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고서
[일반]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고서
이름 : 이근호(IP:)
[영화라는 이름의 오락으로 종교라는 이름의 오락에 딴지 걸기]
진리에 대해서 기독교가 권위의 한 몫을 담당한다고 여기는 대부분의 서구인들에게 있어 예수는 결코 신이 아니라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설득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즉 진리라는 것이 예수의 신성에 확고한 기초를 지니고 있을 때만 효과가 발휘된다고 여기는 발상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바로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인간들은 초월의 세계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원한다. 예수로 하여금 그 사다리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의 신성은 인간들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한계성을 점차 멀어지고 떨어져나가게 만드는 사다리 구실을 한다고 서구인들은 믿고 싶어한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 초월성의 시범적 상황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인간이 언젠가 완전하게 될 수 없고 그냥 그대로 뭉개진다고 한다면 생의 활력과 목적을 갖지 못해 깊은 허무에 빠진다. 그래서 이 피곤한 일상에서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초월의 세계를 구상해야만 했다. 옛날에 예수라는 청년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소식은 오늘날에도 희망을 준다.
그런데 과연 그 희망이 단지 기대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 하는 것을 결정짓는 것은 실제로 예수라는 청년이 신으로 환생해야만 한다. 그냥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인생이 종쳐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영화는 외친다. “왜 오늘날 우리들마저 아직도 기독교가 말하는 가치에 아무 생각없이 동조해야만 하는가? 왜 과학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지혜의 탁월성을 자랑하면서 인생의 최종 의미에 대해서는 여전히 허술하고 모호하고 허약한 고대의 신화에 도움의 눈길을 보내는가? 뭔가 다른 모색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인류 지혜의 발달은 다른 가능성을 위해 닫아두지 않고 늘 열어놓은 문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알고 있다. 즉 ‘지혜의 종결이나 완결성’은 영 현대인 생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를 통해 기독교를 한낱 고대 신화로 간주해보자는 발상은 기독교에 대한 묵살이나 박살이 아니라 기독교가 지혜의 다른 가능성을 방해하는 장애물 노릇을 하도록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신화란 합리성을 가지고 재해석할 경우에만 요즈음 현대인의 생리에 합세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현대인의 심기에 편하게 하지 못하고 억지처럼 느껴지는 하는 요소는, 예수라는 청년이 꼭 막달라 마리아하고 연애를 하고 혼인을 하고 ‘사라’라는 딸 아이까지 임신시켜야 인간다운 면모가 더욱 강조되고 부각된다고 여기는 발상이다.
즉 현대인들이 고대인이나 종교를 대할 때는, 극히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신의 동작이 도리어 더욱 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법이다. “아, 신은 이처럼 낮아지셔서 인간들의 관심사를 완벽하게 돌보시는구나”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신성을 걷어낸다면 종교란 결국 ‘오락’일 뿐이다.
과거 화제거리를 심심풀이 잡담용으로 삼는 것 밖에 안 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의 오락생활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종교라는 것이 계속 가치 있는 오락으로 남으려면 거룩한 신께서 인간 수준까지 낮아져서 인간들의 시시껄렁한 이야기까지 건성 듣지 않고 신경써주시는 신비로움으로 치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
마치 멜로드라마에서 여자가 전혀 등장하지 아니하면 성립이 안 되는 이치와 같다. 다빈치 코드는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오락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싶어 만든 영화이다. 하지만 종교보다 더 짜릿하고 삶의 의미를 주는 오락은 아직도 창안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들은 알지 못한다.
세상적인 오락의 대표적인 것은 축구나 야구나 골프나 영화나 소설 같은 문학이나 정치운동이나 고스톱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죽고 난 뒤까지 그 게임을 즐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 영화를 통해서 기독교이라는 이름의 오락이 쇠퇴하기는커녕 더욱더 종교라는 이름의 오락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주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영화에 대해서 심술내면서 말하기를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이 영화에서 대꾸하고자 하는 바는 “종교란 어디까지나 오락일 뿐!”이다.
여기에 대해서 종교인들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종교만큼 희망적인 오락이 또 있을까! 다 사람을 즐겁게 하고자 짓이다”라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오직 복음 뿐이다. 나머지는 다 악마의 능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오락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복음이 싫어서 기독교를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역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