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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안산나라장로교회 요한복음 050613 강의강의요한복음

Re..안산나라장로교회 요한복음 050613 강의

이름 : 오용익(IP:)

요한복음 안산강의(2005년 6월 13일, 이근호목사, 안산나라장로교회)

요한복음을 1장부터 공부하면서 제가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확실하게 말하고 있는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는 죄로 인하여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때문에 지옥가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지 않는 죄로 인해서 지옥가는 가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예수를 믿느냐, 안믿느냐’ 하는 것으로 세상을 결단내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단호합니다. 이 단호함! 사람이 언제 불안합니까? ‘과연 무엇이 확실한것인가?’ 그것을 제대로 모를때 사람은 불안한것입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 사람을 지옥보내느냐’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시시때때로 변하기에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데 그것이 바로 죄”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죄를 알았습니까? 죄를 전혀 몰랐고 아예 눈치도 못챘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들이 알았던 죄는 ‘율법을 지키느냐 마느냐’였습니다. 지키면 그것은 의로운 것이고 안지키면 죄가 되는 그 기준이 전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자기에게로 가져와 버립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는 그 율법이 인간을 향해서 내리 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율법을 일컬어서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요 5:39)이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율법을 아무리 들여다 보고 있어도 예수님이 나올리 없습니다. 예수 믿으라는 말이 십계명에 나오지 않습니다. 십계명에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만 나오지 예수님이 안나옵니다.

따라서 율법으로 천국에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그러한 주장이 전혀 엉뚱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이단이 들어왔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율법해석은 이렇습니다. “율법을 예수님 혼자 다 지키고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다 지킨 그것이 의가 된다.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말씀, 이 율법을 왜 주셨습니까? 이 성경을 예수님께서 혼자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이 성경 말씀을 우리가 지켜야 된다고 우기는 사람을 패가름 하기 위해서 성경을 준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늘날 교회에서 하게 되면 충격이 됩니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단체가 운영이 되려면 운영자금, 돈이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이론에 따르면 십일조라는 법은 십일조를 지키면 의롭고 십일조를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들의 주특기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십일조 자체가 예수님을 겨냥하고, 예수님 자체가 십일조가 되어서 예수님이 십일조를 다 지킨 것을 믿는 사람은 오늘밤 죽어도 낙원에 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구원받는 기준을 일체 나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행위에 따른 예수님의 공로가 나에게 어떻게 도달되는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의해서 내가 예수님께 납치되면 구원이 되지만 납치되지 않으면 그대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예수님만 의존합니다. 제강의를 들으려고 모이는 교회들의 이름이 참 재미있는 이름이 많습니다. 안산의 나라 장로교회도 특이하고 재미있는데 서울의 김명현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는 더 재미있습니다. 그 교회의 이름은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해서 “의존교회”라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 십자가 복음에 빠져서 너무 좋아하고 있습니다.

온교회가 다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어린아이들 까지 모여서 제가 하는 강의를 다 받아 적어서 그 노트가 이만큼이나 됩니다. 제가 혼자 생각하기를 ‘쟤들이 어디서 저런 훈련을 받고 저렇게 적고 있을까? 그런데 저 아이들이 저렇게 적는 내용을 다 알까?’ 그래서 할수 없이 저도 강의를 쉽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화식으로 했습니다. 애들도 다 알아듣도록 했습니다.

요한복음을 공부하면서 분명하게 알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은 나누어 진다는 것입니다. 모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면서 밖에 있는 공원에 나가보면 너무나 다 다릅니다. 입고 있는 옷색깔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혼동이 됩니다. ‘내가 주장하는 이것이 혹시 옳지 않을수도 있지 않을까’

열명인데 열명이 각자 다 다르다면 어찌됩니까? 그렇게 다른데 ‘나만 옳고 아홉명이 다 틀리다고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갈것입니다. 이 사람 말도 들어보고 저 사람말도 들어봐서 다수결로 투표해 봐서 비율이 50%이상 넘어가야 진리가 아닐것인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이 진리인것처럼 보여지는 일종의 끌림, 유혹이 있습니다.

이런면은 교회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목사님에서부터 교인들을 다 모아놓고 “무엇이 진리입니까”를 결정할 때, 전원이 투표해서 다수가 옳다고 하는 다수의 결론을 끌어 모아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에 아마 진리에 가까울 것이라는 판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면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일소하고 오직 한가지 판정뿐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받아들이면 구원받고 예수님의 공로대신 말씀을 지켰다는 자기 공로를 주장하면 지옥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냐, 네 공로냐’. ‘예수님의 행위냐, 아니면 네 행위냐’ 둘 중에서 하나만 택하라는 것입니다. 두 다리와 발을 분명하게 선을 정해서 이쪽이냐 저쪽이냐 둘중의 하나로 몰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다리를 걸칠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준 생명으로 인하여 어떤 행동을 하든지 상관없이 다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에 보면 “죄가 세지만 죄보다 더 센분이 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릴때부터 죄를 지어왔습니다. 그 죄가 굉장히 많습니다. 어쩌다가 몸이라도 다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귀가 늘상 가르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공로도 있기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의 죄가 더 세다” 고 가르치는 것이 마귀의 가르침입니다.

마귀 :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중요하지만 네가 죄를 지으면 그 십자가의 공로는 소용없다.

예수 : 네가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예수님의 의는 그 죄마저 너끈히 용서한다.

마귀와는 정반대로 말씀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왕(King)이라고 합니다. 왕보다 더 힘센 사람은 없습니다. 왕은 최고의 자리를 말합니다. 한 나라의 왕은 한명밖에 없기에 왕은 최고의 권세이며 궁극적인 카리스마입니다. 왕앞에 까불지 말고 무릎꿇라는 것입니다. 그 왕이 무슨 왕입니까? 용서하시는 왕입니다. 어떤 죄마저 그 왕의 용서앞에서는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로마서에서는 은혜의 왕노릇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5:17-18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그 은혜의 왕노릇으로 인하여 한 사람 예수님의 의가 어떤 죄보다 더 강하기에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것입니다(롬 5:15). 요한복음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편에 섰을때 ‘맞다. 나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는구나’ 라고 했을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세력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특히 교회라는 세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는 교회위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예수위주가 아닙니다. 모든 성경귀절을 로 풀이하면서 교회없이는 구원못받는다고 합니다. 왜 교회에서 교회없어도 구원받는다는 말을 왜 못합니까?

교회 : 교회 없이는 구원 못받는다
성경 : 교회 없이도 구원된다.

교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참 이상스럽습니다. 교회는 모여봐야 하나의 사회요 조직에 불과합니다. 친목계고 의미없습니다. 떡떼고 피떼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예수님만 믿어도 된다는 이 진리가 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괜시리 미안스럽고, 뻔뻔스럽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너무 쉬워서 싫다는 것입니다.

개그만 표현으로는 “너무 생뚱맞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새로워서 안믿어집니다. 십자가의 공로로 내쪽에서는 아무것도 하지도 않았는데 내죄가 깨끗해져서 천국간다. 강도도 구원받았다. 이것이 기분좋은 말 같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의 선행과 그 능력을 무시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까? 복음을 믿는 여러분은 이왕 뻔뻔하게 살아온 것 계속 뻔뻔하게 가자고 하겠지만 평소에 착하게 산 사람같으면 이 말은 아예 인격모독입니다.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에 이런 방법도 동원되네” 할정도입니다. 제가 무엇을 근거로 하는 이야기인가 하면 요한복음 16장을 보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6장 끝부분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2절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계속 보시면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정말 안됩니다. 나름대로 안산, 인천, 광주 이렇게 복음을 전한다고, 전해보니까 제일 안되는 것이 이것입니다. 나의 죄보가 강하고 세상보다 강하신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있다는 의식을 사람들이 잘 안갖고 있습니다.

제가 지은 책중에 앞으로 나올 책이 “지옥의 하나님”이란 책입니다. 그 안에 보면 “예수 모르는 즐거움” 이라는 단락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모습과 같습니다. 교회에 와서 장로되는 즐거움, 교회에 와서 목사에게서 사랑받는 즐거움, 교회에 와서 찬송 잘한다고 칭찬듣는 즐거움, 교회에 와서 기도를 오래한다고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그런 즐거움도 있고, 또 율동 잘한다는 아이들의 즐거움도 있는데 그런 즐거움 말로 예수 아는 즐거움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마음으로 교회에 다니는가 봅시다. “하나님 지금 교회 문여는 제모습 보이시지요? 이렇게 바쁜대도 제가 교회 온 것 아시지요? 일주일치 복 주세요. 바쁘고 어려운 가운데 교사로, 성가대로 봉사를 했으니 이정도면 한주일동안의 복을 받을만큼 했지 않습니까? 복주세요. 저 출석도장 분명히 찍었습니다. 이번주에도 중요한 일들이 요소 요소 많이 있는데 그때마다 선한 길로 인도하사 만사 형통케 해주옵소서” 그런식으로 교회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서 저는 미쳤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기에 저를 용서하고 천국에서 받아주게 됩니까?”이렇게 예수님이 궁금해서 교회 문열고 엎어지는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교회 빠지면 ‘에이 진짜 더러워서’ 징계할까 겁도 나고, 혹시 교회 안가면 재수없이 나만 손해보는 인생되니까 더러워서 교회 가준다. 하나님! 저 교회에 왔습니다. 저 착하지요? 복주세요” 이런 식의 자기 노림수나 가지고 교회에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아는 즐거움이 없고 예수 모르는 즐거움으로 교회가 아주 재미가 납니다. 예수님을 모르기를 사람들이 왜 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 앞에서는 자기를 내세우면 안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에 예수님 앞에서 철저히 천하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면 자기 뽐낼수 있는 것들이 삭제되고 지워집니다.

다른 사람보다 기도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이것 저것 잘하는 것들이 목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는 그럴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데 그 앞에서 성가대 했답시고 “나 소프라노로 찬양 잘했지요”라고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예수 앞에 서기 보다는 사람들 앞에 그리고 대중들 앞에 서기를 원해서 교회 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안갑니다. 작은 교회는 뽐낼수 있는 기회가 적고 큰 교회 가야 얻을것이 많습니다. 자동으로 미팅이 성사되고, 장사하는데 단골도 확보하고, 게다가 그 수많은 동호회들, 축구, 바둑, 꽃꽂이 등등도 있습니다. 잘만하면 학교 교수님과 엮여지면 학점을 잘 받을수도 있습니다. 예쁜 미혼 여성들도 확률상 많아지니 결혼할 기회도 잡을수 있고, 공짜로 영어를 가르쳐주기까지 합니다. 이런 문화센터, 이것을 가지고 두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교회”라고 합니다.

결국 사람들이 교회오는 이유는 자기를 빛내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교양쌓기 위해서입니다. 헌금몇푼 내면 점심도 줍니다. 그거 먹고 마음껏 교양생활하고, 예수님 덕분에 공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님 앞에서 “내가 이토록 죄인이고 못난 사람입니다”하고 자기의 숨어 있는 죄를 들추어 내 달라고 요청하면서 “저는 주님 없이는 못삽니다” 하고 주님께 매어달리면서 교회 오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강의하면서 처음 한 소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죄보다 주님이 용서가 더 큽니다” 하고 기분좋은말로 시작을 했지만 이쯤 와서 보니까 우리 신앙이 성경하고 비추어 볼때 뭔가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는 일단 챙겨놓지만 예수님하고는 멀리 떨어지고 싶고 예수님에게서 될 수 있으면 멀리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더 강합니다. “예수 없는 곳으로 피하기” 예수 모르는 즐거움 이것 문제입니다. 이것 신앙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에 놀러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외롭게 만들고 환란을 줍니까? 예수 이름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고 환란을 받으며 남들에게 이단소리를 듣게 해 줘야, 지금 내가 예수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의 뜻에 의해서 섬기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하나 건지고 예수를 이용하는 것인지, 환란속에서, 외로움속에서 비로서 점검되고 확인되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남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예수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예수님 뜻대로 예수님을 사랑하는것인지, 아니면 나를 위하고 내 이웃을 위한다는 빌미로 예수 이용해서 뭘 하나 건지고 챙기기 위해서인지 환란과 외로움속에서 비로서 점검되고 확인되라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성사되려면 어떤 사람에게 됩니까?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그리고 사랑하는 애인마저 내가 믿는 모든 것으로부터 버려지는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를 아는즐거움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 떠나라. 나에게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이 말이 솔직하게 나옵니까?

그것이 아니고 “내가누구를 믿고 살란 말인가? 이제 다시는 복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조직의 무서운 맛에 잘 길들여 지겠습니다”하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은 실상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안믿고, 나에게 힘이되는 세상 조직이 나에게 유일한 힘이 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다시 이야기를 합니다. 본문 말씀대로 하면 “예수님만이 세상을 이기셨기에 이 세상에서 내가 두려워 할 대상이 예수님 이외는 없다”고 해야 정상적인 신앙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론상, 지식상은 그렇게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친구가 사기치고 떠나버리고, 그토록 믿던 아버지도 나를 미워하고, 내가 그토록 의지하던 것들이 나를 떠나고 미워하고 심지어 교회에 가도 나를 왕따 시키고 그렇게도 일이 잘 안풀린다 싶을때는 “하나님이여 너무하십니다 왜 내게 이런 벌을 주십니까”하면서 자기에게 벌어지는 버려짐과 잃어짐의 사건들을 벌로 이해하더라는 말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성령대로 몰아넣고 있는데 본인은 뭔가 하나님께 잘못 믿어서 벌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전의 좋았던 상태로, 원상복귀를 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 분이 너와 함께 있다” 이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차리리 이렇게 기도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예수님만 좋은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저에게 어떤 환난이 와도 상관없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그 자체로 만사형통이며 그것이 축복이라면 제가 의지하는 것이 모두 날아가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에게 그런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성경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공부를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옆에 강도가 나옵니다. 강도가 지옥에 갔습니까? 천국에 갔습니다. 눅 16장에 보면 거지 나사로도 나옵니다. 나사로가 천국갈때에 천사들이 모셔갔습니다. 귀빈이기 때문에 모셔간것입니다. 그것보고 대개 좋아들 하시는데, 막상 본인이 거지생활, 노숙자로서 인생이 마감된다고 여겨보세요. 믿음 없는 인간 같으면, 신세한탄 하면서 그 순간에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배반당한 느낌과 함께 지옥에나 가고 싶을 겁니다.

지금까지 들은 것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너히들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죄가 있으면 지옥에 갈만큼 죄는 무섭다.
2) 그러나 너희들의 힘으로는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
3)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죄를 해결했다.
4) 사랑은 변함없음을 믿으라
여기까지는 다 좋아합니다. 탱규입니다. 5) 그러므로 이제는 마음껏 환란받으라.

그것을 보여주는 성경이 욥기입니다. 자식이 열명이나 되고 재산도 많은 부자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식을 모두 다 잃어버렸을때 제일먼저 튕긴 것은 그의 아내였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솔직합니까? 그때 욥이 한 말이 “주신자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신자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론상으로는 될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이것이 쉽게 될까요?

내가 지금 강도로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달린상태에서는 할수 없어서 옆에 달려 있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것은 혹시 있을수 있다고 치지만, 만일 지금 강도가 아니고 10억이나 20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빼앗아 간다고 할때는 안된다고 할겁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 하는가고 따지는 식으로 나올겁니다. 빼앗아 가봐야 진짜로 믿는지 안믿는지 안다고 할때, 내가 가진 것은 절대 빼앗길수 없으니 차라리 주님이 나를 떠나 가시라고 할겁니다.

마태복음 19장의 부자는 근심하면서 예수님과 헤어지고 맙니다. 제가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수 믿으면 천당가고 예수 안믿으면 지옥가는데 문제는 진짜로 예수 믿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치 않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입니다.

“이날 곧 안식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제가 질문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상했습니까? 전혀 안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까? 전혀 안했습니다.

제자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두려워 떤 것 뿐입니다. 예수님쪽에서 제자들에게 다가와서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면서 다가온겁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두려워 하는지를 잘 아십니다. 그 두려움을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심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부활의 예수님이 그 사람과 함께 있어 줌으로써 그 자체로 모든 문제를 다 해소시켜 버립니다. 평안이란 돈이 많이 있고, 사람들이 날 알아주고 좋아해준다고 해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있어 주심으로 비로서 세상이 줄수 없는 평안을 얻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수 있느냐고 할때 자신의 옆구리의 창자국과 손의 못자국을 보여주시자 비로서 예수님이 맞다고 한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요 20:29)고 합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보고서야 믿었습니다. 지금 태평양 건너가보면 미국이 있습니다. 미국을 가본 사람은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같은 사람은 미국을 가보지 않았지만 미국이 거기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미국을 보지 않고 믿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상스럽게도 예수님에 관해서는 보면 믿고 안보면 안믿으려고 합니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분이, 보이는 세계의 우리를 평안하게 만들고 구원해 낸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대로 믿게 되면 가짜들이 천국에 갈 경우가 생깁니다. 가짜들은 철저하게 가려냅니다. 마지막때에는 보지 않고 믿는 진짜를 원하십니다. 보지 않고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으로 내가 예수님이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마음속에 믿어지는
것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으로 믿게 해줘서 생겨난 마음입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저는 제 행위로가 아니고 예수님덕분에 구원받는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때 주님을 봤습니까? 안봤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큰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이란 병이 낫는다 안낫는다는 식의 보이는 것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이 너하고 상관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는 겁니다. 예수님이 창에 찔리고 못박힌 덕분에 내 죄가 날아갔다는 것을 믿으면 오늘밤에 죽더라도 낙원에 간다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입니다

끝으로 오늘날 교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의 이 복음만을 증거해야 할 교회가, 복음만을 증거할 때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교인들이 목사님에게 헌금을 하지 않아도 구원받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창자국은 돈내는 창자국이 아닙니다” 할겁니다. 또 교인들이 목사님에게 전도를 하지 않아도 구원받느냐고 묻는다면, “그럼요. 전도 안해도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내쪽에서 전도한다고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쪽에서 일방적으로 살과 피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 교인들이 묻기를, 찬양대석에 서서 찬양으로 봉사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수 있는거냐고 할때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구원은 우리의 행함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오직 예수님의 행위로만 구원됩니다”할 때 교회가 잘 돌아가겠습니까? 교회가 돈이 나오겠습니까? 돈좋아하는 세상인데요.

교회에 돈이 안모이고, 재정의 압박을 받고 급기야 문닫을 지경되어 허겁지겁, 세를 준 주인으로부터 쫒겨나는 입장에서, 그만 복도에서 신발을 채 신지도 못하고 질질 끌고 나오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의의 왕노릇 하신다는데 그것이 무슨뜻입니까? 우리 죄보다 강하다는 그런 뜻이지요?” 라고 복음이야기를 할때 그런 무리를 교회라고 합니다. 십자가 붙어 있는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쫒겨나오면서 성경붙들고 “나는 예수님을 알고 싶어요” 라고 하는 그 무리를 두자로 “교회”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런 교회 찾아보기 정말 힘듭니다. “목사인 저에게는 월급 안줘도 됩니다. 저는 빨리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 천당에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이나 예수 잘믿고 구원받으세요” 라고 할수 있는 목사. “제가 퇴직할 때 한푼도 안받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고생해서 모은 돈 여러분의 가정에나 잘 쓰세요”라고 할수 있는 그런 목사.

제가 바라기는, 예수님의 창자국과 못자국이 여러분의 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그 연관성을 믿으시고, 악마에게 속지 말고, 행함으로 구원받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피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전하는 그런 목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은 돈을 보고 돈을 얻고자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닌데, 왜 사람들은 돈을 보고 자기 배채우기 위해서 십자가를 이용하고 거론하는지... 이제는 눈을 똑바로 떠서 남들 탓할것이 아니고, 내가 살아야 하기에 예수님을 쳐다보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께 영광돌리는 귀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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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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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