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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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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서울 경기(의존교회) 중생, 칭의1-5

이름 : 이장우(IP:)

05 서울 경기(의존교회) 중생, 칭의1-5

05. 11. 14 강의 이근호목사

지난 첫 번 시간에 성경에 보니 하나님이 인간 중에 의롭다고 할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의롭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의롭다 한다고 제가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 자신을 믿고 있기에,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하여서는 자기 자신이 자꾸만 바뀌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같은 경우에도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도 자기의 뜻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믿고자 하는 것이 자꾸만 비껴나가는 것입니다.

아까 이 목사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였는데 대구 실로암 교회에 이광호 목사님이라고 계시거든요! 그분은 교단에서 면직이 되었습니다. 억울하지요! 왜냐하면 바르게 성경대로 했는데 면직되었으니 억울하겠는데,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가?

그것은 분명히 본인이 예수님만 믿는다고 했는데, 예수님 말고 예수님과 걸쳐 있는 여러 가지 인연의 끝을-불교용어인데-안 놓고 있는 것들이 많겠지요! 목사라는 직책, 교단이라는 것, 자기를 따르는 추종세력, 목사님 훌륭하십니다. 대단한 일 하셨습니다. 하는 칭찬, 그리고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사람들,

여러 가지, 소위 예수님만 믿어야 할 우리가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걸치고 여러 가지 믿고 싶은 것들이 있지요! 예수님이 주신 자녀, 예수님이 주신 집, 예수님이 주신 참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목사님, 무언가 예수 이름으로 믿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고 그것이 믿음이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것이니 마음 놓고 믿자고 하는 것조차도 그게 믿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이 무엇이냐 하면, 내 목숨, 나의 의, 나의 착실함과 훌륭함과 남으로부터 칭찬받고자 하며 상상한 위대한 나의 자아상, 그것조차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무엇을 보았습니까? 예수님을 통하여 여러분을 무엇을 보셨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히 망한 분입니다. 집안 다 망한 분입니다. 마리아 생각해보세요! 마리아는 자기 자식이 죽었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차마 땅에 못 묻고 자기 가슴에 묻어서 가는 곳 마다 자식 생각한다고 하잖아요!

저의 어머니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아직도 남편을 못 잊어서 대전 국립묘지에 화요일 마다 가시는 것입니다. 가지마라고 말려도 한 주일에 한번씩 가시는 것입니다. 너무 허전하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여도 가시는 것입니다. 왜? 가시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결국 편한 것만 믿기 쉽다. 이것입니다. 내 몸이 편한 것만 믿으면서 그것을 자꾸만 믿음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편하게 만드시는 예수님,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엉터리가 된 이유입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편하게 해주는 엉터리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은 위험한 분입니다. 예수님 같이 따라다니는 열두제자들 다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닌다는 것은 무지무지하게 위험한 일입니다. 지금 시절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습니다만 초대교회 시절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자 굴에서 자기 목숨과 맞바꾸어야 될 정도로 위험스러운 분이 예수님이었습니다.

지금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보시기에 이런 믿음은 엉터리 믿음이거든요! 엉터리 믿음이기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시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하면 이 믿음의 내용을 수정하는 쪽으로 인생을 몰고 가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맨 날 부정적인 것,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 처나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는 이런 말씀, 누가 더 높으냐고 따지지 말라하시면서 어린 아이 하나 세워놓고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너희를 보내는 것은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너희들의 말을 믿지 않거든 발의 먼지를 털어버려라. 그곳이 소돔과 고모라 보다 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웃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다. 부한 자들아 너희는 통곡할지어다. 왜? 너희들이 받을 행복은 다 받아 챙겼다. 끝났다 너희들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우리가 현재 믿고 싶어 하는 것은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변하게 만드시는 그런 쪽으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엘리야 엘리사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보세요! 남들에게는 좋게 하여주었지만 본인은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롭게 된다고 할 때에 도대체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평생에 걸쳐서 우리에게 계속 주어질 것입니다.

마치 강도처럼 예수님만 계시면 황송무지로소이다. 예수님만 계시면 제가 무얼 더 바라겠습니까? 예수님만 계시면 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만 있으면 제 인생은 다 완성된 것입니다. 하면서 기뻐할 그날까지 우리가 그동안 믿을 필요도 없는 것들을 예수님 믿는 것으로 대체한 우리를 아브라함 이끌 듯이 우리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거나 기분 나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우리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기에 순하게 순종하면 그만이지,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면서 따질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그런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처음에는 창세기 15장으로 하였는데 이 둘째 시간에는 시편 71편을 봅니다. 보시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너무나 악하기에 의롭다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완악하던 패역하던 하나님이 의롭다 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해주지 않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서 통과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냥 외치면 됩니다. 이것이 성도의 할 일입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시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고 내뱉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시편 71:2절입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면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15-16절입니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18절에 늙어 백수가 될 때 까지라도 주의 의만 전하겠다는 것이며 24절에서는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만 말씀하겠다고 합니다.

보셨지요! 약간 어려운 이야기 합니다. 잘 들으세요!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의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아직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이기에 하나님의 의가 여러 가지 기적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왜 기적인가 하면, 우리 인간의 일로 나타날 수 없는 그런 기적, 의로운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때 그때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만한 복을 받을 자격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웬 은혠지, 내 행동과 관계없이 복을 받게 될 때에 이것은 아 하나님의 행동 때문에 나에게 그냥 공짜로 주어졌구나 하고서 믿은 것이 시편 71편입니다. 그 뜻은 이해되겠지요!

다시 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복을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 웬 은혜인지 놀랍게도 이런 큰 축복을 주셨을 때에 그런 축복은 나의 선한 행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의로움 때문에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구약입니다. 아직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평소에 생활하시면서 언제 이러한 시편 71편의 진술처럼 내가 종일토록 하나님의 의만 진술하겠나이다. 할 정도로 고맙고 감사하던가요?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나는 이런 은혜를 받을 자격도 안 되는데 오감하다. 어떻게 이런 고마운 일이 다 있는가 하는 경우가 하루 종일 언제 입니까?

제가 객관식 문제를 냅니다. 1) 아침 10시에 택배가 왔는데, 아는 집사님이 내 목 아프다고 약을 공짜로 택배로 보내왔을 때, 2) 12시에 우리교회 어떤 장로님이 생활비 적으니까 애들 공부하는데 아쉽지요! 이것은 교회에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사모님께 드려서 애들 공부하는데 쓰시라고 왔을 때, 3) 오후 세시에 가만히 있었는데 옆의 교회 문제가 있었는데 그 교회의 대표가 20여면 데리고 와서 이번 주부터 이교회에 오겠습니다. 4) 오후 6시에 어떤 사람이 와가지고 저녁 공짜로 사줄 때, 몇 번입니까?

이런 것 가지고 내가 종일 주의 의를 자랑하겠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시편 72편의 성도는 자기가 낮아졌습니다. 자기가 높아져서 한껏 교만할 때는 자기가 지금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런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여도 자기 임의대로 하나님의 의와 의 아닌 것을 하였는데, 마음을 낮추어 버리면 시편 전체가 그렇습니다만 종일토록 모든 것이 들풀이나 공중에 나는 새처럼 모든 것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축복 덩어리로 그 속에 내가 놓여있고 헤엄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에 종일토록 주님의 행사를 진술하는 것입니다. 시편 71편에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일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일이란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약속에 땅에 거한다는 그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나라는 인간이 아직도 21세기에 11월 14일 지금 이 땅에 살아있다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덩어리라는 것을 은혜를 받아보면 이것을 압니다.

잘 모르는 모양이네요! 그러면 방법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죄인임을 느낄 때, 24시간 종일 주의 의만 진술합니다. 이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라고 하니 어폐가 있습니다만 자기가 죄인이라고 느낄 때에 자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과거가 다 축복입니다.

죄인인 주제에 무엇을 마다하겠습니까? 바울사도가 삼층 천에 올라갔다 온 후에 고난 받는다는 그 자체를 기꺼이 환영하였습니다.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고난이라는 고난을 다 받아도 나는 아멘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입니다.

그러니 고난 받는다고 짜증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사치인 것입니다. 아직도 교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여 왜 저를 이렇게 고생시키는 것입니까? 하면서 따지는 것도 교만한 증거입니다. 바울사도가 삼층 천에 올라가서 천국을 보고 난 뒤에 얼마나 좋았든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세계를 보고 왔는데 그 까짓 세상의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마음 상하고 마음 조려하면서 조마조마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그런 생각이 들겠습니까?

나는 고난 받으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겠습니까? 고난이여 다 오라! 내가 맛보지 못한 고난 다 맛보마! 이미 천국을 본 사람에게 그것은 문제 거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의만 종일토록 진술 할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 보내신 것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기 위함입니다. 시편의주제가 무언가 하면 어린아이라도 주님의 의를 진술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젖먹이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장성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낮추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을 주셨는데도 세상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더 좋으니 마음이 높아질 때로 높아져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동안 은혜를 베풀러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셨는데 그것은 은혜로 기적으로 보지를 않는 것입니다. 맨 날 짜증만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로 둘러싸여도 하나님의 의 인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언제 아브라함이 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자식을 바쳤습니다. 그 보통 믿음이 아니지요! 대다한 믿음이지요!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아들을 바치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은 불가능하였지만 하나님의 맹세가 역사하고 있었기에 아브라함이 바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가지고 계속 사용하시고 계속 계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듣고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내가 마음을 낮추어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려고 애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안 됩니다.

신약시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죄인인줄 알면 그만입니다. 마음을 낮추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십자가 앞에서 내가 죄인인줄 알면 그것은 저절로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대구의 105번 104번 좌석 버스를 타면 앞에 광고가 붙어 있는데 어떤 절에서 광고를 붙인 것입니다. 고부간에 갈등이 있는 것, 애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것, 이사 갈 때, 몸이 시름시름 아플 때에 오세요! 하면서 10가지 정도 되는데 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름 지을 때, 사업할 때 등의 문제들을 절에서 부처님의 힘과 영력으로 점쟁이처럼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야 이것이 이단이구나!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있는데, 만약에 바울사도가 이 광고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애가 시름시름 아플 때 바울사도 같으면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하냐는 것입니다. 삼층 천을 보고 왔는데, 고부간에 문제가 있다. 이유 없이 자녀의 성적이 내려간다, 그런 문제가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왜 그렇게 마음을 쓸 수 있는가 하면, 바울사도 자신은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총각입니다. 결혼? 그게 뭐 중요한 문제입니까?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 같이 하라고 합니다. 재산? 그게 무슨 중요한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죄인 인데, 죄인이 예수님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자기가 올라가본 삼층 천에서 영생토록 느긋하게 살 것인데 이 땅에서 힘들게 사는 것이 힘든 것도 아닌 것입니다. 힘 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힘 드는 것이지,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힘 드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게 무슨 힘 드는 것이며 고민거리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근심거리를 가지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믿음은 깨어져야 할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것은 박살 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라면 믿음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칭의 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여 주시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자신이 복 받은 것과 결부시키지 마세요! 왜? 우리는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원래부터 죄인 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인 인데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칭의입니다.

막상 들어보니 너무나 간단한데 우리가 일상생활에 들어오게 되면 꼬이기 시작합니다. 나의 욕심과 결합이 되어 가지고 자꾸 꼬이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비추어 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십자가를 그어놓고 마음속에 그으라고 하니 무슨 마술 같습니다만 마음속에 십자가와 그 피를 생각하면서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면, 아하! 이 목사님의 말을 들어보니 무슨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십자가를 잊어버렸기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하였으니 십자가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약간의 심리적인 기술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약간 위험하기도 합니다만 안 떠오르면 할 수 없고, 떠오르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그 생각을 하면 그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찬송가 365장 가사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1절에 보시면, ‘내 주이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이렇게 결합되는 것이 바로 믿음이며 칭의 이며 이것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평소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은 하늘에 있는 의를 우리가 빼 내는 것에 관심이 있는데 주님의 의라는 것은 덮쳐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의가 폭포처럼 우리에게 덮쳐버리는 것입니다. 덮쳐버리면 나의 의는 찌그러져야 합니다.

그동안 왜 우리가 죄인 인가하면, 나의 의를 근거로 복을 따내려고 하였으니 이 나의 의가 안 찌그려졌으니 그것이 예수님의 이를 모욕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의를 주셨지만 늘 짜증을 내면서 나는 이렇게 착한데 왜 복을 안 주십니까? 왜 남들처럼 저렇게 안 해주시는 것입니까?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라는 것을 통해서 나의 의는 찌그러져 버리고, 자기가 의롭게 되려는 것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버리고 그 자리에 진짜 주님의 의만 덮칠 때에 그것을 가지고 “칭의”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으로만 확보하려고 하는데 지식이 아니라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신학으로 넘어오니 어렵게 됩니다.

아까 구약을 이야기 하였는데 구약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마음을 낮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낮추니 하루 종일 주의 은혜와 기적만 보게 되고 그러니 내가 종일토록 주의 의만 진술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이 정도이지만 신약에서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아직도 자기가 죄인 이라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을 낮추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마음을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이 죄인 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라는 것이 자신의 의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나온 김에 한곳을 더 봅시다. 147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이 찬송 부를 때 한 20여초 걸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종일토록 합니까? 24시간? 찬송가는 이렇게 되어있고 성경책 시편 71편에 보니 어떤 신앙인도 종일토록 주님의 의만 진술하는데 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종일토록 주의 의만 진술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문제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니 제보고 욕하지 마세요! 찬송가도 그렇게 되어 있고 성경책도 그렇게 되어 있는데 이 성경에 근거해서 진짜 주의 의를 설명해 드립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든지 말든지 성경의 의를 설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잘난 맛에 사는데 그 자기 잘난 맛이 찌그러져야 합니다. 그것이 안 찌그러지면 주님께 종일토록 주의 의만 진술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항합니다. 내가 남보다 무엇이 못하다고 이렇게 고생합니까? 분명히 반발심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 어긋나는 의입니다. 내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십자가의 의만을 믿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고서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우리의 죄악 된 마음과 결부되어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들이닥쳤으니 이제부터 여러분의 자기 의는 찌그러지고 욕을 얻어먹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세리와 창기가 먼저 천국에 간다는 원리가 이런 것입니다.

아마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 같으면 이쯤하면 뛰쳐나갈 것입니다. 내가 교회 나가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익이 될 줄을 알았는데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내가 찌그러져야 되니까, 내가 옛날처럼 살 수 없으니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네! 그러면 기분 나빠서 못 듣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습니다. 성경 말씀은 나의 이익과 결부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과 결부시키지 말고 그대로 증거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의하면 그 사람의 태도와 상관없이 그냥, 그냥 의롭다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아도 의인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을 하지 않아도 의롭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죄인이라고 고백해서 의를 따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고 나의 의로움, 내가 죄인 임을 아는 나의 의로움에 대한 증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가 아직도 안 찌그러진 것입니다. 내가 죄인 임을 안다는 이 의로움에 대하여 포기 못하겠다는 고집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마저 찌그러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어떻게 하면 칭의가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냥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누구를 통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그의 행위를 근거로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나는 죄인 이라는 고백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다 더 중요하게 되고 앞서게 됩니다. 뭐 어떤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로 막는지 아십니까? 바리새인들의 겸손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치면서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것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행위를 근거로 해서 그냥 의롭다고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냥 순하게 받으시면 됩니다. 그 분이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어떤 행위와 결부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목사님들이 그런 행위와 결부시키지 말아야지 왜 마음을 낮추어라,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보라는 그따위 말들로 혼란스럽게 하십니까? 하신다면 인간이 그냥 순하게 받을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신약성경에서 찾아봅니다. 구약에서의 의가 무어라고요? 마음을 낮출 때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따라서 종일토록 주의 의만 진술하겠습니다. 그 의로 내가 구원받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다고 합니다. 이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다는 로마서 3장의 말씀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과 결부시키지 마시고 성경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나 하나도 없다는 것은 기뻐할 문제도 아니고 슬퍼할 문제도 아니고 사실 그대로입니다. 짜증날 필요도 없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중세의 철학자들은 이 문제로 고민하였습니다. 의인은 없고 전부 죄인이라면 이 죄인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었다면 그러면 하나님 당신이 책임지시오!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교회에서 교회사를 하는데 10시간 반을 했습니다. 저는 토요일 마다 꼭 시험치는 기분입니다. 왜냐하면 몇 사람이 오든 교회사 강의를 해야 하니까 토요일 마다 교인들 앞에서 면접시험 보는 것입니다.

매주 토요일 시험스트레스입니다. 그 시험을 보기 위해서 월요일부터 각종 책을 보면서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잊어버리면 안 되고, 동영상으로 찍으니까 거의 외워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 하소연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구원받지 교회사로 구원받는 것도 아닌데 왜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하면서 제가 무엇을 느꼈는가 하면 이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들은 것입니다. 놀고 있는 자에게 포도원에 보내시듯이 사실은 놀고 있는 자에게 일을 시킨 것이라고 해야 하는데 왜 나만 이런 힘든 일을 해야 합니까 하면서 나를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바로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다는 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 평가받는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 십자가 이후부터, 십자가 이후부터 하나님 대 인간이지 인간 대 인간으로 대결하는 그런 시대는 이제 두 번 다시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배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너보다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 빼 놓고서 모든 인간이 다 죄인이기에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사를 하면 이런 것이 나옵니다. 훌륭한 사람이 이야기 하면서 성모마리아가 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는지 아닌지 그 논쟁이 나옵니다. 천주교에서는 물려받다가 예수님 놓을 때쯤에 정지되었다가 예수님 놓고 나서는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주교는 완전히 이단입니다. 이단인 이유가 있는데 그 교회사 이야기 하려면 몇 시간 걸리니까 혹시 나중에 그런 기회가 있으면 왜 교회사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모든 인간은 의롭게 될 자격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 되고자 하는 그 사고방식도 걸러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조직신학의 고속도로에 보면 그 대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의인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의사이지 본인이 요청하여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동사무소에 호적등본 떼는 데 가만히 있으면 떼 줍니까? 아니면 신청해야 떼 줍니까? 신청해야 떼 줍니다. 저 인감증명 필요한데요? 어디에 쓰실 것입니까? 예 집 계약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신청하여야 떼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데, 사람들이 천국에 가려는데 천국은 완전한 의인만 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어려서부터 죄를 지은 것입니다. 몰라서 죄를 짓고, 실수해서 죄를 짓고. 지식이 모자라서 죄를 짓고, 마음은 아닌데 육신이 약해서 죄를 지었는데,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니까 옳다구나! 예수 믿어서 의인되자! 이런 식으로 의인 되겠다는 사람, 죄송합니다. 그래서 천당 가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착각하시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자기 주제파악부터 분명히 하자는 것입니다. 어디에 근거해서 바로 십자가에 근거해서, 예수님이 오시고부터는 십자가만이 말을 하고, 십자가만이 잣대이고, 십자가만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시대입니다.

무엇이든지 알고자 하면 십자가 앞에 가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세요! 거기서 의인 되게 해달라고 고함질러 보세요! 용서가 안 되지요! 거기서 나 의인되게 해 달라고 예수를 나오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십자가 앞에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 그 앞에서는 우리가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십자가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죽은 자 인데 예수 안에서만 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인데, 이것을 어린이들이 알아들을지 걱정이 되는데. 지금 인간들은 목숨이 발딱 발딱 뛰면서 살아있습니다. 팔딱 팔딱 뛰는 것이 끊어지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죽어도 살았고 살아도 살았지만 예수 바깥에는 살아도 죽은 자입니다.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십자가 이후에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것을 요한 일서에서 보면 성령 안에 있는 자는 살았고 성령 바깥에 있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요한 일이삼서와 요한계시록까지 더 나아가 요한복음 까지 합하여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살았고 죽어도 살았고 살아도 산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은 죽어도 죽었고 살아도 죽은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봉사라도 눈 뜬 자이고 저쪽은 눈떠도 봉사이며 장님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모든 규정과 개념과 규칙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정한다고 선언한 이후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라는 개념이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무지무지 하게 어려운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다시 이야기 해봅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시편 71편에서 보니 자기의 눈으로 관찰해보고 생각해보니 마음을 낮추면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꽃이 피고 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의 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코로 숨쉬는 것도 은혜입니다. 주여! 내가 종일토록 주의 의를 감사하겠습니다, 요정도 의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우리는 그런 소리 할 자격도 안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것도 은혜요 저것도 은혜요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으면 주여 종일토록 죄인입니다. 종일토록 저는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여기서 어려운 논리를 하나 끄집어내어 보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 안에서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라는 것을 벗겨 버리면 무엇이 되는가 하면 루터가 말한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면서 의인이고 의인이면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하나 마나입니다. 아니 죄인입니까? 의인 입니까? 분명히 하라니까요! 아하 죄인이면서 의인이도 의인이면서 죄인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데요?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으로 간주하여 주었으니까 의인이지만 실제로는 죄를 짓고 있으니 그래서 죄인이라는 그런 뜻입니까? 그래요! 그러면 실제로 죄를 짓고 있으니 죄가 발생되어 나오고 있느니 죄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하 그러나 그것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의인이라고 쳐 주는 것입니까? 장차 쳐주는 것입니까? 이미 쳐 주었습니까? 이미 쳐 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인은 없어져 버렸네요! 그러니 의인됐네요! 그렇지요 의인 됐지요! 그런데 왜 자꾸 죄인이라고 합니까?

방금 이미 의인이 되었다는 말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번 적어 볼게요! ‘이미 의인이다’라는 말은 ‘이미 죄인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이미 죄인이 아닌데 어떻게 그래도 죄인이라는 것과 같을 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상적으로 죄가 나오니까 죄인이고 법정 적으로 의롭다고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판장에서 봅시다. 재판장이 피고는 의인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피고가 야 신난다. 의인이 되었구나! 마구 집어 던져서 유리창 깨면서 나 의인이야! 선풍기 깨면서 나 의인이야! 나쁜 짓 하면서 나 의인이야! 돈 훔치면서 의인이야! 의인이야! 의인이야! 그렇게 한다면, 옆에 있는 사람이 이 망나니 같은 인간아 죄인을 의인되게 해 주었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네가 잘나서 의인되었나! 하나님의 십자가의 피로서 의인되게 하였으니 좀 절제해야지! 그러면 절제할게요! 절제하는데 술은 몇 잔으로 줄일까요? 그리고 봉사도 할까요? 그래야지! 그러면 그 다음부터 무엇이 됩니까? 죄를 절제하는 의인이 되겠지요!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죄를 절제하는 의인’ 되었다면 죄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죄가 나오지요! 그러면 이 죄를 절제해야겠지요!

그러면 절제의 정도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100명이 있는데 90명은 절제를 하였는데 10명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절제 못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0명 중에서 나머지 9명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그 한 사람은 다른 9명 보다 낫다고 보겠지요! 그런 사람은 평소에 절제 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근호가 예수 믿고서 목사 되었으니 절제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이 볼 때는 절제 된 것입니까? 그것이! 그러면 절제하는 의인은 언제 됩니까? 안되잖아요! 그리고 25살에 예수 믿고 40세까지 절제 하였는데 42세 때 절제되지 않으면 앞의 것은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로이드 존스 목사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신분상은 의인인데 실제로는 죄인이다. 의인이면서 죄를 짓는다. 질문은 무엇입니까? 나는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인데 대답은 의인인데 죄를 짓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게 누가 들어도, 100명이 다 들어도, 무엇을 들리게 되는가 하면, 예수를 믿으면 의인이기는 의인인데 아직 의인 값을 못하는 어설픈 의인이라는 쪽으로 이해가 되지 성경에서 말하는 이미 진짜 의인, 예수님의 의가 나의 의를 침범해서 나의 의를 찌그러지게 만드는 예수님의 의가 드러나는 그런 의가 아니고, 자기 절제하는 의로, 자기 절제 많이 하는 새로운 교만덩어리의 의로 가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딜레마입니다. 이것이 보통 딜레마가 아닙니다. 목사는 말리는 것입니다. 술 좀 작작 잡수세요! 그러면 술 먹은 사람이, 목사님 예수 믿는데 의인 아닙니까? 법정 적으로 의인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게 맞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해서 술 좀 적게 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종 두병 먹는데 한 병으로 줄이겠습니다. 더 줄이세요! 그러면 올해는 반병으로 줄이고 내년에는 딱 끊겠다고 손가락 걸고 약속하고 달래기 바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속에서 그리스도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고백케 하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것은 십자가를 증거 하는 하나의 메가폰입니다. 하나의 소리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아브라함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 낳았다고 지옥 갑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안 믿고 육신적으로 자식 낳았다고 지옥 갑니까? 아니 아브라함 전체가 하나님의 용서이고 계시이고 소리입니다.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오실 메시아가 당신입니까? 하면서 의심한다고 해서 지옥 갑니까? 아니잖아요!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승리하고 못된 이세벨을 이기지 못하여 도망칩니다. 그렇게 도망친다고 지옥 갑니까? 아니에요! 엘리야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가 영광성 있게 보여주는 수단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편 71편이 맞잖아요! 종일토록 주의 의만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우리가 의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윤리적 도덕적 개념에서 자꾸만 자기가 의롭다고 하는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윤리적 도덕적인 의로 구성된 자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십자가의 의와 자꾸 충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인이면서 죄인이고 죄인이면서 의인이고, 이것이 자꾸 혼동이 되어가지고 에라 모르겠다! 인간인 이상 할 수 있나! 돈벌다 보면 죄짓지 뭐! 죄 짓고 싶어서 짓나! 누가 죄 짓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나! 하다 보면 죄를 짓는 것이고, 하다 보면 교회도 못나오는 것이지 어쩌란 말입니까? 죄인이 의인되었는데 목사님 이제 내 보고 교회 나오라고 하지 마세요! 한달에 한번만 나오겠습니다. 이제 돈벌러 가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정당화, 목사님이 가르쳐 준 그 근거, 성경을 보면서 나온 그 근거를 통하여 자기 정당성이 또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세 번째 시간에 하겠습니다.
오 분 쉬고 하겠습니다. 녹취 060418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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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