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교회사 5강 녹취
Re..교회사 5강 녹취
이름 : 정석훈(IP:)
교회사 5강 녹취
강의 : 이근호목사 녹취 : 정석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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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도 루터가 어거스틴 권위 존중. 사도바울-어거스틴-루터 칼빈으로 뛰어 넘어버린다.
800년경 게르만족이 독일침범후 갈리아쪽에 게르만족이 나라를 세운다.
이들은 아리우스파의 기독교를 받아들임.이들이 서로마 교회에 타협하기 위해 아리우스파에서 로마카톨릭으로 개종.
샤를마뉴대제가 그 주변 전체 왕국으로-로마교는 황제로 세워줌-이후 프랑코 왕국이 셋으로 나누어짐. 샤르만 제국이후 번창한 게르만족의 세속황제가 로마교회를 누른 시대를 카롤링왕조.
카롤링왕조 즉 9-15세기에 신학의 발전이 있지 않았나.
그러나 신학자들은 이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여김.
이중에 유명한 사람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자가 있다.
이 사람 조차 스콜라 신학이라 매도한다.
사실 스콜라는 수도원에서 시작한 학교이다.
교회의 권위가 세속적 황제에게 눌리니, 영주 아래 사설 교회가 등장하고 이 교회의 중요직책도 세속의 황제가 임명하고 그 아래 영주들이 지배하였다.
그래서 의식 있는 사람들은 수도원으로 갔다. 그러나 수도원도 마찬가지이다. 출세하기 위해 수도원으로 옴. 그래서 클로니 수도원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다. 무소유 운동을 함-수도원에서 황무지를 개간한다. 그래서 그 전에서 농산물이 제한 되었는데 넓어져 재산이 많아져서 장사를 시작함.
최초의 자본주의 시작.
모든 학문은 수도원에서 시작됨.
개혁주의에서는 이 시대를 비판함. 그러면 과연 이 시대에 중요한 내용이 없는가?
이 당시 나라는 황제중심이지만, 봉건제도-왕은 약간 토지가 많음. 분권제도였다. 동맹체제이다.
루터가 영주들 세력 다툼에서 영주권과 결탁해 종교개혁성공
쯔빙글리는 도시민들의 공론화 하여 실패
칼빈은 시민단체, 도시중산층과 결탁해서 종교개혁-이 사고방식이 도시인들의 사고방식에 긍정적-그래서 지금 이 땅에서 돈을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간주한다.
그래서 크로멜이 혁명일으킴-결국 미국으로 이민 독립국가를 세움.
사람이 신에 대해서 논쟁하거나 관심있다고 할때 어떤 의미에서는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보면 된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
혼란스러울때 묵시적 사고 방식-세상을 떠나자. 죽자.
그렇지 않고 논쟁을 할 때에는 무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년왕국이다라고 주장함.
한 하나님 밑에 한 교회, 한 교황밑에 한 교회. 신앙이 권력화 되는 모습을 띤다. 신앙이 정치적 유형이 되는 모습이 됨.
이것은 논쟁의 결과가 항상 정치적 권력 다툼으로 지어짐.
제일 먼저 살펴 보면. 예정론 논쟁이 있었다.
라트람누스와 고트사크
고트사크-하나님의 예정론은 너무나 엄격해서 하나님은 천사와 선택된 자는 구원으로 예정하셨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너무나 파괴 되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는 선택받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 그러니 이 당시 주류 사회는 극도로 미워함. 지옥 갈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구원받지 못함.
그러나 라비누스는 하나님의 예정을 예지로 격하시킴. 성경에 예정은 나오지만. 지옥 갈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지옥을 못 벗어난다는 것을 싫어함.
싱크만의 반박-성경에 하나님의 모든 일에 대해 구원에 대해 인간은 감사와 찬양하게 되어 있음. 그런데 당신 주장은 지옥 갈 사람이 지옥 간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보니 그 마음됨됨이가 많이 수상하다. 남 지옥가는 것을 보고 춤을 추는 것을 보니, 병적으로 기뻐하는 것을 보니 너무나 못마땅하다. 그래서 이들은 고트사크 이야기를 들은 후 저놈은 때려 죽어도 구원 받을 수 없으니 지옥갈때까지 기다라자는 생각이 과연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하는가?
그래서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예지로 격하시킴.
사람은 누가 예정되었는지 아는데, 저놈은 때려 죽여도 구원못받는데, 그 놈이 지옥 갈때까지 기다리자는 태도가 과연 하나님의 잃어 버린 양을 찾는 심정과 다르다. 불쌍히 여기고 격려할 생각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이 참된 진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가?
자비로운 하나님 같지 않아. 그러니 고트사크의 이론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나온 반대 이론이 하나님이 라비누스가 예지론을 꺼집어 냄.
하나님은 예정하신 것이 아니고 예지하신다.
벌써 예정론이 나온다.
그런데 왜 오늘날 고트사크나 라트람누스가 주목을 받지 못하는가?
그것은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비진리이다. 사람에게 인기얻고 유명세 얻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니다.
예지란 하나님이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인지 멸망 받을 지 미리 아신다.
오늘날 감리교회에서 이것을 주장함. 그런데 예지론에서 무엇이 빠졌는고 하면, 미리 정해 놓았기 때문에 너는 절대로, 본인이 원해서라도, 구원될 수 없다. 구원받기 환장해도 지옥갈 것이 정해 졌기 때문에 이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빠졌다.
예지는 알지만 관여 안한다. 예정은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그래서 고트사크가 무시당함.
라트람누스는 전 인류는 저주의 무리이다고 본다. 죄를 통해 사람은 악과 타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이 상태에서 자기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적은 무리 선택구원, 은총으로 선택, 나머지 사람들은 멸망하기로 예정하심.
그렇지만, 멸망 예정하셨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를 짓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항상 죄를 짓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멸망당함.
인간을 원래부터 죄로부터 태어나 멸망의 자식이다. 죄의 책임을 인간에게 슬쩍 넘김.
에리게나, 안셀무스
라트람누스에서 마리아 동정론 논쟁이 나온다.
예수님은 태어 날 때부터 죄가 없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인가 아닌가 사람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죄없는 인간으로 태어남. 그러면 예수님이 죄 없는 인간으로 태어 나려면 그 어머니 마리아는 죄가 있는가 없는가?
아담의 죄가 예수님 외에 전 인류에게 퍼진다는 신학.
그러면 죄 있는 어머니에게서 예수님이 태어 나셨다면 예수님도 죄가 있는 분으로 태어 나지 않으셨는가?
이전까지는 마리아가 죄가 없다면 로마서 말씀에 어긋남. 마리아에게도 아담의 죄가 퍼짐.
죄 있는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태어 나셨다면 예수님은 죄 있는 인간이 되심.
라트람누스 이전에는 마리아는 죄인이지만 예수님 잉태시에만 죄가 중지됨. 낳은 후에는 다시 죄가 흐름. 그래야만 예수님의 인생에 죄가 끼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라트람누스는 마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죄인이고 다만 예수님의 죄 없음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된 것이라고 주장해서 이단취급받음.
힝크마(권력자) -예수님은 다른 아이와 다르게 태어났다.
라트란 누스의 또한가지 논쟁-황제가 자꾸 물으니. 대머리 찰스 황제가 물었다. 성체 성사 논쟁.
1) 떡과 포도주가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 떡과 잔이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인지 질문했다.
2) 성찬식의 떡과 잔과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하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살과 피가 동일한가? 물었을때 동일하지 않다고 라트람누스가 대답함. 그래서 난리가 남.
이전까지는 떡과 잔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바뀐다고 주장함-화체설:본체가 바뀐다.
싱크만 등이 반박하기를 기도와 말씀으로 바뀐다.
그러나 라트람누스의 반박-성만찬 후 남아 있는 즉 우리 몸에 들어온 피가 예수님피인가 자신의 피인가?
신부들은 성찬식후 남은 포도주를 자신들이 다 먹었다.
이것은 완전히 미신이다.
이것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빌려 형상과 실체를 나눔.
떡과 잔은 성찬 이전이후는 똑같은 형상, 그러나 실체는 성찬 후 바뀌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체이고, 그 피부색깔, 키 ,신장, 위는 속성이다. 이 속성은 늙어가지만 노무현 실체는 그대로 있듯이 이런 예를 듦. 예수님의 살과 피는 물질적 부분은 속성인데, 속성은 그대로 있지만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로 그대로 달라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 이렇게 주장하는고 하면 미사의 참여 여부가 구원의 결정적 역할을 함. 확실하게 먹고 마시는 것으로 구원.
이에 대해 라트람누스는 예수님께서 이야기하는 것은 상징적이다(이후 쯔빙글리 주장)
이와 반대파 파스카시우스는 예수님이 성찬할때마다 죽으심을 반복한다고 주장함.
예수님이 임재는 사실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다.
상징적으로 임하신다는 것은 실재로 임한다는 것이 아니다.
태극기가 우리 나라인가?
펄럭이는 깃발이지 않는가? 그러나
태극기를 모독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징이다.
태극기는 천으로 되어 있지만 국가의 아이콘이다.
천이 대한민국으로 변하는가? 사람이 다 살아야 하고 빌딩이 이 속에 있는가? 아니다.
상징하나 안하나 펄럭이는 천이다.
예수님께서는 상징으로 말씀하셨다고 라트람누스가 이야기 하면 교회가 어떤 곤란에 빠지게 된다.
즉 성찬식 참석해도 하지 않아도 구원엔 상관없다.
이렇게 되면 미사에 참석하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미사의 권위 추락, 신부의 권위 추락, 교황의 권위 추락, 결국 교황이 안수해 세운 황제의 권위 추락. 하나님이 세운신 황제의 권위 추락. 이렇게 되면 제국이 혼란스러워짐-이들은 안정권에 있다.
*영혼에 관한 문제-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토마스 아퀴나스:영혼이 자립적 실체라면 육체가 필요치 않게 되고, 비자립적이라면 영혼이라는 특수한 하나님의 지성적인 것이 육체의 지시를 받게 되기 때문에, 육체와 결합되기 때문에 영혼이 소멸하게 된다. 이러면 안된다. 영혼 자체가 주체가 되어 버리면 하나님께서 육체를 만드신 이유가 모호해진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은 독립적 주체이긴 하지만 개별적 주체자는 아니다. 독자적 판단 권한이 있지만 육체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영혼은 다시 육체를 그리워한다.
이렇게 되면 죄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영혼이 유전되었는가, 분배받았는가 창조되었는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어거스틴은 조상의 영혼이 우리에게 전이 유전되었다고 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창조되었다고 봄.
영혼이 전이 되면 개별성이 떨어져 타인과 독자적이 되지 못한다. 개성이 없음. 똑같은 영혼이 되어 버리면 그 사람의 벌이 똑같이 나에게 옴.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러면 죄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된다. 이것도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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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인 실체이지만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다.
영혼이 멸하면 안된다.
그래서 아퀴나스는 영혼은 형상이고 육체는 질료이다.
이렇게 되면 영혼이 육체를 지배.
그러면 만일 육체(질료)가 죽어 썩으면 어떻게 되는가? 형상도 날아가 버림. 그래서 이분적인 관계로 설명안된다. 그래서 형상인 영혼을 창조했다고 주장. 이렇게 되면 또 하나님이 죄를 창조하셨다는 것이 나오기 때문에 딜레마.
그다음 문제는 필리오케-에게서 논쟁. 콘스탄티 노플 신조에 나옴.
성령님께서 성부하나님께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성자 하나님에게서도 나오시는가?
서방에서 성부로부터 성령님이 나오시고, 성자에게서 성령 하나님이 나오심.
동방교회에서는 성부로부터 나오셔서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이 나오심.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닛산의 그레고리, 나지안스 그레고리-성부성자 성령은 서로 교통하기 때문에 내부적 교류가 있다. 페리코레시스. 그래서 동일하게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따라서 성부위주는 옳은 삼위일체가 아니다.
이에 대해 동방신학은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의 완성이시다.
구약의 유일신, 배타신이시다. 자기외에 다른 신을 차버리는 신이다. 독보적인 신이시다. 그래서 배타시 하면서 한분으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신약에 와서 삼위 일체로 실체로 다 드러났다면 성부가 대표하셔야 한다. 동방신학이다.
고린도 전서 15장에 보면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께 나라를 바친다고 했으니. 항상 성부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해야한다. 그러면 성령님도 성부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함.
이 논쟁에서 서방신학이 이김. 아버지로부터 아들로부터 나온다(오늘날의 신학)10세기 신학
에리게나신학: 이전까지는 신앙이냐 아니냐?
즉 삼위일체 신학이냐 아니냐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죤 스코투스 에리게나 부터는 신앙이 전제 이지만 이성적으로 따져도 무방하지 않느냐?
이제는 신학은 기본이고 신앙인이 갖고 있는 이성을 갖고 어떻게 신에게, 하나님나라를 잘 묘사하고, 신앙자체에 대해 잘 체계를 세울 것인가? 이런 점도 포용
그 방법은 긍정과 부정, 수동과 능동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함.
전우주 하나님까지 포함해 설명
창조하면서 창조되지 않는 자연,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자연, 창조하지 않으면서 창조하는 자연,
이 당시에 중요논쟁-신학이 아니더라도 이성적으로 따져서 하나님과 전 우주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신앙에 기초한 철학의 시작이 에르게나부터 시작된다.
카롤링 왕조 시대가 끝남.
이제 부터는 군권시대.
10-11세기 신학.
성체성사론
12세기 신학-문예부흥.
안셀무스:하나님의 속성과 삼위일체까지도 성경의존없이 인간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다.
신을 증명할 수 있다.
아무리 어리석은 자도 마음속에 어떤 것 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큰 것 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한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가면 최고로 큰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최고의 것이 신이다.
존재한다는 것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은 분명 있다. 인간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 속에 존재란 속성이 들어 있다. 그러면 나만 있나, 상대방도 있다. 상대방도 존재속성이 있다. 남자만 있나 여자도 있다. 존재 속성이 있다. 말 못하는 돌멩이도 있다. 존재하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나를 존재케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내가 있다. 그러면 하나님도 존재란 속성이 있다.
모든 만물은 신이 만들어 놓음. 이 당시는 과학이 발달되지 않음.
모든 만물을 신이 존재하게 만들었다면 신에게도 존재란 속성이 있다. 존재론적 증명.
그러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 사람은 존재하기 때문에 신은 존재한다.
본인이 신이 되기 때문에. 존재가 있는 이상 신은 존재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내가 존재한다면 신은 존재 속성이 없고, 이것을 주장하는 자는 존재속성이 있다. 그렇다면 존재속성이 있는 한 신은 존재한다. 이것을 주장하는 자신이 신이다.
이젠 성경을 덮어도 인간의 노력으로 신의 존재 삼위일체를 다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이 왜 인간이 되었는가?
안셀무스는 하나님이 인간의 마귀 속박을 풀어주기 위해 인간이 되었다든지, 또는 마귀에게 진 빚을 갚아주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명예회복을 위해 아들 보내 죄값 치루심. =안셀무스의 보상설-헤겔-이것이 이웃사랑이다. 헤겔 이웃사랑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명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희생을 치루시고 사람이 될 수 있고 죄인의 모습을 취하실 수 있다. 우리가 이땅에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자기 희생을 통해서이다. 구원하심.
칼빈 루터가 이것을 반대 안함.
죄의 값의 만족은 하나님 한 분 외에 만족을 줄수 없다. 하나님 만족 외에 만족을 줄 수 없다.
예수님이 왜 하나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만족을 받아야 할 분이 하나님. 죄를 저지른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는 하나님되고 혼자서 사람이 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
*신학의 문제는 하나님이 사람이, 사람이 하나님이 됨.
십자가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데 있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다.
*피터 아벨라드(1072-1142)-유명론-명목상 그렇다.
논쟁을 일으킨 사람이다.
먼저 유명론을 이야기 하려면 실재론과 보편논쟁을 이야기 해야 한다.
실재론_개별사물에 본질이 들어있지 않고 본질은 따로 있다.
보편론_개별개별에 하나님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철수, 영희는 있지만 사람은 없다. 이런 인물들을 사람으로 하자 했을때, 이름뿐이다.
동물이란 개념은 사람에겐 합리적이지만 말에겐 비합리적이다. 만일 사람이 동물을 명했을 뿐이지, 동물 자신에게 사람이 물어 본적이 없다.
동물-사람이 부를때 가능, 동물이 동물을 부를 수 없다.
그러니 사람이 이것을 동물에게 물어 보았나.
인간들 자기 중심적 생각. 그래서 원숭이 보다 우리가 똑똑하고.
그러니 인간이란 이름 뿐이다. 이것이 아벨라드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름뿐이다를 넘어, 유사성은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같은 유에 속한다고 개념을 바꿈.
그렇다면 동물은 무엇인가 ? 인간이 지어낸 이름 뿐이다. 이것이 아벨라드.
유사성은 있지만 동일하지 않다.
철수, 영희는 유사하지만 동일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개별자 안에 공통점이 들어 있는가?
피터 롬바르드: 이 사람은 철저하게 천주교의 교리를 확정시킨 사람이다. 전통적 천주교의 모든 제도에 기여한 사람.
토마스 아퀴나스(13세기)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이것이 아퀴나스 신학의 대전제이다.
이전 안셀무스는 신앙은 기본이고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성경신학이 별 볼일 없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교회를 옹호해야 할 일이 생겼다. 신앙이란 이성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은 알 수 없다.
감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알려면 계시의 조명이 필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속에는 이 어거스틴의 모든 신학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천주교가 개신교를 보고 웃는다.
신앙이란 조명으로 되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유비이다.
신존재증명 다섯가지.
존재론적 증명, 최초의 원인, 최초의 운동, 궁극적 목적, 궁극적 선함, 착함.
모든 것이 원인이 없는 것이 없다. 최초의 원인, 내가 있다. 아버지가 있다. 할아버지가 있다.
존재 증명은 현재 내가 있다.
시계 만들때 어떤 목적이 있듯이 세상의 하나하나도 목적이 있다. 그 궁극적 목적은 신이다. 이것은 과학시대에 깨어짐.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유효.
사람은 더 착해 지고 싶다. 자신이 도둑놈이라도 도둑질이 나쁜짓인 줄 안다.
사람이 어떤 행동해도 착하다 나쁘다 따지면서 행동한다.
유영철도 후회하지 않았나.
이 착함을 신이 주었다.
이런 것으로 그는 하나의 신학 전체를 정리함.
토마스 아퀴나스의 예정론=섭리론
어떤 회장님이 있는데 그 밑에 공장장을 세웠고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을 회장에게 보고함.
아퀴나스는 인간이란 공장장을 세움. 하나님은 보고하지 않아도 앎. 그래서 세상일은 인간이 책임지고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물으신다. 하청준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유의지가 산다. 영혼은 독립적 실체, 형상으로 질료관할.
육체가 독립적 실체가 아니다. 영혼과 결합할 때 독립적 실체가 된다.
사람이 자유의지가 있어야 심판때 개별적 심판을 받는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는다.
그러니 개별적 심판을 하려면 개개인이 행위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이 주체가 영혼이 되어야 하나, 육체가 되어야 하나. 바로 영혼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최종책임자로서 섭리하신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영혼 행동을 법과 연관 시킴.
인간은 영혼이 도덕적 책임을 갖는다. 법은 영원법과 비 영원법으로 나눈다.
영원법은 세상을 통치하는 법으로 신성한 법이다. 비영원법은 인간에게 해당.=자연법과 실증법이 있다. 자연법은 도덕적인 법이다. 일자 무식도 나쁜짓을 하면 나쁘다고 생각하는 법.
인간의 실증법은 국제법과 시민법으로 나눈다.
신성한 실증법과 인간적 실증법이 있다.
신성한 실증법은 모세율법과 기독교법이 있다.
모세율법은 도덕법과 예절법, 재판법이 있다.
이렇게 법을 나누어 인간은 전체적으로 신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제직회때 결정은 신성한 실증법이다-이것은 비영원법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법에 속한다. 이것은 신부들의 결정이 오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천주교이고 개신교이다.
개신교가 아퀴나스를 반대한 쪽에 있다.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컴은 신을 아는데는 신앙으로도 알 수 있고, 또 하나는 인간의 감각으로도 신을 알 수 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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