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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교회사 2강 녹취 a번강의이사야

Re..교회사 2강 녹취 a번

이름 : 정석훈(IP:)

교회사 2강 녹취

강의 : 이근호목사 녹취 : 정석훈목사

a
지난시간에 교회사 자체는 교회가 있음으로써, 교회가 있다는 자체가, 기존에 국가가 이미 있으니, 기존국가가 있는 상태에서 교회의 등장했다는 것은 교회가 국가로부터 의식될 수 밖에 없는 대상으로 된다. 견제할 대상이 된다. 국가에게 복종할래, 아니면 나한테 죽어 볼래 하는 식으로 교회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견제 세력이 되었다.
견제 세력의 국가관과 견제 대상이 되었던 교회관이 지금도 여전히 있어야 될 텐데 지금은 이슬람국가 외에는 교회와 국가가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지금 교회관과 국가관이 옛날 관과 달랐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라고 보면 된다.

그 하나가 무엇인고 하면 성경은 영적세계인데 영적세계에 속한 사람이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영적에서 육적으로 전환할때에 역사적으로 포착된다. 영적인 것이 영적으로 그냥 있을 때에는 역사적일 수 없다. 영적이란 예수님이 십자가로 고발하시기 때문에 묵시적이다. 묵시란 하늘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심판하는 것이 묵시적인데.
교회가 영적세상 이라면 묵시적으로 그냥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역사적으로 인정 받겠다고 나타난다는 것은 교회가 영적인 것을 포기하여 역사라는 몸체를 가지고 교회의 정당성을 갖고 이 사회에 나서보자는 의도가 강하다.

이렇게 되면 지금 교회관은 기존 교회관과 다르다. 변질되었다.
교회가 역사를 말하는 자체부터가 예수님이 말하는 것과 다르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운다고 할 때 예수님의 몸을 두고 하는 것이지 예수님의 몸따로 있고 교회 따로 있는 식의 교회상을,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그런 교회를 이야기 한 적도 없고, 몸과 따로 있는 교회를 교회라고 주님께서 간주한 적이 없어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다면, 그리스도가 묵시적 존재이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도 묵시적 몸이다. 이것이 역사적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되기를 포기했다는 뉘앙스를 띠고 있다.
그래서 교회사하면서 궁금한 것이 무엇인고 하면, 교회를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받고자 하는 작자들이, 신학자들이 어떤 묘수를 썼기에 그리스도 복음 대신 국가 사회단체로서 자리 잡는, 오늘날 사회단체로서의 교회로 떡한히 자리잡게 되었는가, 그 수법을 눈치채야 되고 빼내어야 된다.

만약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교회사를 하면, 역사 속에서 지금의 교회의 뿌리가 되는 그런 멋진 것들을 골라 잡아서 이렇게 말한다. ‘ 그러니 교회는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 우리교회는 참으로 정당하다.’ 자기 역사 옹호 식으로 역사를 외곡할 수 밖에 없다.

교회가 역사를 생각하고 역사라는 도구를 취한 발상자체가 성경해석을 얼마나 엉터리로 해석했으면 그러한 발상이 나오는가?
우리 교회는 교회 역사가 오십년 육십년 역사다 역사 집이 나온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성경해석에 대해 얼마나 엉터리 해석이기에 그렇게 나오는가?
이 엉터리 해석이 오늘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어 왔다.

옛날에 예수 믿는 작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그 시대 속에서 얼마나 잘못되게 해석했는가를 추적하면 그것이 교회사이다. 교회사가 쉽지요.,

옛날 대가들이 예수님에 대한 이해도가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과 얼마나 틀려 먹었으면 그들이 교회라는 것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 고리를 찾아내면 그게 바로 교회사가 된다.
교회사가 이렇게 정리되어야 교회사가 지루하지 않아요.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일세기때 , 언젠가 하면. 에디 일세기때에니 사도바울이 죽은후 50년 사이, 예수님 돌아가신 후 사도바울 있고, 아직 요한계시록이 유포되든 시기까지, 그 이후 시대에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떤 예수님을 믿었는가? 그것을 그 당시 소위 글자를 아는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나름대로 나는 예수를 이렇게 믿는다 이렇게 알고 있다 전파했을 것이 아닌가? 그 전파한 예수에 대해 알아보자.

기독론에 보면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 , 이 교재의 내용 틀은 이상봉 목사님이 쓴 교회사라는 틀을 그대로 해서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었다.
기독론: 그리스도 인격에 대해 논쟁다운 논쟁이 없었다.
대체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었으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더 강조할 때이다. 전체적으로 이야기 할 때이다. 로마의 클레멘스, 그는 90년대 사람이다.
이 사람의 주장은 .
교회의 모든 성도는 다 장군이 아니요 영관급 위관급도 아니다. 각기 성실하게 자기위치와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순결과 순종 신앙적 겸손. 그는 바울 신앙을 떠나서 윤리적 관심과 율법적 질서를 강조했다.
로마의 클레멘스 이 사람은 교회가 자기가 생각한 교회가 안정된, 성경에 나오는 사도바울 당시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성령 안에서 서로 나눠주는 순수한 모습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서 강압적으로 교회의 계급을 형성하려고 시도 했다. 로마의 클레멘스.

그러니 예수님이 신성이냐 인성이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주된 관심은 교회가 군대처럼 계급화 될 때 교회가 안정을 취할 수 있고, 그 당시 국가가 노려보고 있다. 국가가 교회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지 쏘아 보고 있을 때 한번 붙어 보자는 것이다. 질서체제를 공고히 해 볼 때 국가 체제와 한번 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까?
외부에 국가적 권력이 있을 때 내부 결속을 강화하여 조직을 강화시키면 소위 참된 교회로 유지될 수
있는가? 아니다 칼로 선자는 칼로 망한다. 연약한 가운데 일하신다.

강력한 국가. 국가를 교회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가를 의식하는 동시에 그것이 적이 아니고 동지가 변해 버린다.

일세기 당시 지도 갈리아 스바나 이태리 마케도니야 터어키 안티옥,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카르타고,
어디에 성도들이 많이 사느냐?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마케도니아 이 쪽에, 서바나, 서바나 교회가 상당히 신학적으로 융성했던 교회이다.
이런 곳의 사람들이 원래 유대회당에 들어가서 전도 했고 그곳에서 유대인들과 충돌 일으키면서 새로운 유대교의 변종, 유대교의 종파로 인식이 퍼지면서 메시야가 이미 오셨데 그리고 다시 오신데.
사도바울의 십자가 복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이 전체에 퍼졌다.

여기에 하나의 유명인사가 뜬다, 유명한 사람이 뜬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동네에 많은 신자가 있다. 많은 교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의 집회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이 전체지역이 로마나라이다. 그 당시 로마공화정이었다. 많은 노예를 통해 농사를 짓고 위의 귀족들은 흥청망청 노는 나라였다. 라티풍경제제도. 로마 망한 이유는 노예가 줄어서, 생산 노동이 줄어서 망했다. 노예가 적으니 소작농으로 바뀌고, 지주 장원제도로 바뀐다. 중세까지 이어진다.

이곳은 게르만, 산림지역, 우랄산맥에서 강이 흐르는데 강따라 비혹한 땅에서만 농사짓는 인구가 많지 않는. 이 동네는 무역 많이 한 동네에 사도바울의 복음이 많이 퍼졌다.
이런 동네에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면 로마 정부가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반정부가 아닌가
그 당시 노예체제에서 노예경작체제에서 노예가 모자라니 각각 자기 민족대로 총독을 두어 그 나라 경제는 그 나라에 맡겨 세금을 받는 식으로 했는데.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70-107). 이그나티우스는 직분의 삼중직, 주님의 교회는 감독과 장로들과 집사들로 세워야 한다. 감독이 없으면 교회가 없고, 감독이 없으면 세례도 없고, 감독이 없으면 예찬과 성찬이 불가능하다.
성찬식은 불멸에 이르는 의식. 성찬식을 함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얻는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가 주장했다.

그런데 서바나의 폴리갑은 다르다. 사도 요한의 친구, 이그나티우스의 친구이다. 이 사람의 신앙의 주체는 오직 그리스도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십자가를 이야기 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확고부동하게 붙잡아아 된다고 했다.

그러니 하나의 교회질서를 유지하고 갑자기 불어나는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붙잡는데는 정치적질서로 붙잡는 방법도 있지만, 여기에 서바나(마케도니아와 터어키사이) 감독 폴리갑은 질서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갈려면 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않는 사람은 갈려면 가라. 그것은 마귀에서 속했다.

오페이지 속죄론.
삼일신, 삼위일체 교리가 명백히 확정되지 않음.
속죄론은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열고자 피를 흘리셨고 회개하는 자에게 죄사함을 얻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죽으셨고, 믿는 자는 자신의 지식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를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속죄에 대해 철저하지 못했고 이신칭의 근거에 대해서는 구약말씀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년설: 그리스도의 재림이 멀지 않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세상에서 왕노릇한다고 가르쳤다.
파피아스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천년시대를 묘사하기 까지 했다.
이런 천년을 주장하는 사람. 요즘도 똑같다. 앞으로 천주교 공의회 공부하면 교회사의 맥을 뚫는다. 요즘 말로 하면 총회 회의록을 보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어떤 관심이 있었으며 몇 명 모였으며 기존의 교회에 관심사가 많았는가 적었는가를 알 수 있다. 특징은 대부분 교리에 관심이 없었다. 삼위일체에 관심이없었다. 교회사가가 그렇게 떠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많이 끌어 모으면 끝나는 문제이지. 옛날도 마찬가지이다. 총회로 모여도 실망할 정도로 사람들이 적게 온다. 소위 전세계교회가 다모여도 정족수 미달이 허다하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 교회사를 할 때 교회 정치 꾼들의 정치적 입지의 역사 그런 것이다.

제가 이쯤 이야기 하면 여러분들은 목사님 교회사 할 필요없네요 라고 할 것이다. 정답입니다. 할 필요 없습니다.
유명인사의 몇몇 자기 정치적 구호나 선동 입지, 그 정치군의 후발 주자들이 선배의 정치적 구호를 써먹어 교회라는 권력단체를 인수 인계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취한 것 이것이 교회사이다.

일반민중들은 교부들의 가르침의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까? 없었다. 그러면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는가? 육적인데, 먹고사는데 관심이 있었다.

항상 그 역사란 경제구조(내용)가 하부구조가 되어서 위의 상부구조(정치 문화-표현)를 형성한다.
인간들은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서 경제가 보장해주면 살고자 하는 욕망의 발산이 종교적 정치적으로 티어 나온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사 하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자기의 육적 욕망이 어떻게 교리란 이름으로 그 안에 배출 시키는냐? 그것을 파헤치게 되면 오늘날 교인들이, 오늘날 경제구조내의 교인들이, 오늘날 경제, 자본주의 사회 때에는 어떤 교리들이 호응하고
어떤 교리들이 배척하는가를 뚜렷이 밝혀진다.
왜냐하면 중세때에는 노예노동집약적 농업체제이다.
그 당시 로마 당시 군대라는 것도, 로마 수십만 동원, 즉 아람군대 수십만은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다. 농사짓다 불러 낸 자들이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도 만찬가지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것도 근대 자본주의 국가체제때에야 군대가 있다. 그 당시에는 농업체제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과거 사람들이 살았든 인간의 신체 즉 몸을 갖고 밥먹고 사는 것에 노력을 하면서 밥먹고 살려고 노력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가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윤리주의 율법주의가 만연하였다. 바울이 강조한 이신칭의 교리는 별로 잘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못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사도바울의 복음은 성령이 임해야 알 수 있지 육적인 사람은 거부하게 되어 있다.
이신칭의 교리라는 것은, 지금도 믿음의로 의롭다하는 것이 적도. 어느 시대든 적다. 루터, 칼빈시대도 적었다. 어느 시대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적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든 영적이 아니라 육적이기 때문이다.

늦게 오신 분을 위해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영적이란 역사란 있을 수 없고 묵시밖에 없다. 역사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자기 존재 정당성을 남길 이유가 없다. 오직 묵시만 있으니.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묵시적 존재로 계신다. 그리스도 몸에 속했다는 것은 그 사람도 묵시적 존재이다. 묵시적 존재가 되어야 영적인 사람이다. 영적인 사람이 행함에 대해 기대를 걸까요. 행함에 대해 기대를 걸지 않는다. 역사를 생각지 않는다. 과거에 이렇게 잘했는데 뭐 복안 주나 하는 식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이미 육적이 되었다. 육적인 흔적들이 나타난다. 야고보서 사상에 대한 강조와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별로였다. 윤리주의가 성행했다.

오페이지 마지막 특히 스토아적 영향이 컸다. 스토아주의라고 했을 때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 참아야 하느니라’. 금욕주의이다. 스토아학파는 금욕주의이다. 인간에게 나오는 욕심을 끊어버리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욕심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욕심을 참으면 나에게 행복이 되고 그것이 바로 선이 된다. 진정한 착함이 된다.

‘여자의 일생’ 가사를 보면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낸다. 참아야 한다기에.
이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이다.
일세기때 어떤 신앙인지 알았지요.

그러면 왜 이렇게 그 당시의 내용들이 풍부하지 않는가? 이유는 그 당시에나온 문헌들이 얼마되지 않는다.
그 뒤에 나오는 변증가들을 보면 풍부하게 나온다.
육페이지보면 로마제국이 정치적인 방법으로 박해 한다. 군사 적으로 박해한다. 그에 대해 교회는 군사적 힘이 없고 여기에 대해 사상적으로 변증한다.
변증의 내용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신자의 존재는 몸에 있어 영혼과 같다. 영혼이 온 육체에 충만한 것 같이신자는 온 세계에 늘려 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머물지만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 육은 영을 미워하여 항상 대적한다. 이것이 영이 육에게 무슨 해를 입혀서가 아니라 다만 영이 육신의 정욕대로 쾌락을 따라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그리스도로부터 아무 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함께 세상쾌락에 치닫지 않고 그들의 거룩한 삶으로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주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변증가들의 이런 지적이 옳은가 잘못되었는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존재가 정당화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할 수 록 자신은 점점 휼륭해 지고, 자신은 점점 멋있어 지고 적들은 점점 더 나빠진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런 변증을 할 때 이웃 사랑과 진리 수호태도가 잘 결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다. 잘 결합이 되지 않는다.
내용을 보면, 기독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까닭없이 당하는 박해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옹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신자의 목적은 세상나라를 반대, 나라를 엎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에 있다.
세상 나라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라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요한 계시록과 다니엘을 결부시키면, 세상 나라에 대해 반대 하지 않는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이 있을 수 있습니까?
다니엘 예언에 의하면 로마나라가 짐승의 나라고 그 이후 새끼나라가 다 짐승의 나라이다.
그 다니엘의 예언을 예수님이 성취했다. 그러면 그 당시 사람들은 무엇을 믿는 사람들인가? 예수님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변증할 것이 없지요. 오히려 세상 나라의 말이 맞는 말이다. 너희들은 마귀의 나라를 공격한다. 오히려 이 말이 맞는 말이다.
일각에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대적하기 위해서 모이자라고 했는데,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모일때 다른 종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를 짐승취급하고 도그마만 언급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모였을때 우리를 짐승취급하지 않고 사람취급해 주네라고 말했다. 다른 종파 지도자가 소감을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사람들이 짐승이라고 알아듣게 하는 자체가 복음을 전한 자체인데 이것을 완화시키고 다독거릴 필요가 있습니까?
전도와 변증이 잘 혼합이 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든지 하나님은 심판입니다. 하든지 둘다 어설프게 해놓으면 변증이라는 아부가 나온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예수님의 도덕적 가르침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탁월함을 설명한다. 도덕적 탁월함으로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했습니까?
다니엘에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한 것은 장차오실 예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에 꿈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시대든 일세기든 이세기든 성도가 성도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했을때만 그 사람이 성도이다. 도덕적 탁월함으로 성도되는 것이 아니에요. 도덕적 탁월함을 주어 버리면 ,도덕적 탁월함은 흉내를 낸다. 영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는 도덕적 흉내를 내어 유사 신자로 얼른뚱땅 천국가려고 한다.
도대체 변증가들이 어떻게 변증했기에.
변증가들의 이야기를 보면.
변증가 유스티누스: 철학은 매우 큰 재산이다. 신에 의해 최후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성스럽다. 다른 말로 하면 성자다. 철학의 올바른 이해 없이는 어떤 자도 ... 없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철학을 해야 하며 철학함을 매우 휼륭하고 존중할 만한 작업이다.
철학에도 진리의 흔적이 있다.
왜 이렇게 변증하는가?
이렇게 변증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지금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의 로마지배 사상은 철학사상이다. 철학 사상을 우리 기독교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그 철학에서 나온 것이 다신교이다.
종교가 없는 사회는 어느 시대든 없었다.
그 당시 철학이란 여러 가지 신을, 그 다신을, 우상을 섬겨도 가장 인가다운 고상함입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윟한 철학이다.
사도바울은 우상은 없다. 귀신하고 사귀는 것이다. 우상은 다 헛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을 믿는 것과 다르지요. 유스티누스와 다르지요. 사도바울이라면 이런 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유스티누스는 교회가 자꾸 오해받는다고 말한다. 철학하는 사람은 성스럽다. 다시 말해 이방종교에 종사하는 사람은 아주 휼륭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동화사 스님께서는 아주 휼륭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식으로 변증을 했는데.

철학적으로 로고스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 헬라크라스 등은 그리스도인들이다라고 변증가들이 말했다. 하지만 로고스는 예수님 안에 나타났다. 따라서 기독교만이 확실하고 유용한 철학이다. 기독교는 예언의 성취에 따라 증명 되었기 때문에 철학보다 더 힘이 있고 더 신적인 방식이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이 가르치는 모든 것이 철학보다 더 뛰어나다.

그러니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는 어떤 차이만 있는고 하면 지식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교회와서 더배운 사람은 휼륭한 그리스도인이고, 철학하는 사람도 이미 그리스도인이고 그런데 철학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철학이 다신교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신앙이 전부가 아니고 신앙이라고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단지 처음 믿을 때에만 신앙이고 나머지는 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터툴리안 오리겐, 알렉산더 클레멘드 이들 전부 한결같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신앙이란 처음 믿을 때 필요하고 그 다음은 점점 높은데 올라가야 한다. 더 위대한 대로 올라가야한다.
이것은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이런 타협안을 제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로고스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로고서는 소리내어 지는 것이다. 그 소리는 인간 영혼에서 나왔다. 생명체 안에 숨어 있는 어떤 무엇인데, 생명체를 활동하게 만드는 어떤 원리를 로고스로 본다. 그 특징은 은폐되어 있으면서도 가끔 탈 은폐 되는 것을 로고스라 본다. 왜 로고스 이론이 나오는고 하면 모든 것이 일자인데 다양하다. 그러면 어떻게 다양한대 하나가 될 있는가 이것을 연결하기 위해 신은 하나지만 로고스가 다양하게 퍼져있다는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초기 교회사는 상당히 설명하기 힘들다. 이유는 문헌이 적고, 교부들의 소리가 비복음적이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이것을 공부해야하는가 라는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질문: 1)칼빈의 유형교회란- 교회를 유지시키기 위한 정치적 배려이다.
2)오늘날 성령론으로 모이는 이유? 는 자본주의의 다양성, 이기주의,. 개인주의, 민중들이 납들할 만하나 교리가 무엇인가? 무엇하면 되지 뽑아 내는 것이다. 외롭다 하면 공동체 운동하면 되고,
해탈하고 싶다고 하면 새생명 운동, 자유 강조-성령운동하면 되고, 그래도 교회있어야지라고 하면 교회직제 교회 월력 강조. 카텐 바꾸는 것.등을 하면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싶으면 성만찬 하고, 예수님이 너무 신적이니 인간적인 것 없나 하면 마리아를 주장하면 되고, 안 믿고 죽은 친척 살리고 싶다면 연옥설 주장하면 되고, 이와 비슷한 개신교의 중보기도 주장하면 된다.
이것이 오늘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에도 여러번 계속되었다.

·10분쉬고 초창기 이단들이 어떤 이단들이 있었는가를 보겠습니다.

쟈크 엘룰을 이해 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주장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쟈크 엘룰 책은 한시간 하면 볼 수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미리 교회사에서 무슨일이 있었는가를 알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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