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계 1 : 4- 6 (그의 피)우리교회요한계시록

계 1 : 4- 6 (그의 피)

이름 : 이근호(IP:)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4- 6절
제목 : 그의 피
일시 : 2006년 2월 26일

http://222.231.1.74/~woorich1/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02강-계1장,4-6,(그의,피)-rev060226.hwp

첨부파일 : 002강.hwp (32.0K), Down:4

이근호

10-12-31 17:14

002강-계1:4-6(그의 피)-rev060226 / 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1장4절부터6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399페이지입니다.

『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신자가 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이렇게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했습니다. 이 믿는 사람을 가지고 신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제일 궁금한 것은, 믿겠는데, 뭘 믿어야 하나님 앞에 신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느냐, 믿음으로만 신자가 되어야 구원되는데, 신자라는 것은 뭘 믿어야 되는데, 행함이 아닙니다. 뭘 믿어야 되는데, 그러면 무엇을 믿을 때 신자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점이 또 궁금증이 됩니다.

아까 불렀던 찬송가 88장2절 가사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2절 세 번째 소절에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이 대목 나오죠.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이 대목을 보면, 온 세상이 나를 버리면 주님도 나를 버린 걸로 해석해요. 친한 친구, 친척, 식구, 심지어 교회, 옆에 있는 집사, 심지어 자식까지. 온 세상이 날 떠나면 그걸 어떻게 잘못 해석하느냐 하면, 주 예수님마저 떠난 걸로 간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오기가 생기죠. ‘에라, 이렇게 된 것 나는 예수 못 버릴 줄 아나?’ ‘하나님이 날 이렇게 버렸는데 하나님이 친구 다 떠나게 했고, 나에게 도움 되는 사람 다 멀어지게 했으면 나도 이제 오기가 생겼다, 나도 하나님 버리지 뭐,’ 하나님이 나를 먼저 배반하고 차버렸으니까. 나도 답답할 게 뭐 있겠나, 나도 하나님 차버리겠다. 그럴 때 이게 신자입니까? 그동안 뭘 믿었어요? 그동안 믿은 게 뭐예요.

그런데 88장2절 가사에 보면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가 믿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믿어진다는 겁니다. 온 세상이 날 떠나도 주 예수는 날 절 때 버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믿어지는 거예요. 결국 이것은 뭘 뜻하느냐 하면, 이 세상엔 가짜가 많아요. 오통 가짜입니다. 신자도 가짜 교인도 가짜 목사도 가짜 다 가짜. 가짜가 많으니까 주님께서는 가짜와 진짜를 선별하는데 어떤 식으로 선별하느냐 하면, 온 세상 다 떠나게 만들어요.(끄덕 끄덕)

온 세상이 내 곁을 떠나게 만들어서 진솔하게, 진실 되게, 솔직하게 ‘너 그동안 누구 믿었는데? 나를 믿었나? 주 예수 믿었나? 까놓고 얘기해봐라,’ 네 곁을 다 떠났다. 이래도 믿겠느냐? 라고 주님께서 낯설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러면 신자가 되면 어떤 답변을 해야 되냐면 이런 답변을 해야 되요. 아는 사람 떠나고 친한 사람 떠나게 하는 그 배후에 주동자가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그 말씀이 그대로 너희에게 성취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진짜 믿는 자 없는데 너는 믿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내가 평소에 의지하고 버텼던 그런 것들이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분이 주님이시잖아요. 라고 이렇게 고백을 할 때 ‘야, 너 참 질기다’ ‘너는 진짜 믿은 거 같다’ 이것을 아주 어려운 말로해서 주님의 환난이 내 안에 넘쳤다고 이야기합니다. 주님의 외로움이, 주님이 이 땅에 살면서 당했던 그 외로움이 이제는 주님 외로움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고 흐르고 넘쳐 믿는 자 속에 주님의 외로움이 스며들어서 이건 「죽어도 주와 함께 죽고 살아도 주와 함께 산다」는 로마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그대로 내 마음 속에서 재현이 되어버렸어요.

그대로 성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걸 볼 때에 그동안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 하려고 세상 것을 끄집어 당겼던 이런 부질없는, 세상 것을 의지하고 세상 것에 기댔던 부질없는 시간들, 세월들이 얼마나 한스러운지요. 우리한테 우리 힘으로 그걸 ‘끝까지 견뎌봐라’ 했다면 여기서 이 세상 유혹에 이길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 가운데 세상이 주는 유혹에, 협박과 공갈에 고개 숙이지 않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다 고개 숙이고, 예수님 버리고 하나님 버리고 다시 원상 복귀해서 타락했던 그 모습으로 흉내 내고 폼이나 잡았던 것 다 거둬들이고 ‘에이, 내가 언제 하나님 믿었나,’하면서 다시 원상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요한계시록은, 광석에 보면 마지막 공정이 많은 광석가운데서 품질 상품 가치가 있는 광석, 금이 많이 함유된 질 좋은 광석과 질이 떨어지는, 해봐야 경제성이 떨어지는, 시장성 없는 것과 분류하는 작업을 마지막 공정 작업을 아줌마들이 와서 한답니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뭐냐 하면, 세상의 마지막 배출구에서 환난가운데서 진짜 예수님을 믿는 자가 누구냐 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류하는 작업이 요한계시록이에요. 그게 요한계시록의 이야기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그냥 건성으로 화장실에 앉아서 후다닥 해치우듯, 환난 가운데 참으라, 죽도록 충성하라 이런 거예요. 고난가운데서 네가 이겨야지. ‘어떤 사람은 목숨까지 바쳐가면서도 신앙을 버리지 아니하였노라,’ 이런 이야기가 뒤에 쭉 나와요. 요한계시록은 화상을 당해 얼굴이 일그러진 지독한 3도 화상을 입은 그 환자에게 냉정하고 비정한 의사가 ‘자, 붕대풀고! 거울을 갖다 대는, 아주 비정하고 냉정하지요. ’이건 나 아니야,‘ 하면서 거부할지라도 그저 냉정하게 거울을 눈앞에 갖다 대며 주제파악을 하라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래서 위로와 치유 이런 것만 풍성하게 있는 이러한 교회의 모습에서 진실로 주님의 그 냉혹함 앞에 용감하게 나설 수 있는 그런 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정말 신자라면, 믿음을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주신 믿음이 있는 자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앞에서 자신의 더러운 얼굴 외면하지 말고 더러우면 더러운 채로, 못나면 못난 채로 똑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보면, 신앙생활이란 게 장난이 아니구나! 그냥 대충 교회 와서 시간 때우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겠구나, 그걸 알게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의 특수한 점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 놔두고 자기교회 친다는 거예요. 보통조직은요, 자기조직은 옹호하고 다른 조직은 저주하는 게 조식의 생리고 살아남기 위한 수법인데, 어떻게 됐는지 요한계시록에서는 자기교회를 자기가 치므로 말미암아 교회까지 스며든 악마의 그 노림수를 잘 캐치해서 뽑아내는 작업을 요한계시록은 하고 있습니다. 자기자식 아버지가 때린 거예요.

‘어디 가짜가 진짜인 척 하느냐!’ 하고 막 패는 겁니다. 그러면 우린 걱정되죠, 하나님이 교회를 처 버리면 교회는 유지될 수 없잖습니까. 주님 하시는 말씀이, 진짜교회는 흔히 교회라고 이야기하는 그 껍데기교회 안에 들어있으니까. 그것도 핍박받는 모습으로. 환난당하는 모습으로 있으니까 교회를 처야 가짜배기 신자와 진짜배기, 껍데기신자가 나오거든요. 교회를 처야. 교회에 떡 앉아있으면 신자인 줄 착각하게 되니까. 교회를 처야 가짜와 진짜가 구별되니까 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라는 간판에 악마는 무서움에 떨지를 않습니다. 마지막 때에 악마는 교회 겁내지 않습니다. 왜냐면 교회가 신학생들을 배출하고 목사를 많이 양성해 깔아놨어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저런 자들은 사단의 일꾼이다 해서 사도바울이 정확하게 지적해냅니다. 교인들을 자기 부하직원 삼는 이런 인간들은 사단(사탄)이지 주의 종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카리스마를 외치는 인간들은 주의 종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섬긴 것? 약한 가운데 섬기고 봉사하는 그것뿐이지 대장질하는 그런 인간들은 목사라고 아예, 부르지도 말고 마귀에 충실한 일꾼인데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것은 양의 탈을 썼기 때문에 못 알아보는 겁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속아 넘어가지만 우리 주님은 속아 넘어가지 않지요. 그래서 교회라는 것을 냉혹하게 처리함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교회마저 장악하고 있던 악마의 정체까지 노출시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이제 좀 어려운데 잘 들어보세요.-

교회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건으로서의 교회가 있고 하나는 법체계로서의 교회 두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물론 법체계로서의 교회는 가짜입니다! 그런데 사건으로서의 교회가 뭐냐 하면, 매일같이 주님께서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무슨 사건? ‘십자가사건’을 일으켜서 십자가사건 속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 무한한 기쁨.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고 세상이 주는 행복이 아니라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새롭게, 새롭게 맛보는 사람. 사건에 (아다리) 맞닥뜨린 사람입니다.

주님은 지금 살아계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건, 사건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주님의 사건보다도 자꾸만 ‘주님, 비키세요!’ ‘주님,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천박스럽게 개입하지 마시고, 주님 저리가시고 땅의 일, 교회일은 우리 손에 맡겨주시면 우리의 탁월한 행정력으로 정치력을 발휘해서 멋들어진 교회를 만들어낼 테니까 우리한테 맡겨놓으세욧!’ 이런 식으로 정교한 법체계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법에 대해 순종, 복종케 함으로서 이상적인 멋진 작품을 만들어 ‘바~드~ 소~ 서’ 그냥 받으시면 되는 겁니다. 이런 쪽으로 나가는 거예요.

‘도스토옙스키’라는 사람이 있어요.(러시아 대 문호) 그 사람의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마지막 대목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는데 소위, 교회 총회장들이 모여서 그 예수를 만나서 하는 말이, ‘형님, 그냥 가세요, 그동안 우리가 총회와 노회와 시찰과 당회 잘 이끌어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오셨습니까, 가세요.’ 주님마저 거부한다는 일종의 교회에 대한 조롱이죠. 권력에 맛을 들인 법적 체계에 안식을 누리고 있는, 안일함을 누리고 있는 교회에 대한 고발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미래도. 주님 계실 때 계속 이렇게 된 겁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분명히 나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용이란, 용이란 개념을 들으면 무섭지요. 바다에서 올라온 용인데, 그 용은 옛날 에덴동산에서 꼬이던 옛 뱀이었다.

꽃뱀이 아니고 옛 뱀. 그 뱀이 사람을 통치하는데 경제와 종교를 정치적으로 통합을 시켜버려요. 경제와 종교를 정치적인 카리스마로 통합시키는 그러한 짐승의 나라가 될 것이다. 거기에 종교를 통합시키면 그 종교가 뭐냐 하면, 소위, 거짓목자들을 교회마다 깔아두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미리 보면, 여기 2장2절에 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자칭 사도’ 요즘 말하면 목사죠. 신학교를 나오고 유학까지 다녀온 이러한 목사가 삯꾼이며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정체를 들추어내는 것은 정말 잘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요한계시록의 교회는요, 감시체제아래 있어요. 눈이 있어요. 「주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교회가 교회다운지 아닌지를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감시체제가 가동하고 있습니다.

밤에도 졸지 않고 해우가게 지키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만- 밤잠을 자지 않고 늘 지켜보는 겁니다. 요즘 교회에 뭐가 문제냐 하면, 목사를 세습한다. 그게 문제가 되는데 목사를 세습하고, 아버지가 목사인데 아들이 계속 당회장 목사로 대를 이어주는 거예요. 그 세습하는 제일 큰 교회가 무슨 교회냐 하면 ‘북조선인민공화국’입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나라가 아니고 하나의 교회입니다. 그걸 종교로 접근해야 되요. 하나의 통일교회죠. 통일교가 약간의 양식 대준다고 회개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이 종교집단이에요. 종교집단. 그리고 그 종교집단과 유사한 교회가 ‘순복음교회’ 그리고 큰 교회. 세습하는 모든 교회.

인천숭의감리교회, 충현교회, 대구서문교회, (그리고 홍도 씨 외,) 호시탐탐 세습을 노리는 교회. 이 세습이 왜 가능하냐면 이래서 가능한 거예요. 당회장을 지배계급으로 보는 겁니다. ‘아들아, 너 할 일 있나?’ ‘없심다’ ‘그럼 너 사업 하나 지배해볼래?’ ‘수천 명 수만 명 지배해 보겠느냐?’ ‘지배 당하는 것보다 낫지요.’ 지배하면 어떻게 되느냐면, 지배하려면 그냥 지배하면 안돼, 성경대로 해야 돼. 어떻게 하냐면 네가 기도 많이 하고, 낙타무릎이 되고, 섬기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너를 유명한 지도자로 인정해 줄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겸손 하냐, 얼마나 착실하냐가 문제가 아니고 마지막 도착지점이 남을 지배하겠다는 거예요. 지배하는 자리를 다른 식구한테 줄 마음이 없다는 겁니다. 내가 그동안 개척교회부터 얼마나 고생했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교회를, 그 지도자를 다른 사람에게 공것으로 인수해 주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회장 목사를 뭐로 보냐면 지도자로 보는 거예요. 누가요? 한민족 전체가. 말만 민주주의지 김일성 나라예요.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인종의 사고방식 자체는 지도자가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것도 돈 있는 지도자. 영웅적인 지도자.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행할 때에 민중들의 반응이 뭐였습니까, 예수님을 잡아서 대통령으로 삼고자 죽치고 따라오잖아요. ‘고건 총리 오시기 바랍니다.’ 계속 붙잡는 것처럼. 바로 이 세상에는 힘과 힘의 유혹을 당해낼 자가 누가 있느냐 말이죠. 설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이걸 믿는 신자만 믿는다 했죠?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는 안 버린다, 말입니다. 온 세상이 날 떠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나에게서 힘이 쑥쑥 빠진다는 거예요. 내가 디딜 힘이 없다는 겁니다.

힘이 다 빠지는 거예요. 그런데, 힘이 다 빠졌는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내가 그동안 예수님을 볼 때에 어떤 권력의 힘으로서 생각될 줄 알고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나 자신을 이 땅에서 위대하게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보험들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예수를 믿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힘이 빠져도 제대로 예수를 믿게 된 겁니다. 제가 어떤 글에서 그렇게 썼습니다만, 이 세상은 한 맺힘과 한 맺힘이 서로 교차하는 상처의 시장터라 했습니다. 한 맺힘. 무슨 한이 그렇게 많은지 심지어 간난아이도 배고프면 한이 맺혀서 울잖아요. 제때에 엄마가 젖 안주면 더욱더 울부짖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한이 맺혀 태어나요. 한이 맺힌 이유가 뭐냐, 힘이 없기 때문에 한이 맺힌 겁니다. 그 힘은 지배자가 될 때 그때 모아지는 거죠. 또 힘이 있을 때 모아지고. 한이 맺혀 있는데, 힘이 없어서 한이 맺혔다, 어디서 힘을 얻을까, 얻을까, 얻을까 하다보니까 교회까지 오게 된 거예요. 교회 오니까 신의 개념이 나오고 예수가 나오고 성경이 나오니까 ‘아, 저거 믿으면 힘 되겠구나,’ 싶어서 예수 삼위일체를 몽땅 수입해 믿은 겁니다.

이게 악마가 처 놓은 덫에 이미 교회 깊숙이 강단까지 지배한 악마의 그 술책에 사람들이 흠뻑 빨려든 거예요. 예수 믿는데 무슨 힘이 필요합니까, 예수 믿는데 무슨 직업이 필요해요? 예수 믿는데 무슨 은행에 잔고가 필요합니까? 예수 믿는데 키가 몇 센티미터며 인물이 어떠며 그게 뭐가 필요합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서 자기 피로 구세주가 됐다 말합니다. 자기 피로. 구세주냐 나의 구세주가 아니냐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힘줄까? 피 줄까? 이 말입니다.

피가 필요한 사람은 구세주를 바로 아는 사람이고, 힘이 필요한 사람은 자기가 만든 선입감속에 자기가 조작해낸 구세주 앞에 엉터리 같은 악마가 예수의 모습으로 찾아갈 거예요. 피 줄까, 힘줄까. -선짓국 안 좋아한 사람은 필요하지 않겠습니다만- 너도 나도 태어날 때부터 힘이 없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힘이 없다는 돈이 없다 이 말이거든요.- 돈이 없고 힘이 없고 빽 없어 아는 게 없어. 그래서 원한이 누적이 되고 누적이 되는 거예요. 쌓이고 쌓인 거예요.

술로 풀어도 안 되고, 담배 피워도 안 되고, 오입질해도 안 되고, 뭔가 원한이 계속 쌓이고 쌓이는 겁니다. 쌓이면 뭐합니까, 복수하죠. 보복하고 복수하죠. 그래서 이 세상은 보복하고 복수하는 참혹한 현장입니다. 안톤 오노는 금메달 땄다고 그렇게 시기하고 안현수는 세 개나 목에 걸고 한 개 줬다고 화를 내고, 그게 복수요 그 복수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게 붉은악마입니다. 붉은악마. 복수의 화신이다 그런 뜻이거든요. 얼마나 힘이 없었으면, 얼마나 월드컵을 사랑했으면 악마의 힘을 빌려가면서 사랑해야 되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기도에서 뭐가 나오겠으며, 그들의 찬양을 통해서, 헌금과 전도를 통해서 뭐를 기대하고 헌금하고 전도하겠습니까. 이 땅에서 나를 외롭게 가만두지 마라는 말 아닙니까. 나를 힘없는 자로 만들지 마라, 이 말 아닙니까. 그게 무슨 신자입니까, 불신자지요. 오늘 본문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왜 우리가 난데없이 피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냐 하는 겁니다. 어떤 인간도 힘을 요구하면서 종교를 갖게 마련이지 예수님의 피를 요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엉뚱한 소리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된 자가 내 백성이라고 따로 분리해 놨어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해방되었기에 그리스도의 피만 믿고 의지하는 신자들이 바로 ‘내 백성'이라고 따로 뽑아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얘기합니다만,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힘을 요구하지 피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 몰라요. 학교에서 예수 안 갈쳐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피를 믿게 됐느냐 말이죠. 이것은 결국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네가 원해서 피를 믿게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자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힘 빼고 피 집어넣는 작업을 요한계시록1장부터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도 돌아가신 주님께서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교회 올 때 힘 달라고 교회 온 사람을 예수님의 역사가 있으면, 예수님의 피만 있으면 저는 백성입니다. 새로운 고백을 하는 사람으로 달라지게 하는 그 놀라운 작업을 (주여!) 이 악마가 우굴 거리는 세계에서 기어이 주님께서 선동적으로 해내고야 만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나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되었다는 것. 힘이여 가랏! 나는 십자가 피를 떠날 수 없다! 이런 고백을 거침없이 해대는 사람이 이 땅에서 기적적으로 발생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어려운 게 뭐냐 하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힘을(권력, 돈) 주시지 않고 왜 자꾸 피를 고집하느냐, 그것은 여기 본문에 보면 일곱 영이라는 게 있죠? 「…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이래돼있죠?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그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것이 원래 구약 때보면 성전개념입니다. 성전 구조예요. 성전 구조.

그러니까 어떤 구조냐 하면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게 하나님의 보좌고 그 앞의 같은 세트 안에 보면 일곱 가지의 촛대가 나옵니다. 그게 일곱 영이에요. 그리고 일곱 촛대에서 빛이 나와서 맞은편에 있는 이스라엘 택한 백성 떡 열두 개를 조명을 비추게 돼있습니다. 이 구상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이러한 거룩한 구조로 만든 시스템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구상을 해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이 그런 구상하는 줄을 몰랐어요.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인간만이 천국에 갈 수 있고 그리고 거룩을 만들어낸 시스템은 하나님만이 그 시스템을 만들 수 있고, 우리 인간은 죄를 지은 채로 태어나 원한과 복수와 힘 달라고 나도 절대적인 신이 되어서 남을 지배하고 싶다고, 왜 나는 지배만 받고 한 번도 지배 못하느냐, 그것 때문에 화를 내고 있고, 철딱서니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그런 철딱서니 없는 인간이 아무리 촐삭대더라도 게의치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계획한대로 밀어붙입니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온 어떤 분이 일곱 영 앞에 온전하게 있는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만드는 작업을 누가 혼자 하시느냐 하면, 일곱 보좌를 담당하고 있는 그 담당자가 일방적으로 그걸 만들어 내버려요. 만들어 내는데 어떻게 만들어내느냐 하면, 재단에 깨끗한, 흠 없는 재물이 피를 쏟아서 죄 많은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덮어버리시고 그 피를 가지고 백성들 앞에 나오므로 말미암아 그 피로 백성과 하나님과 좋은 관계, 저주가 아니라 저주가 해소된, 무서운 심판에서 이미 그 관계가 청산되고 항상 은혜만 베풀어주고 용서만 하시는 그 좋은 관계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제사제도입니다.

그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특징이 뭐냐 하면 피 흘림이 있으면 사랑이 생기는 법칙이에요. 이거는 삼국유사에 안 나옵니다. 이거는 고려 왕건이 책에도 없고 조선신록에도 없고 이거는 특수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관계되는, 다른 민족에게는 없는 특수한 비밀이에요. 이게 여호와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해낼 수 있는 사건입니다. 작업이죠. “그런데 목사님, 이 말씀을 왜 우리한테 합니까?” 제가 여러분한테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신 앞에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쳐도 주님께서는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주님이여, 제가 성경을 만 독을 했습니다. 전도를 만 명을 했습니다. 개척교회를 만 곳에 세웠습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재산 다 바쳤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주님께서는 그런 것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왜냐면 주님의 하시는 일은 주님이 만드는 시스템을 그대로 가동해서 구원하는 방식이지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종교적인 폼을 내느냐, 그거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 저기 광주에서 오신 분들이, 말이 광주지 경기도 광주가 아닙니다. 얼마나 먼지. 일박할 정도로 그렇게 먼데서 오셨는데 왜 엎어지면 코 닿는데서 몇 분 걸린다고. 기껏 30분? 지금 광주에서 오신 분들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매주 광주에서 오시면 구원 받습니까? 그게 아니라 말이죠. 테레사 수녀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구제하면 그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영광이 됩니까? 아니에요. 왜냐면 마귀는 구제와 봉사와 헌신과 사랑까지 마귀가 조작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이 자기 의를 얼마나 추구한다는 걸 알고 인간이 선악으로 자기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꺼리들, 그 밑반찬을 다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마귀는 알아요. 뭐냐 하면 구원이라는 것은 오직 거룩한 성전에서 터져 나오는 그 피. 흠 없는 어린양의 희생의 피로만 구원된다는 것을 마귀가 알기 때문에.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어린양의 십자가의 피의 완성도를 흐릿하게 만들 수 있다면 무슨 수를 다 사용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흰옷을 입고 종려나무 흔들고 천국에 들어간다, 이렇게 돼있습니다. 그게 홍해에서는 그냥 물이지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피의 바다에요. -용어도 북한 용어같아요- 피바다. 피의 바다를 사수하면서 건너가서 피 때문에 건너가서 피 때문에 찬양한다는 겁니다. 오직 어린양의 피입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그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는 거예요. 이것은 우리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 인간은 아무리해도 악마가 쳐놓은 그물에서 못 벗어난다는 겁니다. 인간이 아무리 종교적인 헌신과 낮아짐과 순교와 자기부인과 자기절제 자기학대 자기를 죽이기까지의 학대, 금식, 헌식 굼식 다 해도 악마가 쳐놓은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시스템 가동은 주님이 혼자 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해내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기껏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힘의 능력은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가 이렇게 살면 복주겠죠? 그런 일시적인 눈앞에 보이는 반대급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보세요. 4절에 보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렇게 돼있죠?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또 5절에 보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이게 어떻게 종교적인 능력으로는 가당치 않는 이야기죠. 마귀가 지배하고 있고. 우리는 한 맺혀 헉헉거리고 있고, 같은 한통속이 되어 힘 있는 곳이라면 우르르 몰리고. 돈 있는 친구 있을 때 돈 없으면 확 빠져버리고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영생을 얻고,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고 어떻게 죽은 우리가 다시 삽니까.

이러한 효과와 이러한 능력은 우리의 양심과 의식과 선한 의지로서 이거는 빚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연히 오신 게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공연히 십자가지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진 이유가 다 있어요. 그리고 그냥 십자가가 아닙니다. 피. 피를 내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거기에 사람들 듣기 싫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령이 저희를 위해서 감독관으로 삼고 …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라고 돼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피를 말하지 않은 교회는 교회가 아닌 줄 알아라,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교회되었지 거기에 인간의 피가 섞여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을 얘기해줘야 그게 교회입니다. 목사의 피, 장로의 피가 아니에요. 그 피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입니다. 하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교회가 되기 때문에 감독자가 해야 될 일이 뭐냐, ‘오로지 예수님의 피 입니다. 하나님의 피 입니다.’ 만 증거하고 감시하고 관찰해야 될 이유가 목회자가 해야 될 일이다 말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운영이 안 되지요. 왜 운영이 안 되느냐 하면, 세상에서 힘이 없어서 분풀이 하듯이, 힘을 얻기 위해서 전능하신 하나님 힘 빌려서 없는 힘이 새록, 새록 생기게 하기 위해서 교회 나왔는데, 힘 구하지 마시고 피가 있습니다. 하면 피가 어디에 섞여 있습니까, 피가.

피라는 것은 희생이고 순결을 의미하는데 피는 선짓국 먹을 때 피 있지, 피가 이 세상에 쓰잘데기 없는 피잖아요. 피가 어디에 쓸모 있습니까? 수혈할 때 쓸모 있습니까? 피를 하나님께서 내놓았다는 이 말은 이미 다 이루었는데 왜 고민하느냐, 그 이야기입니다. 이미 다 이루었는데. 지금 네가 걱정하고 근심하고 불안에 떠는 이유가 피 바탕에서 근심하느냐, 아니면 힘이 없어서 고민하느냐 근본 바탕을 다시 한 번 조사해보라는 겁니다.

조사해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피만 빼놓으면 세상 사람과 똑같습니다.(주여...) 우리는 화상당한 일그러진 얼굴입니다. 힘이 없어서 욕하면서 매일같이 살아가고 그러면서도 힘 있는 사람에게는 아부하고, 한 푼이라도 콩고물 떨어지면 먹어볼까 싶어서 난리치고, 가문에 사법고시 합격한 사람 나오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고 가문에서 누가 이혼하면 가문의 수치라고 여기고,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어요.(아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맙게도 냉혹한 그 거울을…거울아, 거울아, 요한계시록이라는 거울을 우리 코앞에 들이대면서 이정도로 너는 네 힘으로 악마를 이길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전을 이루기 위해서 너는 성전 안에 있는 거룩한 떡으로서 성령의 비추임을 받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조명을 받고 항상 인도함을 받는, 진짜 내 백성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 요한계시록대로 이걸 믿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믿어지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은 행하라는 책이 아닙니다. ‘행하라!’는 말이 엄청 많지만 행하라는 책이 아니고, 주님의 행하심이 현재 너희 속에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왜 잊어버리느냐, 이 말입니다.

피를 믿게 한 것도 주께서 집어넣어서 내 속에 피가 있도록, 그렇게 유지하도록 주께서 자기 피니까 관리해나가는 차원에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구원받은 것은 행함이 아니라 네 속에 들어있는 예수의 피 인 것을, 그래서 거룩한 사람인 것을 저희들에게 알려주는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영원토록 계시기 때문에.

마지막 6절에 보면,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래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우리가 천국의 백성으로서, 제사장으로 이미 삼았다, 말이죠. 우리에게 하라는 말이 아니고 이제부터 주께서 우리에게 하실 것이다 이 말이에요. ‘네 허락도안 받고’ 주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제사장’으로 또는 ‘백성’으로 살게 만든다는 겁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이게. 그렇게 할 때 더 이상 우리는 내가 내 주인이 아니라 이미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그 사건들이, 매일같이 터지는 사건이 터지고 터질 때, ‘우리는 사건으로서의 교회’ 참된 교회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끝으로 한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어버리니까 자기능력대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법을 동원하는데, 그 법이라 하는 것은 어제의 법이에요. 오늘의 법이 아닙니다. 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절대로 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 어제의 법은 어제의 법으로 끝나고 오늘의 법은 주님 주신 새로운 십자가사건에 의해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법이 필요하고. 내일 되면 주님께서 또 사건을 일으키고 사건에 맞는 법이 필요한데 그 법은 뭐냐, 바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거룩한 백성 되었음을 숨길 수 없는 기쁨으로, 큰 기쁨으로 자기와 십자가와 성경책 앞에서의 너무나 큰 기쁨. 이거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내가 나를 구원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라는 것이 오는, 그 차이에서 오는 월등한 기쁨을 여러분들이 놓치지 않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개인의 구원의 작업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숙제가 아니라, 나님의 숙제요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구원하고 있는, 자기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고 얼마나 고단하고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괴로웠습니까, 믿을 것은 자기밖에 없어 자기 능력 믿어봤자 곧장 세상유혹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인데 우리는 낙심하고 또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말씀을 믿고 우리가 우리 주인이 아니라, 주인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아는, 그런 편안함과 행복을 저희들에 안겨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002강-계1장4-6 (그의 피)- rev060226.hwp (47.0K), Down:7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5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342 설교 요한계시록 1장 6- 7절 제목 : 볼 것이요 일시 : 2006년 3월 5일22.231.1.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3-05
2,341 우리교회 계 1 : 6- 7 (볼 것이요)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3-05
2,340 묻고답하기 조 장로님 고맙습니다. - 최고관리자 06-03-04
2,339 묻고답하기 Re..목사님, 책 추천 좀 부탁드립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03-02
2,338 묻고답하기 설거지에 대한 단상... - 최고관리자 06-03-02
2,337 우리교회 Re..사 8: 9-15 (거치는 돌) 이사야 최고관리자 06-03-01
2,336 우리교회 [일반] Re..3월 1일 수요예배 실시간 방송 [방송] 최고관리자 06-03-01
2,335 우리교회 [일반] 3월 1일 수요예배 실시간 방송 [방송] 최고관리자 06-03-01
2,334 묻고답하기 Re..2월 5일 주일오전 설교말씀을 볼 수 없는데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03-01
2,333 우리교회 [일반] Re..우리교회를 다녀오면서^^* [일반] 최고관리자 06-03-01
2,332 강의 Re..서울 경기(의존교회) 중생,칭의 1-3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6-02-28
2,331 강의 Re..20040503-3 토마스 아퀴나스, 어거스틴 [신학] 최고관리자 06-02-28
2,330 우리교회 [일반] 우리교회를 다녀오면서^^* 레위기 최고관리자 06-02-27
2,329 우리교회 Re..출 34:29-35 (모세의 영광)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6-02-26
2,328 우리교회 Re..출 34:29-35 (모세의 영광)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6-02-26
2,327 설교 그의 피 2006년 2월 26일 본문 말씀: 요한계시록 1:4-6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2-26
2,326 우리교회 Re..계 1: 4- 6 (그의 피)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2-26
2,325 우리교회 출 34:29-35 (모세의 영광)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6-02-26
2,324 설교 요한계시록 1장 4- 6절 제목 : 그의 피 일시 : 2006년 2월 26일22.231.1.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2-26
열람 ➜ 우리교회 계 1 : 4- 6 (그의 피)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02-26
2,322 묻고답하기 Re..여기에 올려지는 강론과 설교 파일들은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02-26
2,321 우리교회 Re..사 8: 1- 4 (노 략) 이사야 최고관리자 06-02-22
2,320 묻고답하기 Re..마16장 27절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02-21
2,319 묻고답하기 Re..계12&58;9절 이중적인 적용에 대하여 ...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6-02-21
2,318 강의 Re..20051220 부산강의-베르그송 미가 최고관리자 06-02-21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