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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계 1 : 1- 3 (예수님의 계시)우리교회요한계시록

계 1 : 1- 3 (예수님의 계시)

이름 : 이근호(IP:)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 3절
제목 : 예수님의 최후 계시
일시 : 2006년 2월 19일

http://media.woorich.net/~woorich1/성경강해/요한계시록-2006/001강-계1장,1-3,(예수님의,계시)-rev060219.hwp

첨부파일 : 001강-계1장1-3'예수님의_계시'-rev060219.hwp (45.0K), Down:3

우리교회

10-12-28 15:09

001강-계1장,1-3‘예수님의 계시’ /이근호 목사
(060219)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1장1-3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399페이지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 하였느니라 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아멘.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뿐만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전 세계 모든 종교가 다 신과 연관되어 있는데 오늘 요한계시록 본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이 계시라’ 이렇게 하면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별 무리가 없고 말썽의 소지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렴풋이 상상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라’ ‘그렇지 대 자연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 이렇게 수긍이 되는데 문제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갑자기 예수그리스도가 여기 끼어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끼어들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 하며는,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어도 예수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에 가야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냥 ‘신의 계시다’ ‘우리에게 계시해주신다.’ 괜히 살아계시겠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뭔가 표출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 살아가는 존재 자체가 신의 계시다 그렇게 하면 아무 무리 없습니다.

저희가 신학교 다닐 때에 ‘가나안 농군학교’라는 곳을 학교에서 강제로 합숙을 시켜서 교육받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가나안농군학교 원장 되시는 (김용기) 그분이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며는, 안 믿는 사람들이 그분에게 ‘하나님 있으면 보여줘!’ 이런 식으로 자꾸 시비를 거니까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가서 너 거울을 봐라, 거울에 누가 비치느냐’ 그러면 내 얼굴 비치겠지요? ‘바로 거기 네가 있다는 것이 신이 있다는 거와 마찬가지다.’ 신이 없다면 네가 어떻게 존재했겠느냐. 그러니까 거울 보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해라, 이렇게 가르쳐서 신의 존재를 주입시켰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버리면 하나님 알고 지옥 가는 수가 생기는 거죠. 하나님 알고. ‘나는 신이 만들었구나,’ 그런데 나중에 도착해서 보니까 지옥에 도착해 있는 겁니다. 뭔가 제일 중요한 것이 빠졌어요.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여기 있고 하나님이 여기 있다. 그걸로 모든 만사형통한 걸로 그걸로 모든 계시는 종결된 걸로 여기는데 기적 중의 기적이 뭐냐 하며는, 우리 속에 들어오지 않아야 될 낯선 사나이가 들어왔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나사렛 예수.

예수님이란 분이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다가 그걸 집어넣은 거예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것이라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보통 기적들은 예언을 잘 안합니다. 홍해 갈라지는 것도 예언을 안했어요. 예언을 않고 그냥 갈라진 겁니다. ‘지팡이를 대라’ 그래서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보통 기적들은 예언을 않고 기적이 일어났는데 예수그리스도가 인간 속에 잠입하고 들어오는 것은 이거는 창세기 1장부터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해서 뒤에서 막 미는 것 같아요.

온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차오실 메시야,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등장시키기 위한 그러한 역할들을 하고 있는 그런 자기배치를 가지고 예수그리스도를 향하여 계속 밀어붙이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것도 다 예수님 보여주기 위해서고 홍해에서 40년간 멸망한 것도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함이고 모세가 그렇게 설친 것도 나중에 예수님 얼굴 보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창조 자체가 기적이지만 그런 기적 가지고는 사람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나타나도 될 집어넣어도 우리한테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그러한 나사렛 예수라는 분을 위하여 모든 피조세계를 만들어놓았다고 골로새서 1장16절에 보면 나와요.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여기고 성경을 꽤 봤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에 대해서 몇 마디 물어보면, 하나님 이야기 좔좔하고 자기 살아가는 존재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서 중점적으로 몰아넣고 핵심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그걸 쏙 빼놓아버리는, 그걸 놓쳐버리는 그런 경향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분이 도대체 교회 다니는 것인지 다른 종교 이슬람교인지 그쪽 종교와 차이나는 게 뭐가 있는지 전혀 차이나는 걸 보지를 못하겠어요. 불신자는 하나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신자는 하나님 존재를 인정한다. 그 차이만 되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엄청난 오산입니다. 사도들이 순교한 것이 하나님 존재 문제 때문에 순교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집중돼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자기 목을 내놓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지 하나님 존재가 아니에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렇게 박해하고 반대한 이유가 하나님이냐 아니면 예수님이냐, 예수님이냐 하나님이냐,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 믿는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했는가, 아니면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만 의지하는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했는가, 그 싸움을 초대교회부터 양보 없는 전쟁을 벌여왔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기적의 초점이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시비걸기를, 당신이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는 메시야라면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 달라, 그렇게 했을 때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내가 보여줄 기적은 너희들이 원하는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앞으로 이렇게 해야 될 기적만 보여주겠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십자가에 죽는 요나의 기적을 말했습니다.

더 간단하게 말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확실합니다.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함을 심판 하신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에요. 그거는 인간들이 지어낸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함에 대해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시고, 그 예수님에 대해서 너희 평가가 어떠냐? 그 평가에 따라서 심판하십니다. 이건 또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죠?

예수님을 우리 손에 맡겨 놓고 하나님의 아들 되는 예수님을 우리 손에 맡겨 놓고 우리 쪽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심판하고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처우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그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그 예수님 대하는 태도가 불량하면 그거는 지옥가고,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상당히 호감 적이면 그거는 천국을 가고, 그 방식 외에 다른 방식을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계시고 우리 인간 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한다, 이런 식으로 심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비켜가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의 타고난 상식인데 그 상식은 이제 거부돼야 합니다. 그 상식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님을 자꾸 우리 앞에 귀찮기만 하는 예수님을 자꾸 어른거리고 그에 대해서 하는 말이 “너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꾸 물어요.

쉽게 말하면, 사장님께서 직원들을 쫓아낼까, 그냥 둘까, 구조조정을 하는데 그 방식이 뭐냐, ‘일 열심히 해요’ ‘착실합니까? 농땡이 안부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장님께서 희한한 방법을 쓰는데 사장님의 손자 간난아이를 들고 와가지고 직원들한테 품에 안기게 하는 겁니다. “우리 손자 어때요?” “아이고, 손자 예쁩니다. 이 손자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회사 남아요.” “이 손자 어때요?” “내가 손자 보려고 이 회사 왔습니까? 월급 받으려고 왔지” 그거에 관심 없으면 그거는 사장님의 손자를 핍박했다는 죄 몫으로 당신은 나가주셔야 되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느냐 하면, 새삼스럽게 인간이 뭘 해봤자 그것은 인간 스스로 본인을 구원할 수 있는 토대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토대가 되지 못해요. 성경에서는 이걸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만족할만한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원하는 거룩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의로움을 생산할 수가 없어요.

어차피 구원의 대상도 안 되는 인간을 향하여 구원해 줄까 말까, 구원해줄까 말까, 잘 하면 구원해주고 못하면 죽어야 한다, 이렇게 새삼스럽게 대화할 대상조차 안 되는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백성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기백성을 위해서 계속해서 구약 때부터 장차, 구원자가 따로 있어야 되고 구원자가 와야, 구원자 덕분에 우리가 천국 간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구약에서는 예표로, 상징으로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실체로서 우리에게 나타난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러면 우리가 신을 향하여 열심히 행함을 하고 선행을 하고 말씀 지키겠다고 애쓰는 것은 뭐냐, 그것은 헛것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하는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소용없는 겁니다. 인간들이 하는 행위가 왜 소용없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는 그 행함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들이대 미는 행함이 아니고 우리 대신 예수그리스도의 완벽한 행함을 보시고 그리고 그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만 그 예수님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예배 전에 어떤 성도님께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여기 계시지만 “목사님, 추석에 700만원 날렸습니다.” 전에는 한 몇 천 날린 것 같아요. 이번에 700밖에 안 날렸으니. 그러면 만약에 700만원 안 날리고 2천만 원 땄다고 해봅시다. 그 2천만 원 딴 거 가지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기쁨이 안 되죠. 제가 지금 무슨 얘기하는지 엉뚱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여러분들 청소하실 때 창문 열고 턱을 괴면서 푸른 창공을 바라볼 때 누가 방해하든가요? 방해 안 하죠. 자기 문 열고 바람 들어오는 거(만끽하면서) 하늘이 높구나, 하늘이 넓구나, 바라봐도 누가 방해 않죠?

우리가 지금 이 맘으로 “하나님, 너무나 좋습니다.” 하면 누가 방해하던가요?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게 본분입니다. 관심사가 내가 주식으로 700만원 날렸든지 2천만 원 땄든 몇 년을 살았든 상관없이 몸을 다하여 마음을 다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만으로 기쁘시게 하느냐, 하나님만 기쁘게 섬긴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좋아. 그게 마치, 청소년들이 창문 열고 하늘 쳐다보는 것이 방해받지 않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누가 누구도 하나님 섬기겠다는데 방해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방해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 하나님 섬기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관심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그것이 옳은 신앙이라는 것에 관심조차 없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을 그냥 곱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섬기면 되는데 정신은 어디가 있느냐 하나님 섬기는데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섬기는데 정신을 팔다보니까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 저 버려야 되겠습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손해 본 거 메꿔야 되겠습니다. 매날 자기에(愛애) 울고 자기에(愛) 웃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700을 날리든 900을 날리든 하나님 섬기면 되잖아요. 섬기면 된다고요. 하나님 섬기는데 누가 잡아갑니까? 누가 하지 말라 합니까? 하나님 섬기다가 연탄가스에 취해 죽어도 괜찮아요. 왜냐면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지금 당신 뭐하고 있느냐!’ 가 중요하거든요. 재산이 얼마나 됐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당신 정신이 어디에 팔려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누구도 알고 있느냐면 유대인들도 알고 있고 다른 종교인들도 알고 있고 심지어 교회 안 나와도 양심적으로 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여기까지는 합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 섬기는데 우리 행함으로 섬기겠다는 이게 문제가 됩니다. 이게.

우리가 행함으로 섬기겠다는 이게 문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섬기는 방식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을 했는데 우리한테 제공하는 하나님 옳게 섬기는 방식을 주님 쪽에서 주셨는데 그것은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 열심으로 섬기면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그런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가? 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한 이유가 뭐냐, 우리는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아담으로 인한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그 방식을 상환해내 봤자 그 방식마저도 하나님께서는 의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치워라!’ 합니다.

하나님이 제시한 방식대로 해야 되는데 그걸 가지고 뭐라 하냐면 ‘새 언약’이라 합니다. 새 언약. 이건 좀 어렵죠? 언약, 하면 또 어려워집니다. 옛날 언약을 가지고 옛 언약이라 하고 새로운 언약을 가지고 새 언약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서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언약 따라 이스라엘 백성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임하게 하신 겁니다.

너의 그 잘난 체 하는 그 행함, 이제 그만 쳐다보고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차비를 다 챙기시고 너희들 앞에 등장하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뭐가 들었으며, 어떤 것이 들었으며 어떤 것이 축복으로 우리에게 쏟아 부어지는지 그것을 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섬기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소식에 대해서 인간 세상은 아주 강력하게 저지합니다. 목숨 걸어놓고 예수그리스도가 삽입되는 것을 자꾸 빼버리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의 행함이 있는 자리에는 자신의 건전한 행함이 빛이 나지 않고 이것이 의미가 없어져버려요. 의미가. 내가 모든 행한 것. 교회 오는 것, 헌금 한 것, 착한일 한 것, 나쁜 일 했을 때 회개한 것, 반성한 것. 이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 앞에서는 그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의미가.

반성문 쓰고 일기장 쓰고 그거 소용없는 거예요. 여기 요한계시록에 보면 구원받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어린양의 피로 씻어서 하나님이 주신 하얀 옷을 입고, 도포입고 그냥 천국 가요. 어린양의 피로서 세탁이 되요. 그것도 참 믿으라고 이야기한 것이지 행하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어린양 피 발라가지고 하얀 도포에 뿌려보세요. 붉은악마 되지 이게 무슨 천국가도 되겠습니까. 이것은 믿으라고 하는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보내시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뭐냐 하면, 내백성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특징이 뭐냐, 행하겠다 부터 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함이냐, 아니면 믿음이냐, 믿음이냐 아니면 행함이냐, 바로 그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본인이 결정해야 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가 어떻게 행했느냐를 가지고 따지고 심판하시고 정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우리 품안에 들어가게 하면서 ‘이 예수님에 대해서 네가 어찌 생각 하냐!’ ‘그분 아니면 어떻게 죄가 씻어지겠습니까,’ 저는 저의 행하는 것보다도 주님의 용서하심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이러면 구원받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 시킨 것 중에서 열 댓가지 되는데 아홉 가지는 했는데 여섯 가지는 만만치 않대, 아무래도 못하겠는데 앞으로 시간 주시면 여섯 가지 마저 채우겠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서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지 믿는 사람이 아니에요. 전폭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신도 괜찮지만 나도 만만치 않다’ 라이벌의식을 가지고 예수님 가까이 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잘못된 겁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특징이 나오는데 아브라함은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아멘)

아브라함 존재조차도 없었어요. 이 세상에 없어요. 없고, 이것도 아브라함이라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개입된 사람이지 그전에 있는 사람도 ‘아브라함’이 아니고 ‘아브람’이예요. 아브람. 발음이 좋지 않아서 이거냐 저거냐 혼동 되시는데 ‘아브람’이지 아브라함이 아니다 말이죠. 아브라함은, 아브람이 요청한 것도 아니고 기대한 것도 아니에요. 아브람은 아브람대로 그냥 살다 죽을래, 그러면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람을 아브라함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인 약속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되게 하시고 하신 말이 뭐냐, 너를 축복한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한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겠다. 일방적인 통보입니다. 마치 한전에서 검침원 보내면서 검침원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전기를 보내주겠고, 검침원을 저주한 자에게는 단전하겠음. 이거와 똑같은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요한계시록 하는데, 마태복음을 끝냈어요. 끝내봤자 저는 마태복음 이야기를 계속 섞어 넣을 겁니다. 요한계시록 강의를 그 유명한 칼뱅도 손을 못 댔어요. ‘어렵다, 모르겠다,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요한계시록이 무슨 소리하는지 모르겠습니까?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 피할 자가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뭐냐, 예수그리스도가 뜬 이상은 어떤 존재도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벗어날 위인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그겁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예수님이 부활한 이상은 더 이상 어떤 인간도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운명은, 이 세상의 운명은 결딴났다. 그걸 말해주는 게 요한계시록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미리 알고 들어갑시다. 미리 알고 들어가면 어려울 것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면 복이 오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면 저주가 온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라는 그 존재와 아브라함을 믿겠다는 나라는 존재와 두 존재가운데서 누가 하나님이 인정하는 존재인가를 한번 네가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이근호를 보고, 이근호를 축복하면 복을 받고 이근호를 저주하면 저주받는다. ‘으쌰, 으쌰, 나는 여러분보다 더 위대합니다. 저를 건드리면 여러분 안 됩니다.’하면 으쌰 으쌰 하겠는데 성경은 이근호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축복하는 사람에게 복을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안 믿는 사람은 저주받는다 하니까 우리는 전부 관심사가 그리스도한테 몰려야지, 특정인간에게 몰리면 안 되잖아요. 심지어 특정인간 속에 누가 포함되느냐 자기 자신을 포함시켜야 되요.

자기 자신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자기가 어떤 행함을 하든지 간에, 신에게 어떤 봉사와 헌신을 하던 간에, 그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행하는 가운데서 계속해서 우리는 깊이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해도 끝나면 ‘목사님, 뭘 해야 됩니까,’ 묻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건데 제가 최근에 책을 하나 보고 줄거리를 요약한 글을 썼습니다. 책 제목이 뭐냐, ■불량직업 잔혹사■ 영국 2천년 역사 가운데서 어떤 직업이 가장 천하고 위험하고 더럽고 추접하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가장 나쁜 직업이냐, 나쁜 직업 순위, 리스트를 다 끄집어내는 거예요.

중세시대 때 가장 나쁜 직업, 근대 가장 나쁜 직업, 빅토리아시대 때 나쁜 직업, 그 나쁜 직업들 그중에서 몇 개를 뽑아 가지고 올려놨는데 그 책을 쭉 보면서 뭘 느꼈냐 하면 그래도 마지막에는 이런 직업이 있었습니다. 어떤 직업이 있냐 하면, 이런 직업이 있어요. 길거리에 개똥 치우면 나라에서 보상금 주는 그런 직업도 있어요. 최근의 직업인데 하도 개들이 많기 때문에 똥을 누니까 그걸, -아침부터 똥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만,- 개똥을 치우면 보상 주는 그것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입 있죠, 그거 아주 괜찮아요. 노시는 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괜찮다 말이죠. 그래서 제가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했어요. 개똥 무게에 따라서 지불하니까 큰 길에서 개똥 발견하는 게 기쁩니까, 부자가 큰 저택을 발견하는 게 기쁩니까, 이래 됐어요.

눈앞에 개똥밖에 안 보이는 인간이 큰 개똥 발견하면요,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눈물이 쏟아집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것은, 인간이라 하는 것은 남부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반하고 자기를 찬양하고, 자기를 절대시하고 자기를 신봉하면서 그렇게 힘든 직업도 이겨가더라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행함에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믿음으로 구원받지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돌아서면 예수그리스도 보다는 바로 ‘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나는 내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몸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생존하는 방법으로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주제가 뭐냐, 피할 곳이 없습니다. 어떤 곳도 피할 곳 없으면서도 그 인간들이 맨날 예수그리스도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막상 세부, 세부 사람 속에 들어가 보면 예수그리스도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자기 행함에 의미를 두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우굴우굴 거리는 그것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실감)

그러니까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되죠.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상태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돌아올 생각은 않고, 자기 평소에 열심히 했다는 허구에다가 작으나마 행복과 만족을 느끼면서 세상이 어떻게 멸망당하는지 그것도 관심 없이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고 살아가는 오늘날 이 현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한 모습을 요한계시록 어느 대목이든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지적해내는 겁니다.

마태복음을 다 마쳤다고 하지만 여전히 마태복음은 지속됩니다. 마태복음 16장13절에 보면 이래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생각하느냐」질문 자체가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했어요. ‘당신 행복합니까?’ 이런 질문은 답변할 수도 있고, ‘당신, 어느 교회 다닙니까?’ 그런 것도 답변할 수 있고, ‘당신 하루 노동시간이 몇 시간입니까?’ 그런 것도 답변할 수 있는데, ‘당신, 어떤 책을 봤습니까?’

그런 것도 답변할 수 있는데 내가 뭘 하고, 내가 뭘 이루고, 내가 뭘 얻고 이런 것은 답변할 수 있는데 ‘인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물었더니만, 제자들 하는 말이,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어떤 사람은 엘리야,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 선지자 같은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예수님이 묻는 취지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와 나 예수와는 어떤 연관이 있느냐, 이걸 묻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의 취지를 모르고 다른 사람은 이러이러하게 얘기합디다. 말이죠. 그러자 주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들은 -쉽게 말해서 오늘 우리보고 - 너는, 나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입니다」라고 정답을 이야기 했어요. 그러니깐 예수님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알게 한 것은 네 혈육이 아니라, 너 자신도 아니고 바로 내 아버지, 예수님의 아버지가 너희에게 예수님뿐만 아니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까지 복으로 자기 택한 백성에게 집어넣어서 예수님만 믿게 하는 그런 관계성을 하나님이 허락해주셨다는 겁니다.

예수님 할 일 까지만 예수님 할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실 일이 있지만, 그 예수님 하신 일이 그 믿어지는 것까지 인간의 능력에서는 나올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간의 능력이 지금 뭐냐면, ‘당신, 예레미야 아니오?’ ‘엘리야 아니오?’ ‘당신, 세례요한 아니오?’ 남들이 생각하는 그 범위 안에서 바깥으로 못 나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바로 그렇게 답변을 요구하는 우리와 이제는 관계있는 그리스도. 너, 나와 상관없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구원자로 오신 너의 구원자로서의, 너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오늘 우리 본인들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간 내 놓고 쓸게 내 놓는 것이 아무나할 일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앙심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줘야, 이제는 에수님과 내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 무관한 관계가 아니라 같이 가는 관계, 구원받은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갈라디아서 1장12절에 보면, 오늘 본문부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두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이래 되어 있습니다. 여기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사도요한에게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갈라디아서 1장11-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1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래 되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가 자기 백성 될 사람마음까지 허락도 안 받고 점령할 때 그럴 때만 ‘계시’가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이 하는 계시가 진짜백이 하나님 뜻이라는 것을 믿어지는 것까지 포함해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줘야 한다, 이 말입니다. 이 말은 뭐냐, 하나님의 성경책으로 공부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공부를 한다고 해봤자 기존의 불신앙이 확대해서 터져 나올 뿐이에요. 적어도 성경을 보든 뭘 하든 간에 구원될 사람은 내가 믿게 된 것까지라도 예수님의 능력이고 십자가의복음의 능력이다, 믿어진다는 것을 고백하는 쪽으로 하나님 계시를 해석하고 이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요한계시록 해석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글쎄요, 목사님 제가 이 대목을 알게 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이라니까요, 왜 자꾸 딴소리 하십니까,” “저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믿게 되었지 내 능력으로 믿지 못합니다.”(아멘)라는 이런 고백들이 앞으로 주일 오전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 새롭게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 이거 지켜야 됩니까?”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합니다.(곤란, 곤란) 그거는 계시가 반쯤 오다가 물러간 거예요. 반쯤 왔다가 자기 마음까지 침투 못하고 ‘약오르징?’ 하고 도망간 계시입니다. 그런 계시가 어디있습니까. “그렇다, 맞아, 이게 세상에 믿어지다니,” 뭐가 믿어집니까,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게 믿어진다는 거예요. 이게.…
때가 가깝다는 것도 믿어지고, 예언의 말씀을 믿는 자가 복 있다는 것도 믿어지고,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읽는 것도 복이 있다는 것도 믿어지고, 그 가운데서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복이 있다는 것, 이게 하나하나 새록새록 거부감 나타나지 않고, ‘때가 가깝다,’ “맞지요, 때가 가깝지요. 당연한 거지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으니까 혼나야 되는 거지요. 집에 개가 있든 소가 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게 중요합니다.(마라나타!)

이게 새록새록 믿어진다는 게 이게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의 능력입니다. 이게 계시의 능력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계시를 믿게 되면, 사람들이 자기생각에 자기가 파멸되는 길이 없지요. 자기생각에 너무 몰두하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계시가 임하게 되면, 물론 스물네 시간 임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데, 2초 3초 뒤에 물러가는 게 문제가 되는데, 만약에 진짜 계시가 임한다면 창문 열고 손 턱에 괴고 ‘주님 섬기는 걸 좋아합니다,’ 이러면 되는데 막상 세상에 나가고 직장에 나가고 가정에 돌아가 보면 ‘네가 행하는 게 그것밖에 못하느냐,’ 갑자기 행함으로 돌아가 공부 못한다고 패고 학교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식 때가 되면 다 잊어버리고 자기 행함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아시고, ‘네가 연약하구나’ 라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이 또 계시해서 1인대모하다가 요한계시록 생각나가지고 ‘내가 지금 하늘보고 주님께 감사하면 되지 무슨 짓을 하고 있지? 한 5분만 대모하다가 집에 가야 되겠다.’ 이런 생각도 가끔 가끔 들게하신다 이 말이죠. 자기를 생각하면 자기 자존심이 그대로 구축됩니다. 독기가 생기고 오기가 생깁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이 더욱더 강렬해지죠. 이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가 삽입해서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을 그 순간 놓치게 돼버린 겁니다.

자기가 만약에 강단 있고 자기가 결단력이 강하기 때문에 자기 오기로 구원되는 것으로 자기가 착각을 하는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계시는 활동합니다. 우리는 놀아도 하나님의 계시는 놀지도 않고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천국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가다가다 만나는 것이 뭐냐면 내 자존심 때문에 실패했고, 내 쓰잘데기 없는 행함 주장하다가 자기자존심 깨지는 일을 당하고 어떤 사건들이 자꾸 우리 앞에 놓여있어요. 그 사건들이 요한계시록에 계속해서 늘어지게 쌓여있어요.

요한계시록이라는 창고에 보면, 앞으로 만날 갖가지 사건들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그 창고는 우리 발밑에 채입니다. 우리가 만날 그 사건들이 요한계시록에 가득 있습니다. 가다보면 이단만나고 가다보면 삼단만나고, 가다보면 너 예수님 믿지 마라, 그러면 내가 뭐 해줄게, 이런 악마의 유혹도 들어오고,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앞서간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쫙 깔려있어요. 우리는 이제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왜 우리는 행함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되는가를 절실하게, 충분하게 그걸 반겨야 됩니다. 끝으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갈라디아서 여기에서 「내가 받은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을 때 사도바울이 한 거지만,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했어요.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이 말은 사실은 그 말을 다른 말로 바꾸면 되요.

나를 좋게 하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고 나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뜻입니다. 결국 남과의 싸움이 아니고 나와, 나의 행함이냐, 예수님의 십자가행하심이냐, 어느 것이 우리를 구원하느냐, 그 싸움이 우리에게 매일같이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그런 일들이 있을 겁니다. 체험한 사건도 있지만 우리가운데 2천만 원 날리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고, 집 날린 사람 저 뒤에 있을 수가 있고, 그거는요 어떤 사건이든지 그것은 자존심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나도 사람답게 산단 말이야, 뭔가 오기 같은 거, 나도 이렇게 빌빌거린 놈이 아니야, 나도 뭘 한다면 하는 놈이야, 근데 오기 같은 게 있는데, 그것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것 다 쓰잘데없는, 부질없는 진짜 오기, 허망한 자기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분들 오히려 속 시원하게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축적하고 붙잡는 게 아니라, 요한계시록 와서 그냥 열린 대로 주신 대로 믿으면 될 텐데, 내 쪽에서 계시를 붙잡는 거는 아무 소용없어요. 그냥 주께서 붙잡으니까. 얼마나 붙잡고 얼마나 획득하고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왜 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 힘으로는 구원되지 못하고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만 구원될 수 있는가, 그것을 여러분들이 깊이깊이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기 없는 사람 누가 있으며, 잘난 맛에 살고 싶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큰소리치고 싶어서, 과격한 행동을 옮기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데 따라서 우리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 예언대로 보내주신 임마누엘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일부러 보내셔서 그분의 행함과 우리의 행함을 비교케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우리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그런 믿는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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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