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교회사 7강 녹취
Re..교회사 7강 녹취
이름 : 정석훈(IP:)
교회사 7강 녹취
이근호 2006-01-06 16:26:34, 조회 : 10,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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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 한나라의 통치자의 종교가 등달아 그 나라 백성들이 같은 종교를 요구하던 시대이다.
개인이 자유 신앙을 주장하는 것은 최초로 재세례파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성인들의 고백이 아니면 교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의 사 때문에 교회에 가입한 것은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한다. 유아세례 받았으면 다시 세례받아야 한다.
이 파에서는 개인의 신앙에 따라서 교회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나머지 루터, 칼빈, 쯔빙글리, 카톨릭, 영국국교회등 모두는 통치자의 종교에 백성들이 따라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신조란 것은 내가 믿는데 무슨 필요가 있는가?
신조란 교회의 정치화이다. 교회를 그냥 가만 두지 않고, 국가 정치화 시킬때 신조가 필요로 한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를 정치적으로 교회를 하나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들어 낸 것이 루터교, 칼빈교, 영국의 청교도, 미국의 신개척지의 교회들에 반대하는 자들은, 통치자의 통치에 동의하는
영국에 헨리 8세 아주 막나니 같은 자가 등장했다.
멀리 있는, 바티칸에 있는 교황이 영국 백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국왕, 나의 종교가 전국민을 지배한다. 싫으면 죽어라. 요즘 세상에서 볼 때에는 이상하다.
그러면 왜 그런가? 하나님 밑에 국가의 왕은 하나님이 세운 왕이다. 이 논리는 구약의 논리이다. 역대상하, 열왕기 상하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나라를 관리 할 때 왕을 통해 관리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구약을 보면서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따로 있다. 그래서 왕에게 복종하면,
제대로 된 왕이 있으면 그 나라 백성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왕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하면 그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망한다는 정치적 철학을 갖고 있다. 구약성경을 보고.
지금 만약에 구약 성경을 보라고 하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하나님의 합당한 나라를 만들 수 있겠구나. 그 나라 백성은 그 자체로 영생이요 구원이요 축복으로 간주할 것이다.
잘못되었지만 그냥 성경을 던져 주어서 성경을 보게 되면, 그 당시 왕의 잘 잘못으로 나라가 잘되고 잘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열 번이 못되고 한 번 잘되는 것을 그것이 자신의 진면목이라고 간주할 때가 많다. 한번 잘 될 때
아이들 모의고사 칠때 아이가 305 나오다가 우연히 345가 나오면 345가 자신의 실력이라 간주한다.
원래계산해 보면 305가 자신의 실력인데, 한번 잘 나온 것을 자신의 실력이라 간주한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그 뜻이 무엇인고 하면, 구약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면 나라가 복받는다는 것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다.
그러려면 왕이 잘 되어야 하고, 백성들은 그 휼륭하신 왕의 종교를 따라가 주어야 복을 받는다. 나라꼴이 된다.
그런데 이것이 다른 종교가 없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왕, 통치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뜻을 전담하고 있는 기관인 교회의 총수인 교황에게 약간의 정치적 타협이나 고개를 숙여야 한다. 다른 종교는 없으니까.
그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는 전공이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는 없다. 황제가 교황이나 주교급들을 불러 모아 자꾸 공의회를 여는 이유가, 공의회를 열면 그 다수의 의견이 하나님의 진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왕이 그 뜻에 복종하게 되면 구약대로 복을 받는 채널이 된다. 복을 받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여러분 교회사 정치적 분위기가 파악이 됩니까?
오늘날과는 다르다. 그러니 자기 왕은 하나님의 뜻을 전담하는 교황말을 들어, 니케아 회의의 칼케돈 신조에 의해 삼위일체 형성, 이 삼위일체에 부합하지 않으면 신의 노를 자초하는 것이니 큰일날 일이고, 삼위일체를 인정하고, 삼위일체 문제 뿐 아니라, 마리아의 죄가 예수님의 죄에 영향을 미쳤느냐, 연옥의 문제, 성만찬 유아세례문제 등 이 많은 문제점을 왕은 수시로 교황중심으로 수시로 모이도록해서
신조로서 구축해서 백성에게 전해준다.
왕의 역할은 교회확립한 교리, 신조에 어긋나는 자를 색출하는 일을 해야한다.
구약 아간의 죄악으로 전체가 실패했지 않느냐. 여리고성 전투에서는 힘을 합쳐 시키는 데로 했는데. 아이성 전투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실패.
금은을 숨겨 놓았다가 불에 태워짐,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러니 신이 계시고 신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서 왕의 임무는 교회의 말을 들어, 교회교리를 백성들이 잘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를 잘 감시해서 잘못되었으면 작살낸다. 그래서 중세 유행한 종교재판.
중세에 종교재판을 했다.
마녀 사냥을 했다. 칼빈, 루터가 다 인정했다. 제네바에 종교재판이 있었다.
삼위일체반대하는 자들은 사형당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니까?
다만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경해석이 교황주도하에 있는데, 카톨릭에서는 교황이 예수님을 대리하여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의 베드로의 열쇠를 쥐고 통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교황인격이 문제가 있더라도 교황직분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19세기 말에 교황무오설이 선언된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위클리프, 오캄에 의해 일어난 것은 교회가 성경해석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그런 기운이 유명론자들 등에서 나오다가
훗서에서 노골적으로 말하는데.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되는데, 교황이나 교회가 성경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면 성경의 내용만이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동안 천주교가 성경에 없는 여러 가지 잡스러운 허래허식같은 것을 마구 교회에다 집어 넣어, 이것을 성경과 더불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각 나라에 유포를 한다. 황제가 받아 백성에게 유포함.
그런데 성경과 전통(허례허식)이 섞여 있으면, 성경과 전통이 충돌이 따르면 성경을 따라야 할 것인데, 교회란 것이 교회자체 정당화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존속한다. 잘된다면 그것도, 성경말씀도 거부한다.
교회란 사람들의 집단이다. 사람들이 있어야 왕도 있고 교회가 있을 수 있으니 사람들이 납득이 될 수 있도록 전통들이 만들어 진다.
납득이 된다는 말은 인간 심성, 자연적의 법, 인간 양심에 호소에서 근거를 가지고 교회의 기초를 쌓아 올라 왔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 재세례파가가 과감하게 외침.
이렇게 외치니 카톨릭 쪽에서는 그러면 좋다. 그러면 너희들이 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그러면 성경에 합당한 교회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을 내어 놓어 보아라. 하니.
천주교에 일년 스케줄이 있다. 거룩한 날이 그렇게 많다.
천주교에서는 성자 축일이 매우 많았다.
그 당시 성경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순교자나 신앙 좋은 사람들을 본받자는 식으로 목회를 해 왔다.
여러분이 목사가 아니기에 목회란 것이 어떤 것을 두고 말합니까 할때, 목회란 월급을 받았으니 내 놓아야 할 것이 있어야 하는가? 교인들 하고 노닥거릴 수 있는 것을 만든다.
그래서 일년 스케줄을 짜는 것이다.
그 스케줄 대로 하는 것이다. 사순절, 오순절을 자꾸 만들어서 목사나 사제가 돈값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를 보여주고자 한다.
성경을 읽으라면 읽는다.
성당은 제사, 즉 미사를 드린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자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미사 참여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으면서 일년을 보낸다.
여기에 아기 놓으면 세례주고, 견진 세례하고, 결혼하면 세례하고, 죽으면 종부성사하고, 연옥문제 거론하고, 굉장히 바쁜다. 이 바쁜 스케줄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스케줄 대로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성당에만 종이 없다. 밀레의 저녁종을 보면, 이삭줍는 여인, 만종을 보면, 하루 일과를 감사합니다. 그 스케줄을 성당의 종소리가 울린 것이다.
성당의 종소리에 따라 넓은 농부들의 하루일과가 결정된다.
내일 종교적 행사가 어떤 것이 있는가?
가난한 자에게 양식을 제공한다. 어려운 자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것도 성당이 정한다. 자금은 영주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성당 스케줄에 매여 산다.
이렇게 매여 살 때 그럴때 죽을 때 천국가고, 죽은 자도 연옥에서 빼내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성경을 보겠는가?
그런데 성경을 직접 보게 되면 이 성당에서 하는 99프로가 미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재세례파는 그 당시 성경유포 되니 성경대로 하자는 주장을 한다. 이 말은 간편하게 하자는 말이다.
복음으로, 십자가중심으로 하자는 말이 아니다.
칼빈, 루터, 쯔빙글리의 성경대로 돌아가자는 말은 너무 복잡하니, 복잡하다는 말은 자기 스케줄에 아니라 성당스케줄에 매여 있으니, 신부에게 꼼짝도 못하니, 그러니 종교개혁의 융성지역은 도시상공업자들에서 맞아 떨어짐, 칼빈의 경우, 스위스 제네바에서, 1534년에 장로교 헌법이 등장한다. 계급이 네개있다. 목사 교사 장로 집사. 그런데 상공업자들은 농촌에 사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본, 이자를 받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자는 시간따라 돈을 받는데, 그 전 까지는 시간 따라 돈을 버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시간은 하나님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것을 이용해 돈을 버는가, 그것이 죄악이다.
베니스의 상인에 보면 유대인들의 얼마나 지독한지, 돈 안 값으면 피 안내고 살찜 떼어낸다.
시간관리를 본인이 한다는 것은 본인이 종교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종교생활을 간편하게한다.
다시 정리해 보면 한 하나님 밑에 한 왕이 신앙생활를 잘하고 ,백성들은 이것을 따를 때 구약처럼 복을 받는다.
그래서 그 왕은 교황의 전체 결정을 따라 주어야 복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런 도시 발달, 십자가 운동 하다 보니, 물자가 필요하고, 무역발달과 함께 이자 발생등.
그래서 신앙생활을 간편하게 하자고 하니, 모든 성일을 다 없애 버리고, 주일 지키는 것, 세례하는 것, 성만찬하는 것, 이것 조차 가끔 해도 괜찮고, 또 한 가지는 성경의 교리, 이 네 가지를 지키면 당신은 우리편 해줄께라고 한다.
종교개혁시대에도 개인이 결정한다는 것은 개신교 중에서 재세례파만의 주장이고,
나머지는 칼빈, 쯔빙글리, 루터 등은 정치꾼의 종교가 모든 백성의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국종교는 세 개이다.
영국국교, 정통카돌릭, 개신교가 있었다.
1535년에 생겼다. 이때 교육받은 사람이 존낙스이다. 스코트렌드 종교개혁.
영국 변두리에 칼빈주의 사상이 들어가 상공인들 중심으로 장로교가 생겼다.
장로교가 무엇인가?
장로교란 사제를 교인이 뽑는 것이 장로교이다.
사제가 없는 것은 재세레파.
사제를 교황이 뽑는 것은 카톨릭이다.
통치자가 사제를 임명하는 것은 영국국교, 루터교, 칼빈주의적인 요소를 지닌 개혁교회가 그러하다.
개혁교회가 통치자를 임명한다. 왜 그런가 왕이 제대로된 신앙을 갖고 있으면 복을 받는다.
회원들이 직접 뽑는 것은 장로교회이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는 이와 다르다.
개혁주의는 성경대로 스케줄을 간편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중 하나가 장로교회이다.
장로교회는 교인이 뽑는 것이고, 재세례파는 목사가 없다. 왜냐하면
성령받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고 교인 될 수 없고, 성령받으면 모두가 다 남에게 권면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
재침례 외에는, 즉 개혁주의 장로교등 모두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청교도 혁명, 크롬웰이 장로교를 핍박한다. 같은 편이 아니다.
크롬웰의 주장은 칼빈주의 입장에서 영국국교를 만드는 것이다.
크롬웰은 영국 통치자이다. 그는 개혁주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 각 교회 사제를 누가 임명해야하는가. 자신이 임명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장로교는 그 교회 목사는 그 교회 교인들이 뽑는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제도이다. 통치자가 아무리 칼빈, 루터라도.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맞는데 왜 반대하는가?
그것은 나라가 되려면 그 나라 자체가 신의 나라인데, 신의 나라에 교회가 있다는 말은, 신의 나라에 통치자가 둘이 되지 않는가? 통치자 하나 있고, 교회의 사제가 있고.
신의 나라가 되었으면 마땅히 교회성도들도 왕의 백성이다. 그 백성의 신앙의 책임자가 왕 본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그 백성에 합당한 사제를 왕 본인이 임명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너희들 마음대로 목사를 뽑는가? 어떻습니까?
어느 것이 옳다고 봅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 유럽교회 아직도 그렇다.
국가가 신정정치를 하면 사제의 봉급이 국가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목사 봉급을 주지는 않지만 세금을 면제해 주지 않는가?
이것은 근대 국가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나라 목사가 세금을 내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다.
선교의 자유를 핍박하지 말라.
중국의 경우에는 공산당에서 월급이 나온다. 이 말이 무슨 뜻인고 하면,
하늘나라의 통치지는 두 곳으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로 될 때 안정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 크롬웰 이후, 카톨릭을 반대한 개신교로 간 영국국교는 다시 핍박하여 미국으로 건너감
낭트칙령이라 하여, 위그노(동맹)파, 칼빈의 사상을 받아 영국개신교가 25프로까지 증가. 성바들로메 대 학살에서 많이 죽었다. 이들을 핍박, 이들이 미국으로, 독일에서도 오고, 네덜란드에서도 온다. 네덜란드 경우는 그야 말로 개신교가, 1648년 베스타 팔렌 조약으로 독립,
남쪽 스페인 영향받은 벨기에,
그때 신조가 벨직신조, 이것은 칼빈신조를 그대로 베낌.
신조에 대해 1536 제네바. 1545년 스위스 신앙고백, 네티앙 신앙고백, 벨직신앙고백, 1563년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36개조신조(영국개혁주의신조). 스코틀렌드 신조, 아일랜드106개신조등등.
신조가 막 터져 나온다.
이 모든 신조가 칼빈의 스위스 신조에서 나왔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조가 많은가?
그것은 통치자가 신조 같은 사람끼리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나라 만들면 무엇이 좋은가? 자기 종교가 국가적으로 보장받는다. 어떤 곳에서도 혜택을 받는다.
우리 나라 국교가 있어, 기독교라면 황우석이나, 이건희가 장사를 못한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 신자가 편한 나라가 된다.
사람이 종교를 갖게 되면 이 종교자체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로 인해 국가적 혜택이 주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 목숨 걸고 카톨릭과, 영국 국교와 싸웠다. 여기서 나온 것이 장로교이다. 개혁교회가 핍박을 받으니 미국으로.
처음에서 카톨릭과 개신교, 영국국교와 비국교도와 싸웠다.
나중에서 종교 있는 국가와 없는 국가가 싸운다. 나폴레옹은 수도원을 작살낸다.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감. 미국 남북 전쟁 때에, 미국남부는 면화 발달, 면직류 생산을 위해 노예가 필요 했다.
북쪽은 장로교들이었다. 노예를 반대했다. 이 노예 반대해서 남북전쟁이 벌어진다..
천주교는 미국남부로, 주로 케나다로 갔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라고 했는데. 필 그램.
청교도들은 사제 옷 입지 말자고 데모하면서 생겼다. 이들이 미국에 건너 올 때 두 가지 파가 있었다.
하나는 영국국교를 인정하되 칼빈주의로 하자는 입장과, 영국국교 때려 치우고 우리끼리 장로교 하자는 파가 있었다. 이것은 종교전쟁이 아니라 자기 생존에 좀 편하게 살아보자. 국가적으로 정치적으로, 내가 결정한 내 종교에 대해서 외부정치권력이 나의 보탬이 되는 식으로 해보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종교전쟁이 발생한다.
그러니 예수님과 상관없다. 복음과 아무 관계없다.
재세례파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거부하고, 세례받아야 구원받는다고 한다.
믿음으로가 아니라 물세례를 받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중생된 자만 교회인데 중생된 증거들을 찾아야 한다. 나름대로 신조가 있다.
이런 개혁주의 분위기 속에서 유니테리안이 크게 성한다. 단일신 사상, 소시니안주의.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다. 예수님은 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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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공의회 결정은 칼케돈 공의회에서 다 나왔다. 개신교의 신조가 다 칼빈의 신조에서 나왔다.
루터는 왜 신조를 만들지 않았는가? 루터는 체계적인 교리주의자가 아니다.
루터는 교회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리를 만들어 버리면 스콜라철학이 된다. 루터의 뛰어난 점이 이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가 되어야 되는 쪽과 스톨라, 17세기 개신교 스콜라, 하나의 교리를 만들어 버리면 무엇이든지 문자라는 것은 문자적 해석과 영적해석이 나누어 진다. 본인이 결정할 것 같으면 문제가 없는데 외부에서 강제로 결정시킨다. 어떤 신조든 문제점은 신조가 있어 버리면 자체 모순이 생긴다. 성경이 제일 우선이다. 개신교란 교회전통하지 말고 성경믿자고 나온 것인데, 성경 믿기 위해 신조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성경을 믿을 것인가 신조를 믿을 것인가? 성경이란 성령의 역사로 계속해서 깊은 뜻이 나온다.
신조라는 것은 신조를 믿어 버리면 자연적으로 성경적 내용을 추가했기 때문에 성경을 핍박한다. 성경을 버릴 수가 있다.
제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노회 재판국 담당자가 와서 하는 말이. 이 목사님은 웨스트 민스터 신조를 믿습니까.
웨스트 민스트 신조안에 모든 진리는 성경에서만 나온다는 것이 들어 있다.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이고 그 외에는 진리가 없다.
성경이 유일한 진리의 기준이라고 답변하니, 인간들이 말을 못 알아 듣고, 성경 말고 웨스터 민스트 해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웨스터 민스트 신조를 내가 믿습니다고 하면 웨스트 민스트 신조 자체가 거부한다.
웨스터 민스트 신조가 거부한 것을 웨스터 민스트 신조가 적어놓고 있다.
그러니 웨스트 민스트 신조 자체가 문제이다.
그러면 그런 모순이 있다고 하고 웨스터 민스트 신조를 참조하면 된다.
참조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웨스터 민스트를 믿느냐고 묻느냐고 하면, 신조를 내가 갖게 되면 신조가 나를 위한 신조가 된다.
성경을 믿을 때 어떤 인간도 아무리 이단이라고 성경은 나를 위해 있다고 할 수 없다. 예수님만이 하실 말씀이지, 아무리 이단이라도 뻔뻔 스럽게, 너희들 성경과 관계 없어, 나와 관계 있어 라고 말하지 않고 예수님과 관계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조가 되어 버리면 신조를 인정하는 나를 위한 신조가 되어 버린다.
만일 내가 만든 신조에 불복하면 너는 이단이 된다.
이런 짓을 누가 했는가? 천주교가 그동안 해 왔는데, 개신교가 신조가 남발되면서 이제는 개신교가 천주교 그 짝이 난다. 개신교가 천주교를 그대로 답습한다.
신조 들여대고 내편, 네편 재판하고, 마녀사냥을 했다.
그래서 아메리카에 이주한 사람들이 유럽에서 배운 대로, 정치와 교회가 하나가 되는-신정정치-, 칼빈의 이상처럼, 이상적인 신정정치를 실현하려 시도하려다가 실패로 끝났다.
왜 실패로 끝났는가? 그들이 아메리카에 온지 몇 십 년 되지 않아 교회 출석률이 10퍼센트로 떨어져 버렸다.
왜냐하면 16세기 전쟁할 때, 교회사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누구와 싸울 때에는, 만약 지묘교회가 우리에게 이단이라고 할 때에는 힘을 합쳐 싸우는데, 지묘교회가 알았다고 하며 싸움을 걸지 않을 때에는 누가 문제가 생기는가? 우리 교회가 태만해지고, 나태해지고 안일에 빠진다. 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단체에서 너희들 이단이지 하면 다시 힘을 합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고 하면, 입술로는 살아계신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자기 자존심과 일체화 하고 있다.
성경의 십자가 이야기 한다는 것은 십자가 부러짖는 자가 십자가 앞에서 한없이 높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이야기 하는 너도 십자가 앞에서 한없이 작아져야 한다. 없어져야 하고 조그만해 져야 한다.
예수님만 의롭다는 말이 아닙니까? 예수님만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이 가끔 나타나는 예수님입니까?
사실 세상 끝날 까지 늘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늘 주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나는 자존심없다. 자 깨었다 해 놓고 막상 자기를 공격하니, 그때 바짝 우리 힘 합쳐 대항하자 해 놓고, 그런 적들이 사라지니, 나태에, 안일에 빠져 교회도 나오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하면, 아메리카에 온 사람들은 유럽에서 온갖 핍박을 받았다. 카톨릭으로부터. 그 당시 왕들이 카톨릭 신자였다. 합세부르크 왕가.유럽 대부분을 통치했다.
이들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핍박 없는 곳에 왔을 때 그들은 더이상 공격하는 주체자가 없으지니 그들은 그 다음 부터는 명목상 교인이지, 본래 자신의 욕심대로 살다보니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교회 나오지 않으니 목회자들 입장에서는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더욱더 강력하게 신조를 강화시킨다. 신조를 강화시키니 이제는 카톨릭이 자기 종교를 공격하다가 이제는 스콜라된, 관념화된, 논리적인, 소위 경직화된 교리가 자유로운 신앙양심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대해 자연적으로 반발을 일으킨다.
그 반발이 바로 이신론. 사람이 이성으로 따져 봐도 신을 아는데 이따위 교리가 뭐 필요한가? 교리가 뭐 필요한가?
그러니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족점을 매꾸기 위해 예수님이 하늘로서 오셔서 그 예수님이 피 흘려 우리를 용서했다. 그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다. 동정녀에게서 예수님이 태어났고, 천지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인격자이시고, 세례를 통해 중생, 거듭난다.
몇 가지만 알고 나머지 교리는 다 버리자.
개신교가 간편을 위해서 카톨릭에서 나왔다. 개신교에서 더욱더 간편하게 하는 방법은 교회의 복잡한 교리를 다 버리고, 내가 편한대로 내가 대충 믿을 것만 대충 챙기자라고 나오다가.
이성,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꼭 성경 보지 않아도 된다. 라고 나오다가.
여러분들이 토요일 피곤하시니 중요한 것만 걸러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카톨릭에서 간편한 교회, 이것을 성경대로 교회-, 물어 보겠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성경대로 교회가 무슨 교회라는 뜻입니까? 성경대로 교회는 사실은 정치화된 교회.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간편한 교회 즉 개신교였다. 그런데 주적이 없다.
간편한 것이 교회가 돈벌이 바쁘다. 칼빈이 돈벌이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요 사명이다. 거룩한 소명이다. 성직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장사하고, 농사짓는 것도 거룩한 소명이다.
거룩한 소명을 이루기 위해 시간은 누가 관리하는가? 목사가 아니다. 고난주일 오세요, 안갑니다. 수출해야 하니. 장사해야 하니.
부활절, 바이어 오는데 못간다. 옷가게 열었다. 이번 주일날 성만찬인데 오실랍니까? 그런데 교회오려고 하는데 삐리리 전화 와서, 계약 체결하려는데, 단골 놓치면 두 번 다시 안 온다. 교회 오다가 차를 돌려 만나고 난 뒤 오후 예배 참석한다.
누굴 지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시간관리, 스케줄 관리 내가한다. 내가 하다 보면.
스콜라적인 목사. 목사가 복잡한 교리를 말해도, 그것은 다 듣지 않는다.
그것은 간편하게, 이단 아닌 정도만 하다가, 이것조차 과학이 발달하면, 이렇게 교회를 통해서 오지 않으니, 교회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럴 것 같으면 만날 교회 가야지. 교회 살아야지. 그러나 인간 속에 이성이 있어서 신의 계시로부터 이성이 온다. 17세기 후반 칸트가 나오면, 신의 이성이 무엇인고 하면 결국 도덕이다. 도덕적이 되어 버리니.
여기서 유니테리안이 나온다. 단일신론. 하나님의 삼위일체가 말이 안된다. 인간의 교리에서 나왔고 헬라철학에서 나왔다.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면 끝이다.
유니테리안의 체닌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대신 죽이신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난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책임을 져야지. 다른 사람이 대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몇몇 가지 속죄, 재림을 생각하다가 여기서 하나둘 빠지면서 반발이 일어난다. 전통기독교에 반발이 나오다가
남는 것은 끝에 도덕만 남는다. 그래 착하게 살게 만 남는다. 그런데 도덕은 누구에게 밀리는고 하면, 돈에게 밀린다. 도덕과 양심은 돈에게 밀린다. 돈 있을 때에 도덕이지 없으면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여기서 나온 것이 1725년부터 1760년까지 미국에서 조나단 에드워드의 대각성 운동, 1700년 초반에 영국 존 웨슬레의 감리교가 일어난다. 너무 방탕하다 이유는 교회교리를 믿지 않으니, 나도
신이 있는 것을 아는데. 안 믿으면 되지 왜 바쁜데 나에게 교회 나오라고 하느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그 근거가 웨스터민스터 신조이다.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순서, 35개조항.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해서, 영원한 경륜에 대해서, 창조의 섭리에 대해서. 인간의 타락과 죄의 회복에 대해서.
이미 미국이 18세기가 되면, 타락이라는 것, 죄의 형벌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교인이 되는가?
날 때부터 유아사례, 성만찬하고, 세례다받고, 목사 시킨대로 하고, 목사를 사회 유지로 존경하지만, 목사는 우리 대신해서 우리 마을 복받기 위해 대신 착한일 해 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주홍글씨를 보면, 어떤 목사가 남편이 죽은 줄 알고, 과부인줄 알고 관계 맺었다가 남편이 살아 돌아오니, 남편 있는 여인과 관계를 맺었기에 못 견디고 괴로워한다. 여자는 간음죄로.
이것을 무엇을 뜻 하는고 하면, 이미 도덕이 모든 교리를 대표했다. 모든 것을 도덕적으로 설명한다.
그러한 영향속에 웨스터민스트 신조를 18세기 신앙 운동에 집어넣으니, 진짜 교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산정현 평양 교회가 회개운동 하듯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회개하는 것을 부흥이라고 착각하듯이. 그래서 대각성 운동은 실패이다.
대 각성 운동 후 얼마 되지 않아 1759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다윈의 진화론. 다윈의 진화론이 일어난 후, 미국까지 파급되어 온통 진화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라이신푸스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천국이다.
니체. 하낙 독일신학이 미국까지 파급. 뭐 십자가 구원받고 속죄 치워라.
예수님을 뜻은 도덕적 정신, 지상의 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재세례파는 천년왕국.
뮐러라는 사람은 1700년 말에, 어떤 사람은 1800년 말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주장.
극단적으로 1909년 스코필드 세대주의의 등장. 이보다 더 극단으로 가는 것도 있었다.
초창기 칼빈의 웨스터 민스트를 이야기 하면서 도덕적으로 사용했다.
죤 웨슬레나 미국의 각성운동이었다.
그러면 원래 웨스터 민스트 신조 정신은 무엇인가? 계약사상, 언약사상이다.
여러 가지 신조가 많지만 웨스터 민스트 신조에서 조합되었다.
최초 신조는 기독교강요. 1535, 1536년 스위스신조.
계약사상, 언약사상, 코게이우스라는 사람이 최초로 언약사상을 밝혔다.
구약의 전부를 언약 하나에다가 집대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제가 하는 언약과 다르다. 하나님의 구원은 약속이다.
이것은 초창기 코케우스나, 웨스터 민스터나, 재세례파도 언약사상을 많이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 약속을 했다. 이게 그 당시 웨스터민스트 언약사상이다.
언약이 무엇인가? 안식일 언약(예레미아)-주일로 바뀌었다. 세례, 성만찬, 영원한 언약을 우리가 믿었고, 늘 그 약속 속에 있음으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웨스터 민스터 신조의 중심사상이다.
코케이우스의 사상, 성부와 성자사이에 영원한 언약이 체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잘 보세요. 차이점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진다. 저는 이것을 복음적, 성경적으로 봅니다.
그런데 초창기 다른 사람이 말하는 언약사상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약속 속에 있어야, 약속이 유지되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엇이 들어가는가? 우리가 들어간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됩니까. 약속에서 약속을 지켜야, 위반하지 않아야. 애를 써야 그래야 구원받는다. 그 약속이 재세례파에서는 세례, 칼빈주의에서는 웨스터 민스터 신조 내용이라 본다.
이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잔뜩 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우리가 구원받게 되어있다.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다는 말입니까?
없다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왜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초창기 언약은 무엇인고 하면, 초창기 개신교는 천주교와 싸웠다. 천주교는 내려오는 전통이 있었다. 천주교 교리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약대로 믿어야 구원받는다. 그들은 천주교와 싸우기에 바빴다.
따라서 웨스터민스트가 아는 것은 항상 적이 있다. 다시는 천주교나 영국국교도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한 교회의 감독이나 사제를 교인들의 손에 의해서 뽑는다.
조나단 에드워드
그 뒤에 나오는 부흥회, 19세기 말, 진화론 발달했을때, A.A.핫지, 휫필드, 네첸, 밴틸, 19세기 말, 네덜란드
미국은 전체 이신론으로 교회숫자가 확 줄어 버림.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개신교, 카톨릭 교회가 다 날아가 버린다.
종교와 정치꾼의 싸움에서 정치꾼이 이긴다.
나폴레옹(19세기 중순), 이때부터는 정치와 종교는 빠이빠이였다.
빠이빠이 하면서 정치가 종교에 대해 돕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이때부터 개인의 신앙은 개인이 결정한다는 근대종교사상이 있었든 것이다.
오늘날 내가 원하는 종교는 내가 결정한다는 것은 종교개혁시대에는 없었다.
19세기가 되어야 그것이 나온다.
국가는 국가대로 가 버리고, 개인이 믿든지 말든지 그것은 개인적으로 가버린다.
따로 따로 갔다는 말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성경, 종교는 국가의 힘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니 어느 한 시대 한 순간도 신앙적 복음 시대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찰스 핫지, 휫필드, 이 사람들이 하도 소위 기본적인 교리를 무시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언약을 할 때
언약을 믿어야 한다. 성부와 성자의 영원한 언약
그 사상에서 안식일 완성으로서 주일지키기가 웨스터 민스터에 나온다.
그것이 왜 들어가고 왜 지금도 장로교에서 이것을 주장하는가?
안식을 지키게 되면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미명하에 강제로 무엇을 구별할 수 있는고 하면, 일요일 마다 내 교인인가 아닌가를 구별할 수 있다. 측정이 가능한다. 십일조는 없습니다. 십일조 때문에 개신교가 나왔다.
십일조는 토지가 있을때 십일조이지. 구약 토지가 있을때, 장사하는데 무슨 십일조를 내는가.
구약의 십일조란 무엇인가? 토지 주인이 여호와이다. 토지 값, 임대세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십일조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의사, 부동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립되지 않는다.
웨스터 민스트는 그정도는 안다. 그래서 없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은 많은 사람 가운데 내 종교 내 교회에 소속된 사람을 누군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참 무서운 말인데.
내 교회 교인이 누군가는 안식일, 영원한 계약, 하나님 언약 어기면 안된다. 이것이 주일로 바뀌었다.
그 다음, 웨스터 민스트에 의하면, 천주교는 반대했다. 천주교를 반대했다는 말은 천주교 사제는 교황이 임명한다. 그런데 장로교는 교인들이 임명하고, 영국 개혁주의 같으면 영국 왕이 임명한다. 이들이 하는 세례식과 성만찬, 안식일을 언약으로 간주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교리이다.
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목사 설교가 중요하다. 목사 설교가 우선되는 교회가 개신교의 특징이다.
목사 설교가 특징이다는 말은 교회 책임자를 목사에게 맡겼다고 본다. 목사는 교회를 책임진다. 그렇다면 목사가 내 교회 교인과 아닌 교인 아닌 사람을 판단할 권한이 있다는 말이다.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주님께서 비록 내 교회 나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목사가 성령주지 않는다. 목사가 성령주지 않는다면 목사는 무엇만 확인하면 되는가 하면, 목사는 그 사람이 성령이 있는가 즉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 들이는가를 확인해 주면 된다. 그에 대한 고백속에서 그들을 섬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목사가 내 교인 인가 아닌가를 구분한다는 것은, 이미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 아니다. 주님의 방식을 떠나 버렸다. 내가 목사인데, 내 교인 따로 있다는 말은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면 옛날 네덜란드나 스코틀란드, 존낙스 시대에 나라 전체가 교회였다는 말은, 그 교회 통치권자가 왕이 되어 왕의 말을 따라 주어야 한다. 이것이 그대로 교회라는 이름의 소규모 국가로 모습만 바뀌었다. 여기서 왕노릇은 목사가 하고 교회는 정치적 통치를 받아야 한다. 장로와 감독은 정치가가 된다. 이것이 칼빈이 원했던 것이다. 칼빈이 왜 이것을 원했는가? 칼빈은 교회가 이렇게 해서 원한 것이 아니라 천주교와 달라야 한다.
개신교가 천주교와 달라야 한다. 간편하게 한다. 성경대로 교회한다. 복잡한 것이 많이 들어가니,
간편하게 한다. 간편하게 한다는 그러한 쪽으로 나라자체가 나라인 동시에 교회였다.
제네바에서 총수는 칼빈.
칼빈의 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오늘날 목사들이다. 그것은 자기 교회교인들이 신앙에 대해 본인들이 관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 문제가 큽니다.
예수님이 대행자라는 것입니다. 대리 사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정신이 없고 싫으면 가라는 것입니다. 내 앞에 싫으면 가라는 것입니다 .
자 봉사하고, 싫으면 가라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쉬운 예로, 지묘동 동사무소가 있습니다.
제가 호적등본떼러 갑니다. 호적등본 떼 주세요 하니.
당장 하는 말이 당신은 우리 동장님께 복종하겠습니까?
이렇게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호적등본 떼어 주면 그만인데.
기차따기 위해 기차표를 사는데 복종하겠습니까가 말이 되느냐 말입니다.
손님 잘 모시겠습니다.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러면 왜 목사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 교인의 신앙을 좌지우지하는 머리노릇을 왜 하려고 하는가?
노회제도가 문제가 있습니다.
노회라는 것이 원래 없습니다.
교인들이 뽑아준 교회의 장로들의 모임인데,
교인들이 그 목사 아니라고 하면 그 목사 그만 두어야 하는데 그런데 교인들이 목사 나가라고하면 목사 저들끼리 한편이 되어 왜 노회 지시에 반발하는가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로봇이 로봇 만든 인간들에게 반발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
이것은 목사 장로의 책임이 아니라 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교회에 온다. 오게 되면 뭔가 지도자를 원한다. 성경에 지도자는 예수님만이다. 마태복음20장에 나오지요. 땅에 무슨 애비가 있고 지도자가 있는가? 지도자는 그리스도 뿐이다.
교인들 자체가 성경을 모르니 나를 지배해 달라 통치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성경말씀 안다고 해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참고로 알려주면 각 사람속의 성령이 알아서 판단해서 알아서 섬김을 받으면 그만인데, 자꾸 지도자 지도자 지도자를 찾고 있으니,
칼빈의 제네바처럼, 자체가 나라요 교호인 것처럼.
각 교회가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정치 집단이 된 것이다.
그렇게 하게 되면 무식한 교인이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면, 우리 집단의 교회가, 내가 속한 교회가 내 생존에 얼마나 유리하냐, 그것은 내가 다닌 교회 어떤 장로가 동구청장이다. 나는 장로님을 잘 아는 집사다고 할 때, 내가 동구지역에 건축 인가를 받으려 할 때, 시청가서 하지 않고, 교회에서 만날 때 장로님 인가 잘 안 나네요. 장로 왈 건축법 위반이네요. 아유 좀 봐주세요. 장로 왈. 알았어 알았어.
자기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권력단체가 된다.
이것은 무엇과 같은고 하면 옛날 봉건사회시절에 영주가 갖고 있는 종교에 백성들이 좋든 싫든 영주에게 복종하면 사람들 살기에 편하다.
그래서 중세종교개혁사를 보면, 백성과 영주의 종교가 달라서 집단적 이주를 한다. 자신과 같은 종교를 가진 통치자를 찾아서 이주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그런 모습을 뛰고 있습니다.
성도라면 예수님 안에 있다. 어떤 표현인고 하면, 거울 안에 있다. 거울 속에 들어가 본적이 있습니까? 비쳐보는 것 말고, 그림 속에 못 들어가지요. 유화 속에 들어갑니까? 못들어 갑니까? 못들어가지요.
그처럼 예수 안에는 못들 어가요.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는 들어간다. 다니엘 세 친구를 집어 던진 간수들은 다 죽었다. 이것은 못 들어간다. 그런데 산채로 들어가보니 네 번째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다. 이처럼 재현된 것이 신약에 예수그리스도 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어떤 권력이라도 죽음이라도 우리의 신분에 대해서 정죄함이 없다는 신분을 절대 손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세상 모든 권력을 이기는 능력으로 덧입혀져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게 복음적이라면. 웨스터 민스트 신조 필요합니까?
신조란 옛날 식으로 카톨릭 식으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술책에 불과하다.
이게 신조입니다. 이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신조끼리 모이면 신앙인이 되는가? 가짜들이 많습니다. 신조보고 오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생존에 유리한가를 보고 들어온다. 형식적으로 신조를 외운다. 외우면서 이것 알아서 밥 먹고 살자.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서 신조를 뒤집어 쒸어 놓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알고자 교회사를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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