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사 8: 1- 4 (노 략)
Re..사 8: 1- 4 (노 략)
이름 : 이근호(IP:)
025강-사8장,1-4,(노략)-isa060222
노략
2006년 2월 22일
본문 말씀: 이사야 8:1-4
(사 8: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사 8:2)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갸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 8:3) 『내가 내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사 8:4)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바 될 것임이니라』
세상의 장래 일이 인간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순전히 하나님이 의도하신대로 채워집니다. 물론 인간들도 부지런히 앞 일에 대해서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몽상을 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내다보고 설계하고 꿈꾸는 미래란 사실은 과거에 자신이 이미 경험하고 기억의 창고 속에 집어넣은 그런 체험의 변종에 불과합니다.
과거의 일 중에서 반성하고 싶은 것이라든지 아니면 아주 좋은 추억이라고 여겼던 것을 미래에 다시 발생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기억 창고에 들어가는 과거경험이라는 것은 그냥 순수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으로 재해석한 내용으로 변질된채 기억된 일방적 체험입니다.
그것을 미래에 다시 일어나기를 소원하는 것은 미래가 완전히 자기를 위한 미래이어야 한다는 고집과 통합니다. 인간들의 이러한 미래 꿈꾸기와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설계하십니다. 마치 서판을 글씨를 쓰듯이 써 넣게 되면 그 쓰여진 글씨의 내용대로 미래의 사건들은 배치가 되고 조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미래라는 것이 비록 텅텅 비워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말씀의 결정에 따라 새로이 사건, 사건들이 그 미래의 빈 자리를 가득 채우게 됩니다. 그 빈 미래를 무엇으로 채울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마헬살랄하스바스로 다 채웁니다. 이 마헬살랄하스바스의 뜻은 ‘노략이 신속이 이루어진다’라는 뜻입니다.
이 마헬살랄하스바스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우선 유다 나라가 있어야 하고 그 유다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강한 외국 이방나라를 의지하는 패역한 왕이 자기 고집을 여전히 부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유다 나라를 얕잡아보고 노리는 나라가 등장하게 됩니다. 아람 나라와 북쪽 이스라엘 나라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 두 나라가 노략 한 것을 다시 노략질하는 잔인한 왕이 생겨나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세력들의 배치와 활동은 모두 이사야 선지자가 서판에 새로 적은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계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특이하게 자신의 계시를 증거하는 겁니까? 그것은 일반 육적인 인간들은 하나님의 예언이나 말씀을 보아도 무슨 뜻인지를 알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를 파악할 수 있는 사건을 따로 창출하시는 겁니다. 마치 유다나라가 앗수르에게 크게 당한다는 미래의 일을 알리기 위해서 ‘처녀가 낳은 아들’로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기존의 육에서 육으로 낳은 아이들의 계시 해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거부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동일한 사건들이 일어나도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무슨 의미를 담기 위해서 저런 사건들이 터졌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알지를 못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제시한 계시의 노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난데없이 아이를 갖게 합니다.
그 아이가 ‘아빠, 엄마’라고 말을 할 즈음에 유다 나라를 중심으로 해서 외국의 세력들은 본래 그들이 해야만 하는 행동들을 실시하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유다나라의 왕 아하스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으로 돌아오지 않고, 유다 나라보다 훨씬 강한 강대국의 국가 경영을 참으로 부러워했습니다.
즉 아하스 왕의 생각에는, 나라가 되고 아니되고는 이방나라 왕의 자기 나라를 강성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서는 순전히 인간의 능력으로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의해서 나라가 강성해진다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서 마헬살랄하스바스라는 계시를 알리는 겁니다.
장차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다른 노선으로는 알지 못하고 마헬살랄하스바스의 계통을 따라가야 그 세 나라의 움직임 안에서 유다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로 하여금 노략을 당하도록 하신 것이까요? 역대하 12:5에 보면, “때에 유다 방백들이 시삭을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였는지라 선지자 스마야가 르호보암과 방백들에게 나아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가 나를 버렸으므로 나도 너희를 버려 시삭의 손에 붙였노라 하셨다 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옛날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보잘 것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시고 약속의 땅을 들어섰을 때는, 강하고 강한 이방나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게 만들어, 그들이 망하도록 이스라엘에게 붙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붙임을 받은 이방나라는 자신들의 힘의 여부와 상관없이 반드시 패배당하도록 되어 있고 반대로 이스라엘은 힘의 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이기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과 남과 북으로 두 나라가 되면서 남쪽 유다나라 르호보암 왕이 상당히 건방지게 처신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반대로 유다 나라를 이방 나라인 애굽 왕 시삭에서 붙여서 유다 나라가 큰 낭패를 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세상의 움직임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반드시 선지자가 서 있는 위치로 가야하듯이 오늘날에 벌어지고 있는 세상 모든 일의 내막을 알려면, 임마누엘이나 마헬살랄하스바스처럼 특별히 등장된 특수한 사람의 위치에서 출발해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준해서 하나의 착오로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에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을 봐야 제대로 보이는 식으로 사건들을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똑같이 동일한 사건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성도가 아니라면 그 사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다메섹을 내려가든 사울이라는 사람이 들었던 주님의 음성도 같이 간 사람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영광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이 누구나 쉽게 무시할 수 밖에 차림새로서 이 땅에 왔을 때, 사람들은 그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인 줄 모르고 대부분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독생자의 영광은 ‘하나님의 피’를 흘리는 영광으로 십자가를 떠났습니다. 이제 모든 세상 일은 이 십자가의 피 안에서 읽어내야 비로소 정확한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즉 이 세상 모든 일은 다 십자가 피를 증거하기 위해 배치되고 일어나야 했던 사건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개꿈에 낙심할 것이 아니라 완벽하고 차질없는 주님의 약속에 우리의 생명을 걸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