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28:16-20 (11명의 제자들)
Re..마 28:16-20 (11명의 제자들)
이름 : 이근호(IP:)
11명의 제자
2006년 2월 12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8:16-20
28: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28: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을 마무리 지으면서 벌써 우리는 이 마태복음 전체의 내용을 다 갖다내다 버릴 준비를 하고 있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즉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무슨 소리를 했던 간에 나는 내 능력으로 세상을 산다고 여기는 사람은 언제든지 마태복음을 갖다 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마태복음을 찢어 버리는 식이 아니라 아예 마태복음을 비롯해서 성경을 안보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처하게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동안 마태복음에서 하시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나열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29-31과 40-41에 보면,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상보기는 이러합니다.
신의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이는 곧 신의 나라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신의 나라가 아니래도 자신에게는 무방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뜻에 의하면 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이 세상 너머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그냥 ‘쓰레기장’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이 세상에는 우리가 어떤 짓을 하든지 간에, 그것은 아주 나쁜 일이든지 아니면 그것이 아주 선한 일이든지 간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쓰레기장에 가면 얼추 쓸만한 물건도 보이도 아니면 아주 더러운 물건도 보이지만 그러나 어차피 쓰레기 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은 그저 공격목표로만 간주하십니다. 마태복음 전체가 말씀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세상에다 더 이상 희망 걸지 말라는 겁니다. 천국은 따로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 11제자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권능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권능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35-10:1에 보면,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권능, 즉 권세가 항상 같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권세로 자신의 구원을 달성해낸 자들이 아닙니다. 인간의 자기 권능으로는 악마를 이길 수 없습니다. 모두 다 같이 한 쓰레기장에 놓여 있는 쓰레기들 뿐입니다. 쓰레기가 쓰레기 장에서 영원한 행복을 추구해봤자 소용없는 짓입니다. 맑은 창공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이 보는 세상관을 호락호락 수용할 줄 모릅니다. 반대로 반발로 나옵니다. 어떤 식이냐 하면, 예수님을 보고 하는 말은 “당신이 그렇게 주장하는 당신은 절대적으로 옳으냐?”라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평소에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늘 숨기고 다니게 되는 문제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그것이 곧 신앙생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이런 반발심을 지니고 교회 다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알기 전에 이미 우리 마음 속에는 삼강오륜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유교적 풍토는 다음과 같이 우리를 교육시켜 놓았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고,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선비는 선비다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즉 사람은 짐승처럼 살아가서는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주장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포기하라”는 겁니다. “너희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는 악마를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들의 선을 행해도 위에서 보면 한 쓰레기 장에 포함된다는 겁니다. 어느 간음한 여인이 잡혀 왔을 때, 예수님께서 위에서 보니 어느 인간치고 죄와 연류되지 않는 인간이 한 인간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죄없는 자가 저 죄있는 여인에게 돌로 치라”고 말입니다. 이 소리 듣고 사람들은 각자 들고 있던 돌을 놓고 각자의 쓰레기장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주님의 권세라는 것이 이런 겁니다. 절대적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어주지 않는 권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태어날 때부터 소지한 능력으로는 그 어떤 식으로도 이 쓰레장 같은 세상에서 탈출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봐야 천국에 가겠다고 자기 능력, 자기 권세를 발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지옥을 봐야 지옥를 믿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구원은 이런 신비적인 노력이나 능력 발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세상 끝날 함께 있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권세나 능력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권세가 아무 소용이 없음을 들추어내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따라서 진정 예수님의 미치고 돌아버린 자가 아니라 참으로 하늘에서 오신 구세주라면 우리를 목숨을 자신에게 바치라는 겁니다. 즉 우리 자신이 스스로 버텨내려는 권능을 박탈하고자 하시는 것이 진정 고마우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고민이 되어도 끝까지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