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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버림받으심설교마태복음

Re..마 27:45-49 (버림 받으심)

이름 : 이근호(IP:)

버림받으심

2006년 1월 1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27:45-49

27:45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27:48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27:49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하더라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십자가의 원수들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십자가가 뭔지를 제대로 몰라서 그러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외부적으로 예수님께서 인간에게 당해서 죽어가고 계신 것으로 알지만 실은 내부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과정으로서 십자가 죽음을 당해야 함을 보이십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손을 떠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즉 인간의 운명이란, 인간의 손에서 떠나 있는 일로 인해 지배받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이란 자기 손의 노력과 노동의 열매로 얻은 것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식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렇다보니 자연적으로 교회 내에서 십자가의 원수가 등장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개척 자금으로 교회를 세웠다느니, 자신의 설교로 부흥되었다느니 라는 주장들이 모두 십자가의 원수들이 내뿜는 주장들입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인간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을 떠나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일로 인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 그 예루살렘성의 무덤이 열리면서 성도들의 죽은 시체가 일어나 산 사람으로 돌변하여 돌아다니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마치 시이소 같습니다. 한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쪽이 올라가는 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저밑바닥으로 내치니, 반대로 저 밑바닥에 있던 죽은 자가 살아서 지상으로 튀어나오는 현상입니다. 이와같은 십자가의 복음이란, 인간 본인들이 하지 않은 일로 인하여 혜택을 입게 하십니다. 만약에 이 십자가 복음을 방해하고 원수로 행세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함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부각시키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런 일들을 하는 집단입니다.

그렇다면 이 십자가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앞으로 “왜 인간들은 못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일을 하셔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즉 왜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만 구원의 본질을 보여야만 하는가에 대해 알고 싶어합니다.

창세기 22장에서 보면, 거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이 나옵니다. 둘 사이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고 그 관계가 무효가 될 수 없는 입장입니다. 한 번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고, 한 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입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수정하겠다고 나서시는 분이 계시니 그분이 바로 하나님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형성되는 ‘아들 관계’에 대해 새로운 변화를 주시려고 합니다. 즉 일반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아들 관계란, 그냥 아버지에게 태어나면 그것으로 종결됩니다. 그 뒤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그 아들은 그 아버지에게 있어 영원히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는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결코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이어질 수 없다는 겁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죽입니다. 그것까지만 아브라함이 할 수 있습니다. 번제의 제물로 바칠 때 아들을 꽁꽁 묶습니다. 산 위로 올라오면서 아들이 다음과 같이 묻는 경우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개입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불과 나무는 여기있거나와 번제 할 어린 양은 어디있습니까”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야만 일이 성사됩니다. 그 개입을 위해서 나타나신 분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늘이 아들로서 나타나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아들’의 진면목을 보이십니다. 아들이시기에 그냥 태어난 것으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 모든 것을 순종해서 보여주시는 것으로 아들로 살아가십니다.

즉 ‘버림받으시는 아들상’입니다. 버림받으시는 것조차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하늘의 아들이란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께 종속되어 있습니다. 흔히들 철없는 아들들이 부모님께서 다음과 같이 묻곤 하지요. “아버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 질문이 성립되려면 결코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놓여 있으면 안됩니다. 만약 참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라면 다음과같은 질문이 성립됩니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살아야 아버지의 뜻을 보이는 아들이 됩니까?”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죄인을 위해 버려지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공짜로 생긴 것이라면 낭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가정의 가장이 명예 퇴직을 당해서 수하에 약간의 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자녀들은 그 사정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돈이 많다고 학교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실은 그 돈들이 아버지의 파멸과 사회로부터의 버림받음의 댓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자기 손으로 하지 않은 일로부터 혜택을 입게 되면, 마치 자신의 공로인양 대외적으로 마구 선전해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안에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저주스러운 자리로 내다버린 사태가 들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9-21에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문단이 나옵니다.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고’와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라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와 연결시켜 봐야 합니다.

앞 줄에 있는 분이 모든 천국의 입장료를 다 치뤘다면 뒷 줄에 있는 우리가 따로 천국값을 치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 손으로 하지 않는 일 속에 있는 예수님의 버림받으심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분의 희생에 의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게 된 사실을 평생 잊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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