면 자연 하늘에 닿을 것이라는 꿈의 탑을 한 장 한 장 올린다. 자기 힘으로 하늘까지 닿아보겠다는 몸짓이다

성경은 그 몸짓이 어째서 허무한가를 하나님의 시나리오(약속)를 따라 밝혀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왜 인간은 심판받아 마땅한지를, 이 지상에 뿌려진 하나님의 피를 통해서 지적받는 현장이다. 물론 그 피안에만 담겨진 은총속에서.

그런 현장에서조차 인간이 꿈을 꾸고 가꾸어 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저자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신학을 전개한다. 그것을 가능케 한 분이 하나님이라고 가정하고서.

이근호 목사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의 책 “교회를 넘어서” 31쪽,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상을 평정하고 없애기 위한 작업이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우상을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취지를 함축해 놓은 것이 바로 새언약이다. 그 새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왜 새언약은 예수님의 피로만 가득 채워져 있을까? 그것은 인간들이 스스로 세워놓은 표준적인 인간상을 전면 거부하기 위해서이다. ---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과 결부시키게 되면 모든 행위는 영적 존재로서의 행위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대해 ‘가능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가능성에 매어 달림으로 인해 그리스도가 하실 몫은 그저 이 가능성을 위한 ‘기초닦기’외에는 없어져 버린다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전제조건으로만 담당하고 진리를 성취할 가능성은 인간의 손으로 넘어 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조기 퇴역 현상이다)

1. 저자의 신학은 하나님나라에서 출발한 신학이다.

(그의 책 14쪽 “창세기의 근본목적은 이 땅위에 하나님나라(씨/땅/주권)가 적극적으로 전개되는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나타내는 것”, 15쪽 ”오경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형성”, 20쪽 “오경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라는 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에 초점--- 하나님나라를 역사상에서 이루는 구체적인 제도인 ‘언약’”)

성경에는 있지도 않은 정치적 의미의 이상국가의 개념에 불과한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성경의 바른 해석을 도모하고, 성경의 통일성을 입증하며, 나태에 빠진 기독교를 개혁한다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기대한 기획이다. 그는 구속사신학의 문제점을 들어 “책 20쪽, 부정적인 것을 극복한다는 의미가 강하며 약간은 추상적이다”고 한다. 창조 - 타락 - 구속이라는 구속사 신학의 시나리오로는 성경의 풍성한 면을 다 찾아내는일에 부족한 면을 보이기에 자신이 연구하다 보니 발견하게 된 것으로(언약신학)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언약은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그의 관심사는 하나님나라이지 언약 그 자체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워서 관계를 맺은 인간들(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오경(성경)의 내용이라고 본다.

교회가 이지경으로 교회답지 못하게 된것은 개인의 구원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다 보니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나라라는 공동체성이 약화되고 자연 자기 하나밖에 모르는 나태하고 이기적인 신앙으로 흘러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니 개인중심의, 혹은 구원중심의 구속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저자는 이점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반쪽짜리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은혜로운 삶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나라의 그 현실을 이 지상에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뜻에 부응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2. 십자가가 빠진채 인간의 종교성에서 신앙이나 신학이 도출되게 되면

신과 인간을 마주세워 놓은채

“하나님의 은혜(구속, 혹은 통치)에 대한 인간의 반응(믿음, 순종, 감사등등)”

형식외에 다른 형식을 취할수 없게 되는데 그의 책도 예외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조차 인간의 반응을 고려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식의 무리한 해석이 나오는데 그것이 십자가를 훼방한다는 점을 저자는 놓치고 있다.

예를 들어 선악과에 대해서 (책 66쪽,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인격의 자유와 완전성에 대한 증거이다. 선악과는 인간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배반할수 있을 정도의 높은 자유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어떤 면에서 인간창조의 영광스러운 면의 표현이며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 놀라운 상징으로 볼수 있다”고 한다)

성경과 다른 이야기다. 인간이 선악과와 생명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놓여진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피조세계란 오직 말씀 그대로 성취됨을 내어 보이는 증거물에 불과할뿐,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에 관여하고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새언약)안에서나 비로서 파악되어지는 언약적 현실이다.

이점에 대해서 이근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책 교회를 넘어서 68쪽-70쪽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도 창조 조건이었다. 이런한 일련의 창조사역으로 이어진 것이 바로 ‘언약 안에서의 동질성’, 혹은 ‘언약 안에서의 동행’이다. 처음 창조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미 없는 자로서 또는 죽은 자로서 언약 실시 밖에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창조사역성을 지닌 언약을 복음의 중심으로 잡지 아니하고, ‘하나님 - 인간’이라는 고정된 틀을 미리 다져놓고 거기에다 ‘언약발전’이라는 구속사 흐름을 집어 넣고 또 히브리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해 들어간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허공에 뜬 ‘초인간주의’인 사유양식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제시한 참 복음은 오직 언약 성취만이 초점이 있는 것이지 결코 언약을 통한 인간 구원이나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형상 회복이나, 현 인간에게 밀착되어 관심사가 되고 있는 그 무엇, 혹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삶, 현 인간에게 추가적으로 제공되는 멋진 생존 환경에 목표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상들은 유사 종교이며 유신론 철학이기에 기존 철학의 가벼운 조작에 불과하다. 신의 존재와 성품을 재료로 하여 인간들은 얼마든지 화려하고 감동적인 복음을 만들어 낼 정도로 상상력들이 풍부하고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신학 테마적 아이디어 들은 인간의 염원이 내포된 가능성으로만 머문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언약은 다른 진리를 나타낸다. 즉 언약달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하나님만의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즉 선악과는 하나님의 말씀의 울타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는 인간의 피조성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서 다시 표현해 보면 피조된 인간 주제에 자기 주제도 파악 못하고 인격의 자유와 완전성을 발휘하는 식으로 생명을 얻어 보겠다는 발상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기에 나오는 사고방식이며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채 신학하고, 신앙하는 모든 인간을 결단코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아울러 하나님나라에 갈 생명도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어 내실 약속이행에 놓여진 사항일뿐이라는 것이다.

이점에 어둡다 보니 그는 인간이 무엇을 할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육의 가능성에 집착하고 있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할 대상이 있고, 목적도 있고, 또 방법도 주어져 있다는 식으로 육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189쪽 기독교가 자체 개혁을 통해서 현대적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는것은 이전부터 믿음의 조상들이 가르쳐준 비법이었다. ---성경의 기원이 되는 오경속에서도 개혁의 역사를 찾아볼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기 32장이다. 우리는 이 본문을 주석적, 신학적으로연구함으로 기독교가 현대적인 도전을 극복할수 있는 기초를 쌓을수 있기를---”)

(367쪽, “안식일의 날짜 개념은 명확하게 초월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사단이 날마다 새롭게 준동하는 역사의 현실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369쪽,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그의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먹고 마시는 문제는 마치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초월하여야 하고 100퍼센트 관심을 그의 나라와 의에 집중해야 하는”)

(371쪽, “아무튼 우리의 주일은 이 완악하고 복음을 거부하는 세상을 향해서 2000년 교회역사가 이룬 금자탑과 같은 유산이고 이것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육의 가능성과 구원에 집착하다 보니 하나님은 어떤 인간을 적극적으로 지옥 보내는 식으로 일하실 리가 없다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변호에 나서지만 바로 그런 해석이 애굽인들이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임을 알지 못한다(히브리서 11:29).

(142쪽 “애굽도 역시 하나님나라 형성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심해서 해석해야 할것은 이 애굽의 도구성은 이 도구의 의지를 하나님이 조장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의 마음속에 있는 타락하고 완악한 상태를 하나님이 은혜로 억제하지 않으시고 버려 두심으로 이 도구성이 작용한 것이다)

성경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이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신다”(로마서 9:18) 그래야 하나님만 영광받으실 것이 아닌가? 구원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을 인정해달라는 식으로 신학을 전개하다 보니, 그점이 원천봉쇄되는 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롬 9장 16절은 분명하게 인간의 모든 구원시도는 헛것임을 밝힌다)에 대해서 인정할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틀렸나? 저자가 틀렸나? 둘중 하나는 틀렸다. 만일 사도바울이 저자의 의견대로 한다면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되어 있는 로마서 9장 16절은 이렇게 기술되어야 맞다.

“ 마음속에 있는 타락하고 완악한 상태를 하나님이 은혜로 억제해서 되어진 상태에서의 구원을 원함과 달음박질이 있는데 그런 원함과 달음박질은 제외시켜 놓고, 그 나머지 원하는 자로 말미암암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귀절도 이렇게 고쳐야 한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만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이 은혜로 억제해서 되어진 인간의 행위는 추가되는 식으로 구원되는 것이니라”고

이것은 사도바울이 로마서 11:6에서 말씀하고 있는 은혜의 원칙에 위배된다.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으로 믿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삭처럼 출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홀로 성취해 내시는 약속의 능력으로만(롬 4:21).

마귀조차 하나님께서 사용해서 영광을 받으신다(살후 2:11,12). 십자가의 가치성만 높아지도록(살후 2:13,14).

3. 저자에 따르면 십자가(새언약)는 완성이 아니라 인간이 완성해야할 것을 완성할수 있도록 밀어주는 보조적인 위치에 놓여 있을 뿐이다. 성경은 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내용이라고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셨는데(요 5:39) 예수님을 증거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인간의 행위를 뒷받침 할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고 하는 구원중심, 인간중심(하나님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가정한 교회공동체중심)의 신학을 전개하다보니, 하나님의 언약조차 인간에게 미진한 과제물을 내주는 식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이란 인간들이 타락전에 풀지 못한 숙제를 언약으로 제시해서 다시 풀어 보라고 내주는 숙제같은 것이고 재기할수 있는 기회쯤으로 여긴다. 그 기회를 선용하고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의 행위를 증거하는 말씀을 가지고 인간의 행위를 끌어내서 어떤 목적을 이루겠다는 발상 자체가 십자가지신 예수님을 모독하는 짓이다. 사도바울이 배설물로 여긴것 속에는 세상에 내노라 하는 모든 신학들이 다 들어있다. 배설물 같은 신학의 한계란 어떤 작업을 해도 결국에는 인간중심으로 다시 되먹임을 한다는 것이다. 아담안에 있는 인간의 관심사란 결국 인간이기에.

(그의책 19쪽 “성경해석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가진 성경 각권이 어떤 통일된 문체와 일관성 있는 신학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연구하는 것”).

(372쪽, 세계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주일을 휴일로 정한 것은 하나님이 기독교를 통해서 세상에 내려주신 역사 가운데 나타난 일반은총이라고 할수 있다).

성경은 인간이 해석해 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고전 2:12).

성경은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은 예수님의 십자가안에서 이미 죽은자들에게나 알아먹을수 있도록 꽁꽁 감추어져 있다. 그점에 대해서 저자는 어둡다.

저자는 죄를 모른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하나님나라 사람답지 못하다는 식의 유대교인들의 죄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채, 하나님나라 사람이라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바로 그런 죄관을 가진 유대인들에 의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십자가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지고 그런 사고방식을 죄악으로 규정하면서 공박하면서 다가서는 십자가임을 저자는 모르고 있다.

저자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빙자해서 자기의 꿈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의 원함과 자기의 달음박질로 구원되어야 겠다고 하나님께 열심히 대들고 있는 셈이다.

회개해야 한다. 지금은 구원의 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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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4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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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