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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일반] 함평 수련회 강의 녹취 (10-2)우리교회[수련회]

[일반] 함평 수련회 강의 녹취 (10-2)

이름 : 이근호(IP:)

인간은 뭣과 뭐로 결합되었느냐 하면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보유하게 되는 원죄가 있고 그 다음에 원죄에 기초해서 세상 밥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고의적으로 짓는 자범죄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씻어주는 죄는 원죄를 일단 씻어주고 자범죄에 대해서는 거기에다가 은사의 능력대로 자범죄를 씻을 수 있는 능력만 해당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만약에 원죄는 다 씻음 받는데 자범죄가 좀 서투른 사람은 상급이 적어서 부끄러운 구원받고 이 원죄 받은 능력을 많이 스스로 개발해서 영성훈련해서 활용한 사람은 나중에 그냥 남하고 똑같이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가도 좋은 자리 그러니까 이코노믹클래스가 아니라 비지니스나 더 특상급 비행기 타고 천국가고, 천국 가서도 이미 거기에서 격차가 난다는 거지요. 격차가. 한 쪽은 부끄러운 빤스바람으로 벌벌 떨며 천국가도 한 쪽은 주여~ 이렇게 예수님 보좌하면서 높은 자리에 상급에 차등이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한 번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가지고 등급이 같은 등급이 아니고 내신 성적에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데 그러면 원죄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원죄는 육으로서 해결 안 되니까 원죄 이것을 다 수용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영혼과 육체의 완벽한 인간으로 갖추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부터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당겨가지고 자신의 영과 육속으로 들어오게 하지요. 육으로 지은 자범죄나 영혼의 기본 범죄나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가 됩니다.

이렇게 들어오게 되면 용서가 되는데 여기서 중요해요. 그러니까 이것은 초청할 때는 뭘로 초청 하냐면 언어로 초청하고 언어는 이성이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라고 부르짖을 때 그걸 듣고 마음을 낮추면 온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좀 낯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뭐냐 하면 침례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 진 것까지는 예수님이 할 몫이고, 그 다음에 십자가 믿고 안 믿고는 본인이 갖고 있는 자유의지를 활용하기 나름이다 이 말이에요. 억지로 붙들어서 구원시켜주지는 않는다 이 말이죠. 십자가 복음을 전해놓고 아이고, 나 그게 싫습니다. 하면 지옥 가는 거예요. 아, 그럴듯하네. 믿자.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기다리고 있는 이 십자가가 와서 아이고, 착하구나. 하고 용서받고 그래서 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 안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느냐 하면 예수님의 인간성과 신성이 함께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예수님 인성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옆에 있는 예수님의 신성에도 함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보면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그 다음에 뭐라 되어 있습니까?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되어 있죠. 그러니까 인성으로 왔다가 신성으로 빠져나가는 거죠.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니까. 그러면 한번 이렇게 원죄에서 한번 이렇게 길을 익혀 놓은 사람은 그 다음에 자범죄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하아, 또 자범죄를 지었구나. 어디가서? 옳지, 주님한테 가서 용서 받아야지.

그러면 상급을 많이 받기 위해서 자범죄 지은 사람은 그때마다 지을 때마다 쉬지 않고 예수님께 호소해서 이 예수님 안에서 이게 씻을 수 있는 세탁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세탁기 역할해서 계속해서 참여하는데 그 참여하는 여러 가지 진급 루트가 있죠.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믿음은 기초 믿음이고, 믿음에 좀더 믿음보다 더 열심히 자범죄에서 회개한 사람은 덕이라는 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덕 가지고 멈추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사람은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다가 멈추지 않고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절제에 이르고, 절제에다 멈추지 않고 도전하면 인내에 이르고, 인내에서 멈추지 않는 사람은 경건에 이르고, 경건에 만족치 않는 사람은 형제 우애에 이르고, 형제 우애에 만족치 않는 사람은 사랑을 공급하여 이로서 완전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드디어 골~인.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말이에요. 이것이 바로 성경의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합당한 이론이란 거죠.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안일에 빠지지 말고 그 다음부터 더욱더 자율학습과 그리고 보충수업에 열중해서 이제는 이 준비한 모든 덕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훌륭한 상급자가 되고 만약에 이걸 바쁘다고 소홀히 하는 사람은 천국가도 제일 밑바닥에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니까 영원히 보장되는 팔자라면 영원히 확정되는 그런 운명이라면 이왕이면 멋진 성과급을 보너스를 챙기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라는 이론이 여기 성립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방금 이론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여기에 대해서 만족했을까요,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방금 제 이론이. 참, 이것 상당히 쉽게 이야기한거에요. 지금. 어린아이들도 방금 이야기한 것 이해되겠어요? 인간으로 들어왔다가 안에 변환기관이 있어 가지고 그걸 통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거. 쭉 따라가면 되니까. 쉽지요.

이것이 사람들에게 쉽게 납득이 되는데 문제는 거기서 사람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떤 욕심이냐 하면 옛날이니까, 사제님, 왜요? 원죄가 진짜로, 문제는 예수님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이게 문자로 되어 있고 그냥 관념적으로 이야기 전파된다는데 사람이 그걸로 관념은 짜증 나. 눈에 보여야 돼. 기능적으로 나타나야 돼. 사제님, 내가 진짜로 원죄로부터 구원받고 이미 천국사람 되는 거 어떤 표시가 있어야 되지, 확증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냥 눈에 안 보이는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것 말고 추상적인 것 말고 실제로 내가 구원받았다. 라는 것을 내가 체험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라는 그러한 요구사항이 이 이론과 더불어 많이 있어 왔어요.

그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위해서 메로빙거왕조 이후에 프랑코 유럽의 시대 이후에 암브로시우스 교회체제가 제국으로 로마제국을 대신하면서 교회체제가 세우고 난 뒤에 이러한 완벽한 진짜 손에 잡히는 장바구니, 손에 딱 잡히는 구원을 확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장치가 제공됩니다. 그것은 바로 성만찬입니다. 떡과 잔을, 이것은 봉사가 아닌 이상 다 보이잖아요.

떡과 잔을 거기에다가 하나의 그걸 진행하는 가운 걸친 사제, 이 세 사람의 두 개의 사물과 한 사람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여기서 이벤트가 벌어지는 거예요. 사제는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이 인정한 진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예수님에 의해서 용서받았다는 그 의식을 지금 이 순간 놀랍게도 되풀이해서 반복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한 사람을 사제라고 이야기했고, 그 사제가 떡과 잔을 주는데 이 떡은 사제가 집례하는 예배일 경우에는 사제가 주는 이 떡이 물질로 받는 순간 예수님의 살로 돌변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잔은 예수님의 피로 돌변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일반 교인들이 장사하면서 바쁘고 하다가 해가지고 성도가 와서 앉아 가지고 납작한 것을 먹을 때 사람이 감각적으로 뭔가 오게 되면 감동이 오게 되어 있어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하나님, 제가 구원받았군요. 이렇게 쉬운 것을 가지고. 또 제가 이제 원죄를 구원받았으니 다음은 자범죄를 줄이겠습니다. 앞으로 이러이러한 항목들은 리스트를 내가 안하겠습니다. 하고 눈물 흘리면서 사제가 주는 떡을, 잔을 하고. 또 그래도 자범죄가 있다면 조그만 구멍 만들어 가지고 삐딱하게 서 가지고 자매님, 뭐 때문에 왔습니까? 제가 잔소리를 했습니다. 주기도문 3번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을 해서 이것은 이 사제가 떡과 잔을 유일하게 시행될 수 있는 교회 중심으로 가시적인 구원의 그런 기능을 기술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아까 제가 말한 이론과 교회가 맞아 떨어져가면서 아아, 이제는 이 성경말씀에 나오는 이 모든 말씀은 실제로 교회 안에서 가시화되고 실현되니까 이건 정말 완벽한 변함없는 확신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천주교가 16세기까지 이어왔을 때 나오던 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완벽한 체제에 갑자기 반기를 들고 여기에 대항하면서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건 말도 안돼. 하고 외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1517년 루터입니다. 이 루터라는 사람이 로마서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의를 생각하면서 방금 이야기한 완벽한 이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 아니라고 이야기한 근본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은 숨어 계시면서 스스로 나타내실 때만 나타나시고, 인간의 호출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는 그런 하나님입니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교회에서 성만찬 할 때마다 하나님이 쪼르르 달려와 가지고 또 했나? 아이고, 기특한지고. 내가 내 피로 들려줄까? 라고 재롱을 떤 게 아니라 아무리 인간이 기도하고 성만찬, 아무리 열심히 주여, 주여 불러도 하나님이 자의로 나타나고 싶을 때만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그렇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루터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냐 하면은 바로 십자가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의에다가 인간의 그 어떤 종교적이고 교회적인 어떤 행위를 사전에 차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만약에 사람이 자기 구원에 대해서 어떤 보탬을 했다면 십자가의 공로에다가 플러스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한 거, 전도한 거, 뭐 헌금한 거, 이런 성경공부한 거, 이런 것이 추가가 돼서 플러스알파가 추가돼서 이 추가된 것 가지고 신인 협동으로서 구원받게 돼버려요. 그런데 이것을 아무리 성경을 봐도 이건 아니다. 인간의 협동에 의해서 구원되는 거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협동에 의해서 구원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루터는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는 아무도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알고 안 알고는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성령님이 와야 비로소 십자가를 알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독적으로 폐쇄된 가운데서 예수님이 혼자 이룬 성과지요. 혼자 이룬 성과일 경우에서 아무 대가도 없는 사람에게 이것이 무상으로 전달될 때 비로소 십자가의 사랑은 사랑답게 전달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더라도 이쪽에서 그걸 눈치 채가지고 자기 공로를 대체해 버리면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라 거기에 뭐가 섞이느냐 하면은 우리가 요청했습니다. 우리도 이미 알아 눈치 챘습니다. 라는 자신의 기대감이 포함된 채 들어오기 때문에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의가 아니고 예수님의 의 더하기 자기 의가 섞여서 본인이 구원받는 식이 돼버려요. 아이고, 힘 들어라. 하도 인간들이 엉뚱한 소리해가지고 내가 힘들어요.

그렇다면 목사님, 앞에 있는 삼위일체 장치는 어떻게 됩니까? 삼위일체 다 헛빵이에요. 그런 생각 안 해도 구원받아요.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뭐라 했습니까? 주여, 오늘밤에 저를 생각해주소서. 네가 오늘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무슨 삼위일체 생각 하나도 안했어요. 다만 십자가에서 나온 예수님만이 갖고 있는 의의 능력으로만 그 강도는 구원받았습니다. 만약에 마이크를 들이대면서 강도님, 당신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어떤 삼위일체 이론을 가졌습니까? 어떤 구원론을 가졌습니까? 강도가 뭐라 했어요. 저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글쎄, 당신이 어떤 마음 준비를 했냐 말이죠. 전 마음 준비 안했는데요. 또 마음 준비한다고 구원되는 것도 아닌데요. 그냥 예수님이 와서 저를 생각해서 저를 사랑해서 구원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으로만 전달되기 위해서 일체 인간의 모든 것을 차단시키겠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차단시키는지 아예 숨어있는 하나님, 감추어진 하나님. 나타날 때는 뭘로 나타나요. 십자가로만 나타나서 십자가로 나타나버리면 인간들이 예수님이 쓸데없다고 포기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인간을 차버린 거예요. 저리가. 저기가. 이 십자가로만 구원받으니까 넌 저리가. 까불지 마. 겸손한 체 하지 마. 얼굴 찡그리지 마. 얼굴 찡그린다고 구원해 주는 것 아니야. 어떤 종교적인 겸손과 낮아짐도 십자가를 매치하는데 연결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돼. 십자가만 등장할 때 이 사람에게는 십자가만으로 라는 고스란히 예수님의 공로만이 이 사람 앞에 나올 때 그때 이 사람 마음속에는 나의 구원은 십자가의 공로로만이라는 이러한 예수님의 공로만 은혜란 이름으로 남게 되지요. 예수님의 공로만 남아요.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은 바로 예수님을 모독한 죄였다는 것을 하나님의 원수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이렇게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루터는 확실하게 증거했습니다. 그러니까 후세의 사람들은 루터는 신학이 없다는 이야기를 해요. 아아, 참 의미있는. 캘빈은 신학이 있는데 왜 루터는 신학체계를 안 잡았대요. 신학체계를 왜 잡아야 됩니까? 그게 누구를 위한 체계인데. 라고 아마 루터는 반문했을 거예요. 그 체계 잡아서 누구 좋으라고 체계 잡느냐 말이지. 가짜만 양산할 뿐이란 말이죠.

진짜 성경의 지식이나 신약이라는 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에게 그리스도 은혜라는 것을 공동으로 나누고 서로 그 고백을 교환하기 위한 신학이어야 되지 신앙도 없는 주제에 신학체계 수용해 가지고 그걸로 그걸 타고 사다리 삼아서 기어 올라가 천당 간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모독하는 짓밟는 반 복음적인 것이라고 루터는 그렇게 봤습니다. 루터의 이러한 이론은 불과 20년, 30년 안돼서 사라졌습니다. 참, 마귀가 쎕니다. 마귀가 쎄요. 사라지고 다른 것이 루터 신앙이란 이름으로 대체해 가지고 루터가 이야기한 것 말고 다른 루터신학이 루터교회를 만들고 캘빈이 등장하고 캘빈개혁주의란 이름으로 등장하고 이렇게 막 나갑니다.

신학체계란 것은 이성에 호소하죠. 이성에 호소한다는 것은 이게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이 루터가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 순수하게 그 십자가의 공로만 남기는 식으로 하나님은 일을 하시고 그 외에는 일체 일을 하지 않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 그런 측면에서 베드로후서의 이런 본문, 아까 보니까 아까가 더 그럴싸해 보이고, 아까가 더 정교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데 그럼 십자가로서 베드로후서 이런 것은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제가 이렇게 설명하면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게 뭐냐 하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입니까? 경건에, 그 다음에 뭐지요?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그 다음에 사랑을 공급하게 되어있다 말이지요. 이 모든 것에 배후에 누가 있느냐 하면은 이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에 진짜 알맹이, 그 내용의 알맹이는 이미 우리가 동일한 악한 세상을 미리 앞서서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작태 속에서 이게 다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모습 속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실제로 우리와 똑같은 그런 삶을 사셨는데 그 삶을 사시면서 다 갖고 있던 여러 가지들의 명령이 이 전체를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사랑으로 봉합되는데 그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요. 믿음에서부터 이렇게 절차를 내려가면서 어떤 변천과정을 겪는다. 어떤 변천과정이냐 하면은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 여기까지는 개별적인 자질에 관한 것이지만 경건까지. 그 다음에 형제 우애와 사랑은 이것이 개별적에서 이웃 사랑까지 범위가 넓혀진다. 이렇게 주석에 보면, 제가 여러 가지 주석을 참고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있는데.

덕이라는 것, 지식이라는 것은 일종에 이렇게 보면 돼요. 주님께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들어올 때에 그 십자가의 능력이라는 말을 하지만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깊은지, 넓은지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차츰차츰 알아갑니다. 알아가요. 지금 함평수련회에 어제 우리가 왔을 때에 저는 강사숙소하고 이것 밖에 몰라요. 탁구장 밖에 몰라요. 그런데 다른 시설물이 어떤 것이 있는지 또 뭐가 있는지 저는 구석구석 모릅니다. 살아가보면 점차 구석구석 박혀있는 요소들이 예수님의 다른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러니까 신기한 능력으로 주님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십자가라 해도 이게 오해할 소지가 많지요. 그냥 은혜에 감사한데 그 은혜의 실내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 세월이 가면서 우리가 더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더 알아갈 필요가 있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장에서 네가 기도하라. 뭘 기도하느냐? 주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얼마나 풍성한지 그 풍성함을 기도하라고 했어요. 요즘 교회에서 기도하는 내용과 좀 다르지만 상당히 추상적이죠.

그런데 베드로후서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덕과 지식, 절제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주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겁니다. 따라서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뭡니까? 믿음까지, 덕까지 했는데 지식 안하고 죽으면 구원받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구원이란 것은 이런 것을 확보한다고 구원이 아니고 구원은 예수님과 나의 관계 때문에 구원받는 겁니다.

이것은 누가 나와서 또 수고해 주셔야 되는데, 문 전도사님 한 번 수고해 주세요. 이것은 말로 해서는 내가 답답해. 내가 예수님이고 문 전도사님이 성도인데 제가 소개합니다. 처음 왔지요. 자, 여기가 마이크인데, 하고 벼락 떨어져 죽어버렸단 말이에요. 구원받는 것은 마이크 있는 것은 알았지, 저기 탁구장 있는 것은 몰랐는데 구원받을 수 있느냔 문제입니다. 그런데 손을 잡았잖아요. 손을. 손을 잡았다고. 이 사람은 그럼 누구 덕분에 구원받았습니까? 예수 십자가로. 마찬가지로 마이크 하나만 봐도 역시 십자가로 구원받습니다, 알게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대목에서 제일 주의할 것은 내가 믿음은 되고 지식은 안 되니까 나, 위태하다고 느끼는 것, 이것은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근본적으로 십자가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지금 뭔가 흐릿하게 놓치고 있는 사람이에요. 십자가가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지를 알기 위해서 하는 건데 이미 어떤 내부에 있는 현장에 와 있는데 마치 이런 리스트 중에서 끊긴다고 이것 하나 빠졌다고 해서 다른 현장에 온 것처럼 그렇게 착각들 하지 마시라 이 말입니다.

이것까지 하고 죽더라도 여기까지 하고 죽더라도 심지어 이것은 시간적인 관념이 아니고 이런 걸 다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더하다가 도로 이렇게 미끄러져 가고 이리 갔다가 다시 떨어지고 많이 있어요. 그리고 여기 덕이나, 지식이나 하나하나를 시간 관계상 다 못하지만 이걸 하나하나 해보면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신학지식 그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갖고 있는 덕, 예수님이 갖고 있는 지식, 예수님이 갖고 있는 절제, 예수님이 갖고 있는 인내를 우리 인내로, 우리 지식으로, 우리 덕으로 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지식만 해도 우리가 언제 예수님의 지식을 다 압니까? 모르잖아요. 모르는데 다음 진도 나갈까요? 그것은 주님 소관이지요. 지식에다가 이걸 보여 줄 수도 있고. 이걸 보여 줄 수도 있고. 지금 신체가 문제가 있어요. 신체가 말을 안 듣네.

형제 우애도 보여 줄 수도 있고. 그러면 실례를 한번 들어봅시다. 십자가를 알았다. 형제 우애가 안 되던데 예수 믿고 난 뒤에 바로 형제 우애를 알았을 때 이 모든 은혜 누굽니까?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사 형제를 우애 있게 하게 했다 이 말이죠. 얼마나 고맙습니까? 스타킹 주고. 갑자기 형제가 우애로워 미치겠어. 갑자기 사랑이 들어가는 것 같아. 그러다 말 한번 잘못해 가지고 쭉 내려가고.

이미 우리는 공통된 영역 속에 이미 놓여 있습니다. 이제 어느 것을 관람할 것인가? 주께서 그 사람의 형편 따라 이러한 축복과 이러한 축복, 덕이란 축복, 지식 축복 주실 거예요. 받을 때 그걸 축복이라고 여러분들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내가 따내야 될 어떤 성과급이 아니고 이것은 그냥 공짜로 우리에게 믿음만 공짜가 아니고 이 모든 것도 공짜로, 공짜로 다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라는 것을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5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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