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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33:12-16 (친히 가리라)우리교회출애굽기

128강-출33장,12-16(친히,가리라)-exo060115 친히 가리라 2006년 1월 15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33:12-16 33: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33: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33: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33: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본문을 보면 모세는 참으로 하나님에게 많은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을 전폭적으로 믿는다는 말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아직도 ‘당신은 내 남편이다’라는 뜻입니다. ‘당신 말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의지하며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는 죽으나 당신만 쳐다보고 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만약에 어느날 아내에게 잔소리가 사라지는 날이면, 아내는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있든지 아니면 남편과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위험한 가정이지요. 이와마찬가지로 모세가 하나님에게 각가지 잔소리를 많이 늘어놓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 외에는 달리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신실한 신앙심의 발로입니다. 이런 점에서 모세는 지도자로서 바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훌륭한 점은, 자기 앞에 있는 수십만의 백성들은 결코 자기 백성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책임질 백성이라고 간주하는데 있습니다. 즉 자신의 독자적인 권한으로 그 백성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점은 오늘날 목회자들이 꼭 알아야 될 점입니다. 목회자가 가장 중요한 목회 자질은, 자신은 절대로 교인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데 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의 부하직원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종입니다. 섬겨야 될 분들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상대방은 크게 보고, 자신은 상대적으로 작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교인들과 싸운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교인들이 어떻게 나오든간에 그것은 살아계신 주님에게 맡겨야 합니다. 교인들이 교회 나오는 것도 기적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오랫동안 안 나와도 나중에 나오게 되면 그 때 그 나옴의 은혜가 더욱 더 은혜되기 위한 그동안의 불출석이라고 보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모세의 취약점도 같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백성들이나 모세의 개인적인 역량이나 자질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행이 가능하도록 조치해달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있다는 증거물을 우리 인간 쪽에서 납득이 되도록 발생시켜 달라는 겁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자진해서 모세가 하는 일에 협조를 잘해줄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모세가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느냐 하면, 본문 16절에 보면 ‘만민 중에 구별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다른 민족들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구별됨이 있을 경우에만 우리에게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함께 동행하심을 파악할 수 있겠다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게 가능할까요? ‘구별’을 가져오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행함이 동원되어야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은총만이 구별을 유발합니다. 사람들의 행함이란 그냥 놔두면 나중에 그 구별점도 사라지고 동일하게 되고 맙니다. 교회라는 것이 세월이 흐르면 다시 세상과 하나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구별되는 요소가 은총을 통해 주입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남은 자’ 사상이 나옵니다. 이 ‘남은 자’ 사상이 하나님 백성의 특징을 잘 나타내어주게 됩니다. 남게 되는 자로 분류되는 능력은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뿌리는 한 아담에게서 나왔기에 다 같은 아담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속성에서 이질적인 것을 따로 찾아낸다는 것은 그것이 아담의 본성에서 아직 밝혀지지 아니하면 속성인지 아니면 진정 낯선 이질적인 것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을 따로 외부에서 도입할 입장이 못 됩니다. 그 기준마저 애초부터 아담의 본성이 이미 잠재되어 있었던 기준이라면 얼마든지 인간들인 이질적인 것으로 알았던 것도 약간의 되풀이나 숙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누구라도 재현시킬 수 있는 이질적이라서 사실 이질적이라는 말이 성립되지를 못하는 법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행함’이라고 합니다. ‘행함’이란 이미 인간 속에 있는 기본 자질의 발휘를 말합니다. 즉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전통이나 과학적인 탐구력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인간의 근본 자질과 능력과 가능성에서 벗어남이 없습니다. 인간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성취해내기 위해 힘쓰는 모든 시도도 이 ‘행함’이라는 범주에 해당됩니다. 인간의 몸으로 행사되는 모든 것이 인간 본연의 속성으로 환원시킬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구태여 외부로부터 강제로 남게하지 않더라도 인간들은 자발적으로 남은 자가 될 수도 있고 또한 그것을 철회할 수가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침략자가 외부에서 마음에 쳐들어왔을 때, 마음으로는 그 침략자를 깔끔하게 몰아놓고 전처럼 평화롭게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 침략자가 자신들을 죽이고 말살한다고 한다면, 거기서 그 침략자가 요구하는대로 굴복하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그 침략자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질서와 역사를 마음에 염두에 두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침략자가 망하거나 물러가게 되면 과거의 자신의 배신을 부끄러워하게 되게 마련입니다. 자신을 변질자로 생각하기 마련이고 마음 속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금 옛날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도 갖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인간의 대처능력은 이미 인간들의 본성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비굴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타인에게는 냉혹하지만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자비롭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바로 이러한 기본 자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세상에 놓여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쟁과 전쟁을 통해서 인간들의 행함을 끄집어내시는 동시에 그 가치를 거부하십니다. 사람이 타인과 구별되고 싶고 남은 자 되고 싶은 것도 역시 인간의 욕심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남은 자’ 만들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함을 배제한 상황에서 조성해내는 ‘남은 자’입니다. 이로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쓸모없는 자가 됩니다. 참으로 ‘쓸모없는 자’가 순전히 하나님의 뒷치닫거리로 인하여 무상으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동행하시는 방식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와 은혜만으로 지배받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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