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함평수련회 강의녹취(11-1)
[일반] 함평수련회 강의녹취(11-1)
이름 : 이근호(IP:)
베드로전후서 강의
제11번
열한 번째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이루신 그 공로를 왜 무상으로 아무 의가 없는 우리에게 그냥 줄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 그것에 대해서 아까 제가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멀다했는데 이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겁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거리가 멀어서 그것을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 중보자가 오신 게 아닙니다. 아니고 새로운 인간을 이미 생각해 놨던 사전에 미리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상해 놨던 생각했던 그 새로운 인간을 이 지상에서 죄 가운데서 사랑으로만 새로 창조하기 위해서 새로운 피조물 만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미 인간이 있고 신이 있는데 그 인간을 불쌍히 여겨서 신의 나라에 넣어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사후적인 조치로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원래 만든 인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것은 폐기처분 해버리고 창세전에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을 미리 생각을 했어요. 그들은 누구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사람들을 이미 창세전부터 예수님은 생각해 놓았습니다. 아버지와 의논해서 생각해 놓은 적이 있어요.
그 택함을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창조하나 하면 천지창조는 없는데서 흙으로 만들었지만 이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죄 많은 아담의 노선, 아담의 육체의 노선 가운데서 죄 있는 아담의 노선, 죽어가는 아담의 노선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뛰어들어서 이들 가운데서 창세부터 예정된 사람을 뽑아내는 식으로 그들에게 그냥 무상으로 용서하는 식으로 뽑아내는 식으로 이들 가운데서 따로 천국 가는 백성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선택이라는 의미가 애초부터 살게 돼요. 선택이 나중에 타락하고 난 뒤에 보자~ 누굴 선택하지? 이게 아니라 이미 창세전부터 선택했다는 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오직 선택된 자를 이 안에서 뽑아가는 식으로 구원이 돼야 되는 겁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구원받고자 하는 열의와 열망을 일체 주님께서는 구원에 반영시키지 않는다는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주여, 구원하소서. 해도 일체 그 말을 거부하고 나는 창세전부터 예정된 자만 찾으러 왔다, 나는 데리려 왔다. 이렇게 결정하시고 데려가시는 겁니다.
요한복음 17장을 한번 봅시다. 말을 잘 해야 되겠어요. 이제는 신체가 피곤하니까 말 잘못하면 다른 성경을 읽는데. 요한복음 17장 9절을 제가 읽습니다. 기도 대목인데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 중에서 아버지에 해당되는 아버지께서 예수님한테 붙여준 사람들이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그 자들만 분류시켜 데려가기 위해서 그 자들만 납득이 되는 그들만 이해되는 복음을 가지고만 예수님께서 활동하십니다. 지금도. 이것은 가족단위로 되는 것도 아니고, 교회가 집단적으로 구원되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별적으로 개별적인 상황으로 구원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인간적인 이성에서는 당연히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죠. 왜 누구는 인삼 뿌리 주고 누구는 왜 무 뿌리 주느냐? 같은 인간인데 왜 차별하는 것이 그게 공평의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되는 것이냐, 맞는 것이냐? 거기에 대해서 로마서 9장에 보면 이건 부합된다고 보는 겁니다.
왜냐 하면 어느 누구도 저는 구원받아야 합당합니다. 고 외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구원될 자격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굴 구원하고, 누굴 구원하지 않고는 순전히 하나님의 자의적인 본연에 속하는 문제지, 구원되지 않았다고 해서 거기에서 반발할 수 있는 권한은 애초부터 너희는 범죄 한 죄인이기 때문에 없다고 부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정의가 정의답게 서게 된다는 겁니다. 그냥 죄인을 죄인의 의견을 반영해 버리면 이것은 죄인 취급한 것이 아니고 아직도 훌륭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정의로움에 어긋나지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판사님이 피고한테 피고는 일어서라, 징역 10년! 해도 되겠나? 이런 게 아니에요. 징역 10년. 탕탕탕. 어이, 보조 판사, 예. 골프 치러 가자. 판사는 골프 치러 가고, 죄수는 수감되고. 그것뿐이에요. 그걸 보고 피고가 손들어 가지고 한 5년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 안 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5년 합시다. 어디 죄수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고 일소에 붙이지요. 그럴 때 다른 사람들은 판사는 참, 공평한 판결했다. 고 보지요. 참 정확한 판결했다. 이렇게 보지요. 그야말로 죄수를 완벽하게 죄수 취급한 것으로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공의성은 정의로움은 충분히 사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같이 10년, 사형되어 가야 되는데 어이, 어이, 너는 와. 저를 왜 구원합니까? 내가 너 처음부터 좋아한다 아이가. 내 사랑을 입었느니라. 하고 데려갔다면 이미 그 사람은 나는 구원받을만해. 라는 그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나는 저주받아야 마땅해. 라고 했는데 거기에다가 거저 용서를 받았기에 사랑은 사랑대로 확-악 피는 겁니다.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보다도 마실까 보다도 그 나라 의, 주님의 의가 나한테는 더 큰 보물로, 내 생명으로 그 사람한테는 가슴에 뿌듯하게 자리 잡겠지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요한복음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그 사랑의 실현입니다. 그러면 저는 몇 년형 받아야 됩니까? 사형입니까? 라고 주님한테 묻는다면 주님께선 단호하게 이야기하겠죠. 이 산상설교 대로 살지 않으면 누구든지 저주받는다. 그러면 산상설교가 뭔가 보니까 이것은 도대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게 만들은 그런 조항들, 산상설교가. 맹세하지 말라 했다, 누가 맹세를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어요. 산상설교는 그 자체가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범접, 흉내도 못내는 겁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누가 하늘에 쌓아 둡니까? 형제를 보고 마음속으로 악심을 품어도 형제를 살인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마땅히 사형돼야 될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자, 이렇게 되니까 아까 복잡하게 이야기 안 해도 예수님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랑을 펼치기 위해서 자기 임의대로 자기 마음대로 뽑아 세운 것으로 인하여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만 무상으로 예수님의 공로가 그대로 그 사람에게 주어져서 그래서 예수님과 그 사람은 한 통속이 되었다는 이 성경의 이야기가 완전히 다 풀렸잖아요. 오늘 날씨 풀리듯이 다 환 이 풀렸어요. 조금도 일 점 의혹 없이. 원천 줄기 세포는 없습니다. 완전히 다 풀렸잖아요. 의혹이 다 풀렸잖아요. 더 이상. 아하, 주님은 너무나 무섭고 그리고 너무나 이처럼 용서받지 못할 자까지 용서하시는 이런 사랑이 땡잡은 사랑이 또 있겠느냐? 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좋아서 너무나 감사하지요.
그러니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탈락한 것이 아니고요, 자꾸 그렇게 탈락했다고 오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탈락한 것이 아니고 제대로 자기 길을 그냥 가는 겁니다. 나란히 행진하고 있는데 그냥 가는 길을 갔을 뿐이에요. 다만 뭐가 특이하고 뭐가, 뭔가 약간 다른 이야기냐 하면은 가는데 불러 세워 너, 빠져. 이게 좀 이상해서 그렇지. 너는 천당 가야 돼. 너는 같이 지옥가면 안돼. 넌 나와. 이게 특이한 현상이지. 그냥 가는 길 가는 게 뭐가 문젠데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특히 목회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특이한 사람으로 봐야 됩니다. 의심 또 의심해야 돼요. 아닐 거야. 있을 수 없어. 하나님의 사랑 그렇게 함부로 받냐? 아니지. 분명히 저거 가짜일 수 있어. 몇 번씩 못 먹는 감인지 찔러 보고, 또 진짜 감인지 찔러 보고, 찔러 봐야 됩니다. 그럴 때 만일 진짜 예수님 고백한다면 그건 놀라자빠져야지요. 웬 기적의 슈퍼맨이 등장했구나.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또 있네. 라고 그분을 위해서 섬겨야 되지요.
이것이 바로 성경 전체를 복잡한 삼위일체 동원하지 않더라고 간단하게 다 해결돼 버렸습니다. 무슨 중심?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결 다 되지요. 삼위일체가 다 한꺼번에 등장해도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결이 다 돼버립니다.
진도 한번 나가봅시다. 그 다음은 좀 쉬운 거니까 쉽게 말씀드립니다. 베드로후서 1장 16절. 이와 같은 방금 제가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나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룰하고 너무 다르기 때문에 베드로 본인도 사실은 이것은 큰 충격 가운데 얻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영광을 봤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세 사람이 변화산에 올라갑니다. 그냥, 그냥 산이죠. 나중에 변화되었으니까 변화산이지. 보통 산입니다. 그냥 조그만 뒷산이라고 보면 됩니다. 뒷산에 올라갔는데 예수님하고 세 사람이 올라갔는데 예수님과 야고보와 요한과 베드로 이 세 사람이 올라갔어요. 올라갈 때는 그냥 오늘처럼 등산 가는 줄 알고 올라갔는데 여기에서 올라가면서 졸지에 예수님께서 영광을 발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광인데 예수님은 올라가기 전에 예언을 했지요. 너희들 가운데서 다는 아니지만 몇몇은 천국을 볼 것이다. 천국이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이야기인데 실제로 천국을 눈으로 본다는 것은 보통 큰 특권이 아닙니다.
이 천국을 베드로가 천국을 봤을 때 이것은 자기만의 특권인 줄 그때는 오해했는데 이 베드로후서를 쓸 때는 이것이 천국을 본 느낌은 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고 오는 모든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맛보는 그러한 영광인 것을 이제야 베드로후서 1장 16절을 이제야 고백하는 거예요. 그때 내가 예수님의 영광과 천국을 봤는데 나만 볼 것이 아니고 여러분도 봐야 여러분도 성도입니다. 라고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주 이거 세상 사람들 엿 먹이고 약 올리는 완전히 신비주의에서도 이런 신비주의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너희들끼리 다 짜고 기독교라는 교세를 확대하기 위해서 그런 수법을 한두 번 쓰냐? 교묘하게 지어낸 이야기지. 그런 이야기가 들릴까 싶어서 여기 15절을 한번 봅시다. 16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인간적인 능력으로 믿고자 해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우리는 지금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라는 뜻이에요. 마음속에 샛별 떠오르는 것도 이것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죠.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는데 하품하시면 곤란하지요. 주님의 영광하고 있는데 빨리 끝내고, 햇빛은 그만 거두소서. 짜증납니다.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 신체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여기서 심오한 게 야고보와 요한 왜 세 사람만 데리고 갔느냐? 왜 12명 가운데 세 사람만 데려갔느냐 하면은 제자들은 몰랐는데 예수님께서 이 세 사람에게 보여줄 사람을, 세 사람을 또 보여줍니다. 예수님까지 합해서. 누구냐 하면은 모세와 엘리야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까지 합해서 세 사람이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초막 셋을 짓겠다,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은 현재에 우리가 신체를 지고 있고 우리는 지금 누가 봐도 세포로 구성된 보통 인간에 불과하다 이 말이죠. 그런 인간이 지금 산 위에 올라간 거예요.
그런데 똑같은 보통 인간, 보통 세포로 되어 있는 그러한 인간의 육체를 지닌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 이 세 분이 어떤 특정 영역에 들어가니까 놀랍게도 빛난 모습을 하고 있더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 지상에서 우리가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그러한 원리원칙이 전혀 해당이 안 되는 새로운 영역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고 본 겁니다. 아예 역사 속에 침투해 있다고 헤겔은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이 역사 속에 이미 침투해 있는 거예요. 영적인 세력이.
물론 그 자리에 가봤자 지금 관광객들 가봐야 소용없습니다. 가봤자 모세도 없고, 엘리야도 없습니다. 이 한 순간만 공간이나 시간은 우리가 느끼는 시간, 공간 속에 얼마든지 천국은 침투했다가 치고 빠질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삼층천 올라갔다가 다시 빠져나올 수 있듯이 시간, 공간이라는 것은 천국에서는 장애물이 될 수 없어요. 항상 들어왔다가 나올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