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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서울 경기(의존교회) 중생,칭의 1-3강의골로새서

Re..서울 경기(의존교회) 중생,칭의 1-3

이름 : 이장우(IP:)

05 서울 경기(의존교회) 중생, 칭의1-3

05. 10. 10 강의 이근호목사

자 마지막 시간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상당히 엉뚱한 이야기를 하였지요!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선악과와 생명나무의 과일이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뜻을 담고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써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인간이 선악과와 생명나무의 과실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하였는데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이고,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그리고 그 추방된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갑자기 무언가 복잡한 덤터기가 인간 주변에 막 깔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좀 어려운데 다시 해봅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어 놓았다고 할 때는 마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다니는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인간 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형상은 내 속에 있으며, 나는 내 마음대로 독립적으로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면서, 마음대로 선택하고 무엇을 따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홀로 자립하는 그런 인간으로 된 줄 알았는데, 선악과를 따 먹었고 따 먹고 싶은 생명나무는 원하여도 따 먹지 못하게 되는 무언가 복잡한 거미줄 같은 것이 인간에게 덮쳐온 것입니다.

거기에다 하나님의 약속까지 주어집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단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뿐인데, 마치 수류탄 핀을 뽑은 것처럼, 하나의 쇠 덩어리인데 핀을 뽑고 한 7초 있으면 꽝하고 터지는 것처럼,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온갖 영적인 일들이 인간들의 예상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 핀을 뽑으면서 등장한 것이 약속인데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운다는 것을 드러내는 도구가 인간의 핏줄 인간의 혈육 인간의 신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싸우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처음부터 혼자 있지도 않았고 혼자일수도 없었는데, 아까 철학자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피히테, 피히테에 의하면 나는 나고 내 속에 무한한 신적인 요소가 있고 내가 알아서 그것을 양심대로 개발하여 신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이라는 이런 영적인 것들을 깡그리 생각하지 않고 나는 나다 예수를 믿어? 내 영혼을 믿는다. 나를 건드리지 마라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 이렇게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홀로 설치고 다니는 것이 진리인줄 아는 그런 인간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을 언급하면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교회 오기 전에 집에서 살림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애들 공부시키면서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의 싸움이 생각이 나든가요? 잘 안 나지요! 그때는 무엇이 생각나는가 하면 수도세 전기세 카드 값 이런 것이 생각나지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에 대하여는 생각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도세 전기세 애들의 성적표 이런데 관심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피히테처럼 우리 가정은 지금보다 애들의 성적이 뛰어나야 하고 우리 가정은 지금보다 돈이 더 많아야 되는데 왜 이렇게 수도세와 전기세가 많이 나오느냐며 나 중심의 생각을 하게 되어있지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보여주는 하나의 도구로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생각이 안 들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모이기를 자주하라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 수록, 사람이 아무리 이렇게 공부를 하여도 집에 가면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앉아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앉아있는 사람은 목사님과 사모님인데 교회 앉아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나 홀로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 전혀 생각이 안 납니다. 생명나무 선악과나무 전혀 생각이 안 납니다.

무엇이 생각나는가 하면 나는 내 하기 나름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달라진다. 거듭나고 싶다. 그러면 내가 믿으면 거듭난다. 뭐든지 항상 행위의 주체가 내가 되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의 여파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그런 생각이 잘 들지를 않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두 번째 시간 끝 부분을 다시 해봅시다. 사람이란 선악과에 담겨있는 죽음과 생명나무에 담겨 있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도구와 피조물로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증거가 골로새서 1:15-16절에 보면,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하여 예수님 때문에 생겨난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으로 귀결되지 않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마지막에 골인 되어야 그것이 바른 해석이고 바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누구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피히테가 이야기하는 내 속에 무한이 들어있고 이 무한을 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신을 추구하는 것은 죄 짓고 난 뒤에, 모든 인간들은 종교를 만들었고 그 종교의 마지막은 신이지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를 지향하는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입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여호와를 추앙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예수님 중심임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알았던 것을 배설물로 버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수님으로 통일시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체적인 인물 예수님입니다.

신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인물, 그 청년의 이름이 ‘예수’ 중심으로 세상과 우주가 통일 된다는 사실을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전 까지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마땅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면 선악과와 생명나무도 예수님을 위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피조물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인간도 들어있습니다. 선악과는 죽음이 무엇인가를 생명나무는 영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문제를 던집니다. 만약의 여러분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수님을 아셨습니까? 교회는 한번도 안 나갔는데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을 고백하든가요? 고백 안하지요! 그 할머니가 죽는다는 것을 압니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압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예수님에 대하여는 알든가요? 모르지요!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이 홀로 되는 그 순간에도 예수님을 몰라요.

언제 아느냐? 히브리서에 보면 사람에게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고 그 이후에 심판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가서 모든 인간은 믿든 아니 믿든 불교신자든 천주교 신자든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예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됩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죽어가면서도 죽음을 모릅니다. 야! 오늘 내가 이야기 하여도 참 멋진 말 하였다! 죽어가면서도 무엇을 모른다? 죽어가면서도 죽음의 실체 진정한 죽음, 진정한 죽음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심판과 저주를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피히테처럼 사람은 영생을 추구하면서 무엇을 모릅니까? 예수님을 모릅니다. 지금 오늘날 교회의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죽어서 천당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영생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자기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을 모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은 사나 죽으나 내 것입니다.

피히테의 내 것입니다. 나는 내 것입니다. 나의 모든 돈도 내가 일해서 번 것이고, 나의 자식들도 내가 배 아파서 낳은 내 자식이고, 주님의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이고, 모든 것은 내가 있기에 내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에, 에베소서 1:10절의 말씀을 고치지요! 모든 것은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범죄 한 인간, 반 예수적인 인간의 본성입니다.

선악과 따 먹고 죽어가면서도 무얼 추구하는가 하면 생명을 추구합니다. 인간은 선악과과 생명나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선악과 따먹고 죽어가면서도 영원히 살기를 추구합니다. 그것이 그모스 밀곰 몰록 등의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이방신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영원불사입니다. 죽지 않고 영원을 추구합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압니까? 영원히 죽지 않는 나를 신봉합니다. 이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나, 선악과를 따 먹어도 죽음이 무언지를 모르고, 신앙생활 하면서도 생명나무가 누구인지 몰랐어요!

누가 알았는가 하면 12년 동안 피 흘린 여자가 알았고, 이방인 백부장이 영생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가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합니다. 나에게도 부하가 있어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옵니다. 주님은 나의 생명나무입니다. 생명이 가라고 하는데 안 갈 수가 있습니까?

아담도 못 따먹은 생명나무를,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생명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 생명인데, 생명의 말을 안 듣고 자기의 말을 들으면 죽게요! 상당히 말이 어려워졌는데 쉽게 해 봅시다.

마르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잘 섬겼습니다. 잡채 짜장면 만들어 대접하면서 잘 섬겼습니다. 특히 마르다가 잘 섬겼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얌체처럼 꼼짝 않고 예수님의 설교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예수님 마리아 좀 나무라 주세요! 나는 지금 예수님 섬기느라고 부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얌체처럼 예수님의 설교만 듣고 있으니 나를 좀 도와주라고 해 주세요!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가 더 좋은 것을 선택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두 사람이 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봉사 하였는데 막상 오빠 나사라고 죽으니까 마르다 마리아는 그 오빠의 죽음이 끝인 줄 알았습니다. 오빠가 죽으니 그것이 죽음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빠 죽고 나서 늦게 오시자 삐진 것입니다. 여자가 잘 삐지지요!

예수님께서 달랩니다. 마르다야! 내가 이야기 하였잖아!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마르다가 자기도 배워서 안다고 한마디 합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줄을 믿는다고 합니다. 마르다가 알고 있는 다시 산다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죽음과 유사한 삶의 개념인 것입니다. 이것이 또 어렵다!

지금 마르다가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 아는 얇은 수준의 죽음과 다시 사는 그런 사는 것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 사는 것이냐 하면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그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해석하겠습니까?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동원된 것이 나사로입니다. 나사로는 이미 제대하고 편하게 쉬고 있는데 나사로를 다시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나사로야! 죽은 지 나흘 되었습니다. 썩어서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이 코를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사로를 나오라고 하시자 나사로가 살아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나사로가 또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사로가 알고 있었던 생명은 무엇입니까? 오래 사는 것이 생명입니까? 아니요!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이제 제대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생명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생명을 알고 나서는 무서운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내가 지금 주와 함께 거하고 있다. 내가 주와 함께 못 박혔나니 이제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신다.

인간은 아무리 인생경험을 많이 하고 도를 닦아도 죽음이 무엇이며 생명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선악과과 생명나무가 무엇을 지향한다고 했습니까? 피조물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악과도 생명나무도 피조물이기에 예수님을 지향하는데 예수님 안에 그 선악과도 생명나무도 다 들어있어요!

선악과가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의 버림 받음입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것이 죽음입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원한 저주입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그러고 나서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이 아담도 모르고 하와도 몰랐던, 그 놀라운 우주를 우주 되게 하였던 십자가에 감추어 두었던 예정된 비밀, 그 예정된 비밀이 무엇이냐?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말씀이며 빛이며 생명 그 자체임을, 33살의 청년이 아니라 만물이 그분에 의하여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그분의 생명이 된다는 것이 우리가 곧 생명이 사람이 된다는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인데, 어떻게 이 복음을 가지고 자기 사업 잘되고, 땅값 오르고, 아이 성적 올라서, 서울 대 가는 것 하고 이 복음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세상 적인 축복 축복하는 것이 이런 복음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런 것이 성경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것이 어디서 나왔는가 하면 범죄하고 나서 자기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아까 피히테 이야기 하였지요! 나는 내가 원하는 내가 되고 싶은 것, 그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생명나무, 선악과,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 하나님의 약속 그런 것은 아무것도 상관이 없고 ‘오직 나는 나다’ 그것 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작태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어요! 없다면 거짓말이니 여기 있는데 죄송합니다. 거의 없습니다. 생명이기에 생명의 원천을 예수님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나의 원천은 예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인생을 살다가 어떤 환난과 핍박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님 부인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관계없습니다. 삼수를 하여도 시험에 또 떨어지고, 저 운전시험 여섯 번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예수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홉 번 떨어진 사람이 예수 부인하지 않았다면 저의 뺨을 때릴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가 일찍 죽었다고 죽기 전에 예수 안 믿었겠습니까? 갑자기 돌연사 하더라고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관계없이 예수님은 생명이고 부활입니다. 처음부터 생명이고 처음부터 부활이었고 처음부터 선악과였고 처음부처 생명나무였습니다.

아직 ‘칭의’ 하나님이 의롭다 하심에 대하여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아마 다음달에 더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로부터 나의 구원, 나의 의로움, 나의 믿음 이런 것을 말하였는데 이런 것에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가 하면 이 ‘나’가 문제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엉터리 나를 피히테가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나라는 유한 속에 무한이 들어있다는 그런 의식은 마귀가 범죄 한 인간들에게 심어준 자기의식입니다. 이러한 나 밖에 모르는데서 구원을 생각한다는 것은 떡이나 엿을 죽 잡아 늘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나의 구원이란 것도 나를 죽 잡아 늘여서 평평하게 한 그런 것 밖에는 안 됩니다. 밀가루 반죽을 죽 잡아당긴 것과 같이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나를 죽 잡아 당겨 늘여서 그 속에서 나의 의로움을 찾는 행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 자체가 무엇을 모독하는 것인가 하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전쟁, 하나밖에 없는 전쟁이고 마지막 전쟁인 이 하나님의 약속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약속을 줄때에 인간은 무엇이 되었습니까? 인간은 흙이 되었습니다. 흙이 된 상태에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설쳤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여자의 후손이니까 이것은 모호한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것입니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실제적으로 손에 만져진다는 것입니다.

뱀의 후손? 뱀의 후손은 무엇입니까? 뱀이 알을 놓은데 그러면 뱀의 알이 뱀의 후손입니까? 이 부분이 오늘 강의에서 어려운 부분인데 잘 들어보세요! 인간이 흙이 되었지요? 맞습니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지요! 맞지요? 맞으면 맞는다고 이야기 해 주세요! 인간은 흙 되는 것이 맞지요! 그러면 여자의 후손이 실제로 나옵니까? 인간이 흙이라는 실제라면 여자의 후손도 실제가 맞습니까? 그렇지요!

그렇다면 뱀의 후손 여자의 후손과 싸우려는 뱀의 후손도 실제입니까?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어 뜯으려면 뱀의 후손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뱀의 후손도 실제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이 뱀의 후손의 실제를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까? 안 찾지요! 왜 우리가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뱀의 후손이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사는가 하면, 신약에서 이런 것을 영적이라고 합니다. 영적이기 때문에 찾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흙이라는 이 사실도 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고방식이 육적인 것입니다. 육적인 안목에서 이런 영적인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늘 나올 수가 없지요! 믿는 사람에게 가끔 나옵니다마는 우리가 이런 영적인 생각을 늘 못하지요! 은행에 돈 찾으러가서는 아가씨 혹시 뱀의 후손에 대하여 아십니까? 그러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지요!

두산하고 한화하고 지금 플레이오프전하고 있는데 두산 이겨라! 한화 이겨라! 하고 하는데 여자의 후손 이겨라! 하면 그 사람은 바보이겠지요! 그곳에서 여자의 후손이 왜 나옵니까?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운다는 이것은 한화가 이기든 두산이 이기든 그것은 이 우주를 변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어려워서 쉽게 해봅시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하늘이 껌껌해 졌습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에 하늘이 껌껌해 졌습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무덤이 열리면서 죽었던 시체들이 일어나서 예루살렘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여러분의 아저씨가 돌아가셨을 때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불교는 자기도를 닦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도를 닦으면 하늘이 까매집니까? 베드로가 도를 닦으면 물위를 걸을 수 있어요? 우리가 몸이 아플 때에 도를 닦아도 왜 하늘이 까매지지 않는지 아십니까? 이 자연 세계는 영적인 세계이고 영적인 세계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다시 말해서 예수님과 상관하는 것이지 이 이근호 하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가 몸이 아프다고 까치가 울지 않습니다.

이근호가 아프다고 누가 울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같은 육적인 아내가 울지만, 영적인 천사는 꿈쩍도 안합니다. 거지 나사로 죽었다고 우는 것은 저쪽이지만 오히려 천자는 받들어 모시고 올라갑니다. 거지 나사로야 너는 육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세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오히려 기뻐서 VIP대접해서 천국 올라가기 바쁘지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울고 통곡하지 않는 것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교회 다니면서도 육적인 세계에 푹 빠져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도를 닦으면 이 자연세계가 감동을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걸은 것은 육적인 자기 바라보지 못하고 예수님바라보고 가니까 그곳이 육지인지 바다인지 구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기를 바라보지 말도 안 되게 자신이 물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나’ 베드로가 물위로 걸었다는 순간에 물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무엇을 본 것입니까? 피히테가 말한 나를 생각하는 순간 물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나를 바라보다가 물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한 칭의 론으로는 지옥 갑니다. 왜? 그것은 처음부터 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이라는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위한 자기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옥보내기 위한 하나의 전략입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 그들은 바라보기만 하였습니다. 요단강 건널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리고 무너질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로보암 전쟁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하여 참고서보고 연구한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명심하여야 할 것은 영적인 분이 지금 우리를 다루고 있다고 여겨야 합니다. 내가 영적인 분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발걸음도 내가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카락도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양이고 목자는 따로 있습니다.

현재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를 인도하는 목자가 모두 자기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피히테의 ‘나’인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는 목자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양이 아니라 목자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의 목자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연히 목자는 따로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전부다 자신을 양이라고 간주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피히테처럼 내가 다 알아서 잘하는데 무슨 목자가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육적인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까지 이해되었다고 보고 진도 또 나가봅시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라는 약속이 있는데 그 약속을 위하여, 그 약속을 보여주기 위한 증거물과 수단으로서 인간이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을 이야기 하면서 계속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었더라, 죽었더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우리와 연관짓지 말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어떤 전쟁을 벌였기에 그 전쟁에 대한 전리품으로 우리에게 의가 주어졌는가를 그 관계를 규명하면 그것이 성경적인 진짜배기 하나님의 칭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의롭게 되고 싶다고 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여호와의 전쟁,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싸움에서 그 혜택이 꼭 나에게 도달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악마가 싸워서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에 그 효과가 반드시 ‘나’ 나에게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물에 빠진 베드로가 되어버립니다. 지금 조금 더 해야 하는데 이래가지고 헤어지면 곤란한데,,,

자 지금 그림을 그립니다. 잘못된 그림인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보시기 바랍니다. 여자의 후손 그 다음에 뱀의 후손 여기에 우리는 제 삼의 관점, 이것이 틀린 것입니다. 엉터리입니다. 저는 여자의 후손이니 뱀의 후손은 망해야 돼! 그러니 여자의 후손의 혜택을 우리에게 주세요! 이런 것은 아까 말한 피히테의 자의식인 것입니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있느냐 성경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세요! 우리는 어디에 속하였는가 하면 뱀의 후손에 속하였습니다. 뱀의 후손에 속하여 있었는데 성령이 오시게 되면 뱀의 후손에 속하여있는 우리를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서 뱀의 후손이 우리를 여기에서 끄집어내어서 여자의 후손 쪽으로 데려가는 식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강의에서 성경말씀이 열왕기 상 9장 9절이었습니다. 애굽에 있던 사람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끄집어 낼 수가 있지요!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된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영을 보내셨기 때문에 의인 되었지, 내가 의인 되어야 구원받는 다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거기에 성령께서 뒤 맞추어서 구원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명심을 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되어야 하는데 율법에 의하여 보니 내가 죄인이구나! 율법에 의하여 내가 죄인 인줄 알았으니 나는 이제 필요한 것은 예수님밖에 없어! 이런 식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말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귀 안에 들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였다면 의가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건져내신 그 자체가 의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의를 확보한 것이 아니고,

아까 피히테식의 이야기를 하자면 하나는 죄인인데 명목상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가 있지요! 죄인이지만 끝까지 의인 되도록 따라가야 돼, 또 하나는 이왕 죄인인데 막살지 뭐! 이 두 가지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나를 위한 칭의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한 나가 아니라 나를 위한 의, 나의 구원을 위한 의가 되면, 이것은 성경적인 의가 아니고 일반 종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뱀의 후손이었는데, 마태복음 12장에 나오는데, 어떤 강도가 집에 들어가서는 그 집 주인을 꽁꽁 묶어 놓고 그 집의 세간을 훔쳐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미 하늘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덮쳐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가 하면 나는 마귀에게 속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나는 구원받아야 돼! 나는 거듭나야 해! 나는 의로워야 해! 하는 그런 발상자체가 마귀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무엇을 알아서 구원받지, 무엇을 해야 의로워지지? 율법을 보니 탐내지 말라 하였는데 탐을 내었으니 죄인인데 그러면 그 다음순서는 무어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의인이 되지? 하는 발상자체가 제 삼자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기에 나온 것입니다. 자신이 마귀에게 속하여 있었다는 고백 속에 나오는 고백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성령이 임하여 자신이 마귀에 속하여 있었던 자라는 것을 아는 자라면,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여자의 후손이 오셔서 자기 백성으로 끄집어내었다는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무엇이 의로우냐? 나에게는 일체 의로움이 없고 끄집어내어주신 그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끄집어내어주신 것이 의가 된다면 내가 의로워질 필요가 없잖아요? 왜? 나를 끄집어낸 손이 나에게는 없으니까!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면 되느냐? 끄집어 낸 것을 증거 하면 되지요! 그것을 로마서 1장에서 의의 종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환난이나 핍박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어떤 어려움이 온다고 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 하는 종, 이보다 더 위대한 의의 종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강도요? 강도가 나쁜 사람이라고요? 마지막에 그는 무엇을 증거 하였습니까? 강도도 나쁘고 그 옆의 강도도 나쁘고 강도를 잡아넣은 경찰도 나쁘고 다 나쁩니다. 다 나쁘지만 하늘나라 간 사람은 누구 밖에 없습니까? 강도 두 사람 다 갔습니까? 그 중에 한 사람만 갔지요!

왜 갔습니까? 강도가 믿음이 좋아서요? 아니요! 끄집어내시는 분이 그 한쪽 강도만 끄집어 내셨기 때문입니다. 어렵습니까? 안 어렵잖아요! 물위로 걸은 사람이 12제자 중에 베드로뿐이지요! 그러면 베드로가 물위로 걷는 것을 연습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보고 오라고 하여 갔더니 그냥 물위로 걷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베드로는 물위로 못 걸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른 것을 시키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것입니다. 물위로 걷는 것은 그만하고 이제 세 번 부인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천국 갔으면 자기 자랑하겠습니까? 내가 내 된 것은 누구 공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럴 때 그 관계를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마지막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의란 내 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얻은 그 의 밖에는 다른 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의란 오직 하나의 의만 인정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의, 같은 말로 그리스도의 의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왜 없느냐 하면 그분만이 우리를 건져내시고 지금도 계속하여 건져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2.5초 동안, 3초 동안, 주일 낮에는 한 6초 정도, 우리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다? 십자가 피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내가 육으로 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살린다는 것을 가끔 알게 됩니다. 가끔 알게 된다는 것은 대부분 무엇을 한다는 것입니까?

대부분 피히테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학자 한 사람 배웠습니다. 무슨 테? 나이테? 피히테지요! 내 속에 착한 것 내가 개발한다. 이것이지요! 내 속에 착한 것을 내가 개발하여 내가 복을 받는다는 식입니다. 그것은 피히테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들어보니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피 때문에, 유월절 어린 양의 문설주에 발랐던 그 피 때문에, 십자가의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산다는 것을 우리가 가끔은 알지요! 그러므로 여호와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셔서 우리의 영원한 참된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칭의에 대하여 조금 더 하고 싶은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칭의에 대하여 인간은 의가 없습니다. 악마 속에 들어있는 인간이 착하다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의란 하나님의 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밖에 없습니다.

그 의가 무엇이냐 하면 악마의 손에 있던 우리를 끄집어 내어주시는 능력, 관계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되느냐? 그 의를 증거 하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의 종, 의가 시키는 대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생명이 시키는 대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이 피조물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인간이 허세를 부리지요! 나는 피조물이 아니야! 나는 내 하고 싶은 것을 내 마음 대로 하는 거야! 이미 죄 짓고 난 뒤에 술에 취한 모습입니다. 술에 취하여 알딸딸하여 막가는 것입니다. 나는 내 의지로 선악과를 따 먹었어! 나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따먹었단 말이야!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따 먹으면 생명나무도 따 먹지 왜 못 따 먹었느냐고 하면, 따 먹으려고 하였는데 못 따먹게 하려고 나가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가지 않고 버티지 왜?

인간은 생명과 죽음을 증거 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가 범죄하고 난 뒤에
모든 것을 오직 나를 목적으로 삼아
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번영을 위하여
나의 신 됨을 위하여 살았지만
이것이 뱀의 후손의 버릇임을 이제 알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있는 우리를
예수님의 의가 능력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였사오니
이제 우리가 어디를 가나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임을 증거 할 수 있는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녹취 060229 이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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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