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출 34:21-24 (노동과 절기)
노동과 절기
2006년 2월 19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34:21-24
(출 34:21)『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출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출 34: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출 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 하지말라’라는 지시에 대해서 의아해 하실 것입니다. 사실 늘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에덴 동산에 추방된 인간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쉬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고된 일과를 안쓰럽게 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너희들은 일하나 아니하나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다’는 말씀입니다. 즉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러이러한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될 본래의 일은 자기 방어나 자기 존재 사수가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 나오면서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눈돌리는 순간, 자신의 것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아 그동안 자기 노동한 것이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겁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오늘 분문에도 그것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요구하신대로 절기를 지키다가 적들이 그 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급습해 버리면 하나님이 그동안 주신 넓은 땅도 도로 적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상호 다릅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이러합니다. ‘이미 너희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너희들 책임자는 나다’하는 겁니다. 거기에 비해서 ‘하나님의 일에 열중하므로서 평소에 자신이 하는 일에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 손실에 대해서 하나님께 꼭 보상해준다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말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인간들이 흔히 하나님께 오해하는 원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왜 일 년에 세 번씩 자기를 보려 나오라고 요구하시는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무엇인가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열매는 노동한 본인의 것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가 자신의 자랑거리가 되고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노동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노동의 대가에 대해서 자기 것으로 돌릴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일을 하나 아니하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원칙은 깨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랑과 맹세와 자비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셨는데,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작자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취지는 모르고 자신의 노동의 결과로서 자신들이 복을 얻을 방도를 사전에 궁리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의 본질이 뭔가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도박에 열중해 있는 어떤 사람을 데려다가 열차 기관사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관사 일에 열중하면 전에 내가 즐기던 도박에서 얻는 즐거움 이상으로 짜릿하고 멋있고 신나는 체험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기관사 일을 해보니 긴장의 연속이요 쉬는 날고 없고, 남들 다 휴식할 때 자신은 그들의 휴식을 돕기 위해 희생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관사가 말하기를, “더이상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그 쾌감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하고 나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가치와 본질을 하나님이 거주 주시는 은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에서 찾으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만약 인간성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그 달라진 인간성의 공로도 여전히 자기 위대함의 일부라고 여기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구태여 일 년에 세 번씩 하나님 앞에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나올 필요를 느끼지 않지요.
여러분도 어떠합니까? 평소에 늘 하나님 앞에 나오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그 반대로 하나님에게 자신의 낯을 보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낯을 보이려고 나와야 되는 이유는, 이미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제발 자신이 노동의 대가를 통해서 자신이 본질을 재정립하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즉 하나님 덕분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가지고 새삼스럽게 자신의 노동의 결과 자신이 훌륭한 하나님 백성 된 양 여긴다면 이런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맹세가 찾을 길이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성도가 아무 것도 안하고 마냥 놀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바로 여기서 하나님에 의해서 시키시는 일이 따로 존재하는 겁니다. 한 예를 들면,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부자 농부가 나옵니다. 창고에 그득하게 쌓은 곡식 더미를 보고서 기분이 너무 좋아 자기가 자기 영혼에서 걱정하지 말라고 혼언장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야. 오늘밤 네 영혼을 데려가면 저 곡식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들이 이와 같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될 이유는 우리의 모든 소득이 결코 우리의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노동의 열매인 것을 재삼 확인하기 위해서 나와야 하는 겁니다. 즉 세상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반드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 과연 제가 꼭 이 일을 해야합니까?” 이 질문을 통해서 비록 우리가 우리의 노동으로 시작한다 할지라도 항상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일이 된다면 그 모든 영광과 자랑은 우리 자랑과 우리 공로로 돌아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의 영광이나 자랑거리를 획득해서는 아니되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된 것은 우리가 일을 하나 아니하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는 시기가 바로 갑자기 수확물이 많아진다든지 아니면 장래 자기 노동에 의해서 큰 수확물을 기대하게끔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자연적으로 자기 노동에 힘이 들어가고 욕심을 낼 수 있는 여건이지요. 바로 이러할 때, ‘일하지 않더라도’ 백성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만끽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늘 우리 자신의 노동의 의미를 하나님이 시키시는 하나님의 일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