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함평수련회 강의녹취(6-1)
[일반] 함평수련회 강의녹취(6-1)
이름 : 이근호(IP:)
조금만 하고 한 5분간 쉽시다.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버림받아야 될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응하기 위해서 우리가 버림받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하면 여기에 2장 6절에 보면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지요. 하나님께서 요긴한 돌처럼 사용하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약속인 메시아가 나타난다는 지정된 장소, 시온에다가 돌을 두었습니다. 거기서 둔 이유는 거기서 성전을 세우기 위해서 모퉁이 돌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돌이 7절에 의하면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 되었어요. 사람들에 의해서 버린 돌이 된 거예요.
그런데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뭐냐 하면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줄 아시고 먼저 하나님께서 아들을 버림받는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그냥 던진 거예요. 왜 그렇게 해야 되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자의 운명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얻고자 하는 것이 뭐냐?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자기가 선택한 사람을 던지시고 버리시고 다시 하나님 자신의 사람으로 건지는 과정을 통해서 이 세상이 얼마나 독하게 악하냐를 완전히 증거할 수 있는 증거물이 확보가 되어 버려요.
그렇게 되면 주께서 지옥이라는 것이 지옥의 존재가 정당화되는 그러한 효력을 발생해요.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정당했었다. 라는 것이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버림받는 생애를 통해서 분명히 확정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버림받은 자가 뭐냐? 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대립된 영역이 나오지요. 하나는 뭡니까? 어두운 곳, 도대체 어두운 곳이 어디에요. 어두운 곳이 나오고 그 다음에 어두운 곳에 대립되는 빛된 곳, 빛의 자녀. 어두운 게 뭐며, 빛의 자녀가 뭡니까?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인간의 본성은 뭐냐? 이 세상은 뷰티플, 아름다운 거예요.
프로티누스라는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자들은 그 사람들은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아름답고, 난이 피는 것을 보고 아름답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아름답고, 폭포의 웅장한 낙하의 광경이 그 물보라가 아름답고, 그리고 예쁜 여자가 아름답고, 예쁜 남자가 아름답고, 심지어 미물이 기어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눈의 발자국이 아름답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다움 천지인데 그런 아름다움을 어둡다고 표현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따져봐라 뭐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는지. 다 아름답잖아. 이것이 프로티누스가 강력하게 기독교에 반대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야 된다. 거기에 대해서 성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뭐냐? 나는 스스로 내가 내 가치를 이야기할 때는 나는 아름답지 못하다고 할 때에 주어진 모든 것은 아름답지 못한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은혜가 아름답다 이렇게 돼야 돼요. 내가 죄인의 괴수인 것을 깨달을 때 나는 살 가치도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이 모든 것이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놀라운 것이 환희와 감격과 기적으로 우리 가슴에 안긴다 이 말이죠.
공무원 시험 칠 때 한 번 떨어지고 두 번 떨어지고 시험 칠 때 그렇게 힘들 때 공무원 시험 되기만 되면 내가 소를 잡아 잔치를 하겠다. 그때는 공무원 세계가 모든 게 아름다워요. 과장님도 아름답고, 사무관님도 아름답고, 시청의 그 시장님도 아름다워요. 그런데 좀 승진되고 떴다 싶으면 시장님도 도둑놈이고, 순 돈 밖에 모르고 갑자기 아름답지 않게 된 거예요. 세상이 아름답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은 원래부터 아름답지 않지만 아름답지 않게 새삼 느끼는 것은 자기만이 아름답고 우기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기가 아름답지 않겠다고 여기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것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5분간 쉽시다.
2006 함평겨울수련회
(강사:이근호 목사)
베드로전후서 강의
제6번
여섯 번째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이미 차별해서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서 차별된 것이 아니고 우리를 차별화시키고 구분시키는 주도권을 쥐고 계신 분이 바로 부활하신 분의 능력에 의해서 구분되었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이 개념들이 무슨 개념인지 이 세상에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부활의 능력에서는 이 개념이 통하고 이 지상에서는 이 개념은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택하신 족속인데요, 혹시 소주 하나 주세요, 이것 안 통합니다. 그런 것은 전혀 통하지 않는 거예요. 통하지 않는 원칙에 따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냐?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원리를 그런 게임의 룰을 세상에서 그것 따라 산다는 것은 약간 정신병자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 뒤의 얘기입니다.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기이한(이상하다 말이죠, 괴상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심이라" 덕이라는 말이 나오고 아름다운 덕을 선전, 증거하기 위함이라. 이 아름다운 덕을 선전한다, 기이한 빛의 세계에 들어간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할 때 이 아름다운 덕이 바로 어디서 드러나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버림받은 삶이 아름다운 덕과 일치되는 겁니다.
항상 성도라면 뭘 생각해야 되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세상을 봤느냐, 예수님 같으면 어떤 식으로 국가 권력자들에 대해서 어떤 관점에서 봤느냐, 예수님 같으면 보통 인간들에 대해서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봤느냐? 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두운 세상에서 빼내졌다,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빼내졌다는 겁니다.
이러한 것이 이것을 한 번 규정해 보자, 골치 아픈 이야기할 것 없이, 이렇게, 이렇게 사시면 이 말씀에 합당한 현실적인 자태입니다. 라고 딱딱 끊어서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그것인데 우리가 사실은 궁금하거든요. 그 점에 대해선 크게 염려 안하셔도 되는 것이 이 바로 거룩한 택하신 백성, 왕 같은 제사장 이것이 어디에 먼저 나왔냐면 십자가를 중심해서 그전에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러한 운명이 이러한 법칙이 적용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보겠습니다.
십자가를 중심해서 전 세계는 이렇게 대칭적으로 둘로 양분됩니다. 창세기는 십자가와 초점이 모아지고 이 십자가에서는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대본되게 되어 있어요.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고, 신약은 이미 그리스도가 어떤 부활의 능력으로 통치하고 지배하고 있느냐 주도권을 쥐었느냐 확인시키는 확인작업에 들어가고 마지막에는 세상에 끝이 납니다. 끝나는 대목에 대해서는 감사하게도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상세하냐 하면은 멸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옛날에는 물로서 심판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물은 하나의 상징이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물이 상징이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 이 세상이 잘나서 심판 안 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지금 봐주고 있다는. 물이니까 불보다는 약하잖아요. 강도가 약하잖아요. 한 번 맛보기로 안 아프도록 살짝 해준 것이 그 정도로 한 것이 또 물이에요. 그런데 나중에는 물의 심판은 왔지만 근본까지 망하지는, 지구가 깨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깰 수 없어서 안 깬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다 깨진다는 것을 미리 하나의 통보하기 위한 예비 조치로서 그 표면을 물로서 살짝 죽인 거지요. 그 다음부터는 물이 아니고 본격적으로 실체가 드러나는데 불로서 등장하게 되면 이 불은 표면만 살짝 껍데기 벗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체질 자체가 우주 자체가 완전히 녹아버리는 끝장내는 그러한 공격으로서 불 심판이 있게 된다, 물은 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예비조치였다, 그렇게 구약 성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소유됐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 이 본문에 합당한 삶입니까? 물으신다면 구약의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던 구약의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나라가 있었어요. 그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는 여러분들이 이스라엘 나라는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뭐냐 하면 없었던 나라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서는 발생될래야 될 수가 없었던 나라에요. 뿌리가 없는 나라에요. 뿌리가 없어요.
마치 연극무대라면 배우가 무대 뒤에서 나타난다든지 무대 전면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관객들이 배우가 어디서 나타나지 뒤에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위에서 완전히 개입하듯이 위에서 내려오지요.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지요. 위에서 예루살렘이 내려오지요. 예상치도 않은 나라가 툭 튀어나와 버린 거지요.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항상 이렇게 우리의 예상을 빗겨가면서 돌발적으로 나타나세요. 툭 튀어나오지요. 원래 구원의 사건이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를 할 때에 항상 염두에 둘 것이 뭐냐 하면 뿌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뭐라 하면 나그네라 해요. 나그네면 나그네 설움이 있겠지요. 오늘도 뭐 간다. 나그네 같은 뭔가 타향에 잠간 나타났다가 얼른 본향으로 쫓아 돌아가야 될 그런 파견근무자 같은 신세가 이스라엘 나라의 특징을 이룹니다. 뿌리가 없는 거예요. 자, 이 땅에 뿌리가 없는 나라와 이 땅에 뿌리가 박힌 나라가 싸우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이 땅에 뿌리가 없는 나라와 이 땅에 뿌리가 있는 나라의 싸움은 결국 뭐냐 하면 땅이 옳으냐, 하늘이 옳으냐의 누가 더 정당하고 누가 더 신의 뜻에 합하느냐는 하늘과 땅의 싸움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주변에 뭐가 깔려 있느냐 하면 음과 양이 대비를 이루고, 흑과 백이 대비되어 이루듯이 뭔가 대비를 이룰 때에 주제가 전면에 확악~ 들어나는 게쉬탈트의 심리학에서 배경이 그 주제가 되는 주제를 더욱 더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자친구를 만나러 갈 때는 꼭 못난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서 비교시켜가지고 자기가 돋보이는 효과를 줘라 이 말이지요. 그것이 인간의 심리학적으로 맞다 이 말이지요. 주위에 있는 선들이 구부려지면 비록 그 선이 똑바로 된다 할지라도 구부려져 보이는 것이 시각적 착란이죠. 인간이 시각적 착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적 착란도 있단 말이죠. 기존에 있는 선입관으로 인하여 그 사람에 대해서 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수가 참 많아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대구 성일교회에 갔었는데 그때 제 아내를 만났는데 제 아내가 하는 말이 뭐냐? 처음 볼 때에 자전차방 점원인 줄 알았다 해요. 자전차방 점원. 노래방 이런 것이 아니라 자전차방. 옛날에 자전거 고치는 수리점의 보조 기술자인 줄 알았다는. 나와 결혼하면 당신은 백설공주인 줄 알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그 뿌리가 하늘에 잇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간접적인 효과로서 이스라엘을 이 땅에 보냄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거예요. 이것을 아까 이야기한 선전하기 위해서 증거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 이렇게 가만있으면 증거가 안 되겠지요. 누가 더 세냐를 붙어야겠지요. 이것을 성경에서는 붙이시매 전쟁, 항상 붙이시매. 전쟁을 유발시켜서 이쪽이 갖고 있는 무기의 리스트를 보게 합니다. 세상 국가가 갖고 있는. 물론 사물적으로 그 당시의 무기는 공정타라든지, 여러 가지의 칼과 활, 달리는 전차 이렇게 되어 있지요. 이것이 청동기 문화에서 철기 문화로 전환하면서 무기가 발달합니다.
세계 최초의 철기 문화는 힛타이트라는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그 지역에 강대국이 있었어요. 메소포타미아는 강과 강 사이에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에 마치 두 강 사이에, 현재 이라크.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그 지역에 있던 그것이 세계 4대 문명지역의 하나입니다. 세계 4대 문명지역 이것 수능까지는 안 나오겠다. 4가지 인더스, 갠지스 강, 그리고 나일강, 항상 강 유역에 있지요. 황하강. 이것이 4대 문화지역이라고 우깁니다마는 안 믿습니다. 저는. 성경 보면 에덴동산이 있지요.
무기가 철도 되지만 이것이 이런 사물적인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철기문화가 성립되려면 철기라 하는 것은 청동기문화는 같이 부딪치면 한 쪽은 구부려지고 하지만 이것은 안 구부려지고 단단해진다 이 말이에요. 하나는 무 들고 싸우고 한 쪽은 칼 들고 싸우는 식이 되니까 이것은 전쟁 하나마나, 힘과 힘이 겨룸에 있어서 강한 것이 더 세잖아요. 강한 것이 승리할 확률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무기와 문명을 얻기 위해서는 그 다음에는 고대 정치적인 기술이 동원됩니다. 정략결혼, 외교정책, 그리고 같은 신을 믿는 사람끼리의 동맹, 부족간의 동맹. 그렇지 않으면 1+1이 2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1+1이 3이 되고 4가 될 수가 있어요. 항상 이것을 노리고 동맹하는 거예요. 동맹하는 전보다 2가 되는 것이 아니고 2가 되면 동맹하나마나죠. 가만있어도 하난데 2해서 나눠줘 버리면 반. 2가 3이 되니까 만약에 둘로 나누면 1.5가 되잖아요. 동맹할 때는 1이었는데 동맹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몫의 분야는 1.5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기업합병도 되고 이런 식으로 다 되죠.
이것이 우리나라의 신라시대, 백제 이렇게 할 때 삼한 시대 이후에 삼국이 구분될 때 고대 부족국가들의 성립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걸 거부했던 것이 가야고, 가야는 그래서 신라한테 망한 거예요. 믿든지 말든지 모르겠어요. 내 마음대로 이야기하는데 알아서 하세요. AD 600년경에 망해버렸는데 그 신라가 뭉칠 때 뭉치는 무기가 뭐냐 하면 관념적이었어요. 그 당시 가야는 철기문화였어요. 가야문화에 대해서 빠삭한 사람이 제 처제인데 귀동냥 많이 들었어요. 가야문화 전공자이기 때문에 가야문양이 어떻게 성립되고 어떻게 회피되고. 가야의 철기문화는 그 당시 중국에서 입수한 최고의 철기. 그 철기문화가 왜 망했느냐? 가야에는 불교문화가 없어요. 이데올로기, 그 모든 귀족들을 하나로 얽어매는 불교가 없어요. 이차돈에 의해서 불교가 처음 들어왔거든요. 신라시대에. 신라는 불교가 고구려에서 들어왔어요. 불교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고. 불교뿐만 아니고 신라에서는 바로 최고의 부족이 등장하는 부족 중심의 신화를 만듭니다. 그것이 무슨 신화냐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 신화가 나와요. 그 신화가 등장한 다음부터는 왕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세습제가 되는 겁니다. 세습제가 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왕이 아니라 그 왕이 속한 가문 전체가 앞으로 영원토록 계속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왕가된다는 겁니다. 미국의 대통령 했던 케네디 왕가라고 했잖아요. 현재 북한의 김일성이도 왕가잖아요.
이것은 뭐냐 하면 바로 일반 땅의 원리가 뭐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 말이죠. 이것이 땅의 원리입니다. 지금 21세기 되도 이 원칙은 변함이 없어요. 그렇다면 악한데서 건져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인간적인 아이디어에서 힘 될 만한 것, 힘쓸 수 있는 것 다 동원해서 덤벼라. 그것 가지고 부활의 능력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한 번 붙어봐, 붙어봐, 붙어봐, 붙어보라고 전쟁을 벌이고 붙인 것이 바로 베드로전서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버린 자로 이 땅에 악한 세상에 데려감이 아니고 버려두는 거예요. 한 번 붙어보라고. 아이, 하나님 밉지요. 고생을 시키려고 작정을 했어. 작정을 했어.
이 세상에서는 힘 되는 것을 빼먹기 위해서 우르르 모였다가 빼먹을 것이 없으면 우르르 흩어지는 겁니다. 니, 내 친구아이가. 할 때 언제 친구냐 하면 학교 때 어떤 때 친구 많으냐하면 공짜로 떡볶이 잘 사주고 콜라 잘 사주고 김밥 사줄 때 친구 많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 부도날 때 친구 다 떨어져 버립니다. 또 다른 친구 뜯어 먹기 위해서 우르르 몰리지요. 아무 소리 안하는 것 보니까 많이 했어. 깍쟁이들은 친구가 없어요. 그런데 씀씀이가 좋은 아이들, 그것을 가지고 뭐라 하냐면 철이 없는 아이지요. 아주 식언 없는 아이들. 철이 없는 아이들. 철이 없는 얘들한테 많이 달라붙어요. 철나면 자기 단도리한다고 바빠서 친구 하나 둘씩 떨어지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힘이 있는 곳에 형님요. 하면서 붙어가지고 그래서 그 힘 다 빼먹고 힘 떨어졌다하면 토사구팽. 사냥개를 사냥할 때 써먹곤 잡아먹는. 그래놓고 딴 데로 우르르 몰려가지고 또 뜯어 먹고. 당신은 나의 지도자이십니다, 형님. 하고 갈 때도 우우 가가지고 떨어지면 또 주욱 딴 데 가는 거예요. 이것이 땅의 원리입니다. 힘 따라 가요. 힘이 있는 곳에 가는 겁니다. 내가 뜯어먹을 것이 있는 곳에 가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상하게 분위기가 숙연해지네.
이 원리 이외에 다른 삶의 요령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 땅에 산다는 것은 힘이 있어야 사는 것이고 힘이 있어야 산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을 만나야 돼요. 돈이 돈 먹는 거예요. 힘이 힘을 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학교 친구해도 꼭 공부 잘하는 얘들 붙어서 친구하라고 하지요. 부모들이 그렇게 신신당부합니다. 꼭 있는 집 아이들, 있는 집 아이들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친구돼지. 못사는 애들하고 놀지 마라. 참 그런 설움과 학대를 얼마나 많이 받고 살았는지. 그래서 힘이 안 되는 이야기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방위 나왔다든지. 이런 것. 현역출신이 아니라는 이런 것.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그런 이야기. 내 부모가 알면 놀지 마라 하지요.
그래서 이 땅의 원리가 이스라엘 내부에 이미 잠식하고 나중에 통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이스라엘의 특징은 이 땅의 원리가 아닌 하늘의 원리로서만 존재하는 가능한 나라인데 그 땅에서 지도자, 왕이라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땅의 원리를 흡수해서 그것으로 이스라엘을 지탱하고 보전하려다 보니까 이것은 어느 것이 하늘인지 땅인지 구분이 안 되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 이스라엘이라는 사기꾼, 엉터리 같은 가짜 하나님 나라에 고난 받는 선지자를 보내서 이 선지자 중심으로 따로 모이는 새로운 택한 나라를 여기서 새록새록 만들어내요.
이것을 가지고 유명한 석 자로 말하면, 영어로는 remnant, 이것을 '남은 자'라 합니다. 레지스탕스. 항상 다수가 아니라, 주류가 아니라 소수, 아웃사이더, 뭔가 소외 받는.
그런데 이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나라에게 공격할 때 뭘 어떻게 공격하느냐 하면 하늘의 법칙을 가지고 땅의 법칙을 공격합니다. 어떻게 공격하는가? 이사야 같은 경우는 이렇게 공격합니다. 왜 이 땅에서 계급이 발생하느냐? 계급발생 가지고 문제 삼아요. 분명히 우리가 출애굽할 때는 가진 자, 안 가진 자 계급 없이 공평하게 된 나라인데 그리고 땅이 있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품꾼에 지나지 않았고 하나의 임대차계약을 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땅에 땅을 더하고 자기의 소유가 능가하고 이래서 그 소유가 어디서 나왔겠는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힘없는 자를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에 그 토지가 이쪽에서 넘어가서 저쪽은 과대하게 많아지고 이쪽은 줄어든다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