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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책 세권에 대한 독후감(이광호 목사의 책)1우리교회고린도전서

[일반] 책 세권에 대한 독후감(이광호 목사의 책)1

이름 : 이근호(IP:)

[예수님 생애 마지막 7일]과 [구약 신학의 구속사적 이해]라는 책과 [ 에세이 산상수훈 ]이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

1. [ 예수님 생애 마지막 7일 ] (도서출판 칼뱅: 서울: 2006)

16pdp 보면, “하나님께서 ‘그 여인의 후손’과 ‘사탄’ 사이에 엄청난 전쟁이 발생될 것을 예고하셨다”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시고 고난을 받는 사건이 있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탄에서 속한 악한 세력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다”고 단정한다.

그렇다면 왜 미리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 초반에 사탄을 심판을 행하지 않는가? 즉 왜 그리스도께서 미리 당겨서 나중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몸이 아니라 아예 하와의 몸을 빌려서 오셔서 사탄을 박살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과연 예수님이 천상의 왕이라면 심판 행위없이 궁극적인 승리를 표현할 수는 없더란 말인가? 꼭 사단이라는 피조물을 갈구야만 했던가? 그냥 악은 악대로 놔둔 상태에서 일단 승리를 선포하고 그 다음에 그들을 지옥에 보내어 영원형벌을 받게 하면 안될까?

즉 영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영적인 악을 처리하면 될 문제를 왜 인간의 몸을 입는 번거러운 절차를 꼭 밟고 육의 수난이라는 거쳐서 승리됨을 선언해야 하는가? 그렇게 되면 이것은 순수한 이는 영적인 차원에서 해결 지운 승리가 아니라 육이라는 조건에 근거하는 승리이기에 육적인 승리가 되는 것이고, 이는 곧 영적 세계만으로서 승리요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는 어떤 결함 요소를 말해주는 것이 예가 아닐까?

이 두 가지 점 을 고려해 볼 때, 저자는, 창세기 3:15이라는 약속과 그 성취성이 왜 하나님에게 있어 꼭 필요했어야 하는지를 그 원인 규명을 포기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라면을 끓이면서 조리 방식을 소개하는 것과 왜 라면을 만들었는가 하는 원인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라면의 경우에는 라면을 만든 목적을 몰라도 가르쳐준 조리법에 따라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지만 창세기 3:15의 경우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약에 창세기 3:15의 제시되어야 될 이유를 모르는채 창세기 3:15의 약속에 의해서 예수라는 분이 오셨다 하는 것을 수용하면 비록 창세기 3:15과 예수와 연관성을 인지하는 바로 그 당시자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악마에게 속한 사람일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가볍게 다루게 된다. 실제로 악마도 창세기 3;15에 약속된 그 인물이 예수님 인줄 명백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다.

이러한 우려할 만한 경우가 249p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저자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로 하여금 인간의 육을 입고 십자가 지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이런 의문점이라면 이미 십자가 지기 이전 겟세마네 기도에서 해결 본 바다.

즉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비록 자신을 그렇게 의문을 표시하는 반문으로 외치더라도 실은 몰라서 새삼스럽게 묻는 외침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신 일을 알리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매달려서 연기를 멋지게 하고 계신 것이다. 관중들을 의식하시면서, 그것도 7이라는 숫자를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조금도 이런 뜻이 아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버려져야 만 이유를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과의 연관성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쪽에서 이미 갖고 있음을 아신다는 고백이다. 즉 이 광경은 자신과 아버지만의 세계이고 다른 인간들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 분은 버려야 할 분이요 다른 한 분은 버림받아야 당해야 될 분이다. ‘버림’이 없는 하나님의 일을 없다. 이것은 하나님과 예수님만의 세계이며 다른 피조물들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된 세계이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그냥 버림받아야만 한다. 구원이고 뭐고 다 아버지의 몫으로 남는다. 고린도후서 13:4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라고 되어 있다.

이로서 인간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모든 구원역사는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고 그들만의 소박한 성경 해석이요 희망사항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예수님을 버림으로서 인간에서 올라오는 모든 해석도 다 거부하시고 차단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셨다. (요 5:21-23)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자신의 약속에 준해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이제 주도권은 예수님이 쥐게 되었고 인간들에게 돌아갈 몫은 없게 되었다. 즉 ‘모든 인간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신학의 배제를 뜻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결과이다. 성도가 되게하든, 구원을 시켜주든 이제 모든 것은 주님 자신이 원하는 자에게만 제공될 뿐이다.

인간은 이제 성경을 놓고서 예수님과 머리를 맞대어 같이 토론할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올바른 성경해석을 운운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신학으로도 구원이 되지를 못한다는 말이다. 아니, 아예 모든 인간은 구원받을 그 어떤 권리나 자격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구원이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된다는 고린도전서 1장의 말씀은, 인간의 의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구원이 전개된다는 뜻이다.

“이렇게해서 구원해 주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렇게해서 구원은 오직 십자가의 능력 뿐이단다”라는 것을 증거하는 식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께서 인간이란 상대방을 향하여 ‘그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그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의 의지만’만을 펼치는 증거물이 되도록만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인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모두 죽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할 수 없고(일시적인 목숨은 계속 죽음 속으로 사라져야하고) 십자가의 능력만 활개치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당연히 ‘교회만들기, ’교회 됨‘, ’바른 교회 유지‘라는 아이디어 같은 것은 주님 앞에서 용납이 될 수 없는 사항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성경을 참조해서 구상해 내는 교회라는 것은 너무나도 불필요한 짓이기 때문이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현존’이라는 표현으로 마감된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구상하는 교회상이란, 인간이란 존재성에 기초해 있기에 존재로만 확인이 될 뿐이지만 그리스도의 현존은 오로지 사건으로 만개된 활동을 펼치시기 때문에 ‘인간들의 교회존재’를 위한 그 어떤 시도를 통해서도 포착되지 않고 만약에 붙잡는 순간, 곧장 교회라는 이름의 ‘신종 우상’으로 등장될 뿐이다.

카톨릭이 그러했고 개신교도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성에 기초해서 교회를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현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존→‘성도’라는 이름의 존재→그들의 성경 지식을 참고로 하는 ‘교회 지탱하기’로 교회가 존립하는 줄로 안다.

왜 이런 견해를 갖는가 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데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참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현존만으로 끝난다면 눈에 보이는 사람은 불필요하고 없어져야 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현존이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즉 십자가에서 나오는 ‘배제하는 능력의 적용과 발휘’라는 방식으로 자기 사람을 관리한다는 그 의의를 거부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그들(카톨릭과 개혁주의자들) 성경을 해석하기를 십자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존재성에서 출발해서 창세기 1장을 펼쳐놓고 역사를 새로 보고 조립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창세기 1장에서 인간 소멸과 지옥을 찾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에는 아직 예수님이 개입한 흔적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집어넣으려니 창세기 3장에 와서나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 전까지는 인간의 고유의 가치를 보존하는데 주력하고자 한다. 정리하면 인간이 죄를 짓기 전의 정황에서는 십자가가 개입될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의 창조하심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예수님의 일생 가운데 일부에만 해당되고 곧장 예수님의 존재적 본질로 얼굴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예수님과 십자가를 이해하고 있고. 그 이해된 예수님의 관점으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다 해석하려고 덤벼드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진실은 오직 이것 뿐이다. “십자가 외에 다른 하나님의 뜻은 없었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 지신 분 외에 하나님에게 있어 인간이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십자가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미진한 것을 보충해서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는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십자가를 통해 더욱 더 빛이 나는 모습으로 고유의 귀한 가치를 부여받았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우리의 존재성 자체가 원래 가치가 있는데, 우리 인간이 부족해서 하나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셔서 우리를 도움주려고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미 거듭난 버린 성도에게 있어 더 이상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저 수시로 우리로 하여금 정신 차리게 하는 모범적 행위 같은 것이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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